진보정치 1번지, 울산북구는 지금...

민주노동당 vs 신당 vs 이상범 전 구청장...진보내전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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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02-11 19:15:19l수정 2011-02-25 23:04:15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는 순간 날짜선정을 잘 못했다는 판단이 들었다. 설 연휴의 끝물이던 지난 9일, 정오를 갓 지난 버스터미널은 예상과 달리 한적했다. 귀경길을 서두르는 이도, 고향을 다녀와 아쉬운 발길을 집으로 돌리는 이들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민심 엿보기란 당초 계획을 다소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터미널 앞의 택시 승강장엔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손님으로 착각할까봐 손에 든 옷가방을 등 뒤로 감추고 슬며시 다가갔더니 "손님도 없는 데 납입금은 어떻게 맞추나"는 택시회사 소속 노동자의 하소연과, "좀 쉬려고 했더니 마누라가 일하러 나가라고 바가지 긁더라"는 개인택시 노동자들의 한숨이 뒤섞이고 있었다.

노동자의 도시, 재정자립도가 90퍼센트에 육박하는 부자도시 울산에 총선열풍은 아직 상륙하지 않았다. 6개의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한 14명의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이 공천전쟁을 벌이고 있을 테지만 시내건물에 간간히 붙은 홍보 플래카드를 제외하고는 선거분위기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정치평론가 수준의 입담을 자랑하던 한 택시노동자는 "공천 준비로 치열하지 대놓고 선거운동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전했다.

출장의 목적이던 민주노동당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민주노동당 망한 것 아닙니까"란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영남권 2곳에서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며 한나라당의 영남싹쓸이를 막는 유일한 정당이 됐다. '영남진보벨트'란 정치용어도 탄생시켰다. 그런데 그 민주노동당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울산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울산 북구 ‘탈환’은 여전히 적신호다.

2004년 4월 15일 오후 10시경 당선이 확정된 조승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진보정치의 선봉이 되겠습니다"

2004년 4월 15일 오후 10시경 당선이 확정된 조승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진보정치의 선봉이 되겠습니다"ⓒ민중의소리


진보정치1번지에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없다

지역구 중 민주노동당의 당선 가능성이 여전히 최고인 울산 북구에는 현재 총선 (예비)후보가 없다. 있었는데 없어졌고, 또 없어질 예정이다. 출마를 예고했던 김광식 전 울산시당위원장은 분당바람에 몸을 맡겨 탈당을 했고, 또 한명의 출마예상자던 정창윤 전 시당위원장도 "노회찬 의원과 행보를 같이 하겠다"며 사실상 탈당을 목전에 둔 상태다.

민주노동당의 내홍은 진보정치1번지인 울산을 비켜가지 않았다. 심상정 비대위가 불신임 받은 2월3일 당대회 이후 울산북구 당원 중 탈당계를 작성한 이는 30여명 수준이지만 설연휴가 끝나면 탈당 움직임은 조금 더 가시화될 전망이다. 현직 북구 구의원의 탈당도 점쳐지는 상태다. 울산 북구의 민주노동당 당원은 1900여명으로 이중 당권자는 1100명에 이르고, 7명 정원의 북구 구의원 중 민주노동당 소속은 3명에 이른다.

