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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조각칼로 민중의 정서와 시대정신을 표출한 오윤

기자

입력 2002-12-14 00:02:06 l 수정 2002-12-14 00:02:06

유신 이후 암울하게 이어지던 우리의 현대사는 민중미술이라는 특이한 한국적 미술상황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민중미술'은 80년대라는 배경 속에서 예술의 문화, 정치적 컨텍스트를 문제 삼고 자생적, 지역적 맥락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미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독재에 맞서 민중의 의견을 나타낸 민중미술은 사회적 문제를 미술을 통해 나타냄으로써 간과할 수 없는 현실에 참여하면서 계급과 통일문제를 제기했다.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강렬한 선과 형태로 민중의 삶과 애환, 분노를 표현를 표현했던 오윤의 목판화는 민중판화의 전형이 되었다 \'소리꾼\'(왼쪽)과 \'칼노래\'(오른쪽) ⓒ민중의 소리


민중미술은 주로 일반회화나 목판화가 그 주류를 이루었으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걸개그림이나 인쇄매체의 비중이 매우 높아진다. 이러한 제반 흐름들은 각기 독자적으로 성장하면서도 서로 중첩되거나 연합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중 목판화는 작품을 양산해서 여러 사람이 공유할수 있는 편화의 복수적 성향과 대중이 쉽게 다가갈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민중미술의 작가들이 선호했던 장르중의 하나였다. 특히 강렬한 선과 형태로 민중의 삶과 애환, 분노를 표현했던 오윤의 목판화는 민중판화의 전형이 되었다.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오윤의 회고전 포스터 \'아라리요\' ⓒ민중의 소리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장르가 목판화라면 오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오윤은 사십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대부분 민중판화가들의 작품이 오윤의 아류이거나 그곳에서 파생된것이라고 볼수 있을만큼 그의 위치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의 판화는 해학과 민중적 신명, 한이 날카로운 칼맛을 통한 표현적인 선을 통해 형식과 내용의 탁월한 통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독창적인 이미지 이면에는 우리 민화, 불화, 탱화, 풍속화의 형식이 반영되어 있고, 이러한 형식을 통해 민중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응축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의 심층적인 분석과 평가보다는 다소 한정된 시각안에서 조명되고 있다.

이런 평가에 대해 '갤러리 아트사이드'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던 그의 조각과 드로잉을 통해 판화가이기 이전의 조각가였던 오윤의 본질을 고찰하는 기회로 '오윤 회고전'을 갖고 있다(18일까지).

오윤은 판화로 '민중미술가'로 확고히 위치지어졌지만 정작 그는 조각을 전공했다. 특정 장르인 목판화로 오윤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번 오윤의 전시는 일종의 회고전 형식으로서 작가가 생전에 제작한 드로잉, 삽화 그리고 조각을 포함해 생전에 작업된 수많은 판화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은 부분이나마 그의 본질에 다가감으로써 민중미술가의 이면에 있는 오윤의 존재감을 느끼기를 기대한다.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오윤은 상당한 양에 달하는 드로잉과 삽화를 남기고 있다 ⓒ민중의 소리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1970년대 제작한 \'두상\' 조각뒤로 습작품이 보인다 ⓒ민중의 소리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우리 시대의 손\' 1977년 ⓒ민중의 소리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春無人 秋無義> 40x62cm, 1985년 오윤 작 ⓒ민중의 소리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마스크\' 1970년대 제작 ⓒ민중의 소리


'민중미술가' 오윤 회고전 18일까지 열려

오윤은 독립적으로 제작된 판화외에도 책의 표지에 삽입하기 위한 판화들을 다수 제작하였다-김지하의 \'황토\'책에 실린 삽화들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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