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1979-2008)의 종언과 이후
[특별기획-'좌회전' ②]1부:신자유주의, 양극화의 시대는 끝났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09-03-11 00:10:40 수정 2009-03-11 09:52:33
현재 세계경제위기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를 넘어 자본주의 사상 최악의 위기였던 193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파이낸셜 타임즈>, <뉴스위크>지 등 작년 가을 금융위기 국면에서 ‘월스트리트 자본주의’ 모델이 종말을 맞이했다고 선언했던 세계의 주요 매체들은 이제 ‘우리가 여태까지 알아온 바의 자본주의’의 종언을 전망하고 있다. 세계경제위기 이후에는 (그것이 2-3년 후가 될지, 10-20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는 현재까지 우리가 살아온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세계가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난 세기말 이후 전세계 경제정책 체제의 ‘표준’으로 통용되고 강제되었던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는 역사의 휴지통으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는 1979년 폴 볼커의 금리 인상 (이는 뒤메닐과 레비에 따르면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주의 체제 하에서 억압되어 왔던 금융자본이 감행한 ‘쿠데타’였다)을 전후하여 전세계로 확산되었지만, 30년 후인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의 파산과 함께 종말을 맞이했다. 사실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위기가 발생하던 시점부터 이미 세계 주요 국가의 정책 체제는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대규모 구제금융, 은행 국유화, 대규모 적자재정 등에서 보듯이, 이미 케인스주의, 국가자본주의로 확실하게 선회했다. 오늘날 상황은 아직도 신자유주의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일부 진보진영 논자들이 강변하듯이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점에서는 “국독자의 시대가 다시 왔다”고 환호하는 스탈린주의 국독자론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물론 다시 도래한 ‘국독자’의 수명은 선행한 신자유주의보다 더 짧을 것이며, 그래서 국독자론자들의 주장처럼 그것을 자본주의 발전의 또 하나의 ‘단계’라고 명명하는 것이 우습지만 말이다.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세계의 장기불황과 구조적 위기 계속돼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 하에서 전세계적으로 양극화, ‘격차사회’ 현상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었다. 이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강화, 자본가계급에 대한 규제 완화, 지원 강화 (노동시장 유연화, 복지국가 해체, 사유화, 금융 탈규제, 금융세계화 등)를 통해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20-30년 동안 장기호황 (‘황금시대’ 혹은 ‘콘드라티에프 A 국면’)을 구가했지만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 저하에서 비롯된 구조적 위기, 장기불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70년대 주요 선진국의 지배계급은 이와 같은 장기불황 국면의 개시에 대해 케인스주의적 적자재정으로 대응했지만, 이는 장기불황의 극복이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주요 선진국의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강화와 자본가계급에 대한 규제 완화, 지원 강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는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 하에서 착취율은 크게 상승해서 이윤율의 저하를 상쇄했고 이로부터 주요 선진국의 이윤율은 1980년대 초 바닥을 치고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 저하의 원인이 네오리카도주의자들 혹은 자율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 노동자 권력의 강화 혹은 고임금에 따른 착취율의 저하가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의 과잉축적에 기인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였기 때문에, 착취율의 상승을 통해서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이 상승했다 할지라도 이 시기 이윤율의 평균적 수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호황기의 이윤율의 평균적 수준의 절반 혹은 2/3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또 일시적 반등 이후 대폭 저하의 양상 (1997-9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의 하락,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의 하락, 최근의 폭락 등)을 반복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가 이윤율을 근본적으로 상승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이윤율에 의해 규정되는 투자의 증가, 즉 자본축적 역시 미약했으며, 그 결과 자본축적에 의해 주도되는 자본주의 경제성장 역시 취약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자본주의 세계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라는 초과착취 체제로 전환한 이후에도 1970년대 이후 시작된 이윤율의 장기 저하 및 이로부터 비롯된 장기불황과 구조적 위기 국면 (이른바 ‘콘드라티에프 B 국면’)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이와 같은 장기불황, 구조적 위기는 2008년 세계대공황이 본격화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가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 하에서 경제성장을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부정확하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 주요 국가의 GDP 성장률은 그 이전 시기보다 한참 낮았으며,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저성장과 위기는 지속되었으며, 급기야 2008년 들어 세계대공황이라는 파국을 맞이했다고 말해야 맞다.
