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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씨(40살)는 기자의 오랜 친구다. 그는 기자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물경 20년 이상을 친구로 지내왔다. 그가 군대를 가고, 제대하고,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고, 그 첫 아이의 첫 돌을 차리고, 그리고 그 아이가 학교를 가서 학부모가 되고, 이제 중학교를 갔으니 집안 대소사에 세세한 것은 몰라도 굵은 것은 다 아는 처지다.

그러던 기자도 최근에야 그가 가끔씩 이명박씨를 지지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김영태씨가 민주노동당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한나라당은 안 찍는 ‘개념 있는’ 시민이란 것쯤은 별반 의심하지 않아왔던 터이다.

‘개념 있는’ 시민이 한나라당을 찍고 싶은 이유

김영태씨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지금 양천구의 30평 가량 되는 빌라에 산다. 지금 사는 집에서 그는 12년째 살고 있는데, 그 전에 이사를 두 번인가 했다. 지금 집은 친척이 IMF때 내놓은 집을 당시 시세보다는 조금 ‘비싸게’ 사들인 것인데 부모님과 김영태씨가 반반씩 냈다. 물론 그 전에 취직도 못 한 상태로 서울의 사당동에서 신혼살림을 차렸고, 1년 만에 이사해 신대방 전철역 코 앞에서 첫 아이를 낳았으니 고생을 전혀 안하고 내 집 마련을 한 경우는 아니다.

그는 2006년 이른바 ‘판교 로또’에 도전하다가 ‘물을 먹고’, 용인에 실평수가 30평이 좀 넘는 아파트를 샀다. 직장이 삼성역 주변이라 출퇴근하는 데 별 차이가 없고, 공기도 좋고 좀 숨쉴만한 공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14년 전에 사당동에서 4천만 원으로 시작한 전세는 이제 양천구의 빌라가 1억5천이 조금 넘고 또 용인에 들어갈 아파트도 있으니 맞벌이 아닌 가장치고는 착실하게 모은 셈이다.

공사현장앞에 선 김영태씨 가족

공사현장앞에 선 김영태씨 가족. (김영태씨가 가족사진의 노출을 꺼려 사진은 재합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2007년에는 늦둥이도 낳았는데, 첫 애가 3학년 때니 열 살 터울이다. 늦둥이를 말 그대로 물고 빨고 키우는 이 부부가 둘째 안 낳았으면 어찌했을까 싶다. 늦둥이와 용인의 새 집은 김영태씨에게는 그럭저럭 살아온 보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백 일 된 둘째를 안고 아파트 올라가는 걸 구경 가기도 했었단다.

세상일이라는 게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어서 이제 잔금을 내고 이사를 가야하는 데 살고 있는 집이 빠지질 않았다. 2월부터 내놓았는데 안 나가서, 4월에는 주변보다 1천만 원이나 싸게 내놓았다. 그래도 가끔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뿐, 거래는 되지 않았다. 올해 10월이 입주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잘 되겠지 하지만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용인에 집을 산 행동은 결코 투기나 불로소득을 노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집을 팔고 새 집으로 가는 것이니 1가구 2주택도 아니고, 앞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평당 1천5백만원이 조금 넘는 새 집이 결국 우환거리가 되었다. 서울 빌라를 팔아서 잔금을 내고 모자란 일부는 대출을 받으면 되는 참이었는데, 집이 팔리지 않으니 이제 전세를 놓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출이 늘어서 한 달에 70만원은 이자로 내야한단다. 자세한 말은 아끼니 꼬치꼬치 물어볼 수는 없지만, 부담이 되긴 되는 눈치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니까”

“이번에 한나라당 찍을까 한번 생각도 해 봤다.”
김영태씨의 말에 기자는 깜짝 놀랐다. “왜? 집값 때문에?” 눈치 하나로 밥 먹고 사는 처지니 이 정도 때려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응” “에이~ 설마?” “아니야, 진짜로 진지하게... 근데 내가 집을 산 건 좀 오버였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연 소득은 6천만 원은 넘는다. 우리 나이에 이 정도면 중산층이다. SUV로 2천CC가 넘는 그의 차가 그걸 증명한다. 한 달에 이자만 70만원이면 작지는 않지만 못 낼 것도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을 찍을 생각까지 해 봤다니...

“사람이란 게 참 그래. 좀 억울한 거 있지. 요즘 집 값이 떨어진다고 하잖아. 나는 뭐 크게 오버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당장 길거리로 나설 것도 아닌데.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걸 어떻게 못 하겠더라구.”
“제수씨도 그러자디?”
그의 아내는 기자와 학생 시절부터 잘 아는 사람이다. 둘을 엮어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는 안다. 여기저기 단체에 후원금도 ‘쥐꼬리만큼’ 낸다.
“어. 나보다 심하지. 선거 날 아침에는 진짜 심각하게 생각하는 눈치던데”
“에라~~ 이명박씨가 잘 되면 집값 올려주라구?”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 집 안 나가는 거, 팔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퍽이나 그러겠다.”
“암튼 사람 맘이란 게 그래. 너는 실감이 안 나겠지만,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알았다, 알았어. 잘 알아 모시지.”

그래도 평생 벌어도 집 한 칸 장만하기가 어렵다는 시대에, 김영태씨는 그야말로 ‘서민’은 벗어난 게 아닌가. “야, 그래도 너 나이에 아파트 한 채 장만했으면 됐지 뭘 그래. 뭘 얼마나 더 벌려고 이명박을 찍냐?” 결국 동석했던 친구가 한 마디 쏘았다.

“꼭 나를 속물로 만드네. 너도 생각해봐라. 집 하나 있다고 뭘 어쩌라는 거냐. 팔지도 못하는 건데” 김영태씨도 발끈했다. “생각해봐라. 환갑까지 번다고 치고, 그 후로도 30년은 더 살 판인데, 생활비 병원비하면 결국 그 집 날려먹는 거야. 애들 시집 장가갈 때 전세집 하나 해 주기가 어려운 거라고. 근데 걱정이 안되냐. 내가 한나라당을 찍은 것도 아니고,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술자리는 어색해 졌다.

한나라당이 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은 일단 지금까지는 사실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때 ‘힘차게’ 오른 집값은 이 정부 들어서는 현상 유지에 급하다.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려 한 덕분은 아니겠지만, 어찌되었건 결과는 그렇다.

그러나 저러나 만약 집값이 왕창 떨어지게 되면 우리의 김영태씨는 어떻게 될까? 사람 사는 일이니 무슨 큰 사단이야 벌어지겠는가. 더구나 김영태씨처럼 성실한 사람들이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도 김영태씨의 수심은 여전하다. 그는 자신이 비록 찍지는 않았지만, ‘기득권층의 대표’인 현 대통령이 결국 집값을 유지시켜주거나 혹은 조금은 올려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끝까지 접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니까” 자리가 파하고 ‘아까 언성 높인 거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을 때 김영태씨가 다시 되뇐 말이다. 김영태씨의 마음, 그것은 ‘새집 증후군’ 같았다.


<이정무 기자 jmlee@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08-02 01:04:20
  • 최종업데이트 : 2010-10-10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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