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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속에 피가 흐른다'로 본 김남주의 시적 세계

[책] 염무웅 교수가 해설하는 김남주 시인의 문학세계

기자

입력 2004-06-29 09:24:15 l 수정 2004-06-29 14:59:38

"최초의 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가 김남주 시인의, 생의 마지막에 닿아 있는 시입니다."

아는가 그대는
봄을 잉태한 겨울밤의
'꽃속에 피가 흐른다'로 본 김남주의 시적 세계

故 김남주 시인 ⓒ창작과비평사

진통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그대는 아는가
육신이 어떻게 피를 흘리고
영혼이 어떻게 꽃을 키우고
육신과 영혼이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는가를
꽃이여 피여
피여 꽃이여
꽃속에 피가 흐른다
핏속에 꽃이 흔른다
꽃속에 육신이 보인다
핏속에 영혼이 흐른다
꽃이다 피다
피가 꽃이다 그것이다 -'잿더미'중에서


"김남주의 대부분의 시는 문장이 복합적인 게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짧은 단문을 이용해서 '단정'과 '질문'의 반복적인 연쇄로 다른 시에서는 볼 수 없는 예외적인 급박한 호흡을 만들고 있습니다. 꽃과 피, 영혼과 육신, 새벽과 황혼이라는 대조적 이미지의 합일을 꿈꾸면서 나중엔 부활을 노래하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예진흥원이 진행하는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 초빙된 염무웅 문학평론가의 말에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2000년도부터 시작된「금요일의 문학이야기」는 그간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200여명의 인사들을 통해 이들의 생생한 체험 속에 묻어나는 우리 문학의 다양한 경관을 나누었다.

"김남주 시인의 시가 읽히기에는 빛바랜 시대라고 합니다. '혁명적 열정'이라는 낱말이 이제는 우리 귀를 자극하지 않고, 자본주의 지배력이 우리의 일상을 장악하는 것 같습니다. 남주의 시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로서는 남주 시를 읽을때 감동과 함께 떨리는 힘을 느낍니다."

1974년 「창작과 비평」여름호에 '잿더미'를 비롯한 8편의 시를 실어 김남주를 시인으로 등단시켰던 창비사가 그의 10주기를 맞아 '꽃속에 피가 흐른다'라는 제목의 시선집을 펴냈다. 당시 창비의 편집자였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교수(영남대 독문과)가 엮었다.

"김남주의 '별', '한매듭의 끝에 와서', '자유를 위하여', '역사에 부치는 노래', '혁명의 길'이라는 시는 일부러 마지막에 넣었습니다. 혁명의 전망이 '작살'나는 현실을 보면서 김남주는 그러나 내 길은 가야겠다라고 다짐합니다. 이것을 시로 쓴 것입니다. 유언과도 같은 시이지요."

김남주의 시적 원천은 어머니가 민중화한 '대지'

당신은 묻습니다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쟁과 그날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 -'시의요람시의무덤'중에서


"그는 시를 위해 시를 쓴게 아니라 자유를 위한 투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역사발전을 위한 투쟁속에서 시가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목적의식적이다, 우악스럽다, 험악하다등의 비난성 말에 대해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하게 투쟁의 무기로써 시를 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투쟁의 부산물이 '시'인 것입니다."

염무웅 교수는 김남주의 문학세계의 원천은 몰락하는 농민현실이고 그 현실에 맞서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이땅의 아버지, 어머니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시를 보면 처음 무렵부터 끝까지 20년동안 끊임없이 어머니를 의식하고, 어머니를 찬양하고, 어머니로 돌아가고, 떠납니다. 어머니를 대지로 삼고, 하늘을 향해서 별을 향해서 소리칩니다. 남주의 시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결정한 사람은 결국 나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 '편지'중에서


김남주의 시를 살펴보면 고통을 인내하던 어머니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민중으로 대변되는,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넘어서는 최고의 시적 단계로 승화된다. 현실의 고통에 대해 울고, 참고, 기다리던 개인적 존재가 이 산하, 이 조국, 이 민중의 대표로 떠오른 것이다. 김남주 시인의 출발점인 '대지'가 마련된 것이다.

내 시의 기반은 대지다
그위를 찍어내는 곡괭이와 삽의 노동이고
노동의 열매를 지키기 위한 피투성이의 싸움이다 -'다시 시에 대하여'중에서


김남주는 개인사적 체험과 함께 학습을 통해 전투적인 민족주의자, 진보적 민주주의 , 혁명적 지식인으로 확고하게 변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들은 신념의 시적표현인 셈이다. 시의 형식을 빌려서 혁명과정에 지켜지고 관철해야할 것들을 노래한다.

천금을 주고도 살 수없는 동지애로
당신은 나에게 가르쳐주엇습니다 비판과
자기비판은 혁명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채찍이라는 것을
나는 보지 목햇습니다 한번도
당신이 비판의 무기를 동지공격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투쟁과 그날그날'중에서


'꽃속에 피가 흐른다'로 본 김남주의 시적 세계

문예진흥원이 진행하는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 초빙된 염무웅 문학평론가(왼쪽) ⓒ민중의소리


'까막소'안에서의 창작이 '5월 문학의 최고봉'으로

김남주는 1978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가입하면서 15년형의 형량을 받는다. 옥안에서 5ㆍ18광주항쟁 소식을 들은 그는 "책으로 읽고 머리속으로 이해하던 모든 민족적 문제과 더불어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등이 광주항쟁으로 입증되었다"고 느꼈다.

"미제의 식민지로 되어 있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지금도 상당히 민주화되어 있다고 말하는 오늘날에도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남주는 조금의 망설임없이 가차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 '학살1'중에서


'학살1'은 4막극의 전형적인 단막극 구조로 낭송을 통해서 살육의 현장을 무대위에서 시각화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나 '밤 12시'라는 시간의 반복을 통해 광주의 참혹하고 끔직한 현장을 그대로 무대위에 올려놓은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다. 염무웅교수는 시를 낭송하면서 이 시가 '5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수 있다고 단언했다.

염무웅 교수는 "김남주 시인이 20년동안 발표한 시들이 대략 470여편으로 이중 5분의 4가 옥중시다. 이는 교도소 간수들의 눈을 피해 우유곽 은박지에 못으로 쓰고, 자신의 시를 외우고 있다가 면회온 이에게 암기를 해서 받아쓰게 하고...이런 방식으로 시를 발표해서 시어의 압축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즉, 흔히 시들이 가지는 암시성과는 반대로 명료성을 시인는 취할 수 밖에 없던 것.

"남주의 시의 내용이랄까, 남주의 현실적 체험들은 바로 이 땅의 대지위에서 발을 딛었고 그것을 통해 표현된 것이지요. 시를 투쟁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기 위해서라도 어설프게 시적언어를 사용해선 안되는거지요. 가장 효과적으로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효과적인 표현의 방법을 개발할수 밖에 없던 것이지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분명하게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것을 나타내고자 노력을 한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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