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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 세계 일류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은폐하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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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류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은폐하려 했나?

생산직 여성 2명 백혈병 사망...97년 이후 6명 발병

정웅재 기자 발행시간 2007-03-26 18:44:52 최종수정 2014-12-26 03:03:02

이 기사는 한 통의 제보전화로부터 시작됐다. 1월 23일,『말』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수화기 저 편의 중년남성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다니는 자신의 딸이 백혈병에 걸렸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어 기흥공장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 5명이 백혈병으로 죽었다며 자신의 딸이 산업재해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로서는 귀가 쫑긋 서는 제보였다. 이 남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반도체 사업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삼성전자가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5명이 백혈병 사망, 산재예요”

세계 일류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은폐하려 했나?
황상기 씨. ⓒ월간말 이재진 기자ⓒ월간말 이재진 기자

이 남성의 이름은 강원도 속초에 사는 황상기 씨. 그의 딸 유미(23) 씨는 속초상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3년 10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디퓨전(확산) 공정에서 13개월 근무했고, 2004년 12월 1일 3라인으로 발령받아 일했다. 3라인은 6인치 웨이퍼를 만드는 라인이다. 기흥공장에는 1라인부터 15라인까지 있는데, 회사표현을 빌리자면 3라인이 “가장 후진” 라인이다. 유미 씨는 3라인에서 웨이퍼 세정작업을 했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불산(HF), 이온화수(DI), 과산화수소, 황산암모늄 등의 혼합액에 담갔다 빼는 작업이 유미 씨가 8시간 근무하는 동안 반복해서 하는 일이었다.

반도체 생산공정에는 각종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된다. 때문에 생산라인의 노동자들은 보호 마스크, 고글, 방진모, 방진복을 착용하고 일한다. 이는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야만 하는 반도체 생산공정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유미 씨는 “보호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혼난다”라며 “일을 하다 화학용액이 튀어도 보호구가 있어 해가 되는 일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룹가수 신화를 좋아하는, 아직 앳돼 보이는 유미 씨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이상하게 몸에 멍이 자주 들고 뭐를 먹기만 하면 토를 했어요. 자주 피로했고 어지러웠고요. 친구가 병원에 가보자고 해서 갔더니 피가 이상하다며 큰 병원에 가보래요. 큰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이래요. 그 때 엄청 울었고, 죽는 줄 알았어요. 그 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유미 씨는 3라인에서 일한지 6개월만인 2005년 6월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케미컬에 웨이퍼를 담갔다 빼는 세정작업을 했어요. 설비는 한 대 밖에 없는데 언니들이 이 것 먼저 해 달라, 저 것 먼저 해 달라고 서로 요구하고 막내인 저는 뭐부터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유미 씨는 백혈병 발병 후 휴직을 하고 치료를 받았다. 2005년 12월에는 골수이식수술도 받았다. 2006년 9월 휴직 기간이 끝나 복직을 해야 했으나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복직이 어려웠다. 회사는 퇴직을 권고(?)했다. “(2006년) 10월경에 회사 사람들이 와서 사표를 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썼어요.” 황상기 씨의 말이다. 퇴직 직후, 불행히도 병마는 다시 찾아 왔다. 퇴직 2주 만에 백혈병이 재발한 것.

세계 일류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은폐하려 했나?
생전의 황유미 씨. ⓒ월간말ⓒ월간말

항암치료로 머리는 다 빠지고, 몸이 깡마른 유미 씨는 기력이 없어 누워 지내야 했다. 2월 초, 속초 집에서 『말』 기자가 만난 유미 씨는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로 밭은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한 달여 뒤인 3월 6일 유미 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스물 셋의 나이였다.

“진료를 위해 새벽 5시 조금 안 돼서 집에서 출발했어요. 수원 아주대 병원 가서 피 검사 하고 영양제 주사 한 대 맞고 돌아오는데...한 이천 쯤 왔는데 애가 차 뒤에서 덥다고 그래요. 먹지도 못해 삐쩍 말라서 몸무게가 20kg 밖에 안 됐어요. 찬바람을 나오게 하니 이번에는 춥다 그래요. 20분을 달려 횡성쯤 왔을 때 뒤를 돌아보니 애가 얼굴이 창백해져 있어요. 제 옆에 타고 있는 집사람이 뒷좌석을 보더니 ‘유미 아빠! 애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아요’라고 다급하게 그러는 거예요. 차를 길가에 세우고 보니 ‘꺽꺽’거리며 마지막 숨이 넘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유미 씨는 떠났지만, 그의 백혈병 발병이 업무상 재해인지 여부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더구나 황상기 씨는 유미 씨뿐만 아니라 5명이나 더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했었다. 유미 씨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7일 저녁 기자는 속초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남기고 간 숙제를 풀기 위해... 밤 10시 경 속초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빈소에 들어섰다. 누군가가 급히 나와 눈짓을 주며 밖으로 이끌었다. 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였다. 얼굴이 약간 불콰했다. “회사에서 차장하고 과장들이 나와 있어서 그래요. 미안하지만 나가서 얘기를 하시죠.” 회사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기자와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결국 제대로 취재를 하지 못하고 다음 날 오전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이날부터 기자는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3라인에서 유미 씨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연락처를 알고 있는 5명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좀처럼 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의 그녀들은 가만히 듣다 낯선 이라고 생각되자 전화를 뚝 끊었다. 어렵게 유미 씨의 한 선임자와 통화가 됐다.