금융화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 아닌 결과
1980년대 이후 이윤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경제성장이 회복되지 않은 것은, 케인스주의자들을 비롯한 일부 진보진영 논자들이 주장하듯이, 이른바 ‘금융화’ 때문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투자와 경제성장이 빈약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서 지적했듯이, 이 시기 이윤율의 회복 자체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1980년대 이후 이윤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비금융 기업부문에 대한 투자가 부진했던 것은, ‘금융화’ 논자들이 주장하듯이, 생산적 자본에서 창조된 잉여가치가 금융 부문으로 유출되었거나 ‘주주자본주의’ 원리, 단기 수익성의 원리가 득세해서가 아니라, 비금융 기업부문의 평균이윤율 자체가 과잉축적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 인해 낮았기 때문이다. 즉 ‘금융화’는 생산적 부문, 실물 자본 영역의 부진, 즉 실물 자본의 과잉축적과 이윤율 저하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케인스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 내내 주장했고 신자유주의가 붕괴한 지금도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금융 억압’, 금융재규제, ‘탈금융화’, 산업자본의 부활, ‘재산업화’ 등은 현재 위기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실제로 현재 위기가 심화되면서 금융 거품이 터지고 ‘탈금융화’가 결정적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진정되기는커녕 세계대공황으로 치닫고 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금융자본 중심’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 모델, 혹은 영미식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모델 대신 독일식 혹은 스웨덴식 성장 방식, 이른바 ‘산업자본 중심’ 모델, 혹은 ‘사회통합적 성장’ 모델을 위기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산업자본 중심’ 모델은 현재 위기의 대안이기는커녕, 세계적 규모에서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을 격화시킨 위기의 근본 원인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게다가 독일식 혹은 스웨덴식 ‘산업자본 중심’의 수출주도적 고성장은 영미식 자본주의의 ‘금융화’와 저성장을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현재 세계경제위기가 심화되자 독일과 같은 ‘산업자본 중심’ 모델은 위기의 예외가 되기는커녕 ‘금융자본 중심’의 모델 국가들인 미국 영국 못지않은 심각한 위기에 쓸려 들어가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성장이 회복되지 않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 시기 이윤율의 회복이 과잉축적과 과잉설비의 정리, 즉 자본 가치의 파괴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유효수요 증가 및 소비 증가는 억제되었다. 또 자본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를 통해 생산한 잉여가치의 실현과 이에 기초한 신규 투자의 증가 역시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래서 과잉축적과 이윤율의 저하에서 비롯된 위기에 대중의 과소소비 과잉생산의 위기가 중첩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후 소비와 생산적 투자의 증가가 곤란해진 상황에서 자본이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수출의 증대 (세계화)와 ‘금융화’, 특히 ‘자산 효과’(wealth effect)와 채무 증가를 통한 성장 방안이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GDP 통계를 보면 실질임금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소비 지출의 비중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 시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금융화’ 과정에서 급등한 주택과 각종 금융자산 가격 및 이에 수반된 ‘자산 효과’와 채무의 누적이 임금이 억압된 조건 하에서도 소비 지출의 증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세기말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은 ‘쌍둥이 거품’ (‘닷컴 거품’과 ‘주택 거품’)이 가능하게 한 소비 지출의 증가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리고 이런 거품 성장은 주택과 자산 가격 거품의 붕괴와 함께 파탄을 맞이했다.
