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파란은 '권영길의 약진'이었다

[민주노동당 경선 종합] 선거결과는 왜 여론조사와 달랐나

김경환 기자
입력 2007-09-10 10:12:03l수정 2007-09-10 11:58:17
0.6%가 부족했다.
민주노동당 선관위원장이 최종결과를 발표하자 대회장에는 탄식과 환호성이 교차했다. 49.37%의 종합득표율을 기록한 권영길 후보는 과반수에서 245표가 부족해 애초 목표였던 1차 후보 결정에 실패했다. 한편 심상정 후보는 울산의 기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노회찬 효과’로 충북에선 1위로 치고 올라갔고, 끝내 2-3위 쟁탈전에서 2위를 거머쥐었다. 27%의 결선행이었다.

진짜 파란은 '권영길의 약진'이었다

민주노동당 후보들의 누적득표율 추이 ⓒ민중의소리ⓒ민중의소리



노회찬 대세론은 어디로 갔나

3위를 기록하던 심상정 후보가 결선에 진출한 것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대단하다. 심 후보는 이번 1차 선거전의 히로인으로 불릴 만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착시현상이 깔려 있다.

투표 한달 전에 이루어진 각 선본의 초기 당내 여론조사에서는 노회찬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월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의 여론조사에서 이미 노회찬 후보의 고공상승세는 예고 되었다. 노회찬은 38.7%, 권영길은 36.8%를 기록한 것. 이 때를 계기로 이른바 ‘대표교체론’이 등장한다. 민주노동당하면 권영길이라는 상식이 노회찬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7월 각 선본의 비공개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모두 세 차례 실시된 여론조사의 결과는 여전히 노회찬 후보의 완승이었다. 표 결집력에서도 노후보는 권후보를 앞서고 있었고 심지어 민주노총 출신 당원들도 권영길 보다는 노회찬을 선택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본 노 캠프에선 ‘자신감’이, 권 캠프에선 ‘위기감’이 흘렀다. 노회찬 대세론은 점차 공고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권영길 후보는 과반수에 일보 못미친 놀라운 지지율을 얻었고, ‘만년 꼴찌’ 심상정 후보는 2위를 차지했다. 지난 20일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심상정의 선전에는 이유가 있다

심상정 후보의 선전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심 후보는 선거전에 돌입하면서부터 이른바 ‘중앙파’로 불리는 민주노총 구 집행부 그룹의 조직적 지지를 얻었고, 당내 최대 의견그룹(정파) 중 하나인 ‘전진’그룹의 상당수를 포괄할 만큼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여론조사로는 잡히지 않지만 나름대로 탄탄한 조직력을 확보하고 선거전에 뛰어든 것이다.

민주노동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심상정의 2위는 충분히 예측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대구경북에서 압승하고 서울에서 밀릴 것으로 판단했는데 심 후보는 자신의 텃밭인 제주와 대구경북에서 권후보에게 밀리고 노회찬 후보의 텃밭인 서울에서 표를 얻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심 후보가 울산에서 종합2위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저력’을 확인하자, 수도권의 표심이 노회찬에서 심상정으로 돌아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어떤 의미에서 선거전의 진정한 파란은 권영길 후보였다. 첫 번째 지역경선 무대였던 슈퍼3연전에서 애초 예상을 깨고 권영길 후보가 제주에서부터 모두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광주전남에서 60%의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한 이래로 권후보의 수도권 상륙작전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진짜 파란은 '권영길의 약진'이었다

민주노동당원들은 최종적으로 누굴 선택할까. ⓒ민중의소리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자료사진


권 후보의 약진에 대해 ‘자주계열의 지지’가 주된 이유처럼 설명되고 있지만, 권 후보의 독주는 단순히 자주계열 당원들의 몰표효과로 보기에 어려운 요소가 많다. 권 후보는 제주, 대구, 충남, 강원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이곳은 모두 지역기반으로 따지자면 권 후보의 약세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당원 대부분이 3명의 후보를 모두 알고 있고, 78%라는 유례없는 투표율에서도 권 후보가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은 것을 특정 정파의 기여로만 돌리는 것은 확실히 무리한 해석이다. 이른바 자주계열에 속하는 한 인사는 “50%에 달하는 권 후보에 대한 지지가 자주파의 ‘오더’로 인한 것이라면 민주노동당 선거를 무엇 때문에 하겠나”면서 ‘권영길 약진=자주파 지지’라는 등식을 꼬집었다.

그렇다면 다시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결과가 크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진다.

