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08년은 무자년(戊子年) 쥐띠 해입니다. 쥐띠 해는 풍요와 희망과 기회의 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살아남는 근면함과 동시에 다산과 재물의 상징이라고 하니 희망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월간 『말』이 새해를 맞아 희망을 품고 2008년을 맞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독자여러분과 함께 이들의 ‘희망’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점점 서민이 먹고 살기 힘들어져 우리 주변엔 빈곤, 비정규직 등 우울한 뉴스들이 넘쳐나지만, 이들의 희망이야기에서 독자여러분도 희망보따리 하나씩 만들어 2008년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20대 매거진 ‘ON20’ 정성일 대표
"20대의 목소리를 세상속으로!"
참여와 개방, 정보의 네트워크로 대변되는 웹2.0시대는 이미 우리들 눈앞에 UCC나 블로그의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여기 20대가 주축이 된 젊은 청춘들이 온라인-오프라인이 결합한 새로운 블로그 매체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3월 정식 창간을 앞두고 있는 ‘ON20’(www.on20.net)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20대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것이다. ON20의 유일한 30대 정성일 대표는 20대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20대의 미래는 20대가 만들어야 하며 20대의 미래는 대한민국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강조했다.
‘20대의 미래가 어떻다는 것이냐?’는 기자의 우문에 정 대표는 “지금의 20대는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의 일반화로 20대는 마치 맹수우리에 던져진 토끼처럼 생존을 위해 앞으로만 뛰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처럼 여겨질 정도죠.”
정 대표는 “그래서인지 몰라도 보수든, 진보든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렇게 방치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소리 높이는 기성세대들이 부쩍 늘었는데, 이는 20대의 목소리가 아닌 이상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에게 열심히 뛰어 보라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의 설명은 계속됐다. “요즘 20대를 가르켜 ‘88만원세대’라고들 정의합니다. 한때 유행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나 이구백(20대 90%가 백수)은 ‘현재’의 모습이라면 ‘88만원 세대’는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말이 짧은 시간 고유명사처럼 통용된 것은 20대 스스로가 당분간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대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5년 전 20대는 2002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로, 그해 겨울에는 효순이 미선이를 기리는 촛불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전 세대와 다른 자심감과 자부심이 충만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주역’으로 평가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5년 전 같은 20대로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도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정 대표는 ‘ON20’의 출발, 그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이제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지금은 다른 이들은 물론 우리도 잊어가고 있지만 몇 년 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히어로였던 이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이제 20대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ON20은 각자의 블로그를 On20.net에 등록하고 모인 블로거들의 추천에 따라 오프라인 매거진 On20에 실리게 된다. 매거진 On20은 주간지 형식으로 발간되며 전국 대학에 무가지 형태로 배포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12일에 창간 준비호 1만부가 나왔고, 기존에 대학가에 배포되던 무가지와는 차별성이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포털사이트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는 인터넷 환경에서 블로그를 통한 새로운 사업은 아직까지 생소하다. 블로그의 글이 인쇄매체로 발간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물론 정 대표가 이 같은 사업을 추진한다고 할 때 주변의 사람들은 ‘우려를 넘어 적극적으로 만류’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자신의 전세금 5천만 원 전액을 투자한 상태다. “동아리나 세미나처럼 소규모로 할 수도 있었죠. 그러나 그 정도로 사회적 파급력을 발휘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20대의 진취적인 도전의식을 믿었습니다. 저부터 패배감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하고 사업은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습니다.”
20대 정신이 도전이라면 ON20의 정신도 도전일 것이다. ON20이 20대의 도전의식의 분화구가 되길 기대해 본다.
현애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정치는 대변이 아닌 힘을 모으는 것!"
“20년 가까이 농사를 지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 받는 이들에 대한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4년 동안 활동하며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입법 활동에 주력하게 된 것도 결국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 속에서 얻은 정치적 신념이 있다면 정치는 곧 ‘민생’이라는 것입니다. 정치는 서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서민으로서, 서민의 힘을 모아 일구어 내는 것입니다.”
