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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동행기] 지리산 대성골에서 열린 '빨치산 추모제'

기자

입력 2004-06-01 08:34:21 l 수정 2004-06-01 11:04:31

반백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칼빈총을 끌고 백두대간을 오르락거리던 소년ㆍ소녀가 이제는 백발로 돌아와 그들의 '동지'였던 혁명전사들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로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었던 한국전쟁에서 숨져간 이름모를 넋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역사의 현장, 빨치산의 고향인 지리산에서 추모제는 치뤄졌다.

하동의 화개장터를 지나 지리산 자락을 오르니 짙푸른 초목과 시원하게 내리뻗은 대성골에 도착했다. 30일의 추모제를 위해 남녘 반도 곳곳에서 달려온 '빨치산'들의 인사 소리가 지리산을 깨운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민중의소리


저녁식사를 마친 뒤 노진민 천주교통일후원회 회장의 사회로 간단한 '인사 나눔의 자리'가 마련됐다. 각자의 소개를 하는 빨치산들의 음성은 가늘게 떨렸다.

숨죽이고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추모제에 처음으로 참석한 '빨치산'선생들과 2차 송환을 소원하는 선생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졌다. 끊어진 현대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작은 만남이 이루어졌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민중의소리

지역별로 선생들의 소개가 끝나자 노래패 맥박과 희망새는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과의 만남을 흥겨운 분위기로 고조시켰다.

민요가락이 흘러 나오자 손경수 선생은 "해방 후 저 민요를 부를때는 억하고 가슴에서 치받아 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지요"라며 나즈막히 운을 떼었다.

"태백산맥에 눈 내린다
총을 메여라 출진이다
눈보라는 밀림에 우나
마음 속에 피 끓는다
높은 산을 넘고 넘어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빨찌산이 령을 내린다
원쑤를 찾아 령을 내린다."


깊어 가는 밤, 어둠을 벗삼은 노 선생들의 노래가락이 바람을 타고 실려간다.
'반쪽 달'이 대성골짜기에 스러지고, 별이 반짝이고 있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노래패 희망새의 \'우리는 하나\'라는 선율에 맞추어 하나가 되고 있는 참가자들. ⓒ민중의소리


대성골 자락에서 안개가 피어 오른다.
소리 없이 흐르던 냇가가 갑자기 아우성을 쳤다.

이현상 남부군 총사령관의 최후 격전지를 둘러 보려는 전체산행은 취소되고 22명의 '전사'들이 산자락을 올랐다. 대성골의 운해(雲海)가 그들을 감쌌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지전에 빨치산의 영령들을 위한 추도문을 적는 오기태 선생 ⓒ민중의소리

숙소에서는 도착한 참가자들의 소개와 함께 짧은 결의 발언들이 오고간다. 선생들은 추모굿에 쓸 지전(종이로 오려 만든 수술)에 추도문을 한자 한자 정성들여 적었다. 마음 속 깊은 한(恨)을 토해내고 싶으나 아직은 해야 될 일을 염두에 두며 말을 줄인다.

"조국의 자주와 통일을 위해 싸우시다 돌아가신 동지들이여 고히 잠드소서. 동지들이 못다 이룬 조국통일위업을 우리대에 기어코 이루리다. 조국통일만세"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역사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을 위하여 가신 님의 넋은 부활하여야 한다. 조국통일만세."

"통일열사들이여 우리가 국민과 함께 그 뜻을 이어받아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룩할 것을 영혼들 앞에 맹세합니다."

"자주와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산화해가신 동지들이여, 삼가 묵념을 드립니다."

건너 작은 방에서는 노래 가락이 흘러 나왔다. 해방전후시기에 나온 '농민가'를 서로의 기억으로 장단을 맞추는 여선생들은 소녀적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혁명가요'가 나왔을 때의 상황과 더불어 자신들이 어떤 감정으로 그 노래를 부르고 외웠는지를 조곤조곤 나누었다.

"불러라 노래 불러라. 농민의 깃발은 들에 날린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해방전후로 불리어진 \'혁명가요\'들을 불러보는 여선생들. ⓒ민중의소리


산을 바라보던 변숙현 선생의 음성이 흔들렸다.
"뱀사골 개울이 사흘 밤낮으로 핏빛이었어...말도 못했지. "

30일 정오 12시 53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는 시작됐다. 세월을 못이긴 노구(老軀)가 순간, 꼿꼿하게 세워진다. 지리산이 구름과 비로 모습을 감추었다. 제문을 읽어 내려가는 임방규 선생의 손이 떨린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민중의소리

"아, 가신 열사들이여!
누가 부르지 않았건만
누가 등으로 떠밀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나서서 참된 삶을 위해 싸우다가
꽃다운 목숨 기꺼이 던져서
조국의 제단 앞에 향불로 사라진 이들이여!