운 좋게 북구에 거주하는 택시노동자의 차를 탔다. 올해 44살의 이한석(가명) 씨는 "민주노동당이던 어디든 간에 공무원은 다 못 믿을 놈들"이라 말문을 열더니 "의정비도 5천만원인가 받아간다는 데 민노당 사람도 똑같다"고 주행 중인 차량이 떨릴 정도로 언성을 높인다. 민주노동당은 조승수 전 의원이 의원직을 박탈당한 2005년의 재보궐선거에서 수성에 실패했고, 2006년의 지방선거에서 북구청장을 빼앗겼지만, 이씨에게 울산 북구의 여당은 여전히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을 바라보는 이씨의 시선은 이유가 있다.
영남권에서 유일하게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의미있는 정치세력이 울산에서의 민주노동당이다. 때문에 울산 지역언론은 민주노동당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보도한다. 물론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울산시당 관계자는 "최근 민주노동당의 내홍에 대해서 울산 시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소상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옥희 전 울산시장후보와 조승수 전 의원의 탈당은 울산 시민에게는 친숙한 정치인들이 민주노동당을 떠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연이은 선거 패배와 탈당 바람으로 울산의 진보진영에는 패배의식도 점점 쌓여가는 중이다.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은 북구에 위치하고 있다. 시당 인근에 위치한 대형 할인마트에는 손님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연휴 중 낮 시간이라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겨우겨우 아기 화장지를 사러온 37살의 하승주(가명) 씨를 붙잡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 사정을 잘 모르지만 이명박씨에게 힘을 보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울산 북구에는 민주노동당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등의 자잘한 설명을 한 참 듣고 나자 바로 한 마디가 날아왔다. "영남은 무조건 한나라당입니다."

2004년 4.15총선 당시 김창현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근길 현대중공업 노동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04년 4.15총선 당시 김창현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근길 현대중공업 노동자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민중의소리


대상을 바꿔 계산대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접근했다. 북구 거주 여성노동자를 찾아"노동자시니깐 민주노동당 지지하시겠네요"라 물어봤더니 "찍어주기는 해야 하는데 동네 아줌마 분위기는 그게 아니"란다. "민노당 사람이 당선돼도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다. 주위 사람 중에도 마음 돌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더구나 자신은 일 때문에 낮 시간에 투표장에 갈 수 없는 처지라고.

민주노동당 VS 신당 VS 이상범 전 구청장...진보 내전 일어날까

이 여성 노동자의 말처럼 민주노동당의 울산 북구 되찾기는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객관적 조건이 그렇다. 2004년 총선에서 북구 유권자는 8만8천여명이었다가 2005년 재보궐에서는 9만7천여명, 2007년 대선에서는 10만명이 훌쩍 넘어 섰다. 현대자동차 노조원들과 그 가족들이 주요 지지자인 상태에서 미조직된 인구의 유입은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아무래도 불리하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울산시당은 지역조직건설에 박차를 가했으나 지방선거와 대선을 거치면서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더구나 조승수 전 의원이 '시설반대'를 주민들에게 약속했지만 이상범 전 구청장에 의해 '설치강행'된 중산동 음식물자원화시설은 민주노동당의 아킬레스건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북구를 대표했던 두 정치인의 행보도 좋은 평가를 듣기 어렵다. 민주노동당 소속의 민선 구청장에 이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조승수 전 의원은 이미 탈당을 했고, 조 전 의원의 뒤를 이어 구청장을 역임했던 이상범 전 구청장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옮겼다. 하지만 두 정치인이 ‘합작품’처럼 된 중산동 음식물자원화시설 사건은 여전히 민주노동당을 괴롭히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소속의 구청장과 국회의원은 대선을 앞둔 지난 해 10월 시설을 폐쇄하고 음식물쓰레기를 다른 구에 위탁해서 처리하기 시작했다. 주민들로서는 필요도 없는 시설로 갈등만 일으켰다는 인식을 가질 법도 하다.

지지표 분산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뒤 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조승수 전 의원은 울산 전 지역에 후보를 출마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북구에도 후보를 내겠다는 것. 만약 신당에서 총선후보가 나올 경우 울산북구는 총선승리는 뒷전으로 밀려놓은 체 ‘진짜진보정당, 진보후보’를 판가름하기 위해 이전의 동지들이 뒤엉켜 싸우는 ‘진보내전’이 예상된다. 비록 미풍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이상범 전 구청장이 나설 경우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통합신당 중앙에서는 이 전 구청장의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울산 현지에서 그의 움직임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04년 4.15총선 당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창현 후보 지지자들. "억압의 정치, 배신의 정치를 진보정치로 확 갈아엎겠습니다."

