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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탁(41) 씨는 고등학교 물리교사다. 얼마전에 조전혁 의원이 공개한 명단에 들어가 있는 교사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작년말 그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을 가로질러 경기도 양평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유는 단 하나. 아들 준서의 초등학교 문제 때문이다. '맹모삼천지교'라고나 할까?

오성탁 교사 부부

오성탁 교사 부부

# 교사 부부의 '맹모삼천지교' = 부부교사로 살아오면서 공교육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오씨 부부는 준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공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좋을까하는 걱정이 생긴 것이다. 아이가 일제고사나 입시경쟁의 포로가 되어 한창 뛰어놀 나이에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것을 끔찍해하는 이들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사가 아니었다면 그런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현재 이뤄지고 있는 교육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특히나 교육의 현장에 있는 교사다 보니 미시적인 현상을 다 관찰하게 되요. 그러다보니 우리 아이들을 현재의 일반 학교에 맡기는 것은 굉장한 도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양시에 있는 초등대안학교에 지원을 했지만 떨어졌다. 입학정원보다 지원이 많은 바람에 '제비뽑기'를 했는데 아쉽게 탈락한 것이다. 그리고나서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단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대안학교의 경쟁률이 이렇게 높은데 이런 걸 교육당국은 알고 있을까? 졸업장도 안주고 학력도 인정이 안되는데도, 자기 돈 더 들여서 애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려는 이런 마음을 당국이 헤아리고 있을까라는 생각."

그래서 찾은 곳이 양평 조현초등학교. 전교생이 150명 될까말까한 작은학교인 조현초등학교는 혁신학교로 지정된 곳이다.

결심이 서고 난 뒤에는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고양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예 집까지 새로 지어서 양평으로 이사를 갔다. 조현초등학교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는 집 앞마당 텃밭에는 옥수수며 감자며 고추 같은 것들을 키우고 있다. 닭들도 여러 마리 마당을 활보하는 걸 보니 시골생활에 잘 스며든 것처럼 보였다.

"저희는 백퍼센트 만족이죠. 잘 적응하고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느낌입니다. 여기 와서 새롭게 만나는 장면장면들이 굉장히 설레이고 기대가 생기고 좋아요."

그럴만도 했다. 한 학기밖에 안지났지만 뜻이 맞는 술친구들도 여럿 생겼으니. 이날도 오씨 집에는 술친구 세 명이 찾아왔다. 낮에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들을 들고.

만족스러워하는 그와는 달리 아내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일일이 관심을 가져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엄마들이 우리집에 놀러오면 책꽂이부터 훑어보고 방은 어떻게 꾸몄나, 인터넷 게임은 시키나, 시키면 어떻게 지도하나 이런 것을 유심히 봐요. 그래서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교사 부부인데다 집까지 지어서 아이 교육을 위해서 이쪽으로 왔으니 뭔가 특별한게 있을 거다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아요."

# '호랑이 선생'이 순한 양으로? = 오 씨는 전교조 조합원이다. 경기도에서 알만한 조합원들은 다 아는. 지금이야 순한 양이지만, 교사로 첫발을 뗐을 때는 무척 엄한 '호랑이' 선생이었단다. 다 사연이 있을 터.

교사가 된 뒤 처음 발령받은 곳은 개교한 지 1년 밖에 안된 중학교였다. 거기서 그는 학생부에 배치됐는데, 젊은 남자교사다 보니 업무량이 어마어마했다. 젊은 혈기로 그 많은 업무들을 다했다고 했다.

학생부 교사가 대개 그렇듯 그는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매우 엄격하게 했다. 애들을 때리기도 했다. 그가 복도에 나타나면 삽시간에 복도에 있던 학생들이 교실로 사라질 정도였다니 어떤 교사였는지 짐작이 갈 터.

"그렇게 하는 나를 교감은 정말 잘한다고 칭찬해주더라구요. 나도 스스로 잘 하는 교사인가보다, 괜찮은 교사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애들을 확 휘어잡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 일이 벌어졌다. 여느날처럼 교문에서 학생들 지도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 늘 머리를 규정에 안맞게 길게 하고 다니던 학생 한명이 지각을 했다. '정의감'에 불타는 혈기 왕성한 학생부 교사는 그 '삐딱한' 학생을 끌고 교무실로 갔다. '너 학교 다닐 거냐 안다닐 거냐'며 윽박질렀다. '당장 머리 자르고 와라'면서 5천원을 건네줬다.

"그 아이가 '알았습니다' 하고는 나갔는데 영영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 아이는 자퇴를 했어요. 그래도 나는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한게 아니라 그애가 규정을 못지켜서 그만 둔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한참 지난 어느날 그가 맡고 있던 반 학생이 그때 그 자퇴한 학생이 로데오 거리에서 전단지 돌리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그 말을 듣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전에는 학교를 그만 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받아주지를 않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학교에서 교사로서의 생활지도 방식에 대해서 스스로 반문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을 존중하게 됐어요. 완전히 생각 자체가 개조됐다고 봐야 합니다. 아이들을 보는 관점자체가 바뀌었으니까."

그런일을 겪고 난뒤 1~2년 지나서부터는 아예 매를 내려놓았다. 애들을 때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다.

# 잘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 = 전교조에 가입하고나서는 경기지부 고양지회 활동을 했다. 2005년에는 전교조 경기지부 분회지원특별위원장을 하면서 분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씨름을 했다. 전교조가 성장을 하다가 학교 단위 분회 활동이 굉장히 위축됐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너도나도 전교조가 제대로 서고 교육을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분회가 제대로 서야한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때 발품을 팔며 찾아다닌 학교들이 많았다. 하루에도 두세곳은 방문했다.

작년부터 그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때는 공부 안하고 술만 마시러 다니는 '날라리 운동권'이었다는데, 늦깎이 공부를 하는 셈이다. 양평에서 충청도에 있는 대학원까지 왔다갔다 하는 것만 봐도 꽤 열성적이다.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다보니까 과연 교육이 뭐가 어디서 잘못됐는지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다, 흔히 알려진 것 말고, 어디서 문제가 발생해서 이모양 이꼴이고, 앞으로 어떻게 갈것인가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고 교육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 시험 봐서 교육철학 및 교육사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고민은 더 있다.

"지난 10여년의 고민은 주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가르칠 것인가하는 가르치는 기술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어떻게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배움이 잘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 학교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에 대해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학습지 광고에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다'라고 하는 문구가 나와요.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라는 것도 나와요. 잘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어떻게 배우고 있느냐는 것으로의 변화, 교육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나부터 시작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김경환 기자 kkh@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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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 2010-08-13 22:45:29
  • 최종업데이트 : 2010-10-10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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