“여보세요. 월간 말 기잡니다. 유미 씨 문제로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제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죠?”
“유미 씨를 통해 알았습니다.”
“유미가 가르쳐 줬다구요? 저는 도와 드릴게 없어요. 저한테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몹시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문득 속초에서 만난 황상기 씨의 말이 떠올랐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있는데 회사에서 함구령을 내려서 절대 얘기를 안 해요. (함구령이 내린 것은 어떻게 아시나요?) 우리 애하고 회사 애들하고 문제메세지를 주고 받았어요. 2월 초에 기자가 한 번 다녀간 뒤로는 회사에서 절대 말하지 말라 그랬대요.”

삼성전자 “작업환경에 1천억 쓰고 있다.”

손에 쥐고 있는 사실은 취약했지만 정공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3월 12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회사 관계자들을 만났다. 회사는 생각보다 성실하게 취재에 응해줬다. 거리낄게 없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홍보그룹 관계자를 통해 97년 최초 발병 이래 모두 6명이 백혈병에 걸렸고, 이중 한 명은 완치돼 다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황유미 씨를 포함한 5명은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황유미, 이숙영 씨만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생산라인 근무직이고 나머지 4명은 관리직과 엔지니어였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더라도 황유미, 이숙영 씨는 3라인 3베이에서 똑같은 일을 하다 둘 다 급성 백혈병으로 숨졌다. 이숙영 씨는 2006년 6월 발병해 두 달만에 사망했다. 이 씨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직후 발병해 주변의 안타까움이 더 컸었다.

세계 일류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은폐하려 했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월간말 전문수 기자ⓒ월간말 전문수 기자

화학물질을 다루는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던 두 명이 백혈병으로 숨진 사실을 어떻게 봐야할까? 백혈병이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질병이기 때문에 그냥 우연의 일치로 봐야할까? 홍보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개인질병이라 다 파악이 안 되지만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97년 최초 발병 이래 모두 6명이 걸렸다. 대한민국 평균 발병률보다 낮은 수치다. 공교롭게도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던 친구 둘이 1년 사이에 발병하다보니 문제라고 보는 것인데, 우리는 백혈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물질로 알려진 벤젠과 같은 물질은 쓰지도 않는다.”

반도체총괄 안전그룹 핵심 관계자도 거들었다. “내부 환기가 완벽하게 되기 때문에 (화학물질을) 코로 흡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우리는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해 1천억 원을 쓰고 있다. 그 정도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런 오해가 제기돼서 기술자 입장에서 유감이다.” 이 관계자는 “3라인과 같은 노후라인은 단계적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각종 유해물질과 그 위험성이 언급돼 있다. 그 중 벤젠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에는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고 돼 있다. 벤젠에 의한 백혈병의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벤젠에 의한 백혈병 발병이 아닌 경우에는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황유미, 이숙영 씨가 벤젠을 취급하지 않았다고 해도 업무상 재해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유미 씨의 주치의였던 박준성 교수(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는 소견서에서 “본 급성 백혈병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본 환자에서처럼 장기간의 화학물질 노출이 그 발병에 일정부분 기여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황유미 씨가 발병한 후 회사가 일을 처리한 방식에서도 의혹이 제기된다. 유미 씨가 백혈병에 걸리자 황상기 씨는 회사에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가족 중에 그 누구도 백혈병에 걸렸던 사례가 없고, 3라인 3베이에서 두 명의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질병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산재신청과 승인 업무는 근로복지공단에서 하지만, 산재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2006년) 10월에 김ㅇㅇ 과장이 찾아와서 병원비는 대줄테니 사표를 쓰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병원비를 주지 말고 산재처리를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버님께서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면 해보라’고 하더군요.”

회사는 처음부터 개인질병이라 산재처리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차례에 걸쳐 황유미 씨 병원비로 약 4천여만 원을 대줬다. 황상기 씨는 유미 씨 병원비와 수술비로 8천여 만원 이상을 써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다고 밝혔는데, 반도체 총괄 인사그룹 차장 등이 최근까지 황상기 씨와 전화통화 등으로 접촉하며 위로금 지급 등 보상문제를 상의해왔다. 회사는 퇴직 전에 이미 4천여 만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병원비 명목으로 지급했는데, 퇴직 후에도 유미 씨 장례식장까지 찾아가며 수차례 위로금 지급 언질을 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산재가 아닌 개인질병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회사가 왜 그토록 물질적 보상을 하려 했을까?

