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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트위터를 놓지 못했다. 그는 팔로워 8000명을 넘어선 진보진영의 파워 트위터이다.

유명 정치인도 아니고 TV에 자주 등장하는 저명 지식인도 아닌 그의 팔로워가 많은 것은 단지 ‘민주노총 대변인’이라는 이름값이 아니다. 그는 ‘국민과 소통’이라는 노동운동의 화두에 집중해오고 나름대로 감동적인 경험도 해본 산전수전 겪은 투사이다.

그의 블로그(http://blog.daum.net/unsunozo/5997399)에 가보면 민주노총 대변인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른, 변화에 주목하고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운동가 정호희’를 만날 수 있다.

트위터로 팔로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정호희 대변인

트위터로 팔로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정호희 대변인



#명문대 학생에서 부산항 지게차 운전사로

그는 1983년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했다. 너무도 평범하게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단다. 시대가 그러하였으므로.

그리고는 3학년을 마치고 너무도 당연하게 ‘현장’에 뛰어들었단다. 동기들도 모두 그러했으므로.

그가 현장으로 가던 80년대 중반은 그야말로 현장 진출의 성수기였다. 86년에 구로공단 도금공장에 취업했는데 ‘벌방’이나 공단 거리에서 아는 얼굴을 자주 마주쳤다고 한다.

‘명문대에 좋은 과’라는 당시로서는 결코 작지 않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독재정권의 물리적 폭력과 맞선 두 차례의 결단을 정 대변인은 그냥 심상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가 시대의 흐름과 운동의 방향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였는가는 곧 밝혀진다.

87, 88년 노동자의 대투쟁을 겪고 그는 89년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정권의 조직사건 음모를 피해 최대한 멀리 간 것이 부산”이라고 말하지만 전략적으로 새로운 사업장을 찾으려는 목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정 대변인은 당시 부산을 주름잡던 고무・신발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판단하고 부두에 주목했다. 예나 지금이나 수출입에 의존하는 경제 상황에서 당시 컨테이너 물동량의 90% 이상이 부산항에 집중되어 있었다. 부산항의 부두는 자본과 노동 간의 요충지였던 셈이다.

그는 지게차 자격증을 따서 대한통운에 취업하여 컨테이너 하역 일을 시작했다. 노동자가 7000명 가까운 대규모 사업장에서 그는 어용노조 민주화를 물밑에서 추진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95년 위장취업이 드러나 해직되었다. 그는 당시를 기억하며 결국 일을 제대로 못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직도 대한통운 노조는 어용노조로 남아있고 이것이 2009년 화물연대의 동지이자 아끼는 동생인 박종태 열사의 죽음에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해고된 후 화물노련 사무처장을 맡았는데 마침 민주노총의 첫 번째 정치적 시험대라 할 이른바 날치기 노동법 개정 투쟁이 전개되었다. 96년 12월 26일 새벽 저 유명한 신한국당 단독의 새벽 국회에서 날치기가 감행되고 1년 동안 투쟁을 준비한 민주노총은 총파업에 돌입했다.

당시 화물노련은 말은 전국조직이지만 부산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에서 보면 작은 노조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체 조합원에게 교육을 계속하면서 “부두를 막아버리자”는 배짱있는 결의를 확보해두고 있었다. 총파업 당시 화물노련은 경부고속도로 위력시위 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면서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부터 “핵폭탄”이라는 찬사를 듣게 된다.

이 당시 그가 만든 구호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이다. 지금까지 운수노동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이 강렬한 구호의 ‘저작권자’가 정 대변인이다.

#촛불시민과 네티즌의 '격한 지지'를 받은 화물연대

2002년, 드디어 화물연대 조직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IMF 실직사태로 인해 화물차 과포화 상태가 되면서 화물노동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2002년 기름 값까지 폭등하면서 생존권 위협까지 받게 되자 노동자들은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10여명의 노동자들이 우발적으로 고속도로를 막다가 연행된 것이 투쟁의 서막을 열었다. 6월에 10여명의 발기인으로 시작된 화물연대가 12월에는 2000명의 조합원으로 발족을 하게 되었다.