2004년 4.15총선 당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창현 후보 지지자들. "억압의 정치, 배신의 정치를 진보정치로 확 갈아엎겠습니다."ⓒ민중의소리


현대차 공장안에서 탈당 바람 일지는 않을 듯...개별적 탈당은 예고

현대자동차 공장안의 분위기는 어떨까.

사실 북구에서의 ‘진보내전’ 여부는 민주노동당이든 분당·탈당파든 모든 세력거점으로 보고있는 공장 담벼락 안의 흐름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집행부의 의사.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향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굳건히 지키고, 현대차지부 집행부도 민주노총의 방침을 따른 다면 공장 담벼락안에서 민주노동당 이외의 정치세력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단결’을 중시하는 금속노조의 기풍상, 현대차 현장조직들이 민주노총과 집행부가 결정한 민주노동당 지지방침에 대놓고 역행하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서 잠깐 지난 해 12월 실시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선거결과를 살펴보자. 당시 현대차지부장 선거에는 기호1번 홍성봉, 기호2번 윤해모, 기호3번 최태성 후보가 출마해 기호2·3번이 결선투표에 임했다. 최종 결과는 기호2번 윤해모 후보의 당선. 주목할 것은 결선투표에 오른 기호3번이 현대차 현장조직인 민노회(민주노동자회)와 민주현장(민주현장투쟁위원회, 자주회와 실노회의 통합으로 출범)의 선거연합이었던 점이다. 민주노동당으로 치자면 자주파(민주현장)와 평등파(민노회)가 연합을 한 것이다.

현대차의 한 활동가에 의하면 현재 민주노동당 탈당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 바로 민노회다. 민노회 회원중 한 명은 현장에서 탈당계를 노동자 당원들에게 돌리기도 했었다. 그는 공장 내의 탈당 흐름이 일단 중단된 상태이고, 현장조직의 결정에 의해 일사불란한 탈당 주도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개별인사의 탈당은 필연적일 것이라 내다봤다. 선거에서 연합을 했던 동지들이 민주노동당 사태를 두고 갈라서는 상황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당선된 윤해모 지부장은 민투위(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출신으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을 기치로 내건 ‘노동자의 힘’ 계열이다. ‘노동자의 힘’ 그룹은 아직까지 민주노동당에 대해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있지는 않지만, 분당을 주도해 온 조승수 전 의원 등에 비해 훨씬 급진적 성향을 보여온 만큼 신당 흐름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 윤 지부장은 현재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이래저래 현 집행부가 분당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출마 후보 찾기도 쉽지 않아...전략공천 가능성 대두

2004년 4.15총선 개표가 시작될 무렵 김창현 후보의 지지자들이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막걸리를 돌리며 서로의 수고를 치하하는 말등을 주고받고 있다

2004년 4.15총선 개표가 시작될 무렵 김창현 후보의 지지자들이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막걸리를 돌리며 서로의 수고를 치하하는 말등을 주고받고 있다ⓒ민중의소리


주객관적으로 오는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울산 북구 탈환은 쉽지 않다.
일단 울산시당은 현재의 난국을 ‘인물’과 ‘민주노총’의 힘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강호석 울산시당 사무처장은 "시당과 중앙당이 북구를 살리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고 올인(all-in)한다는 모습을 당원들과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면서 "북구 후보를 민주노총 조합원 여론조사나 직접투표 등을 적절히 섞어서 선출해 민주노동당이냐 신당이냐의 판단기로에 있는 조합원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시당은 이달 말일에 열리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대의원대회에 '총선 후보 선출 과정에 민주노총이 참여해 달라'는 취지의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

북구에 적합한 인물을 내세워야 하는 점도 고민이다. 시당은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총선 경선후보등록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재 북구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보군은 없다. 자연스럽게 전략공천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지 활동가들에 의해 거론되는 후보군으로는 남구에 출마를 준비 중인 이영순 의원과 김창현 전 사무총장, 문성현 전 대표 등이다. 이 의원은 현직의원이란 프리미엄이, 김 전 총장은 울산 출신의 대표적 진보정치인이란 상징성이, 문 전 대표는 민주노동당이 거물급 인사를 북구선거에 투입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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