2007년에 기초노령연금법과 노인 장기요양 보험법이 통과됐다. 두 법안에서 민주노동당이 독자 법안을 대표 발의해 노령연금액의 단계적 인상과 장기요양서비스 본인부담률 인하를 관철시켰다. 파산 기간 동안 보유하고 있는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파산관련 법안도 통과시켰다. 현애자 의원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의 걱정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냈다는 점에서 이러한 법안이 통과된 것이 민주노동당이 일궈낸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가치보다는 성공에 대한 강박이 온 사회의 구성원을 옥죄고 있습니다. 너무 살기 어려워져서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를 상상하자고 말씀드려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떤 여건을 만들어 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 의원은 제주 출신답게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있어서 가치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27일간 단식을 한 것이다. 그것은 현 의원의 정치철학대로 누군가를 ‘대변’하고자 함이 아니라 ‘제주 시민’으로서 ‘성공’의 허구보다 ‘가치’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제주해군기지는 ‘대양해군 창설’로 한국군의 독자적인 해상방위능력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의 일환으로서, 평택-군산-제주로 이어지는 한반도 서해안 방어벨트를 완성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강하게 깔려있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평화의 섬’을 실현하여 제주를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발전시키자는 국민들의 바람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이라는 당론을 결정한 바 있다. 현 의원은 당의 지원을 바탕으로 반대활동을 펼쳐왔다. “정부와 제주도가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군기지 유치 강행을 결정했고, 이에 제주도 전역으로 반대 운동이 확산됐다”는 것이 현 의원의 설명이다.
“갈등과 냉전의 논리를 뛰어넘는 ‘평화의 가치’를 이제는 우리사회가 새롭게 음미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현 의원은 대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총선에서 당선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2004년 비례 대표 8석을 얻어냈던 진보정치의 저력을 바탕으로 지역구에서 당선을 이뤄낸다는 목표다. 이 목표가 실현된다면 제주의 진보정치는 실험이 아니라 자생력을 갖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사회양극화 심화의 대안으로 서민복지의 강화를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왔습니다. 특권 해소를 위해 뛰었습니다. 더 이상 ‘무료교육, 무상교육’이 낯선 구호가 아닙니다. 온 국민이 함께 나누고자 하는 민주노동당의 가치가 이미 우리 정치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선에서 드러난 구태정치와 ‘부자의 경제’에 맞서 우리 서민들에게 희망과 대안을 주는 유일한 정당이 민주노동당임을 반드시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함께 손을 맞잡고 우리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갑시다.”
박형대 장흥군 농민회 사무국장
"장흥의 농민운동 힘차게 열어갈 것!"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날씨 탓에 올 해 농번기는 예년과 달리 1~2주 이상 늦춰졌다. 한미FTA 저지 투쟁과 대선 등을 앞두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야 할 농민들에게는 투쟁과 농번기라는 이중고가 닥쳐온 것이다. 박형대 사무국장은 대선과 농민대회를 앞두고 마음이 심난 했지만, 막상 천여 명의 농민들이 모이자 “농민이 결심하니 하늘이 열렸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장마를 뚫고 나온 해처럼 모두가 가슴 벅찬 투쟁이었습니다. 농민들은 단결하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마음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일은 조금 밀어놓더라도 농민 공동투쟁에 단결해야 된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마을 좌담회를 개최했다. 농민들의 달라진 의식은 농촌의 달라짐을 보여준다. 주류 정치에 대한 실망은 대안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로 모아진다. 대선 결과야 어찌됐든 현실은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농민 살려면 민주노동당 뿐이여.”
“이제 민주당이고 뭐고 생각할 것 없고 농민은 농민대통령을 만들어야 돼.”
“되든 안 되든 힘을 모타야 써.”