2003년 노동절 행사는 그야말로 화물연대의 공식 데뷔 무대였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손수건을 펼치며 5000여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전국에서 온 조합원과 활동가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화물연대의 산파 중 한 명이라 할 그의 감회도 남다를 것이다. “물류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정부의 부서 명칭도 화물운송과에서 물류산업과로 바뀌었구요”라고 그는 화물연대의 사회적 의의를 찾았다.

2007년 공공운수연맹 산하의 운수노조로 철도부터 화물까지 모든 운수노동자가 결집하게 된다. 당시 초대 운수노조 위원장이 현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고 사무처장이 정 대변인이다. 철도 기관사하다 상경한 위원장과 지게차 운전사 출신의 대변인, 이들이 정권과 언론이 심심하면 되풀이하는 ‘귀족 노조’의 지도부이다.

정 대변인에게 저 유명한 화물연대의 ‘미국산 수입소 운송 거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청계천에서 촛불 소녀들의 본격적인 시위가 본격화 한 5월, 화물연대는 무엇을 할 것인지 참 고민되었습니다”

광우병 사태 이전에 수입돼 창고에 보관된 미국산 소 4300톤을 풀겠다고 정부에서 발표했다. 그는 “졸지에 화물 노동자들이 미친 소를 운반해야 할 운명에 놓였다. 그래서 2008년 5월 2일 화물연대에서 미친 소 운송거부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국민으로부터 ‘격한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화물연대 홈페이지가 네티즌의 ‘성지’가 되고 정책실장인 그도 이틀 동안 접속을 못할 정도로 방문자가 폭주했다. 당시 화물연대는 촛불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노동조합이었다. 당시 촛불집회에서 정 대변인의 연설 녹음 파일을 네티즌이 옮겨쓴 것이 그의 블로그에 올라 있다.

집회장에서의 정호희 대변인

집회장에서의 정호희 대변인


당시 촛불 군중 앞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이다.
“우리 청소년들, 우리 젊은이들이 10억분의 1이요? 10조분의 1의 확률이라도 우리는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수 함성)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수송저지 투쟁하겠습니다. (박수 함성)
우리 힘이 모자라면 우리 힘이 모자라면 우리 국민들이 반드시 함께 할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박수) 고맙습니다. (박수 함성)”

#민주노총을 서민의 대변자로

그는 올해 3월부터 민주노총 대변인 겸 선전홍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화물연대 건설과 촛불투쟁을 겪으면서 언론사업도 맡았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다고 한다. 그는 최근 언론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몰고 왔다. 이른바 ‘오버질’과 ‘개드립’ 파문(?)이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 최저생계비 체험 후 올린 ‘황제의 삶’ 발언에 정 대변인은 직접 작성한 논평을 통해 ‘오버질과 개드립’이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가 “단체의 수준”과 “격”을 운운하며 비판하자 정 대변인은 다시 ‘너나 잘하세요’라고 반격했다.

사실 지금도 이 논평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통쾌하다는 의견과 점잖치 못하다는 입장이 확연히 갈린다. 확실한 건 역대 가장 뜨거운 민주노총 논평이라는 점이다. 잠잠한 민주노총보다 존재감 있는 민조노총을 만들겠다는 정 대변인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비슷했다. “일을 할 때는 기계처럼 철두철미하다. 그래서 차가워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속정이 많다.”

그는 불리한 언론 환경을 넘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뚫고 있다. 오래 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해오고 트위터를 열성적으로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의 팔로워 중 95%는 조합원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

정 대변인은 "80만 조합원만이 아닌 더 많은 노동자 서민의 입이 되는 민주노총 대변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전시성 친서민’이 넘쳐나는 지금, 촛불시민의 박수를 받던 화물연대를 이어 ‘국민의 박수를 받는 민주노총’이 재현될 수 있을지 정호희 대변인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주목하게 된다.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08-25 11:48:19
  • 최종업데이트 : 2010-10-10 16: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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