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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 집착한 한-미, 대북 강경책 불사

김경환 기자 kkh@vop.co.kr

입력 2010-07-27 14:50:58 l 수정 2010-07-30 11:09:19

"미국이 추종국들과 함께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앞세워 북한의 급변사태가 임박했다는 인상을 심기 위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며 비방하고 있다."

지난 4월26일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가 유엔총회 산하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잔뜩 불만을 터뜨렸다. 천안함 사고가 난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북한 대표부가 말한 불만은 남한과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것이라는 분석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이명박 정권 들어 이른바 건강이상설과 후계설이 급격하게 퍼지는 것은 북한 붕괴론을 강화하는 토대가 됐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이명박 정권 들어 이른바 건강이상설과 후계설이 급격하게 퍼지는 것은 북한 붕괴론을 강화하는 토대가 됐다.

사실 '북한 붕괴론'은 그리 새로운 용어는 아니다.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골메뉴였다.

뿌리 깊은 반공,반북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의 눈에서 보자면 북한 체제라는 것은 1인 독재체제이므로 지도자 한 명만 사라지면 곧바로 붕괴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에 이르렀다.

지난 1994년 故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레 서거했을 당시 남측과 서방 언론의 관심사는 온통 북한 체제가 언제 붕괴할 것이냐는 데에 쏠려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자칭 전문가들도 시점의 문제로만 여겼을 뿐 정권 붕괴는 기정사실로 여겼다.

때문에 대북 강경론이 맹위를 떨쳤다. 이번 참에 북한을 고립하고 봉쇄하면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곧바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지만 무너진 것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붕괴론' 그 자체였다.

문제는, 이 '북한 붕괴론'이 이명박 정권 들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을 지배하는 기조가 됐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한 뒤 줄곧 대북 압박 정책을 펴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곧 '북한을 고립하고 압박하면서 기다리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는 북한 붕괴론에 기초한 것이다. 이른바 '급변사태'를 거론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등의 조치도 자연히 뒤따랐다.

때를 같이해서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의 수구매체들은 일제히 '김정일 건강이상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곧이어 나온 것이 후계설이다. 건강이상설과 후계설은 사실 '지금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토대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 붕괴론'에 기대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에도 시종일관 제동을 걸었다.

천안함 직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뉴욕을 방문하려 했을 때도 남한 정부는 미국에 강한 반대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리처드슨 뉴멕시코주지사의 방북에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지난 19일 이와 관련해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미국 고위인사의 방북은 시기 등을 포함해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 붕괴론'을 현실화시킬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그동안의 대응이 소극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복수'를 명분으로 강한 고립과 압박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계기가 확보된 것이다.

5.24조치는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천안함 사고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북한 붕괴를 촉진시키는 차원의 대응이라는 것이다. 5.24조치 뿐만 아니라 최근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로 상징되는 한미의 대응조치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북 금융제재를 통해 북한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을 통해 군사적으로도 고립시키겠다는 것이다.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가진 대국민담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퇴로를 막아버렸다고 비판했다.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가진 대국민담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퇴로를 막아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권의 또 하나의 목표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이끌어내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안보리 의장성명은 원인은 어떻든 평화적으로, 대화로 해결하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ARF 의장성명은 더욱 노골적으로 대화와 6자회담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 오바마 정부는 여기에 개의치 않고 대북 압박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나 대북 금융제재 등의 조치가 단순히 천안함 사건에 따른 대응 차원에서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의 이같은 대북압박조치에 대해 "북한붕괴론에 대한 확신과 북한에 대한 압박을 통한 중국견제가 그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김일성 주석 사망때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북한 붕괴와 직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북한 정세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북한 붕괴론 자체나 그것에 입각한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나치게 부풀려졌거나 실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인 안보 위협을 받는 지정학적 여건을 가지고 있는 초강대국인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6년 동안 체제를 붕괴시키겠다고 위협하면서 지속적으로 압박을 하였으나 북한은 굴복하기는커녕 핵실험으로 응수하였고 부시 행정부는 결국 그렇게 회피해오던 양자대화를 통해 북·미간 협상을 시작하여 2·13 합의를 도출하였다"면서 "그런데 북한이 사생결단의 각오로 대결을 감행하면 공멸에 준하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전면적인 압박과 대결을 불사할 때 북한이 고개를 숙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 정권이 어렵다는 정보들은 전반적인 (대북정책의) 기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 압박하고 봉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은 조금만 더 한미일 동맹 통해 대북 경제제재 강화하면 북쪽 경제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손 들고 나올 것이라는 것을 합리화하는 방향인 것"이라면서 "이런 기조가 정해지면 정보도 집중적으로 취사선택이 되어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대석좌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해 "순전히 외부세계의 상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1994년) 김정일 체제가 등장했을 때 위기론이 많았지만, 16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이 없었다"면서 "김정일 위원장 사후 동요 요소는 김일성 주석 사후 동요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미국에서 27일 열린 한반도평화포럼 발표문을 통해 "우선적으로 대북정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붕괴론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서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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