아, 조국이여
그토록 많은 희생을 요구한
모진 이름, 우리 조국이여
네 품에서 태어나
네 이름을 바로 세우려고
싸우다 가신 아들딸들을 챙겨주소서

나라를 에워싼 정세 날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통일을 위한 염원은 희망차게 부풀어 오릅니다. 제국주의 전쟁광들의 야욕을 무찌르는 대열도 더욱 커지며 확대되고 있습니다.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전세계로 메아리 쳐갑니다. 조국의 앞날에 서광이 비쳐오고 있습니다.

한 목숨 조국에 받친 신위들이여! 처절하게 산화해 가신 신위들이여! 저희들도 임들의 피 끓던 애국애족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자주통일과 6ㆍ15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해서 굳게 싸울 것을 제단 앞에서 엄숙히 맹세합니다.

아, 가신이들이여! 눈물로 그 목숨 다시 살려낼 수 있다면 섬진강 물을 퍼서 눈물로 빚겠나이다. 망극한 이름들이여! 외쳐서 이 자리에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면 목이 피로 터져 소쩍새 되겠나이다."


제문이 낭독되는 동안 구름이 거치고 바람이 잦았다.
부슬부슬내리던 비가 그쳤다.
세월에 내려 않은 흰 서리가 바람에 나부끼고 선생들의 어깨가 꼿꼿해 진다.

작년 4월에 전남 백운산에서 올린 추모제에 이은 두번째로 갖는 지리산 추모제와 관련해 김영승 선생은 "반세기 이상 구천에 떠돌고 있는 영령들을 하나로 모셔 위로하고, 살아있는 우리들이 반미자주와 조국통일 성업을 힘차게 펼쳐 나갈 결의를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다음 추모제는 전북, 충청, 서울 순으로 지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후대를 대표해 발언한 범민련 이경원 사무처장은 "당시 빨치산 투쟁을 하면서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단일민족국가를 형성하려했던 투쟁 정신을 배우게 된다"며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에서 느끼는 감회를 밝혔다.

그는 다음 추모대회부터는 젊은 후대들이 선열들의 의지와 사상과 뜻을 높게 실현할 수 하는 "남과 북, 전체 민족이 함께 준비하는 추모대회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출신 비전향장기수와 통일인사 200여명은 5월 30일에 남녘 통일열사 추모제를 지리산 대성골에서 진행했다. ⓒ민중의소리


이어 각 지역별 '빨치산'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오늘 우리 지리산의 동지들이 50년이 훨신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여기, 대성골의 칠성봉 아래에 모였습니다. 수많은 해방전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때의 가열찬 해방전쟁의 투쟁을 되새기며 이곳에 서 있습니다.

여기 모인 동지들 중에는 구빨치산 때부터 해방전쟁에 복무했던 동지도 있고 조국해방전쟁 이후 미제와 그 주구들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전략적 후퇴시기에 빨치산 대오에 들어와 활동했던 동지들도 많이 있습니다."


전라도를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한 류락진(76세) 선생은 "박헌영, 이승엽의 종파반당분자들이 심어놓은 차일평과 그 졸당들의 반역행위로 많은 아지트가 파괴되고 미제의 세균전에 의하여 많은 동지들이 재귀열이라는 병으로 죽고 시달린" 조직적 우여곡절과 함께 빨치산 전몰 당시를 회고했다.

"남은 빨치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1954년 가을, 지리산은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체포된 많은 동지들이 고문과 학대로 죽어나갔고, 그대로 질긴 목숨을 이어온 동지들은 인류 역사에 없는 비전향장기수라는 이름을 달고, 30년 40년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전향공작이라는 갖은 살인적인 고문과 학대를 이겨낸 동지들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충청도를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한 손경수(77세) 선생도 나즈막히 동지들을 위로했다. 그는 "산에서 또는 지하에서 가열차고 간고한 투쟁 속에 생명을 바친 수천수만의 영령들"을 위로하면서 "선열들이 남긴 고결한 투쟁정신과 찬란한 업적들의 민족사적 의의를 되새기며 그 투쟁정신을 계승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고 밝혔다.

"선열들의 열기에 찬 투쟁의 함성과 분위기가 우리들의 온몸을 감싸 돌고 있는 듯 우리들의 피를 끓게 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여러 선열들의 고결한 투쟁정신을 우리들 가슴과 머리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듯 합니다.