지난 세기말 이후 미국경제의 성장과 파탄 사례에서 확증되듯이, 신자유주의적 성장, 즉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은, 설사 성장을 달성한다 할지라도, 미약한 성장, 그것도 자산 가격 증가와 채무 증가를 통한 거품 성장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양극화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양극화를 초래한 착취 강화 과정에서 위축된 국내 대중의 유효수요를 ‘금융화’에 따른 부동산 자산 가격 거품으로 부풀릴 수 있거나, 수출 증가, 즉 해외의 유효수요 확보를 통해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부풀려진 거품은 결국 ‘가치법칙의 규정’ 하에서 조만간 폭발할 수밖에 없고, 후자처럼 세계시장에의 수출 의존의 심화, 즉 세계화의 강화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이웃 거지 만들기’ 전략으로서, 초과착취가 초래한 국내의 유효수요의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기는 커녕 단지 다른 나라, 세계시장에 전가할 뿐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세계적 규모에서 과잉축적과 과잉생산 경향을 심화시켜 세계경제위기를 더 격화시킬 뿐이다. 실제로 양극화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은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돌파 전략으로서 1980년대 이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채택되었지만, 이는 미약한 성장, 그것도 되풀이되는 거품 성장만을 초래했고, 결국 그 거품이 꺼지면서 현재 세계대공황이 터졌다.
‘분배에 기초한 성장’체제 성립할 수 없어
케인스주의자들은 종말을 맞이한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모델 대신 이른바 ‘분배에 기초한 성장’ 모델을 대안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독일식 혹은 스웨덴식 ‘분배에 기초한 성장’ 모델은 현재 위기의 필수적 요소이자 원인이기 때문에, 결코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악분배와 양극화 문제는 현재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 197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장기불황, 즉 과잉축적에 따른 이윤율 저하의 위기를 착취 강화를 통해 타개하려는 과정에서 초래된 현상이다. 따라서 분배의 평등화, 양극화의 해소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필자의 주장을 진보진영이 분배의 평등과 양극화의 해소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지배계급은 그 동안의 초과착취에 기초한 수익성 회복 전략, 즉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전략이 최종적으로 파탄나면서 초래된 현재의 세계대공황 사태에 직면해서 도리어 이를 초과착취를 강화하는 것을 비롯해서 노동자계급 (및 자국 납세자, 제3세계 민중)에게 위기 극복의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돌파하려 하는데, 진보진영이 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초과착취 강화 기도 및 이것이 초래할 대내적 및 전세계적 양극화의 심화에 저항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초과착취 강화 기도의 분쇄 투쟁과 이를 통한 분배의 평등화와 양극화의 해소는 그 자체 진보의 가치로서 추구되어야 하지,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혹은 바람직한 성장의 전략의 일환으로 주장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모종의 위기 극복 전략이나 ‘분배에 기초한 성장’을 비롯한 모종의 ‘바람직한’ 성장 전략이 아니다. 이미 세계경제위기는 대공황 수준으로 격화되고 있는데, 이는 오바마의 ‘녹색 성장’과 같은 신판 ‘국독자’ 전략이든, 혹은 ‘분배에 기초한 성장’ 전략이든, 설사 케인스 되살아난다 해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완화하는 데도 근본적 한계가 있다.
