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기록하는 약자’입니다"

<월간말>편집권 독립위해 파업중인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

서정환 기자
입력 2007-01-23 10:04:46l수정 2007-01-23 16:52:20
"사람이 할 일 안할 일 가릴 줄을 알아야지. 나이 들어 가면서 그게 뭐하는 건지..."

기자 밥 18년. 사람 못할 일을 밥 먹듯 하는 군상들을 숱하게 봐 왔으련만 『시사저널』 정희상(45세) 기자는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 1월 1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문화사 별관 앞. 그는 시사저널 노조가 자사 금창태 사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함께 서 있었다.

"기자는 ‘기록하는 약자’입니다"

정희상 기자 ⓒ월간말 정택용 기자ⓒ월간말 정택용 기자

월간『말』의 오랜 독자들이라면 기자 '정희상'의 이름이 퍽 반가울 것이다. 한국전쟁 때 국군과 우익단체 등에 의해 자행된 부산ㆍ경남, 거제, 산청ㆍ함양과 문경의 양민학살 사건, 정국은 간첩 조작 사건 등이 그의 발, 눈, 손을 거쳐 89~90년에 발행된 『말』의 '현대사 발굴' 기획기사로 실렸다. 정 기자는 당시의 탐사보도가 "'왜 이런 사건들이 감춰지고 있나'하는 분노와 '나라도 열심히 써야겠다'는 소박한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기자'란 '기록하는 약자'였다. "대북 적개심과 반북의식 고취에 도움이 안되는 모든 진실이 은폐되거나 인민군, 공비의 소행으로 둔갑되던 때였죠. 해결은 둘째 치고 일단 기록이라도 남겨야 했는데, 그 역할이 나에겐 기자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기록한 사실들은 끝내 빛을 보게되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등 역사적 해결의 가닥이 잡혀가는 것이다. 98년 2월 24일 판문점 JSA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도 그의 끈질긴 추적기사가 뇌관이 됐다. 지난 달,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명백한 타살증거를 무시한 채 자살로 졸속 수사를 마무리한 이 사건을 재조사키로 결정했고 대법원도 국가가 부실수사에 책임을 지고 유족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시사저널』에서 정 기자와 선후배 관계를 맺었던 소설가 김훈은 그를 두고 "스스로 망신창이가 되어 먼 길을 떠나는 참 언론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 기자 스스로는 이렇게 말한다. "기자가 관심의 끈을 놓고 있지 않을 때, 어떤 힘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팩트(fact)를 쓸 수 있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때, 제보자들은 새롭거나 진전된 증거들을 주게 됩니다. 이런 신뢰와 교감의 관계가 도저히 취재를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동력이 되죠”

『시사저널』과 그 태동기 때부터 함께 한 정 기자는 요즘 예전의 정치권력과는 다른 성질의 압력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해 6월,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은 업계 최대 광고주 삼성그룹의 인사에 관한 자사 이철현 기자의 기사를 들어내고 그 지면을 광고로 대체시켰다. 이에 시사저널 노조가 즉각 반발하며 급기야 지난 1월 5일, 창간이래 첫 파업에 돌입했다. 정 기자는 금 사장이 독단적으로 제작한 시사저널 899호를 받아 들었다. "참담하네요. 정론을 지향한다면 이렇게까지 해선 안되죠. 결국은 금창태 사장이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원래 그는 시사저널 899호에 대형 권력유착 비리사건인 제이유 그룹 문제를 다루려 했었다. 그의 기사가 재벌권력의 성역에 묻히면서, 우리는 또 이 시대의 비극 한 점을 묻어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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