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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색되지 않는 아름다움, 유재하의 음악

<월간말>[유재하 추모20주년]유재하 음악

배순탁 / 음악평론가

입력 2007-10-26 09:41:12 l 수정 2007-10-30 16:26:02

고(故) 유재하의 음악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형식 미학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한다. 크게 나누어 봤을 때 유재하의 음악은 대중가요가 성립하기 위한 세 가지의 조건들을 선도(鮮度) 높게 포용해냈다. 바로 작사, 작곡, 편곡이다. 사실 누구나 이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모두를 능란하게 섭렵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1987년 그가 솔로 음반을 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작사, 작곡, 편곡은 1986년까지만 해도 각각 독립된 분과로서 인식되었다. 물론 작사, 작곡을 겸비하는 싱어 송라이터의 개념은 확립되어있었지만, 편곡까지 끝마칠 수 있었던 능력의 소유자는 1980년대에 유재하가 유일했다. 이와 관련,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있는 신승훈은 “작사, 작곡, 편곡이 모두 유재하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보고 일대 충격을 받았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변색되지 않는 아름다움, 유재하의 음악

1집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큼 유재하는 음악에 있어서의 ‘틀’을 중요시하는 뮤지션이었다. 애수가 배어있는 눈길로 음악의 세계를 깊이 있게 관찰한 그는 자신이 완성한 틀로써 음악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눈은 음악의 틀을 사랑하는 형식주의자의 눈이기도 했는데, 그 안에 감추어진 낙관주의자의 넉넉함을 통해 그는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의미소들을 가감 없이 포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완성되었던 것은 당연히도 음악적 주체성의 온전한 실현이었다. 생전에 유재하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올린, 첼로, 기타까지 마스터했으며 작곡 솜씨도 뛰어났다. 악기에 능통한 덕분이었지만 앞서 말했듯 편곡까지 도맡았다는 점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너무나 생경했기에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한양대 음대 작곡과를 전공하면서 화성악을 통달했기에 가능한 결과들이었다. 또한 그는 클래식 음악의 세례를 받은 뮤지션들이 흔히 약했던 가사 쓰기에도 능란했다. 아직도 그의 레퍼토리들이 노래방에서 사랑받는 이유에는 곡이 좋았던 것이 결정타였겠지만, 이렇듯 심금을 울렸던 가사도 한몫했던 바가 크다. 앨범의 수록곡들 중 타이틀이었던 ‘사랑하기 때문에’, ‘가리워진 길’, ‘지난 날’ 등이 대표적이다.

비유하자면 작곡과 작사로 탄탄한 밑변을 그린 뒤, 그 중심 위의 꼭지에 편곡이라는 마침표를 찍었으니, 유재하의 음악은 우리 가요계에서 최초로 완성된 음악적 삼각형이라 부를 만했다. 이렇듯 대중들이 수도 없이 경험해왔던 도식적 멜로디를 기반으로 하는 재래식이 아닌, 탄탄한 음악 이론들을 거름 삼아 만들어졌기에 대중이나 평단의 처음 반응이 뚱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뉜다”라며 평가의 그래프가 극점을 향해 있으니, 음악계에서도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은 추호도 과장이 아니다.

대표곡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러한 세월의 변화무쌍함을 평가의 측면에서 증거하는 동시에 훌륭한 음악은 결코 변색되지 않음을 명증하는 지표종이었다. 어느 전문 작곡가는 “당시 곡이 발표되었을 때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후렴구 멜로디부터가 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독창적 선율이었다”라며 유재하 음악의 독보적 위상을 대변한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가리워진 길’을 비롯해 ‘텅 빈 오늘밤’, ‘지난 날’ 등 다른 곡들도 그 전까지의 대중가요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재의 작품’이라고 헌사를 보내지만, 멜로디만을 따르는 일반 음악소비자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여러 번 듣는 인내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재하의 음악은 그러나 적어도 뮤지션들에게는 당대에 벌써 높이 평가받아 이 음반의 곡 ‘가리워진 길’은 김현식이 자신의 3집에서 먼저 노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김현식의 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유재하와 함께 활동했던 김종진과 전태관은 “1986년 (김)현식형이 3집 녹음을 했을 때 유재하가 비장의 다섯 곡을 써냈으나 그중 하나인 ‘가리워진 길’만이 채택되자 팀을 나가고 말았다”라고 증언한다. 이렇듯 자신만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인기 그룹을 과감히 등졌다는 부분도 자주성의 측면에서 높게 평가되는 부분이다.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가 조용필 밴드에서 연주했던 인연으로 당대 최고가수 조용필이 부르기도 했다.

변색되지 않는 아름다움, 유재하의 음악

유재하 추모 앨범

그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지 20년째가 되는 지금, 유재하가 음악계에 얼마나 큰 자취를 남겼는가는 사망 2년 뒤인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개최되어 유희열, 조규찬, 심현보, 스윗 소로우 등의 음악인재들을 배출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유재하 사단’이라는 수식도 등장했는데, 상기한 인물들은 물론 유영석, 한동준, 김광진, 김동률 등 무수한 뮤지션들이 직간접적으로 여기에 속해 있는 음악적 채무자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유재하에게 바치는 곡을 발표한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우리 음악가의 이름 뒤에 사단이란 거창한 말이 붙은 사람은 신중현과 유재하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재하는 우리 대중음악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위대한 채권자였다. 앞서 말했듯 그에 대한 평은 상전벽해를 이루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의 음악의 처연한 아름다움이고, 변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에 충일한 자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이제는 모두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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