분배의 평등과 양극화의 해소를 자본주의에서도 실현 가능한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주장하고 나아가 이를 현재 위기의 대안이라고 주장할 경우, 진보진영은 결국 ‘성장의 도그마’라는 함정에 빠져서,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즉 자본축적의 문제설정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자본주의 안에서도 계급투쟁과 계급간 역관계의 여하에 따라서 분배의 개선과 경제성장, 즉 자본축적이 양립하는 상황은 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자들, ‘분배에 기초한 성장’론자들은 이처럼 분배와 성장이 양립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기술을 넘어서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이 분배에 기초해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과론적 내지 당위론적 명제를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분배에 기초한 성장’ 체제가 일반적으로 성립하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은 자본축적의 다른 말이고,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 법칙’은 한편에서 자본의 축적과 다른 한편에서 빈곤의 축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경제위기가 21세기 세계대공황으로 격화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자본주의의 존립 자체가 문제시되자 <파이낸셜 타임즈>지의 마르틴 울프(Martin Wolf)처럼 세계 지배계급의 담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이제 ‘자본주의 이후’ 시대를 구상하고 대비할 것을 심각하게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진보를 자임하고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여전히 ‘자본주의 이후 대안 부재론’(TINA)의 덫에 갇혀서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나쁜‘ 축적 전략 대신 ’분배에 기초한 성장‘, 이른바 ’바람직한‘ 축적 전략 따위를 경제위기의 극복 전략으로 정부가 채택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은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진보진영은 현재 세계대공황 과정에서 목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의 종언, 즉 그 간의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방식의 파탄을 자본주의적 성장 방식 일반의 최종적 파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진보진영은 ’국독자‘ 위기 극복 전략이든, ’분배에 기초한 성장‘ 전략이든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적 축적 전략도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경제성장은 인류의 복지와 미래를 위해 어쨌든 불가피한 숙명이라는 보수와 진보가 오랫 동안 공유해 온 고정 관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역사를 길게 보면, 노동력의 상품화에 기반한 잉여가치의 전유와 토지와 자연의 전면적 상품화, 생태계의 파괴, 화석 연료의 수탈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자체가 오히려 예외적 비정상적 상태일 것이다. 진보진영은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인가 ’분배에 기초한 성장‘인가라는 이분법적 문제설정, 어쨌든 양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탈성장의 질적 대안,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탈자본주의 대안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민주적 생태적 계획경제의 구현을 진보진영의 중장기적 과제로 분명하게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난 세기말 이후 전세계 경제정책 체제의 ‘표준’으로 통용되고 강제되었던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는 역사의 휴지통으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는 1979년 폴 볼커의 금리 인상 (이는 뒤메닐과 레비에 따르면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주의 체제 하에서 억압되어 왔던 금융자본이 감행한 ‘쿠데타’였다)을 전후하여 전세계로 확산되었지만, 30년 후인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의 파산과 함께 종말을 맞이했다. 사실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위기가 발생하던 시점부터 이미 세계 주요 국가의 정책 체제는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대규모 구제금융, 은행 국유화, 대규모 적자재정 등에서 보듯이, 이미 케인스주의, 국가자본주의로 확실하게 선회했다. 오늘날 상황은 아직도 신자유주의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일부 진보진영 논자들이 강변하듯이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점에서는 “국독자의 시대가 다시 왔다”고 환호하는 스탈린주의 국독자론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물론 다시 도래한 ‘국독자’의 수명은 선행한 신자유주의보다 더 짧을 것이며, 그래서 국독자론자들의 주장처럼 그것을 자본주의 발전의 또 하나의 ‘단계’라고 명명하는 것이 우습지만 말이다.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세계의 장기불황과 구조적 위기 계속돼
ⓒ민중의소리
" ‘금융화’는 생산적 부문, 실물 자본 영역의 부진, 즉 실물 자본의 과잉축적과 이윤율 저하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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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가 이윤율을 근본적으로 상승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이윤율에 의해 규정되는 투자의 증가, 즉 자본축적 역시 미약했으며, 그 결과 자본축적에 의해 주도되는 자본주의 경제성장 역시 취약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자본주의 세계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라는 초과착취 체제로 전환한 이후에도 1970년대 이후 시작된 이윤율의 장기 저하 및 이로부터 비롯된 장기불황과 구조적 위기 국면 (이른바 ‘콘드라티에프 B 국면’)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이와 같은 장기불황, 구조적 위기는 2008년 세계대공황이 본격화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가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 하에서 경제성장을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부정확하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 주요 국가의 GDP 성장률은 그 이전 시기보다 한참 낮았으며,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저성장과 위기는 지속되었으며, 급기야 2008년 들어 세계대공황이라는 파국을 맞이했다고 말해야 맞다.
