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수 스물 아홉 학생운동가
알바부터 남대문 도매상까지 안 해 본 일 없던 그녀, 어쩌다 학생운동 하게 됐나
이영순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지회장
"노동조합을 알고 세상이 달라졌어요"
신창용 한빛 평생교육원장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임한빈 서울지역대학생연합 노래패 '공감'
반값등록금 촛불이 낳은 스타
허윤희 '꿈과 음악사이에' DJ, 방송인
'제2의 누구'가 아니라, '허윤희 방송'을 만들고 싶다

+ 더보기



지난 15일 '시민과 함께하는 KBS 개념 탑재의 밤' 문화제에서 인기를 끈 영상이 있다. 바로 추적60분 PD들이 만든 '추적6분'. 김인규 사장 체제에서 고사 직전에 빠진 KBS 저널리즘을 고발한 이 영상은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해 파업 중인 KBS 새 노조원의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있다.

추적60분 김범수 PD

KBS 입사 3년차인 추적60분 김범수 PD가 부서이관을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영상을 만든 사람은 KBS 입사 3년차인 김범수(32) PD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KBS의 대표 시사프로그램이었던 시사 투나잇에 참여하는 행운을 누렸고, 사장이 바뀐 이후 폐지를 바라봐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어느덧 20일 가까이 진행한 KBS 파업이지만 그는 KBS에 입사하고 요즘처럼 즐거웠던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정연주 사장이 해임된 이후 KBS는 다니기 부끄러운 회사였어요. 언론인인데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와 자괴감이 컸었는데, 이번 파업을 하면서 많이 해소됐어요. 이번 파업은 제가 KBS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에요.”

그는 2008년 1월에 KBS에 입사했다. 당시 신뢰도 1위, 공정성 1위인 KBS에 입사한 것 자체가 그에겐 큰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입사한지 8개월 만에 무너졌다.

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되고 이병순 전 사장이 KBS로 들어올 때 앞에 가서 발버둥 치다 청원경찰들에 끌려 내던져진 기억,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이 시작하는 순간 ‘이제 국영방송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제가 너무 사랑했던 KBS가 정권의 나팔수가 된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치욕스러웠어요."

이전까지 아이템도 내면서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했던 김 PD는 이후 부당하게 지방으로 발령 난 선배들, 사측의 일방적인 추적60분 보도본부 이관 등 변하고 있는 KBS를 목격해야만 했다. 또래 동기들부터 시작해 20년 이상 회사에 다닌 선배들조차도 혀를 내두르는 KBS 경영진의 회사 운영이었다. 무엇보다 추적60분을 제작하면서 받아야 했던 남몰래 받아야했던 고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추적 60분은 PD들이 기피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템 하나 맡아 취재하면 가족이 일어나기 전에 집에서 나와 가족이 다 자고 있을 때 집에 들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결혼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파업을 하는 지금에서야 ‘남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사생활을 투여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 추적 60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투여한 프로그램에서 PD로서 할 말을 못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에게 큰 고민이었다.

“시사 프로그램이 참 매력적이에요. 어떤 때는 예술가 같고, 어떤 때는 저널리스트 같고. 세상을 향해 자기 의견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시사 투나잇 할 때만해도 아이템에 대한 압박을 받은 경험이 없었는데 추적 60분을 하고 나서는 정권과 관련해 민감한 아이템을 낼 때 PD들은 다짐을 해야만 했어요. 나는 저 사람과 얼굴 붉히고 싶지 않은데 이 아이템을 하려면 붉힐 수밖에 없었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는 과정도 많았어요.”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경쟁 프로그램인 MBC PD수첩을 보면서였다. 특히 이른바 떡검, 섹검 문제를 다룬 ‘검사와 스폰서’ 편을 보면서는 술을 전혀 못하는 그가 입에 술을 댈 정도로 괴로웠다고 한다.

“특종을 터트리지 못해서 괴로웠던 게 아니에요. 우리에게 스폰서 관련 제보가 왔다면 우리는 PD수첩처럼 용기 있게 만들 수 있었을까요?”

추적60분 김범수 PD

KBS 새 노조 파업 현장에서 북을 치며 기세를 올리는 김범수 PD

그래서 그에게 이번 파업은 ‘용기를 내기 위한’ 파업이다. 그간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진 이 파업이 즐거울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른바 낙하산, 특보사장 취임을 지켜보기만 했던 노조에서 나와 새로운 노조에 참여하면서 900여 동료 조합원들과 함께 새로운 KBS를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KBS를 쓰레기, MB 주둥아리, 김비서, 캐병신 방송이라고 해요. 우리를 언론인이 아니라 돈 많이 받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이 싸움을 시작했어요. 공영방송을 정권 홍보 방송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공영방송 KBS를 상식에 맞게 운영하자고 말하는 싸움이에요.”

김 PD는 이번 파업을 ‘이미 이긴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이유는 하나, 정의로운 싸움이기 때문이다.

“설사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노조 집행부가 징계를 받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단 1%의 국민이라도 이 싸움을 알아준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싸움이에요. 너무나 정의로운 싸움을 해서 즐거워요. 입사 이후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어요.”

그는 이번 파업이 승리로 끝나고 정권과 자본의 제재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꼭 만들고 싶은 게 있다.

바로 KBS 스페셜 다큐멘터리 제작이다. 죽음, 탄생이라는 다소 철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소재는 그가 방송을 제작하면서 한번 쯤 꼭 다루보고 싶은 소재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가 아니면 만들 수 없다는 게 김 PD의 설명이다.

“시사 PD가 시사 프로그램을 잘 만들고 교양 PD가 교양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KBS가 될 때 정권과 자본의 제재 없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KBS가 될 꺼에요. 방송 기반 자체가 무너진 지금 아무리 좋은 방송을 만든다고 해도 자부심을 느끼지 못해요. 구조 자체가 이제는 달라져야죠.”

이번 파업이 그에게 있어 꿈을 찾아가는 파업이기도 한 이유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07-19 06:45:45
  • 최종업데이트 : 2010-10-10 21:06:23

맨위로

  • 트위터로 보내기
  • 기사RSS
  • 프린트하기

Copyright ⓒ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