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출교사태의 진정한 배경…신자유주의 대학 ‘경영’

[고대출교1년] 재벌-대학 유착에 저항했던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강영만(고려대출교생)
입력 2007-04-11 11:21:50l수정 2007-04-12 12:32:51
오는 4월 19일은 고려대 학생활동가 7명이 출교 조치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출교생들은 출교 조치를 두고 2년 전 5월 2일의 ‘반삼성 시위’를 떠올린다. 출교 조치는 당시 시위 주동자들에 대한 ‘표적징계’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민중의소리>는 출교 조치 뒤 꼬박 1년간 대학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해 온 이들의 투쟁 평가를 다섯 번에 걸쳐 직접 들어본다. <편집자 주>

① 고려대학교의 막나가는 신자유주의화
② 보건대 ‘통합’의 진실
③ 보복성, 표적 징계 ‘출교’에 맞선 투쟁
④ 1년간의 투쟁 성과
⑤ 투쟁 전망


고대 출교사태의 진정한 배경…신자유주의 대학 ‘경영’

06년 4월 20일. 소위 \'교수 감금\' 사건으로 출교조치 당한 7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대학본관 앞에서 징계 철회를 주장하며 삭발했다. 출교생 강영만씨가 출교생 김지윤씨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2006년 4월 19일 고려대에서 학생운동 활동가 7명이 ‘출교’당했다. ‘출교’조치는 해당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모든 기록을 영구히 삭제하고 재입학까지 불허하는, 학생에게는 사형조치와 다름없는 ‘극형’이다. 속된 말로 호적에서 ‘파내는 것’이다.

‘출교’라는 극악한 조치에 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놀랐다. 이는 그간 출교학생들이 학생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수년간 활동한 ‘대가’였다.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은 학생자치활동 전반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점을 직감한 학생들이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저항에 나섰다. 한편 보수언론들은 어윤대 총장의 신자유주의적 대학경영과 학생탄압을 찬양했다.

2007년 4월, 이제 고려대 출교학생들의 ‘징계철회’ 천막농성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고려대학교 당국은 천막농성장 철거협박을 일삼고 비열하게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시켰다. 고려대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출교학생들과 학교당국에 대한 양비론을 펼치며 출교철회투쟁을 단결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 학내 단체들, 시민사회단체들의 계속되는 지지와 연대에 힘입어 출교학생들과 지지학생들은 꿋꿋이 천막농성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에게 학생선발권 주고 퇴직 재벌임원들은 교수직 보장

2003년 이후 어윤대 체제 하의 고려대학교는 눈부시게 변했다. 그는 학교를 기업과 보수정치인들의 선전장으로 만들었다.

‘이학수(삼성 구조조정본부장-삼성 X-FILE사건의 핵심인물)강의실’, ‘김승유(하나은행 회장) 강의실’, ‘이명박 라운지’, ‘100주년 기념 삼성관’, ‘LG-POSCO 경영관’, ‘하나 사이언스파크’, ‘CJ인터내셔널하우스’, ‘SK 정보관’, ‘대양상선 법대 도서관’ 등은 모두 어윤대 총장시절 건립되거나 계획되었다.

어윤대 ‘사장님’은 ‘말레이지아 SDI 현지화 전략’, ‘LG 특론’등의 과목을 만들기도 했다. 어윤대는 교과목까지 기업에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 LG전자에게는 학생선발권, 교과목 설계권, 계약교수 파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줬고 웅진그룹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대신에 석좌교수를 임명할 수 있도록 해줬다. 퇴직 재벌임원들에게는 교수자리를 보장해 주기도 했다. 이미 6명의 기업인들이 경영대 교수가 됐다.

학문을 팔아 수천억의 기부금을 유치했지만 학생들의 등록금은 어윤대 총장 4년 임기동안 25%나 인상됐다. 고려대학교 신입생 등록금은 전국 1위를 다투고 있었다(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서울 지역 대학 공학 계열 등록금 1위, 전국 대학 인문/사회계열 등록금 3위). 고려대학교 재단이 1,39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월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는데도 어윤대 총장은 “대학등록금 1,500만원은 돼야”한다며 세계 정상급 등록금을 향해 전진해 갔다.

