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뉴딜'로 일자리 1만 4천개 만들었다?
문화부 일자리 정책, 정치공학을 넘어섰나
안태호(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 연구원)
입력 2009-09-28 13:34:56 수정 2009-10-03 10:37:57
일자리 창출은 이명박 정부에게 발등의 불이다. 고용보험 수급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고 있다.
문화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화부의 일자리 정책은 예술뉴딜 사업과 사회적 기업(일자리)으로 집약된다. 문화부는 ‘2009년 상반기 주요 성과 및 향후 추진과제 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예술뉴딜 사업 1,008명을 비롯해 일자리 14,000여개를 만들었고, 앞으로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 200개와 사회적 일자리 3,000개를 더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술뉴딜 정책과 사회적 기업이 과연 문화부가 발표한 것처럼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 문화향유기회 확대에 기여하게 될까. 명목상으로 보자면 그럴듯하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예술뉴딜 정책을 살펴보자. 이는 대공황시절 미국의 문화뉴딜 정책에 착안한 내용일 것이다. '연방 프로젝트 넘버 원', 약칭 '페더럴 원'(Federal One)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에는 화가 잭슨 폴록, 소설가 존 스타인벡, 영화배우 오손 웰즈, 극작가 아서 밀러 등 4만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찬반논의가 없지 않지만, 이 프로젝트가 불황극복에 톡톡히 일조했으며 미국의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문화뉴딜에서는 문화의 공공성이나 문화입국에 대한 의지보다는 경제위기와 일자리 문제 등과 관련한 정치공학이 읽힌다. 미국의 문화뉴딜이 성공한 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미국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적 가치를 만들어낸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작품들과 연구결과들은 고스란히 미국문화의 자양분으로 남았다. 다분히 아이디어성 사업이나 홍보성 사업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는 한국의 예술뉴딜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예술뉴딜’이 되기 어려워 보이는 까닭이다.
정부가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기업-NGO에 이은 제4섹터로 불리는 사회적 기업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한 수단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일자리가 긍정적인 측면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일자리에 종사하는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자조섞인 푸념의 말들을 들은 경험이 있다. 자신들의 처우가 아르바이트생이나 인턴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달 내내 일하고 얻는 수입이 아르바이트생이나 인턴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심지어 더 열악하다면 적어도 ‘양질의 일자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기업의 유행을 걱정스런 눈길로 쳐다보는 이들도 있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정책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명분쌓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정부가 워낙에 속도를 내다보니 각종 부실도 우려된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90년대 ‘묻지마 벤처’ 열풍이 떠오른다고 했다.
예술뉴딜과 사회적 기업은 모두 현재의 자본주의가 가닿은 곳이 남긴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공공성 확대노력의 일환이다. 정부가 공공성에 대한 이해 없이 다만 정치공학과 정책세일즈를 위해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임시방편에만 매달린다면 고용문제의 획기적 진전은 요원할 것이다.
문화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화부의 일자리 정책은 예술뉴딜 사업과 사회적 기업(일자리)으로 집약된다. 문화부는 ‘2009년 상반기 주요 성과 및 향후 추진과제 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예술뉴딜 사업 1,008명을 비롯해 일자리 14,000여개를 만들었고, 앞으로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 200개와 사회적 일자리 3,000개를 더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술뉴딜 정책과 사회적 기업이 과연 문화부가 발표한 것처럼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 문화향유기회 확대에 기여하게 될까. 명목상으로 보자면 그럴듯하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예술뉴딜 정책을 살펴보자. 이는 대공황시절 미국의 문화뉴딜 정책에 착안한 내용일 것이다. '연방 프로젝트 넘버 원', 약칭 '페더럴 원'(Federal One)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에는 화가 잭슨 폴록, 소설가 존 스타인벡, 영화배우 오손 웰즈, 극작가 아서 밀러 등 4만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찬반논의가 없지 않지만, 이 프로젝트가 불황극복에 톡톡히 일조했으며 미국의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문화뉴딜에서는 문화의 공공성이나 문화입국에 대한 의지보다는 경제위기와 일자리 문제 등과 관련한 정치공학이 읽힌다. 미국의 문화뉴딜이 성공한 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미국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적 가치를 만들어낸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작품들과 연구결과들은 고스란히 미국문화의 자양분으로 남았다. 다분히 아이디어성 사업이나 홍보성 사업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는 한국의 예술뉴딜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예술뉴딜’이 되기 어려워 보이는 까닭이다.
정부가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기업-NGO에 이은 제4섹터로 불리는 사회적 기업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한 수단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일자리가 긍정적인 측면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일자리에 종사하는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자조섞인 푸념의 말들을 들은 경험이 있다. 자신들의 처우가 아르바이트생이나 인턴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달 내내 일하고 얻는 수입이 아르바이트생이나 인턴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심지어 더 열악하다면 적어도 ‘양질의 일자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기업의 유행을 걱정스런 눈길로 쳐다보는 이들도 있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정책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명분쌓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정부가 워낙에 속도를 내다보니 각종 부실도 우려된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90년대 ‘묻지마 벤처’ 열풍이 떠오른다고 했다.
예술뉴딜과 사회적 기업은 모두 현재의 자본주의가 가닿은 곳이 남긴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공공성 확대노력의 일환이다. 정부가 공공성에 대한 이해 없이 다만 정치공학과 정책세일즈를 위해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임시방편에만 매달린다면 고용문제의 획기적 진전은 요원할 것이다.
안태호(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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