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수습기자들의 꿈
[민소스토리] "'요즘 젊은 애들' 여전히 건강합니다"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0-03-08 10:40:12 수정 2010-03-10 15:39:07
사람들은 쉽게 ‘요즘 젊은 애들은 너무 정치에 관심이 없어’라거나 ‘젊은 층이 보수화되고 있어’ 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민중의소리>의 젊은 피 3인방, 수습기자 구도희(26), 백준현(26), 양지웅(28) 세 사람을 만났다. 한국사회 언론을 통틀어 가장 왼쪽 어딘가에 있을, 게다가 박봉으로 치면 남부럽지 않은 <민중의소리>에 거침없이 지원해 2달 넘도록 버티고 있는 이들의 뇌구조를 파악해보고 싶어서다.
첫 번째 단계로 이들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봤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진보’를 지향하는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 같이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청주에서 살았던 구도희 기자는 “친구들과 어울려 그냥 둥글게 둥글게 살았어요”라고 말한다. 그나마 ‘일탈’이라면 ‘만화가’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선포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만화에 미쳐서 닥치지 않고 만화를 읽고 코스프레를 한다고 밤새 옷을 만들다가 코피를 터뜨리기도 하면서 만화가의 꿈을 남몰래 키웠다. 이유는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해서 밥벌이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것.
하지만 만화가의 꿈은 부모님의 거센 반대로 접어야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남의 만화 따라 그리기에는 제법 소질이 있었지만 창의력은 좀 부족하고, 자신보다 더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깨닫고 있던 차에 부모님이 반대를 해주신 덕이랄까.
구도희 기자는 만화가의 꿈을 접은 후로 주야장천 ‘기자’가 꿈이었다고 한다. 기자가 되기 위해 세종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고, 전공수업을 듣는 것이 너무 즐거웠던 그.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각종 매체에 입사원서를 넣으면서 ‘기자’가 되기 위해 쭉 한길만 달려왔다.
그는 <민중의소리>에 입사하기 전 모 매체에서 잠깐 인턴생활을 경험했다. 그는 당시를 “암울한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돈의 가치만을 대놓고 중시하는 회사였어요. 하루에 세 번 30분씩 기사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영업을 시키는 거예요.” 자신이 망가질 것이 두려울 정도로 힘겨웠던 시간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가치에 맞는 매체’를 찾아온 것이 바로 <민중의소리>였다고 한다.
이쯤에서 백준현 기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 그는 강원도 영월에서 ‘촌아이’로 자랐다고 한다. 수업이 끝나면 강에 가서 낚시 하고 수영하고, 산에 올라가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는 오히려 대학에 와서 친구들이 “롯데리아도 없고 극장도 없었다”는 자신의 얘기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적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역시 백준현 기자 또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물론 중고등학교 때 간판가게를 했던 친구 집 지하실에 모여서 비보잉을 따라 하기도 하고, 만화동아리에 다니면서 만화도 그리고 “공부 안 하고 놀아서 부모님 속을 썩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목수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건축가가 꿈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해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건축물 보는 것을 좋아하고 건축 설계하는 일도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가 <민중의소리> 수습기자가 되기까지,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는 대학에 가서 학생회 선배들에게 “코를 꼈다”며 웃는다. 선배들이 술 사준다고 해서 따라다니다가 본격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하게 된 것. 특히 2002년 미선이. 효순이 미군장갑차 압사사건을 겪으면서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벌어졌고, 고 김선일씨 사망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그의 눈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지방에 살던 애들은 유심히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는 이상 정치적인 문제를 직접 겪을 일이 별로 없어요. 아무 것도 모르고 애들이랑 노는 것만 좋아했었지요. 하지만 대학에 와서 모르던 것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사회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꿔나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갖게 된 새로운 꿈이 ‘기자’였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좋은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려면 언론이나 교육 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이 바뀌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언론과 교육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조.중.동 보는 사람과 진보.개혁 언론을 보는 사람의 세계관이 다르잖아요.”
사진 찍는 양지웅 기자의 인생 스토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사고 한 번 친 적이 없는” 아이였고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선배들을 따라 ‘데모’에 나가면서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됐다고 소개했다. 자라온 고장을 떠나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대학시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는 모양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권유로 집회에도 나가고 ‘전태일 평전’도 읽고 농활도 가고 2002년에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중앙유세단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점차 “선입견이 깨지고 몰랐던 것을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사진을 찍게 됐을까. “2005년부터 병역특례를 했는데 그 때 모은 돈으로 제일 처음 샀던 게 카메라였어요. 처음엔 그냥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누가 글로 기록해주거나 따라다니면서 동영상을 찍어주진 않잖아요.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는 거죠.”
그래서인지 여느 사진기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정작 자기 사진은 가진 게 별로 없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 찍는 일을 하면서 진보적인 가치를 지켜가고자 <민중의소리> 사진기자 입사원서를 넣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민중의소리> 수습기자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인 이들. 별 보고 출근해 달 보고 퇴근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짧은 수습기자 생활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취재 현장에 대해 물었다. 우선 구도희 기자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상경투쟁 현장을 꼽았다.
