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반나절도 안 지나 '꼼수' 드러나

최대 6개월 '수출자율규제'..."국민저항 모면위한 비열한 기만책"

김태환, 조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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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일 오전 발표한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중단 요청과 고시유보 발표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기만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과의 재협상이 아니라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한시적으로, 그것도 미국 업자들에게 '자율적인 수출제한'을 요청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3일 "국민들께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해서는 수출중단을 미국에 요청했다"면서 "미국에서 이에 대한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업자들에게 ‘30개월 이상 수출하지 말아 달라’ 요청?

그러나 정부가 미국에 요청한 것은 재협상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쇠고기 수출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수출을 제한하는 수출자율규제(VER;voluntary export restraint)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4월 9일 합의된 기존의 한미 쇠고기수입협정 자체를 수정하는 '재협상'이 아니라 미국 측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한시적으로 수출하지 않기로 하는 형태를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자율규제란?


수출자율규제란 특정한 조건이나 수량을 수출국의 업체들이 알아서 조절하는 형식을 뜻하는 것으로, 흔히 반덤핑 및 상계관세조치와 같은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왔다.

1981년 오일쇼크와 그에 뒤이은 일본차의 무차별 공세로 미국 자동차업계가 고사위기에 처하자 미,일 양국이 일본차의 대미수출을 연 168만대로 제한하고 3년뒤에는 이를 185만대로 늘려 시행하기로 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1995년 출범 이후 수출자율규제를 국제통상규범을 우회하는 '회색조치'로 규정해 철폐대상으로 꼽았지만 수출자율규제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실제로 2006년에는 브라질과 중국간에 중국산 섬유류 수출자율규제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이번 쇠고기 문제에서도 어려운 재협상을 거치지 않고 어느 정도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실제로 시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다.

미국측과의 협의를 통해 미국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스스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한시적이나마 수출육류에 월령을 표시하겠다고 나선 것도 유사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수출자율규제는 제3국이 양자간 조치로 피해를 본다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며 정부의 쇠고기 난국 해결에 '자율규제'가 유력한 대안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자율규제를 포함, 고위급 외교 채널을 통해 30개월 이상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미국쪽에 요청했다"며 "미국이 자율규제 정도만 받아들이면 돌파구가 마련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즉 "(미국 측이)30개월이상 쇠고기는 한국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면 재협상을 하지 않더라도 30개월 월령 제한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정부 발표는) 국민들이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해 우려가 많으니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때까지 수입이 안되도록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미국측이 수출 자율규제를 결정한다 해도, 정부-업계간 약속 이행을 어떤 방식으로 미국 정부가 보장․통제할 지를 담은, 수출자율규제협정(VRA;Voluntary Restraints Agreement)을 한미간에 따로 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美 쇠고기 업체 “120일 간만 연령 표시하겠다”

이와 관련 타이슨 푸드와 카길 미트솔루션, JBS 스위프트, 내셔널 비프패킹, 스미스필드 비프그룹 등 미 쇠고기 업체들은 이날 발표한 공동 언론보도문에서 '소 도축 때 연령 30개월 미만·초과 여부를 표시해 한국 소비자들이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이 같은 라벨부착 프로그램을 최대 120일 동안 한시적으로만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수출자율규제가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잘해야 4개월 정도만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이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한미 쇠고기수입위생조건을 그대로 놔둔 채 체결될 경우 국제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정부가 요청한 수출자율규제로는 ▲광우병 위험 특정위험물질(SRM) 중 수입이 허용된 모든 연령의 SRM과 ▲혀, 곱창, 선진회수육, 사골, 꼬리뼈의 수입을 막을 수 없으며 ▲광우병 발생시 우리 정부가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는 기존 협정(협정문 5항)의 허점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협정문 5항에는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광우병통제국 지위를 하향조정할 때 한국 정부가 수입중단할 것’이라 되어 있다.

대책위 “쇠고기 수입 시기만 늦추려는 것일 뿐...기만책이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정운찬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고시 유보 발표에 대해 “폭발하는 국민저항을 일시 모면하기 위한 비열한 기만책”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국민의 위대한 힘을 두렵게 여기기 시작했다면 미봉책을 당장 포기하고 국민의 뜻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정운천 장관 발표의 핵심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중단’이 한시적 조치일 뿐”이라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가 아무런 통제도 없이 우리국민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시기만을 잠시, 뒤로 미룬 것 외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정부가 국민건강을 지키려한다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영구적 수입중단’을 명백한 정부 방침으로 확인하고 이를 미국 측에 요구해야만 한다”면서 “검역주권과 국민건강권 회복의 문제는 특정위험 물질 문제 등을 포함한 많은 문제인데 오직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에 한정된 것인 양 의도적으로 축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우리는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국민건강 포기각서에 다름없는 협상결과를 전면무효 선언하고 즉각 재협상에 착수해야 한다”면서 “국민대책회의가 제시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인 7개항이 관철될 때까지 국민촛불 저항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대책회의는 오는 4일 오후 1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각 단체 및 지역대표자가 참여하는 ‘한미 쇠고기 재협상 촉구, 국민기만 이명박 심판 비상대표자회의’를 열고, 10일 100만의 촛불 대행진을 조직화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한다.

<김태환, 조태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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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 2008-06-03 14:41:40
  • 최종업데이트 : 2008-06-03 16: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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