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3백만부...한국은 오히려 '소유' 집착
"필요한 만큼 가져야" 설파했는데, 부동산.주식.펀드 '소유' 붐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입력 2010-03-14 03:51:40 수정 2010-03-14 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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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영정
'); }법정 스님의 산문집 '무소유'가 처음 출간된 1976년 당시는 아이러니 하게도 박정희 정권이 본격적인 강남 개발에 나서 강남 부동산 '소유' 신화의 기원이 된 시기였다. 1963년 한강 이남지역을 서울에 편입시킨 박정희 정권은 1968년 2월 착공해 1970년 7월 전 구간이 개통된 경부고속도로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해 강남지역 땅 900만 평을 개발했다. 이로써 강남 부동산가격 폭등의 단초가 마련됐다.
1973년에는 영동지구가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됐고, 특히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 고위층 특혜 분양과 사전분양은 강남 지역의 투기 붐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79년에는 최근 재건축이 확정된 강남의 대표적인 고가 아파트인 은마 아파트가 준공됐다. 1970년~1980년 기간 동안 실질임금은 2배 올랐으나, 전국의 지가는 15배가 올랐고 강남 땅값은 200배가 폭등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부동산이 다시 인기를 끌어 다주택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노태우 정권은 강남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분당.일산 등지에 신도시를 만들고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내놓았다. 70~80년대 부터 조금 과장하면 부동산을 '소유'하기만 하면 최소 두 배의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무소유'가 세상에 나온 70년대가 부동산 '소유' 붐의 시대였다면 80년대에는 자산으로써의 주식 '소유'가 잉태된 시기였다.
국내 증시는 80년대 초중반까지 100포인트 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86년부터는 이후 3년간 455%나 상승해 1000포인트를 넘어섰다. 86년부터 본격화된 저유가, 저금리, 약달러(엔고)의 3저 현상 때문이었다. 덕분에 주식 '소유'는 새로운 부의 축적 수단으로써의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무소유'가 100만부 넘게 팔린 90년대 IMF외환위기 전까지 부동산.주식 '소유' 열풍은 더해만 갔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무소유'는 판매 부수 200만부를 돌파했고, 2002년에는 1억장이 넘는 신용카드가 발행됐다. 펀드 열풍은 2007년 정점에 달해 전체 펀드 규모가 300조원에 육박했다.
'무소유'에서 법정 스님은 난초를 통해 무소유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했다. 난초에 집착하던 법정 스님은 애지중지하던 난초를 친구에게 준 뒤에야 홀가분한 해방감이 들었고, 이후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자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무소유' 등 스님의 책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330만부나 팔렸고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거의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한 '무소유'의 의미에 대해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법문을 듣고 가르침을 이해했다면 그대로 일상의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그대로 실천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진정한 불자인지, 가짜 불자인지 판명됩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는 그다지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분수에 만족치 않고 더 많은 것을 차지하게 위해 허욕을 부리기 때문에 결국은 불행해지죠"(2008년 동안거 해제 뒤 법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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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전남 순천 송광사 다비장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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