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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반대 유인물 나눠주던 '허세욱'씨 한 줌의 재로

한강성심병원 빈소 애도 발길 이어져…18일 하얏트호텔 앞 노제

구은회 기자/매일노동뉴스

입력 2007-04-16 19:51:29 l 수정 2007-04-17 08:21:40

한미FTA 협정 체결 반대를 외치며 분신, 열닷새간의 사투 끝에 15일 오전 사망한 고 허세욱 씨의 장례가 16일 오전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사망 직후 가족들의 뜻에 따라 안성 성요셉병원에 안치됐던 고인의 시신은 16일 새벽 6시30분 성남화장장으로 옮겨져, 이날 오전 11시30분 화장됐다. 유족과 민주택시노조 관계자 등 5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한편 ‘한미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대책위)는 16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분신한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 앞에서 18일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장’으로 고인의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시종 침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이날 회견에서 오종렬 한미FTA 저지 범국본 공동대표는 “유족들의 비통한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유족들이 고인의 유해가 화장장으로 옮겨지는 순간까지 대책위와의 접촉을 피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며 유족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놨다. 이어 “‘유골을 화장해 미군기지에 뿌려달라’는 고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을 끝까지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고인이 유서를 통해 동료들에게 사후 장례 문제를 부탁했으므로, 대책위 역시 가족과 더불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책임질 권리와 의무가 있다”며 “한미FTA 협상 체결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확대 전개해, 고인의 유지를 관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책위는 16일부터 매일 저녁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18일 하얏트호텔 앞에서 노제를 치를 예정이다. 또, 21일에는 대규모 범국민 추모문화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 설치된 빈소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빈소를 찾은 이소선 여사는 “한번 가면 못 오는 인생인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데, 죽기는 왜 죽어…”라며 고인의 영정 앞에서 오열했다.
가족 냉대 속 쓸쓸히 떠나
무연고자 유골과 합사

고 허세욱 씨의 마지막 가는 길은 쓸쓸했다. 16일 오전 성남화장장에서 화장된 허씨의 유골은 노숙인 등 무연고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장소에 합사됐다. ‘돌보는 이가 없는’ 사람들이 잠든 곳에, 유족들은 허씨의 뼈를 뿌렸다. 중학생 때 큰형에게 매를 맞고 쫓기듯 안성 집을 나왔다는 고인은, 40년이 지나서도 가족들의 냉대 속에 눈을 감았다.

허씨에 대한 유족들의 살갑지 않은 태도는 고인이 숨진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고인이 분신한 다음날인 지난 2일,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허씨의 가족들은 병원 주치의에게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주치의의 설득에도, 가족들의 수술 거부 의사는 완강했다. 가족들은 “저 상태로 살려봤자 누가 뒤치다꺼리를 하느냐”고 말했다.

결국 분신 나흘만인 지난 4일, 대책위의 수술 동의 서명을 받은 병원측이 1차 피부이식수술을 강행했지만, 온몸에 3도화상을 입은 허씨는 15일 오전 11시23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40년 전 중학교도 마치지 않은 상태로 상경해 온갖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온 허씨. 94년 봉천6동 철거민으로 지내던 시절, 불혹의 나이에 ‘철거민 투쟁’에 뛰어든 그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는 관악주민연대,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각종 단체에 가입했고,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그를 동료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꿋꿋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택시를 운전하며 승객들에게 ‘FTA 반대’ 유인물을 나눠주던 허씨가 자진해서 ‘반 FTA 일인시위’를 한 것은 몸에 배듯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동료들은 전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나는 절대로 위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모금은 하지 말아 달라 전부 비정규직이니까,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전국에 있는 미군기지에 뿌려 달라, 효순·미선 한을 갚고 벌금은 내 돈으로 부탁…”<고인의 유서 중>.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화장장을 찾은 구수영 운수노조 민주택시본부장은 “바람에 흩날리는 유골 소량를 수습해 장례대책위에 전달했다”며 “가족들의 냉대 속에 눈을 감은 고인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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