선거는 “그냥 투표행위가 아니라 농민대회”라는 박형대 사무국장의 설명.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선거결과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한 방어적 대회에 그치고 말았다.
“적당하게 농민대회나 한 두 번 치르고, 소리만 크게 외치고 떠들고 다니면 마음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실하게 활동하면서 마을을 찾아다니고 꾸준히 알려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 지역의 농민회는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냅니다.”
농민 대통령이 득표를 많이 해야 될 시기에 농민들이 표를 던지지 않아 농민운동가들의 목이 마르다. 그러나 박형대 사무국장은 서두르지 않는다. 풍농을 위해 비가 내려줘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아 심난했던 농민들이 일손과 투쟁, 그 두 가지 모두를 기어이 치뤄냈듯 이제 농민대통령을 이야기하는 농민운동가들에게도 이중고의 투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박 사무국장은 2008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역과 마을에서 인정받고 존경 받으며, 농민의 가슴에 얽매인 것을 풀기위해 함께 투쟁하며, 농민을 세상의 주인으로 세워야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격전지였던 장흥은 2008년을 힘차게 열어갈 것입니다.”
장지영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제 본격적인 싸움을 벌여야죠!"
“이명박이 당선됐으니 이젠 본격적인 싸움이죠. 불안요? 불안은 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장지영(36)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은 자신만만해보였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되려 이젠 본격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됐단다.
그녀는 작년 1년 동안 죽어라고 이명박 당선자의 핵심 공약이었던 경부운하를 검증해왔다. 실제 뗏목을 타고 2달 동안 경부운하 현장답사를 다녀왔다. 이명박 측에서 독일 MD운하를 예로 운하의 필요성을 피력하자, 이번엔 직접 독일로 떠나서 독일 운하와 경부운하의 차이점, 독일 운하의 문제점 등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결국 여름에는 여태껏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고 사무실에서 연구한 경부운하에 대해 분석한 책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오마이뉴스 발간)를 펴냈다. 그녀가 1년을 넘게 검증한 경부운하에 대한 결론은 ‘경부운하를 진행할시 재앙이 닥친다’였다. 그녀는 이명박 당선자가 경부운하를 폐기했으면 좋겠단다.
“현재 제가 알기론 한나라당내에서도 경부운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이명박 당선자뿐인 걸로 알고 있어요. 당내 여론 조사를 수렴한다면 제외되는 것이 맞지만 염려스럽네요.”
염려스럽기에 넋놓고만 있지는 않겠단다. 그녀는 대통령 인수위 기간 동안 경부운하가 공약 조항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압박을 가한다는 계획이다. “경부운하저지국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 단체들, 지역 주민들과 토론회, 기자회견, 집회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장지영 씨는 이명박 당선자의 지지율은 높았지만 경부운하 지지율은 낮았던 점을 언급하며 “많은 국민들이 경부운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부운하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국민의 입장에서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학교 1학년 때 환경 동아리에 가입한 이후 환경운동과 연관을 맺어온 그녀는 96년부터 2005년까지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다. 팔당 상수원 문제에서부터 갯벌, 습지 문제, 특히 새만금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한계를 느꼈다. 장지영 씨는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운동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이젠 시민단체도 대안을 내고 전문적 내용을 분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생각을 밝혔다.
결국 그녀는 ‘생태지평연구소’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아니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생태지평연구소를 만들었다. 현장과 이론을 접목시킨 운동. 그녀가 바라는 운동이자 운동공간이다.
그는 2008년에 할 일이 태산이다. “제 전문 분야가 갯벌, 습지예요. 올해는 최초로 연안습지로 지정된 전남 무원 갯벌의 관리, 보존계획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해요. 아직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나온 게 없거든요. 생태계 보존을 위해 태안 조사 작업도 진행해야 하고, 방제 작업도 해야 하고. 10월엔 습지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람사협약이 창원에서 열려요. 여기에도 신경을 써야죠.”
