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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가 남긴 발자취

<월간말>[유재하 추모20주년] 추모하는 사람들

조이슬 / 음악웹진 이즘 필자

입력 2007-10-26 09:53:39 l 수정 2007-10-30 16:26:02

생경함이 익숙해지면 때로는 전설이 되기도 하는지 1987년,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단 한 장의 앨범이 대중 가수들에게 정형화된 패턴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채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잘 알려진 사실대로, 클래식을 전공한 그의 전통 화성학을 기초로 발라드는 물론, 재즈, 신스 팝 사운드까지의 다양한 접근, 고전주의의 형식미를 갖춘 듯한 정확한 기승전결의 구조, 현과 관악기를 끌어들인 기품 있는 편곡은 곧 국내 싱어 송 라이터들의 요체가 되었다. 그가 드럼, 기타, 건반을 모두 소화해낸 멀티 플레이어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까지 정확히 파악하여 곡 전체를 조율하고, 곡의 질감을 결정하는 비범한 ‘편곡’능력이었다. 우리가 지금에서도 ‘고급가요’라고 부르는 정통 발라드의 얼개를 사실상 이 때 형성한 것이다. 지금의 싱어 송 라이터들의 발라드 군단을 이 카테고리로 묶어놓는 것도 바로 이런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뿌려놓은 뮤지션의 미학적 고민은 라디오를 메인 스테이지로 삼은 싱어 송 라이터들이 붐을 이뤘던 1990년대 중반, 그 절정을 이룬다. 유재하의 음악을 듣고 자란 젊은 피들이 당시에 느꼈을 정서적 강도는 훨씬 높았을 터. 이는 이들이 성인이 되어 앨범을 발표한 시기였고 무엇보다도 1989년, 1회 대상이었던 조규찬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신인 뮤지션들의 요람으로 이어져 내려온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의 전성기와 정확히 맞물린 때이기도 하다. 고인의 못다 이룬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재하 음악 장학회’가 매회 주최하는 이 대회에서 국내 음반 대부분의 스트링 편곡을 담당해온 박인영(2회 금상), 모던 록에서 그 역량을 발하는 강현민(3회 은상), 토이(Toy)의 음악 작가 유희열(4회 대상), 작곡가이자 그룹 스토리(The Story)출신의 이승환(5회 은상), 여러 가수들의 ‘노래 선생님’으로 통하는 김연우(7회 금상), 대회 당일 유재하와 꼭 닮은 목소리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는 자화상 출신의 정지찬(8회 대상)과 뛰어난 건반 능력으로 가요제에 또 다른 패턴을 제시한 나원주(7회 대상) 등이 바로 이 시기에 배출된 소중한 인재들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가 남긴 발자취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가수들. 유희열, 강현민, 조규찬, 오윤아(왼쪽부터)ⓒ월간 말


미학적 흐름으로 무장한 음악에 현실의 결을 부여한 그의 가사처럼, 나지막한 사운드로 당대의 젊은이들의 감성을 건드렸던 멜로디처럼 그들에게 요구된 것은 단순히 가요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닌 송 라이팅의 능력과 연주, 가사가 합일된, 참된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의 고고한 능력이었다. 때로는 이들이 형성한 ‘유재하식 발라드’라는 형식이 유재하 가요제라는 근엄성에 갇히기도 했지만 발라드의 일정한 문법과 탐미성에의 완성이라는 점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직도 미디 음원 사용에 제한을 두는 등 어쿠스틱한 그들만의 감성을 지향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솔로로만 제한되던 참가 자격이 시대의 요구에 맞춰 점차 넓혀지고 다양한 장르도 포용함에 따라 스윗 소로우 등의 실력 있는 보컬 팀과 허민, 임주연 등의 여성 뮤지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재하의 영향력이 비단 이 대회 출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작곡가 김형석은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단연 그를 꼽으며 자신을 대중음악으로 방향을 잡게 한 인물이라고 말한 바 있고, ‘푸른하늘’시절 ‘슬픈 안녕’으로 그에게 바치는 곡을 쓴 유영석도, 역시 같은 이유로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를 써냈던 김광진도 모두 그들만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내지만 그 서정성은 온전히 유재하에게 기반을 둔 것이었다. 유재하가 가진 클래시컬한 편곡과 플루트, 오보에의 섬세한 관악기의 터치를 그대로 전해 받아 전람회 2집에서 화려하고도 웅장한 스케일을 그려낸 김동률도 그 영향력 아래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디제이 디오씨(DJ DOC)마저 '사랑하기 때문에'의 리메이크로 그에 대한 애정을 품어왔으니 그의 음악이란 장르와 시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어떤 트렌드라도 돌파하여 대중과 접속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가 클래식과 재즈라는 ‘퓨전 음악’을 국내에 처음 시도했던 것처럼 비 대중적 재즈 어법을 가요에 끌어들여 또 하나의 굵직한 선을 그어놓은 김현철은 그를 떠나보낸 지 10년이 된 지난 1997년, 추모앨범「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를 진두지휘함으로써 이 음악의 최대 수혜자임을 분명히 했다. ‘유재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면면과 함께 백 보컬로 참여한 역대 유재하 가요제 참가자들과의 하모니, 생전에 다른 가수들의 입을 통해 불려진 ‘그대와 영원히’(이문세 3집), ‘비애’(한영애 2집) 등을 각각 이소라, 한동준에게 나눠줌으로써 이 노래의 감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며, 특히 지금도 리메이크의 수작으로 꼽히는 고찬용의 '우울한 편지' 역시 그의 유연한 작가정신과 탁월한 조탁감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시, 트리뷰트의 붐에 휩쓸려 단발성 이벤트로 남는 걸 원하지 않았던 그들은 이 음반에서 트리뷰트, 헌정이라는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고 단지 추모앨범이라는 순수한 의도로 남겨지기만을 원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험성과 음악성 그리고 대중적인 균형감각을 선보인 명작’, ‘우리 가요계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앨범’이라는 온갖 수식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가요의 고급화를 일궈낸 발화점은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였고, 국내의 발라드라는 문법의 체계도 역시 그에게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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