여기에는 선거캠페인과 운동원들의 움직임이라는 선거의 절대변수가 놓여있다. 선거는 상대가 있는 싸움인만큼, 선거캠페인과 선거운동이라는 실물 변수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발달해 있다는 민주노동당의 ‘당원’만을 상대로 한 선거였다.

권영길 캠프, 선거캠페인에서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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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놀라운 결과였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선거캠페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권 후보의 선전은 ‘충분히 이유 있다’는 것이다.

권 후보가 민주노동당의 ‘창업주’로서 당원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더해 정파 구분 없이 두루 포괄하는 ‘대통령감’이라는 호소는 효과가 있었다. 각종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권후보는 안정된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고 ‘민주노동당이면 권영길이지’라는 대표상품 이미지는 인물경쟁력의 근거를 안받침 했다.

권영길 후보는 전통적인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민중참여경선제’ 논란 당시 권후보는 유일하게 ‘민주노총, 전농의 참여’를 주장했는데, 울산의 노동자당원, 호남의 농민당원들은 모두 60%를 웃도는 지지를 권 후보에게 보내줬다.

이번 민주노동당 1차 경선은 사실 모두 이변이다.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던 노회찬 후보가 박빙의 차이로 권 후보를 앞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지역구 의원인 권 후보와는 달리 전국구 의원이었던 노 후보는 3년 내내 전국의 지역위원회를 돌면서 특유의 화려한 강연을 통해 ‘당심’을 잡아나갔다. 권 후보가 지역에서 주민들을 만났다면, 노 후보는 전국에서 당원들을 만나왔던 것이다.

선거캠페인도 가장 발 빠르게 전개되어 7월말까지만 해도 3후보 중 가장 짜임새 있고 화려한 매머드급 선대본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당시 모인 인파만 2천 여 명이었으니 위용을 짐작할 만 하다. 김혜경 전 대표를 비롯한 당내 명망가들과 자발적 지지자그룹이 대거 결집했다.

그러나 권영길호가 뒤늦게 선대본을 구성하고 캠프 진용을 갖추자마자 이상 현상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권 선보에서는 노 후보가 으뜸 컨셉으로 내세웠던 ‘본선경쟁력’이라는 이슈를 간단한 조사결과들로 반박했다.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권영길 후보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안정적인 수치를 보여주었다면 노회찬 후보의 여론조사는 잡히거나 사라지는 현상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적 인지도에서 차이가 있는 노회찬 대 권영길의 대결은 노 후보에게 유리할 수 없었다. 결국 본선경쟁력이라는 이슈는 권 후보의 몫이 되었다.

노 후보가 ‘민주노동당에는 노회찬이 있습니다’를 내세웠을 때 권 후보는 ‘민주노동당이 권영길입니다’를 내세웠던 것이다. 노 후보로서는 애초 무리한 선거캠페인이었다는 지적을 들을 만 하다.

진정한 이변은 노회찬에서 권영길로 옮겨온 당심

진짜 파란은 '권영길의 약진'이었다

경선 직전까지 여론조사 1위를 달렸던 노회찬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경선기간 권영길로 옮겨갔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자료사진

당내 자주계열의 일부성원들이 권영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자, 노회찬 후보는 ‘평당원혁명’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제기했다. 권영길 후보에게 가는 표는 정파투표요, 나머지 표는 당의 혁신을 바라는 표라는 새로운 구도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제주에서부터 시작한 슈퍼3연전에서 권후보가 1위 레이스를 이어가고 여기에 전남과 울산을 지나면서 노회찬 후보의 발언은 평상심을 잃기 시작했다. 급기야 울산에서는 ‘묻지마 투표, 이승만 자유당 시절만도 못한 내무반 투표’라는 막말이 나왔다. 권후보가 과반수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당원혁명’이라는 메시지는 ‘노 후보가 평당원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조롱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사이 노 후보가 야심차게 내밀었던 ‘제7공화국 11대 테제’라는 의제는 뒤로 물러났다.

그 이후 MBC 시선집중에서의 ‘음주방송 논란’, 권영길 지지자들의 검증공방에 대한 감정적 대응 등 노 후보의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은 극명하게 부각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심상정 후보 서울지역 캠프의 한 관계자는 “심 후보의 결선진출은 권후보 진영의 파상공세에서 비켜나 얻은 ‘반사이익’이자, 울산 선거 이후 노 후보로부터 이동한 표심”이라고도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은 지지율 누적 도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의미에선 ‘심상정 돌풍’이라기 보다 ‘권영길 독주’였다. 진정한 이변은 노회찬 지지에서 권영길 지지로 옮겨온 당원들의 지지와 이를 이끌어낸 선거캠페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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