반도체총괄 SYSTEM LSI사업부 인사그룹 관계자와 경영지원실 홍보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병원비는)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사원들이 자발적 모금운동을 해 도운 것이다. 사내 ‘사랑의 기금’이 있다. 희망자에 한해 급여에서 다달이 일정금액이 빠져 나간다. 노사협의회에서 심의를 해 이 기금으로 지원한 것이다. 그 외 사원들의 자발적 모금운동, 사내 자판기 수익금 등으로 치료비 일부를 지원해줬다.” 인간적으로 안타까워 도움을 준 것일뿐, 회사입장에서 뭔가 잘 못 한 게 있어서 지원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도체총괄 안전그룹 관계자는 “무재해를 위해 산재를 숨기고 하던 일은 옛날 얘기다. 우리도 산재처리 하는 건수가 많다”라고 말했다. 몇 건이나 되냐는 질문에는 “말해 줄 수 없다”라고 응대했다. 사실 외부인의 생산라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현 상황에서는 회사에서 제시하는 자료 등을 갖고 1차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기자와 만난 안전그룹 관계자들은 작업환경측정표 등을 보여주며 각종 산 등 유해물질을 법적 기준치 이하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그룹의 담당 과장은 “(유해물질의) 법적 기준이 100이면 사내기준은 20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을 초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같은 라인에서 일한 두 명의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숨졌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회사측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안전그룹의 핵심관계자는 “(이 건에 대해) 외부에서 의혹을 갖고 또는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산재여부를 물었을 때) 정확히 ‘아니다’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자의 물음에 그는 “지식의 한계”라고 답했다.

삼성반도체 생산직들은 4조3교대로 일한다. 생산라인을 세우지 않기 위해 새벽 6시-오후 2시, 오후 2시-밤 10, 밤 10시 - 새벽 6시, 24시간을 세 타임으로 나눠 조별로 교대하면서 일한다. 주야가 뒤바뀌는 생활로 생체리듬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고, 외부의 위험요인에 대해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무조건이다.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다보면 위험요인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명백하게 ‘아니다’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노동부 "삼성 상대 함부로 못해"

황유미, 이숙영 씨 죽음에 대해 노동부도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을 담당하고 있는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의 근로감독관은 삼성반도체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같은 라인에서 두 명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만 우연의 일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 실태조사를 나간다. 또 명백한 법 위반이 있을 시에는 역학조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반도체의 경우, 아직 산재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감독관은 또 “삼성을 상대로 함부로 할 수는 없지 않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했다고 해도 산재를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을 꺼린다. “무재해기록에 연연해 재해가 발생해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부에서 경고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우 업무를 못하게 폐쇄조치를 할 수 도 있다.” 김갑경 산업재해노동자협회의 상담부장의 설명이다. 되도록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데 있어서는 삼성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반도체총괄 안전그룹 핵심관계자는 기자에게 “몇 건인지는 말해줄 수 없지만 삼성반도체에서도 산재가 인정된 사례가 많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노동부 수원지청 근로감독관은 “삼성반도체의 경우 산재요양 신청이 들어온 것도 많지 않고 승인된 것도 거의 없다”라고 말해 둘의 말이 엇갈렸다.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굴까?

기자와 만난 회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도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내용이 기사화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기자가 원고를 마감하고 있는 이 시각에도 기자의 핸드폰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핸드폰 액정에는 반도체총괄 홍보그룹 관계자의 연락처가 발신자번호로 표시돼 삼성측에서 온 전화임을 알리고 있다. 받지 않고 원고를 마감했다. 기자가 취재협조를 위해 만난 노무사와 산업재해 전문가들은 삼성이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 사망사건을 사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삼성답다”는 반응을 보였다. 5년간 끈질기게 싸운 끝에 2004년 8월 법원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은 바 있는 삼성SDI와 사내기업인 정우전자 퇴직노동자 김명진 씨의 반응도 같았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산재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생산라인에서 격리되고 회사 관리자들의 압력에 버티다 못해 결국은 사직서를 써야 했다”라며 “당시에 삼성SDI 관리자들이 회유도 하고 감시도 했다”라고 전했다.

회사 관계자에게서 ‘보상 문제는 좀 더 기다려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황상기 씨. 개인택시를 하며 어렵게 살아오다 유미 씨 병수발 하느라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기자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그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삼성이 정말 자신들도 이 문제가 명확하게 밝혀지길 원한다면 애초에 황상기 씨의 뜻대로 유미 씨와 가족들이 산재요양신청을 할 수 있도록 조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려 할 시에 회사는 이에 조력해야 한다는 ‘조력의 의무’가 있다.) 그리고 공정한 검증기관의 투명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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