“취재를 갔더니 아저씨들이 아예 저를 둘러싸고 ‘답답하다, 할 말이 많다’면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속내를 털어놓으셨어요.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같은 기자로서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알고 있을 텐데, 일부러 쓰지 않는 건지, 그들이 원하는 사실만을 보도하고, 우리 같은 몇몇 언론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백준현 기자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에 옴니아1 사용자들이 T옴니아2 사용자들에 비교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썼는데 어떤 분이 이메일을 보내서 ‘노키아’도 같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걸 기초로 다시 취재를 해서 기사를 썼는데 ‘이런 기사가 필요했습니다’, ‘속 시원한 기사입니다’ 등 댓글이 정말 많이 달렸어요. 제가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사진기자인 양지웅 기자는 최근 ‘비교체험 극과 극’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 탄생 100주년 행사를 취재했던 것과 삼성 백혈병 사망 황유미 씨 3주기 추모행사를 취재했던 일이다.
“이병철 회장 100주년 행사 취재를 위해 호암아트홀에 갔는데 정말 행사장이 돈으로 처발라진 모습이었어요. 벽면 전체가 스크린인데 그냥 스크린이 아니라 엄청난 화질의 LED화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얼마 전 삼성 백혈병 사망 황유미씨 추모행사에 가서 아버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보상금을 주고 무마하는 것도 솔직히 웃기는 얘기인데 그나마 주겠다고 했던 보상금도 주지 않으려고 계속 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화가 나더라구요.
추모행사에 몇 명 모이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와서 경고 방송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권력 있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 사람들을 두려워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이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조금씩 ‘기자’의 삶, 그것도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기자로서의 삶의 참맛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이 ‘젊은 피’들의 꿈은 무엇일까.
구도희 기자는 “예전에는 그냥 ‘기자’가 꿈이었어요. 막연한 환상이 쭉 이어져온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특종을 한다거나 같은 기자들이 봐도 ‘정말 좋은 기사 썼구나’ 라고 인정할 만한 기사를 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고, 백준현 기자는 “저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양지웅 기자는 “김철수 선배(<민중의소리> 사진기자)가 예전에 전용철 농민이 돌아가셨을 때 찍은 현장 사진으로 사인 논란을 규명하는 데 기여하고 결국 경찰총장도 사퇴하고 대통령이 사과하고 그렇게 됐잖아요? 그런 것이 사진 한 장이 사회에 미치는 큰 영향력인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자리에 카메라를 들고 선다면 사회가 바르게 변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3인방. 아직 어설픈 ‘기자’의 모습으로 좌충우돌 수습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꿈을 이야기하면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이들의 모습은 훈훈하기만 했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민중의소리>의 젊은 피 3인방, 수습기자 구도희(26), 백준현(26), 양지웅(28) 세 사람을 만났다. 한국사회 언론을 통틀어 가장 왼쪽 어딘가에 있을, 게다가 박봉으로 치면 남부럽지 않은 <민중의소리>에 거침없이 지원해 2달 넘도록 버티고 있는 이들의 뇌구조를 파악해보고 싶어서다.
첫 번째 단계로 이들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봤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진보’를 지향하는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 같이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청주에서 살았던 구도희 기자는 “친구들과 어울려 그냥 둥글게 둥글게 살았어요”라고 말한다. 그나마 ‘일탈’이라면 ‘만화가’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선포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만화에 미쳐서 닥치지 않고 만화를 읽고 코스프레를 한다고 밤새 옷을 만들다가 코피를 터뜨리기도 하면서 만화가의 꿈을 남몰래 키웠다. 이유는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해서 밥벌이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것.
하지만 만화가의 꿈은 부모님의 거센 반대로 접어야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남의 만화 따라 그리기에는 제법 소질이 있었지만 창의력은 좀 부족하고, 자신보다 더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깨닫고 있던 차에 부모님이 반대를 해주신 덕이랄까.
ⓒ민중의소리
열심히 기사를 쓰고 있는 구도희 '민중의소리' 수습기자.
'); }구도희 기자는 만화가의 꿈을 접은 후로 주야장천 ‘기자’가 꿈이었다고 한다. 기자가 되기 위해 세종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고, 전공수업을 듣는 것이 너무 즐거웠던 그.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각종 매체에 입사원서를 넣으면서 ‘기자’가 되기 위해 쭉 한길만 달려왔다.
그는 <민중의소리>에 입사하기 전 모 매체에서 잠깐 인턴생활을 경험했다. 그는 당시를 “암울한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돈의 가치만을 대놓고 중시하는 회사였어요. 하루에 세 번 30분씩 기사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영업을 시키는 거예요.” 자신이 망가질 것이 두려울 정도로 힘겨웠던 시간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가치에 맞는 매체’를 찾아온 것이 바로 <민중의소리>였다고 한다.