금융화는 이윤율 저하의 원인 아닌 결과
1980년대 이후 이윤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경제성장이 회복되지 않은 것은, 케인스주의자들을 비롯한 일부 진보진영 논자들이 주장하듯이, 이른바 ‘금융화’ 때문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투자와 경제성장이 빈약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서 지적했듯이, 이 시기 이윤율의 회복 자체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1980년대 이후 이윤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비금융 기업부문에 대한 투자가 부진했던 것은, ‘금융화’ 논자들이 주장하듯이, 생산적 자본에서 창조된 잉여가치가 금융 부문으로 유출되었거나 ‘주주자본주의’ 원리, 단기 수익성의 원리가 득세해서가 아니라, 비금융 기업부문의 평균이윤율 자체가 과잉축적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 인해 낮았기 때문이다. 즉 ‘금융화’는 생산적 부문, 실물 자본 영역의 부진, 즉 실물 자본의 과잉축적과 이윤율 저하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케인스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 내내 주장했고 신자유주의가 붕괴한 지금도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금융 억압’, 금융재규제, ‘탈금융화’, 산업자본의 부활, ‘재산업화’ 등은 현재 위기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실제로 현재 위기가 심화되면서 금융 거품이 터지고 ‘탈금융화’가 결정적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진정되기는커녕 세계대공황으로 치닫고 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금융자본 중심’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 모델, 혹은 영미식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모델 대신 독일식 혹은 스웨덴식 성장 방식, 이른바 ‘산업자본 중심’ 모델, 혹은 ‘사회통합적 성장’ 모델을 위기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산업자본 중심’ 모델은 현재 위기의 대안이기는커녕, 세계적 규모에서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을 격화시킨 위기의 근본 원인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게다가 독일식 혹은 스웨덴식 ‘산업자본 중심’의 수출주도적 고성장은 영미식 자본주의의 ‘금융화’와 저성장을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현재 세계경제위기가 심화되자 독일과 같은 ‘산업자본 중심’ 모델은 위기의 예외가 되기는커녕 ‘금융자본 중심’의 모델 국가들인 미국 영국 못지않은 심각한 위기에 쓸려 들어가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성장이 회복되지 않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 시기 이윤율의 회복이 과잉축적과 과잉설비의 정리, 즉 자본 가치의 파괴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유효수요 증가 및 소비 증가는 억제되었다. 또 자본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를 통해 생산한 잉여가치의 실현과 이에 기초한 신규 투자의 증가 역시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래서 과잉축적과 이윤율의 저하에서 비롯된 위기에 대중의 과소소비 과잉생산의 위기가 중첩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후 소비와 생산적 투자의 증가가 곤란해진 상황에서 자본이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수출의 증대 (세계화)와 ‘금융화’, 특히 ‘자산 효과’(wealth effect)와 채무 증가를 통한 성장 방안이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GDP 통계를 보면 실질임금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소비 지출의 비중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 시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금융화’ 과정에서 급등한 주택과 각종 금융자산 가격 및 이에 수반된 ‘자산 효과’와 채무의 누적이 임금이 억압된 조건 하에서도 소비 지출의 증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세기말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은 ‘쌍둥이 거품’ (‘닷컴 거품’과 ‘주택 거품’)이 가능하게 한 소비 지출의 증가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리고 이런 거품 성장은 주택과 자산 가격 거품의 붕괴와 함께 파탄을 맞이했다.
지난 세기말 이후 미국경제의 성장과 파탄 사례에서 확증되듯이, 신자유주의적 성장, 즉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은, 설사 성장을 달성한다 할지라도, 미약한 성장, 그것도 자산 가격 증가와 채무 증가를 통한 거품 성장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양극화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양극화를 초래한 착취 강화 과정에서 위축된 국내 대중의 유효수요를 ‘금융화’에 따른 부동산 자산 가격 거품으로 부풀릴 수 있거나, 수출 증가, 즉 해외의 유효수요 확보를 통해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부풀려진 거품은 결국 ‘가치법칙의 규정’ 하에서 조만간 폭발할 수밖에 없고, 후자처럼 세계시장에의 수출 의존의 심화, 즉 세계화의 강화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이웃 거지 만들기’ 전략으로서, 초과착취가 초래한 국내의 유효수요의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기는 커녕 단지 다른 나라, 세계시장에 전가할 뿐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세계적 규모에서 과잉축적과 과잉생산 경향을 심화시켜 세계경제위기를 더 격화시킬 뿐이다. 실제로 양극화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은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돌파 전략으로서 1980년대 이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채택되었지만, 이는 미약한 성장, 그것도 되풀이되는 거품 성장만을 초래했고, 결국 그 거품이 꺼지면서 현재 세계대공황이 터졌다.