작년엔 경부운하를 문제를 파고드느라 전문 분야를 소흘히 했기에 2008년엔 전문분야에 충실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러긴 요원한 듯 싶었다. 경부운하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문 분야에 주력하고 싶지만 경부운하가 워낙 환경과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공사인지라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는 장지영 씨. 그녀는 아마도 이명박 당선자가 경부운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녀 역시도 경부운하 저지를 포기하지 않을 듯 싶다.
이종화 울산건설플랜트노조 위원장
"다시 현장으로 내려가야죠!"
2007년에는 많은 사업장에서 파업을 진행했다. 그만큼 노동자의 삶이 각박해지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 된 이랜드-뉴코아 노조에서부터 불법도급 문제를 부각시킨 코스콤비정규지부, 타워크레인 노조, 연세대병원노조... 수많은 사업장에 파업을 단행했다. 그 중엔 아직까지도 파업이 진행 중인 사업장도 있고 반대로 노동자들의 승리로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한 곳도 있다.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의 경우 11월 파업에 들어갔다가 파업 열흘 만에 파업을 타결지었다. 실질적인 단체협약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높은 찬성으로 단협을 받아들였다.
울산건설플랜트 노조는 2004년 1월 6일 건설된 이후로 여러 번 파업을 진행했다. 2005년의 경우 76일간의 파업 끝에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인정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다. 하지만 단체협약을 만들진 못했다. 2006년엔 단체협약을 도출했지만 내용면에선 거의 단협이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단협은 달랐다. 휴일날 유급휴가를 받는 단협을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노조로 인정받지도 못했던 울산건설플랜트노조가 이젠 유급휴가를 받는 단협을 체결할 정도로 강한 힘을 얻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이종화(46) 울산건설플랜트 위원장이 있었다.
그는 이번 단협의 의미를 묻는 기자에게 “일요일날 쉬는 것을 유급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향후 설날, 초상날, 자녀 결혼식 등 여타 노동자들이 누리는 휴일까지도 유급휴가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번 단협으로 노사관계가 사실상 단체 협약을 맺는 관계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된 점이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언급했다.
노조를 이끄는 위원장으로서 어려움이나 부담감도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3년간 내리한 파업이 조합원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경우가 생길까봐 많은 걱정을 했다.” 싸움을 진행하면서 실수도 있었고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점이 가장 신경 쓰이고 걱정됐다고 한다.
3년 연속한 파업. 집행부로 일하다 보니 그는 집에 거의 가지도 못했다. 집에서는 ‘하숙생’으로 불린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은 아빠가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충은 알고 있는 눈치란다. 이종화 위원장은 “애들이 잘 때 들어가고 잘 때 나온다. 아이들이 어려서... 미안한 마음이 많다”며 쓸쓸히 웃었다.
아내도 위원장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무엇보다 구속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한다. “2005년 파업으로 구속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아내는 지금의 활동에 대해 뭐라고 말은 못하고 걱정만 한다”며 “그래도 어쩌겠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숨기지 못했다.
2008년엔 현장에 내려가서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현장 일을 하는게 꿈이란다. 물론 노조가 완전한 단협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다.
“현장으로 돌아가 조합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입시키며 계속 조합에 힘을 보태는 일을 하고 싶어요.”
3년간의 싸움 끝에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울산건설플랜트 노조. 그는 이제 현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2008년에 그는 또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까?
월간 『말』이 새해를 맞아 희망을 품고 2008년을 맞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독자여러분과 함께 이들의 ‘희망’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점점 서민이 먹고 살기 힘들어져 우리 주변엔 빈곤, 비정규직 등 우울한 뉴스들이 넘쳐나지만, 이들의 희망이야기에서 독자여러분도 희망보따리 하나씩 만들어 2008년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중의소리
정성일 20대 잡지 ON20 대표
'); }"20대의 목소리를 세상속으로!"
