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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굴곡을 따라 온 '사전검열' 그리고 '금지곡'

신용철 기자

입력 2010-03-17 21:55:19 l 수정 2010-03-19 16:03:42

문옥배 교수가 쓴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는 금지곡에 대한 알파에서 오메가를 보여준다. 문 교수는 일제강점 직전 일제의 영향 아래서 반포된 ‘출판법(1909)’에서 금지곡의 출발을 찾는다. 출판법은 노래 그 자체가 아니라 노래책을 검열하는 법이다. 레코드와 축음기가 널리 퍼지기 전이니 노래책을 검열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금지 효과’를 누렸을 터다.

일제는 그 이후에도 1만여 개의 법률과 시행령을 통해 노래책, 공연, 음반, 음악교육을 통제했다. 심지어 찬송가도 통제의 대상이었다. 물론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는 ‘관급’ 사업을 통해 널리 퍼뜨렸다. 군사독재 시기 금지곡과 건전가요의 랑데부는 일제 강점기 음악 정책의 반복이었을 뿐이다.

해방 후 금지곡은 가사보다는 작곡가, 작사가가 누구인지에 의해 결정되었다. 월북 작가의 노래는 무조건 금지된 것이다. 전쟁 이후 창작곡에 대해서도 족쇄가 본격화되는 데 이승만 독재가 극에 달하던 1957년 만들어 진 ‘음악방송위원회’는 대중가요 ‘심의’라는 이름으로 금지곡을 골라내던 기관이 된다. 이 심의제도는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도 유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방송사 심의와 사전 심의가 구분된다.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넓은 방송에 대한 규제를 본격화한 것이다. 1965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가 설치한 가요자문위원회가 방송에 대한 규제를, 1966년의 한국예술문화윤리위가 노래 자체에 대한 심의를 벌였다. 1967년에는 악명 높은 ‘음반법’이 나와 드디어 법으로 금지된 노래가 생겨났다.

유신 시대에는 긴급조치가 법을 대신했다. 긴급조치 9호에 담긴 ‘공연활동 정화대책’은 국내외 대중가요 222곡을 금지곡으로 선정했다. ‘새마을노래’ 같은 건전가요 보급 활동이 이루어진 것은 앞서 설명했던 일제 문화정책의 반복이었다.

전두환의 등장과 함께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노래운동은 금지곡의 목록을 크게 늘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 등 저항가요는 1970년대 후반 김민기의 노래와 함께 대표적인 금지곡이 되었다. 물론 대학가와 공단에서 알음알음으로 퍼진 저항가요들은 금지곡 목록에도 오르지 않았다. 만든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이나 퍼뜨리는 사람이나 이 노래들을 합법 음반에 담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지곡의 시대는 1987년을 지나면서 하향길을 걷는다. 6월 항쟁 이후 ‘공식’ 금지곡 382곡 중에서 186곡이 해금되고, 이듬해에는 월북 음악가의 작품도 규제에서 풀려난다. 방송금지곡이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사전심의제는 6월 항쟁 이후에도 남아있다가 1990년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을 계기로 결국 ‘위헌’ 판결을 받아 숨이 끊어진다.

그러나 모든 규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정립된 방송규제와 사전심의의 양축은 각각 방송사의 ‘자율심의’와 ‘영상물등급위원회’로 계승된다. 방송사와 민간심의기구가 독립적이라면 문제가 없거나 적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들 기관들이 진정으로 자율적인가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적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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