‘분배에 기초한 성장’체제 성립할 수 없어
케인스주의자들은 종말을 맞이한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모델 대신 이른바 ‘분배에 기초한 성장’ 모델을 대안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독일식 혹은 스웨덴식 ‘분배에 기초한 성장’ 모델은 현재 위기의 필수적 요소이자 원인이기 때문에, 결코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악분배와 양극화 문제는 현재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 197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장기불황, 즉 과잉축적에 따른 이윤율 저하의 위기를 착취 강화를 통해 타개하려는 과정에서 초래된 현상이다. 따라서 분배의 평등화, 양극화의 해소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필자의 주장을 진보진영이 분배의 평등과 양극화의 해소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지배계급은 그 동안의 초과착취에 기초한 수익성 회복 전략, 즉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전략이 최종적으로 파탄나면서 초래된 현재의 세계대공황 사태에 직면해서 도리어 이를 초과착취를 강화하는 것을 비롯해서 노동자계급 (및 자국 납세자, 제3세계 민중)에게 위기 극복의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돌파하려 하는데, 진보진영이 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초과착취 강화 기도 및 이것이 초래할 대내적 및 전세계적 양극화의 심화에 저항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초과착취 강화 기도의 분쇄 투쟁과 이를 통한 분배의 평등화와 양극화의 해소는 그 자체 진보의 가치로서 추구되어야 하지,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혹은 바람직한 성장의 전략의 일환으로 주장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모종의 위기 극복 전략이나 ‘분배에 기초한 성장’을 비롯한 모종의 ‘바람직한’ 성장 전략이 아니다. 이미 세계경제위기는 대공황 수준으로 격화되고 있는데, 이는 오바마의 ‘녹색 성장’과 같은 신판 ‘국독자’ 전략이든, 혹은 ‘분배에 기초한 성장’ 전략이든, 설사 케인스 되살아난다 해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완화하는 데도 근본적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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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경상대 교수
'); }오늘날 세계경제위기가 21세기 세계대공황으로 격화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자본주의의 존립 자체가 문제시되자 <파이낸셜 타임즈>지의 마르틴 울프(Martin Wolf)처럼 세계 지배계급의 담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이제 ‘자본주의 이후’ 시대를 구상하고 대비할 것을 심각하게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진보를 자임하고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여전히 ‘자본주의 이후 대안 부재론’(TINA)의 덫에 갇혀서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나쁜‘ 축적 전략 대신 ’분배에 기초한 성장‘, 이른바 ’바람직한‘ 축적 전략 따위를 경제위기의 극복 전략으로 정부가 채택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은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진보진영은 현재 세계대공황 과정에서 목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의 종언, 즉 그 간의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 방식의 파탄을 자본주의적 성장 방식 일반의 최종적 파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진보진영은 ’국독자‘ 위기 극복 전략이든, ’분배에 기초한 성장‘ 전략이든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적 축적 전략도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경제성장은 인류의 복지와 미래를 위해 어쨌든 불가피한 숙명이라는 보수와 진보가 오랫 동안 공유해 온 고정 관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역사를 길게 보면, 노동력의 상품화에 기반한 잉여가치의 전유와 토지와 자연의 전면적 상품화, 생태계의 파괴, 화석 연료의 수탈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자체가 오히려 예외적 비정상적 상태일 것이다. 진보진영은 ’양극화에 기초한 성장‘인가 ’분배에 기초한 성장‘인가라는 이분법적 문제설정, 어쨌든 양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탈성장의 질적 대안,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탈자본주의 대안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민주적 생태적 계획경제의 구현을 진보진영의 중장기적 과제로 분명하게 천명할 필요가 있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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