참여와 개방, 정보의 네트워크로 대변되는 웹2.0시대는 이미 우리들 눈앞에 UCC나 블로그의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여기 20대가 주축이 된 젊은 청춘들이 온라인-오프라인이 결합한 새로운 블로그 매체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3월 정식 창간을 앞두고 있는 ‘ON20’(www.on20.net)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20대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것이다. ON20의 유일한 30대 정성일 대표는 20대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20대의 미래는 20대가 만들어야 하며 20대의 미래는 대한민국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강조했다.
‘20대의 미래가 어떻다는 것이냐?’는 기자의 우문에 정 대표는 “지금의 20대는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의 일반화로 20대는 마치 맹수우리에 던져진 토끼처럼 생존을 위해 앞으로만 뛰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처럼 여겨질 정도죠.”
정 대표는 “그래서인지 몰라도 보수든, 진보든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렇게 방치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소리 높이는 기성세대들이 부쩍 늘었는데, 이는 20대의 목소리가 아닌 이상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에게 열심히 뛰어 보라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의 설명은 계속됐다. “요즘 20대를 가르켜 ‘88만원세대’라고들 정의합니다. 한때 유행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나 이구백(20대 90%가 백수)은 ‘현재’의 모습이라면 ‘88만원 세대’는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말이 짧은 시간 고유명사처럼 통용된 것은 20대 스스로가 당분간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대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5년 전 20대는 2002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로, 그해 겨울에는 효순이 미선이를 기리는 촛불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전 세대와 다른 자심감과 자부심이 충만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주역’으로 평가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5년 전 같은 20대로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도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정 대표는 ‘ON20’의 출발, 그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이제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지금은 다른 이들은 물론 우리도 잊어가고 있지만 몇 년 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히어로였던 이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이제 20대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ON20은 각자의 블로그를 On20.net에 등록하고 모인 블로거들의 추천에 따라 오프라인 매거진 On20에 실리게 된다. 매거진 On20은 주간지 형식으로 발간되며 전국 대학에 무가지 형태로 배포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12일에 창간 준비호 1만부가 나왔고, 기존에 대학가에 배포되던 무가지와는 차별성이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포털사이트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는 인터넷 환경에서 블로그를 통한 새로운 사업은 아직까지 생소하다. 블로그의 글이 인쇄매체로 발간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물론 정 대표가 이 같은 사업을 추진한다고 할 때 주변의 사람들은 ‘우려를 넘어 적극적으로 만류’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자신의 전세금 5천만 원 전액을 투자한 상태다. “동아리나 세미나처럼 소규모로 할 수도 있었죠. 그러나 그 정도로 사회적 파급력을 발휘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20대의 진취적인 도전의식을 믿었습니다. 저부터 패배감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하고 사업은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습니다.”
20대 정신이 도전이라면 ON20의 정신도 도전일 것이다. ON20이 20대의 도전의식의 분화구가 되길 기대해 본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 }"정치는 대변이 아닌 힘을 모으는 것!"
“20년 가까이 농사를 지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 받는 이들에 대한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4년 동안 활동하며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입법 활동에 주력하게 된 것도 결국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 속에서 얻은 정치적 신념이 있다면 정치는 곧 ‘민생’이라는 것입니다. 정치는 서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서민으로서, 서민의 힘을 모아 일구어 내는 것입니다.”