이쯤에서 백준현 기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 그는 강원도 영월에서 ‘촌아이’로 자랐다고 한다. 수업이 끝나면 강에 가서 낚시 하고 수영하고, 산에 올라가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는 오히려 대학에 와서 친구들이 “롯데리아도 없고 극장도 없었다”는 자신의 얘기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적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역시 백준현 기자 또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물론 중고등학교 때 간판가게를 했던 친구 집 지하실에 모여서 비보잉을 따라 하기도 하고, 만화동아리에 다니면서 만화도 그리고 “공부 안 하고 놀아서 부모님 속을 썩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목수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건축가가 꿈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해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건축물 보는 것을 좋아하고 건축 설계하는 일도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가 <민중의소리> 수습기자가 되기까지,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는 대학에 가서 학생회 선배들에게 “코를 꼈다”며 웃는다. 선배들이 술 사준다고 해서 따라다니다가 본격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하게 된 것. 특히 2002년 미선이. 효순이 미군장갑차 압사사건을 겪으면서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벌어졌고, 고 김선일씨 사망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그의 눈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민중의소리
백준현 '민중의소리' 수습기자가 모니터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 }그렇게 해서 갖게 된 새로운 꿈이 ‘기자’였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좋은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려면 언론이나 교육 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이 바뀌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언론과 교육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조.중.동 보는 사람과 진보.개혁 언론을 보는 사람의 세계관이 다르잖아요.”
사진 찍는 양지웅 기자의 인생 스토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사고 한 번 친 적이 없는” 아이였고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선배들을 따라 ‘데모’에 나가면서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됐다고 소개했다. 자라온 고장을 떠나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대학시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는 모양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권유로 집회에도 나가고 ‘전태일 평전’도 읽고 농활도 가고 2002년에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중앙유세단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서 점차 “선입견이 깨지고 몰랐던 것을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사진을 찍게 됐을까. “2005년부터 병역특례를 했는데 그 때 모은 돈으로 제일 처음 샀던 게 카메라였어요. 처음엔 그냥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누가 글로 기록해주거나 따라다니면서 동영상을 찍어주진 않잖아요.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는 거죠.”
그래서인지 여느 사진기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정작 자기 사진은 가진 게 별로 없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 찍는 일을 하면서 진보적인 가치를 지켜가고자 <민중의소리> 사진기자 입사원서를 넣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민중의소리> 수습기자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인 이들. 별 보고 출근해 달 보고 퇴근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짧은 수습기자 생활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취재 현장에 대해 물었다. 우선 구도희 기자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상경투쟁 현장을 꼽았다.
“취재를 갔더니 아저씨들이 아예 저를 둘러싸고 ‘답답하다, 할 말이 많다’면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속내를 털어놓으셨어요.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같은 기자로서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알고 있을 텐데, 일부러 쓰지 않는 건지, 그들이 원하는 사실만을 보도하고, 우리 같은 몇몇 언론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백준현 기자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에 옴니아1 사용자들이 T옴니아2 사용자들에 비교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썼는데 어떤 분이 이메일을 보내서 ‘노키아’도 같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걸 기초로 다시 취재를 해서 기사를 썼는데 ‘이런 기사가 필요했습니다’, ‘속 시원한 기사입니다’ 등 댓글이 정말 많이 달렸어요. 제가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민중의소리
양지웅 '민중의소리' 수습기자, 자신이 찍어온 사진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 }“이병철 회장 100주년 행사 취재를 위해 호암아트홀에 갔는데 정말 행사장이 돈으로 처발라진 모습이었어요. 벽면 전체가 스크린인데 그냥 스크린이 아니라 엄청난 화질의 LED화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얼마 전 삼성 백혈병 사망 황유미씨 추모행사에 가서 아버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보상금을 주고 무마하는 것도 솔직히 웃기는 얘기인데 그나마 주겠다고 했던 보상금도 주지 않으려고 계속 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화가 나더라구요.
추모행사에 몇 명 모이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와서 경고 방송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권력 있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 사람들을 두려워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이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조금씩 ‘기자’의 삶, 그것도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기자로서의 삶의 참맛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이 ‘젊은 피’들의 꿈은 무엇일까.
구도희 기자는 “예전에는 그냥 ‘기자’가 꿈이었어요. 막연한 환상이 쭉 이어져온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특종을 한다거나 같은 기자들이 봐도 ‘정말 좋은 기사 썼구나’ 라고 인정할 만한 기사를 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고, 백준현 기자는 “저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양지웅 기자는 “김철수 선배(<민중의소리> 사진기자)가 예전에 전용철 농민이 돌아가셨을 때 찍은 현장 사진으로 사인 논란을 규명하는 데 기여하고 결국 경찰총장도 사퇴하고 대통령이 사과하고 그렇게 됐잖아요? 그런 것이 사진 한 장이 사회에 미치는 큰 영향력인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자리에 카메라를 들고 선다면 사회가 바르게 변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3인방. 아직 어설픈 ‘기자’의 모습으로 좌충우돌 수습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꿈을 이야기하면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이들의 모습은 훈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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