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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1집음반은 세상에서 두번 사라졌다"

[노래여 나오너라5] 이영미선생님의 민중가요이야기

지금은노동자시대

입력 2006-03-22 08:00:20 l 수정 2006-03-22 13:23:04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영미입니다.
오늘은 김민기의 곡중에서 진정한 포크가수로서의 비판정신을 엿볼 수 있는 두곡을 가지고 왔습니다.

"김민기의 1집음반은 세상에서 두번 사라졌다"

김민기 1집음반(71년발매)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김민기는 애초부터 엄청난 사회의식을 가지고 또는 민중운동진영에서 내 노래가 이렇게 쓰여야지하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냥 한 감수성 예민한 한국청년이 일기쓰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작업이었다고 봐요. 그것 자체가 용기였구요. 그것을 대학생들이 알아보고하는 과정속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김민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기의 노래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에 대해 비교적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된다라는 말씀을 지난번에 드렸었는데요.

오늘은 조금 더 사회의식이 강화된 노래들 중에서 두곡을 가져왔는데요. 물론 이 곡들도 합법적인 음반에 실려서 공개된 노래예요. 1집 수록곡들인데요.

먼저 '꽃 피우는 아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 노래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한동안은 이 노래를 들을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특히 이 노래는 문제였다라고 많이들 기억을 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음반 전체로 봤을 때 일명 가장 불온한 노래로 찍힐 수 있는 노래였죠. 왜 그랬을까요?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떤 한 아이가 무궁화꽃을 물도 주고 하면서 잘 가꾸려고하는데 무궁화꽃이 자꾸 시들거든요. 이 상징이 너무나 명확하잖아요? 또 2절에서는 급기야 꽃은 시들다가 결국 죽고 그리고 꽃을 키우던 아이도 병이 들었다는 얘기죠.

그런데 여러분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지 않으신지요?
이 당시에 어떻게 이런 가사의 노래가 사전검열을 통과해서 합법음반으로 나왔는지 참 의심스러울 정도죠.

이 노래는 당시 사회비판의 이야기를 가장 적극적이고 직설적인 방법으로 던진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이 노래의 제목을 '무궁화꽃 피우는 아이' 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무궁화꽃이 굉장히 중요한 제재이고 그 상징이 너무나도 명확하니까요. 하지만 노래제목은 '꽃 피우는 아이' 입니다

꽃 피우는 아이 듣기

"김민기의 1집음반은 세상에서 두번 사라졌다"

김민기 1집음반(88년발매)

71년에 이 노래가 발표됐는데요. 지금과는 감각이 많이 다르죠. 굉장히 우울한 느낌이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진지함의 한 표현이었습니다.

71년 음반은 75년에 '아침이슬'이 공식적으로 금지곡이 되면서 확실하게 음반시장에서 사라졌는데요. 그 이전, 72년에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사실은 사라졌었습니다.

무슨 얘기냐하면 김민기씨가 72년 혹은 73년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꽃 피우는 아이'와 '해방가'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그날밤에 모처로 끌려갔고 한참 고문을 당하고 나왔죠. 그 이후로 매장에서 김민기의 음반이 수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법적근거없는 노래를 만든 작가와 그 음반을 낸 음반사에 대한 일종의 압력이었던 거죠.

그 다음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김민기의 음반을 사기가 어려웠죠. 노래가 나오는 것이 불법은 아니었으나 실제로 구입하기가 어려웠구요. 75년이 되서는 확실하게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아침이슬'을 금지곡으로 딱지를 찍은 거죠.

그러다가 71년 음반에 실린 노래들이 다시 매장에서 팔리게 된 것은 87년 6월항쟁을 경유하면서였죠. 특히 노태우가 자칭 '구국의 선언'이라고했던 '6.29선언'을 하던 날, 아침이슬을 확실하게 해금해주겠다는 제스추어를 했습니다.

그날 마침 김민기가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요. 혜화동 극장까지 노태우가 직접가서 공연을 보고 뒷풀이까지 따라가서 그 자리에서 '아침이슬'을 불렀습니다. 해금을 하겠다는 일종의 신호였죠. 71년음반은 그렇게 다음부터 찍을 수 있었구요. 물론 이렇게해서 이후 다시 나온 1집음반은 김민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왔습니다.

"김민기의 1집음반은 세상에서 두번 사라졌다"

87년 6.29선언

재미있는 것은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딱 한곡, 유독 '꽃 피우는 아이' 이것만은 통과를 시킬 수 없다고해서 이 노래가 빠지고 대신에 정수라의 '아,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건전가요로 들어갔습니다.

김민기의 1집음반이 이렇게 한동안 금지가 됐을 때 암시장에서 굉장한 고가로 팔렸어요. 70년대말과 80년대초반에 LP음반 한장에 당시 30~40만원에 팔렸으니까요. 이렇게 희귀한 71년 1집음반이 있고 '아, 대한민국'이 실리고 '꽃 피우는 아이'가 빠진 88년에 나온 1집음반이 있는 거죠. 참으로 기가막힌 음반이 된 거죠.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노래는 '종이연' 이라는 노래입니다. 71년 1집음반에 수록된 곡이고 88년에 나온 음반에도 실려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도 역시 71년에 애초에 문제가 됐던 노래입니다. '종이연'이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별 냄새가 안나죠.

하지만 이 곡의 제목은 원래 '혼혈아'였습니다. 그래서 71년 1집음반을 냈을 때 이 제목이 걸린거죠.

"김민기의 1집음반은 세상에서 두번 사라졌다"

파주기지촌

참 재밌죠? 71년 이 음반이 처음 나왔을때 '꽃피우는 아이'는 안걸리고 '혼혈아'는 제목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는게 말이죠. 어쨌든 노래 '혼혈아'의 제목만 바꾸는 걸로 합의가 되서 음반에서는 '종이연' 이라는 노래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제목이 바뀌어버려서 가사를 곰곰히 되씹어보지 않으시면 이 노래의 의미를 모르고 넘어갈 수 있어요.

종이연 듣기

어머니가 양공주였던 거죠. 주한미군을 상대했던 성매매여성이었던거구요. 노래에 나오는 아이는 혼혈아인 거죠. 그런데 노래가사 전체를 봐도 "나는 혼혈아입니다"라는 대목은 없거든요. 하지만 딱 한구절 "'헬로우아저씨' 따라갔다는데"에서 확실해집니다. 제목이 원제대로 '혼혈아'였다면 이 노래에서 말하고자하는 의미가 듣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이 될테지만 '종이연'으로 바뀌면서 "헬로우아저씨"라는 대목을 흘려들을 수도 있겠죠.

이 노래를 나중에 김민기씨가 4장짜리 전집음반으로 발매를 했을 때는 '혼혈아'라는 원제를 찾아왔어요. 하지만 71년음반에는 여전히 '종이연'으로 돼있는 거죠.

이런 노래들을 봤을 때 김민기는 당시 확실히 통기타 하나 들고 나와서 미국의 모던포크를 대충 흉내낸 사람이 아니라 확실히 포크의 비판정신을 가지고 있는 명실공히 한국의 포크가수라고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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