2007년에 기초노령연금법과 노인 장기요양 보험법이 통과됐다. 두 법안에서 민주노동당이 독자 법안을 대표 발의해 노령연금액의 단계적 인상과 장기요양서비스 본인부담률 인하를 관철시켰다. 파산 기간 동안 보유하고 있는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파산관련 법안도 통과시켰다. 현애자 의원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의 걱정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냈다는 점에서 이러한 법안이 통과된 것이 민주노동당이 일궈낸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가치보다는 성공에 대한 강박이 온 사회의 구성원을 옥죄고 있습니다. 너무 살기 어려워져서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를 상상하자고 말씀드려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떤 여건을 만들어 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 의원은 제주 출신답게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있어서 가치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27일간 단식을 한 것이다. 그것은 현 의원의 정치철학대로 누군가를 ‘대변’하고자 함이 아니라 ‘제주 시민’으로서 ‘성공’의 허구보다 ‘가치’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제주해군기지는 ‘대양해군 창설’로 한국군의 독자적인 해상방위능력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의 일환으로서, 평택-군산-제주로 이어지는 한반도 서해안 방어벨트를 완성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강하게 깔려있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평화의 섬’을 실현하여 제주를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발전시키자는 국민들의 바람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이라는 당론을 결정한 바 있다. 현 의원은 당의 지원을 바탕으로 반대활동을 펼쳐왔다. “정부와 제주도가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군기지 유치 강행을 결정했고, 이에 제주도 전역으로 반대 운동이 확산됐다”는 것이 현 의원의 설명이다.
“갈등과 냉전의 논리를 뛰어넘는 ‘평화의 가치’를 이제는 우리사회가 새롭게 음미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현 의원은 대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총선에서 당선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2004년 비례 대표 8석을 얻어냈던 진보정치의 저력을 바탕으로 지역구에서 당선을 이뤄낸다는 목표다. 이 목표가 실현된다면 제주의 진보정치는 실험이 아니라 자생력을 갖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사회양극화 심화의 대안으로 서민복지의 강화를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왔습니다. 특권 해소를 위해 뛰었습니다. 더 이상 ‘무료교육, 무상교육’이 낯선 구호가 아닙니다. 온 국민이 함께 나누고자 하는 민주노동당의 가치가 이미 우리 정치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선에서 드러난 구태정치와 ‘부자의 경제’에 맞서 우리 서민들에게 희망과 대안을 주는 유일한 정당이 민주노동당임을 반드시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함께 손을 맞잡고 우리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갑시다.”
ⓒ민중의소리
박형대 장흥군 농민회 사무국장
'); }"장흥의 농민운동 힘차게 열어갈 것!"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날씨 탓에 올 해 농번기는 예년과 달리 1~2주 이상 늦춰졌다. 한미FTA 저지 투쟁과 대선 등을 앞두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야 할 농민들에게는 투쟁과 농번기라는 이중고가 닥쳐온 것이다. 박형대 사무국장은 대선과 농민대회를 앞두고 마음이 심난 했지만, 막상 천여 명의 농민들이 모이자 “농민이 결심하니 하늘이 열렸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장마를 뚫고 나온 해처럼 모두가 가슴 벅찬 투쟁이었습니다. 농민들은 단결하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마음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일은 조금 밀어놓더라도 농민 공동투쟁에 단결해야 된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마을 좌담회를 개최했다. 농민들의 달라진 의식은 농촌의 달라짐을 보여준다. 주류 정치에 대한 실망은 대안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로 모아진다. 대선 결과야 어찌됐든 현실은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농민 살려면 민주노동당 뿐이여.”
“이제 민주당이고 뭐고 생각할 것 없고 농민은 농민대통령을 만들어야 돼.”
“되든 안 되든 힘을 모타야 써.”
선거는 “그냥 투표행위가 아니라 농민대회”라는 박형대 사무국장의 설명.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선거결과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한 방어적 대회에 그치고 말았다.
“적당하게 농민대회나 한 두 번 치르고, 소리만 크게 외치고 떠들고 다니면 마음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실하게 활동하면서 마을을 찾아다니고 꾸준히 알려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 지역의 농민회는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냅니다.”
농민 대통령이 득표를 많이 해야 될 시기에 농민들이 표를 던지지 않아 농민운동가들의 목이 마르다. 그러나 박형대 사무국장은 서두르지 않는다. 풍농을 위해 비가 내려줘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아 심난했던 농민들이 일손과 투쟁, 그 두 가지 모두를 기어이 치뤄냈듯 이제 농민대통령을 이야기하는 농민운동가들에게도 이중고의 투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박 사무국장은 2008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역과 마을에서 인정받고 존경 받으며, 농민의 가슴에 얽매인 것을 풀기위해 함께 투쟁하며, 농민을 세상의 주인으로 세워야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격전지였던 장흥은 2008년을 힘차게 열어갈 것입니다.”