고대 출교사태의 진정한 배경…신자유주의 대학 ‘경영’

06년 4월 20일. 소위 \'교수 감금\' 사건으로 출교조치 당한 7명의 고려대 학생들은 대학본관 앞에서 징계 철회를 주장하며 삭발했다. 한 동료가 삭발한 출교생 안형우씨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민중의소리 자료사진



학문 팔아 기업기부금 유치했으나, 학생들의 교육환경은 그대로

전국 1위 수준의 기업기부금과 등록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교육환경은 좋아지지 않았다.

학생들 도서구입비와 실험실습비는 삭감됐고 전임교수 숫자는 OECD 평균은커녕, 전국대학 사립대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교육부가 제시한 교수 1인당 학생수 적정 기준은 20명이다. 그러나 고려대는 교수 1인이 35명의 학생을 맡고 있다). 그 결과로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이 245개나 됐고 이 중 전공과목도 155개나 됐다.

어윤대 총장이 유치한 막대한 돈은 학교의 겉모습을 치장하고 사치하는 데에 낭비되고 있었다.

2006년 3월 22일 문과대학 이상신 교수가 문과대학 전체교수회의에서 어윤대 총장에게 공개질의 한 내용에 따르면 2005년, 2006년 고려대학교 임원진들은 일본, 중국 등 해외 호화호텔에서 연찬회를 가졌고 전체교수회의도 특급호텔에서 진행했다.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와 권위주의적인 행정에 대한 교수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교수들에게 현금을 돌리기도 했다(문과대학 교수들 중 90%와 법과대학의 일부 교수들은 이 돈을 거부했다).

고려대학교 당국의 사치는 100주년 행사에서 절정을 이룬다. 100주년 기념관 내부 인테리어, 100주년 기념우표, 고대를 빛낸 100인 책자, 100주년 기념 드라마, 100주년 기념 콘서트, 100주년을 기념해 이명박 시장에게 넥타이 선물, 기업 고위 임원들에게 프랑스 와인 1만병 선물 등에만 60억이 넘는 돈이 낭비됐다. 이 외에도 소나무 심는 데에 1년에 10억이 쓰여 졌고 사시사철 푸른빛을 내는 ‘서양 잔디’를 심는 데도 수억 원의 돈이 들었다. 이 돈으로만 고려대학교 재학생의 15%이상이 무료로 1년간 학교를 다닐 수 있다. “기부금 유치가 나의 존재 이유”라고 밝힌 어윤대 총장에게는 ‘교수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라는 닉네임이 더 잘 어울렸다.

남한 지배계급과 보수언론들은 “대학에도 CEO형 총장이 필요하다”며 어윤대 총장을 추켜세웠다. 그의 고려대학교 내에서의 ‘개혁’과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이라크파병, 한미FTA 찬성, 재벌. 외국 자본의 투자 유치 옹호, 탄핵반대촛불시위 반대’와 같은 ‘대외적’ 입장표명은 사장들과 지배자들의 입맛에 맞았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대학총장으로 여겨졌고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후보, 차기 대선 후보로 어윤대 총장을 영입하려 했다.

어윤대 전 총장의 '개혁' 이면에는 무엇이 있었나

고대 출교사태의 진정한 배경…신자유주의 대학 ‘경영’

06년 4월 26일. 고려대 학생 5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출교징계 철회와 총장면담을 위한 학생 행동의 날 집회. 학교 정문에서 바라 본 집회 풍경. 뒷 쪽에 대학본관이 보인다. ⓒ민중의소리 자ⓒ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어윤대 총장의 ‘개혁’이면에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불만이 자라나고 있었다. 경영대, 법대와 같은 ‘돈되는 학문’에만 투자하는 정책에 대한 불만은 2004년 경영대 호텔 건립시도에 대한 저항으로 표출됐다.