우리민족의 간절한 염웜인 자주통일을 아직도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로 통탄스럽고 영령들 앞에 죄송하고 애석하기 그지 없으나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명직전의 어둠을 뚫고 서광이 비쳐오고 있습니다.

침략자들은 겁에 질려 움츠려들고 있으며 통일을 향한 민족의 함성은 도시에서 농촌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도 지방에서도 그 높은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통일의 그 날은 그리 멀지 않아 꼭 오고 말 것이며 꼭 오도록 하고야 말 것입니다."


경상도를 대표한 부산의 최성원(82세) 선생도 또렷하게 말을 이어갔다. 최성원 선생은 자신을 "죽지 못해 구차한 목숨 이어오면서 회한의 눈물을 수없이 흘리던 늙은 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그는 "조국과 인민을 위한 일편단심과 불보다도 뜨겁고 강철보다 강한 님들의 혁명정신을 이어 받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조국의 통일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위해 영웅적인 투쟁을 하시다가 몸은 비록 죽어 까막까치의 밥이 되고 해골은 미처 거두어 줄 사람도 없이 이 골짝, 저 능선에 흩어 졌어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일편단심과 불보다도 뜨겁고 강철보다 강한 님들의 혁명정신을 이어 받기 위해 우리 여기에 모였습니다.

얼어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아래 조국과 인민을 위해 여한없이 싸우다 가신 동지들의 혁명정신은 장백산, 지리산, 백운산등 여러 산과 지하, 그리고 감옥들과 더불어 영원히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민가협 서경순 전 의장의 추모사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도 추모사를 이었다. 권오헌 회장은 "포연이 남아 있고 화햑냄새가 나는" 남부군 사령관의 투쟁 격전지를 찾은 소감을 밝히면서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해 조국을 통일하려던 영령들은 산화해가셨지만 남은 우리들이 외세의 간섭없이 이땅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반백년만에 치뤄진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

지리산 빨치산 중 생존한 김교영 선생이 당시 전투를 설명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1952년 1월의 대성골 전투의 생존자인 김교영 선생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라고 밝힌 대성골 전투는 "10만명 이상되는 토벌대가 집결해서 이중삼중으로 포위를 한 채 비행기로 폭격을 하고, 수류탄과 네이팜탄을 던져 수많은 빨치산들이 죽어갔다"고 증언했다.

그는 체포 당시 토벌대들이 "팔이나 머리 다친 사람은 끌고 내려왔는데 다리를 다친 사람은 무조건 죽였다"며 "대성골과 같은 대량학살, 대량참극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령제를 계기로 돌아가신 넋들의 정신을 이어 더욱 더 분발해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매진할 것을 결의했다.

추모사 낭독이 끝나자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는 추모공연이 시작됐다.

박종화 시인은 '우리가 당신입니다-대성골 2004년의 넋'이라는 추모시를 헌사하고, 혜운스님(안명철)이 반야심경을 독경을 했다. 한대수 거창 민예총 부지부장이 진혼굿을 펼쳤고, 노래패 희망새가 추모가를 바쳤다.

[사진9]
"우리 오빠는 6ㆍ25전에 고문받고 그 후유증으로 저 세상으로 갔어."
"그래도 저기(위패) 적혀있는 사람들은 좋은거지. 그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름도 없이 죽어갔는가 말이야. 이제, 그 사람들은 찾을 수도 없지"
속에서 치미는 격한 말을 내뱉는 여선생을 향해 다른 선생이 말을 이어간다.

추모제에는 칠갑산, 대둔산, 계룡산, 덕유산, 회문산, 태백산, 지리산, 백운산, 오대산, 한라산등 남녘의 산하에서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영령 1044명의 신위(神位)가 모셔졌다.

"행사가 너무 늦었어. 작년부터 했다고 하지만 좀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어. 이 추모제가 우리 민족 전체에서 화해가 이루어져야 하는 기초가 되는거지. 민족의 자주화를 이루는 길목에서 역사를 열어준 선배들을 잊지않고 민족해방운동을 다시금 힘차게 벌려야 하는 거야. 행사 전체가 조촐하게, 아름답게 이루어진 것을 기쁘게 생각해요."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전적지를 둘러본 안재구 박사가 말했다. 노진민 회장도 "그동안 남도열사 추모제라는 이름으로 국지적으로 진행된 열사 추모제가 '남측 애국통일열사제'로 거듭난 것이 반갑고 좋다"며 "역사의 맥을 이어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는 좋은 기회이므로 젊은 후학들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역사를 기점으로 해야 답이 보여"
조영건 교수가 한마디하고는 귀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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