어윤대 총장은 사범대 전체교수회의에 참석해 “사범대 분관(사범대학 분관에는 교수 연구실, 학과 사무실, 학생들의 자치활동 공간이 있다. 호화롭고 웅장하게 건설된 경영대학 건물에 가려 햇빛도 들지 않는 곳에 위치한 매우 허름한 건물이다)과 미술대학(미술대학 학생들은 고려대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록금을 납부하지만 수업 및 실습 공간인 미술대학 건물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져 있고 작업공간에는 난방도 되지 않았다)을 허물고 외국 손님들과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을 짓겠다.”고 밝혔다.

어윤대 총장은 사범대학 분관과 미술대학을 사용하는 교수, 학생들을 위한 대안공간은 마련되어 있지도, 마련할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범대학 교수들은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렸고 사범대학 학생들과 미술대학 학생들 400명은 학교 학생처 사무실을 일시 점거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학생들의 교육권과 자치권, 교수들의 연구공간마저도 빼앗으려는 학교당국의 시도는 큰 반발을 샀다. 학생들의 계속되는 항의 행동은 “원래는 정경대 쪽에 지으려 했으나 특급 호텔의 경우 최소한 8차선 도로가 필요해서 사범대 쪽으로 옮겼다.”며 호텔건립을 뻔뻔하게 인정했던 학교당국을 한발 물러서게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 반대 시위

2005년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이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려 해 학생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고려대학교가 이건희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것은 100주년 기념 삼성관을 지어준 대가였다. 학생들은 학위를 기업가에게 ‘판매’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겨우 반나절 정도의 대자보 몇 장 시위 홍보에 15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애초 좌파들은 시위를 적극 조직하지 못해 팻말 선전전만 할 계획이었으나 기업에 굽신 대는 학교당국과 삼성 일가의 악랄한 노동자탄압과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거만한 태도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건희를 가로 막고 항의 농성을 진행했다. 이건희는 간소하게 학위수여식을 마치고 재빨리 뒷문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삼성공화국’의 대통령을 건드린 대가는 가혹했다. 보수언론들과 당시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까지 나서서 학생들을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미친개에는 몽둥이”를 대라며 학생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선동했다. 고려대학교 보직교수들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했다. 어윤대 총장은 시위 주동학생들에 대한 징계로 ‘회장님’을 위로하려 했다.

이건희 반대 시위는 고려대 내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 평범한 학생들은 삼성과 이건희의 ‘무노조경영’의 진실을 알게 됐다. 남한의 진정한 권력자에게 감히 맞선 학생들의 행동과 일그러진 이건희의 표정, 학위수여가 끝나자마자 뒷문으로 줄행랑을 친 삼성일가의 모습은 그간 억눌렸던 학생들과 거리의 노동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촉진됐던 광범한 반삼성, 반기업 정서와 학내 다함께 활동가들의 끈질긴 징계철회 투쟁은 이건희를 물러서게 했고(이건희 반대시위로 연일 삼성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이건희 회장은 결국 “이번 일은 내 부덕의 소치, 이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한발 뺐다), 어윤대 총장으로부터 “징계시도를 없던 일로 하겠다.”는 말을 얻어냈다.

고대 출교사태의 진정한 배경…신자유주의 대학 ‘경영’

05년 8월 11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지난 5월에 받은 명예박사 학위를 반납할 것과 검찰의 이 회장 구속수사, X파일 전면ⓒ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이외에도 2004년 학생들은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며 한 달가량 대학본부를 점거했다. 학교 고위직들이 점거시도를 눈치 채고 옮겨간 임시 사무실 앞에서도 수백 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2002년 2천명이 모여 비리총장을 물러나게 한 학생들의 자신감과 대학의 기업화에 반대하는 광범한 정서에 힘입어 어윤대 총장의 임기동안 매년 2천명이 참가하는 비상학생총회가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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