ⓒ민중의소리
장지연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 }"제 본격적인 싸움을 벌여야죠!"
“이명박이 당선됐으니 이젠 본격적인 싸움이죠. 불안요? 불안은 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장지영(36)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은 자신만만해보였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되려 이젠 본격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됐단다.
그녀는 작년 1년 동안 죽어라고 이명박 당선자의 핵심 공약이었던 경부운하를 검증해왔다. 실제 뗏목을 타고 2달 동안 경부운하 현장답사를 다녀왔다. 이명박 측에서 독일 MD운하를 예로 운하의 필요성을 피력하자, 이번엔 직접 독일로 떠나서 독일 운하와 경부운하의 차이점, 독일 운하의 문제점 등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결국 여름에는 여태껏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고 사무실에서 연구한 경부운하에 대해 분석한 책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오마이뉴스 발간)를 펴냈다. 그녀가 1년을 넘게 검증한 경부운하에 대한 결론은 ‘경부운하를 진행할시 재앙이 닥친다’였다. 그녀는 이명박 당선자가 경부운하를 폐기했으면 좋겠단다.
“현재 제가 알기론 한나라당내에서도 경부운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이명박 당선자뿐인 걸로 알고 있어요. 당내 여론 조사를 수렴한다면 제외되는 것이 맞지만 염려스럽네요.”
염려스럽기에 넋놓고만 있지는 않겠단다. 그녀는 대통령 인수위 기간 동안 경부운하가 공약 조항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압박을 가한다는 계획이다. “경부운하저지국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 단체들, 지역 주민들과 토론회, 기자회견, 집회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장지영 씨는 이명박 당선자의 지지율은 높았지만 경부운하 지지율은 낮았던 점을 언급하며 “많은 국민들이 경부운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부운하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국민의 입장에서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학교 1학년 때 환경 동아리에 가입한 이후 환경운동과 연관을 맺어온 그녀는 96년부터 2005년까지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다. 팔당 상수원 문제에서부터 갯벌, 습지 문제, 특히 새만금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한계를 느꼈다. 장지영 씨는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운동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이젠 시민단체도 대안을 내고 전문적 내용을 분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생각을 밝혔다.
결국 그녀는 ‘생태지평연구소’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아니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생태지평연구소를 만들었다. 현장과 이론을 접목시킨 운동. 그녀가 바라는 운동이자 운동공간이다.
그는 2008년에 할 일이 태산이다. “제 전문 분야가 갯벌, 습지예요. 올해는 최초로 연안습지로 지정된 전남 무원 갯벌의 관리, 보존계획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해요. 아직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나온 게 없거든요. 생태계 보존을 위해 태안 조사 작업도 진행해야 하고, 방제 작업도 해야 하고. 10월엔 습지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람사협약이 창원에서 열려요. 여기에도 신경을 써야죠.”
작년엔 경부운하를 문제를 파고드느라 전문 분야를 소흘히 했기에 2008년엔 전문분야에 충실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러긴 요원한 듯 싶었다. 경부운하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문 분야에 주력하고 싶지만 경부운하가 워낙 환경과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공사인지라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는 장지영 씨. 그녀는 아마도 이명박 당선자가 경부운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녀 역시도 경부운하 저지를 포기하지 않을 듯 싶다.
ⓒ월간 말
이종화 울산플랜트노조 위원장
'); }"다시 현장으로 내려가야죠!"
2007년에는 많은 사업장에서 파업을 진행했다. 그만큼 노동자의 삶이 각박해지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 된 이랜드-뉴코아 노조에서부터 불법도급 문제를 부각시킨 코스콤비정규지부, 타워크레인 노조, 연세대병원노조... 수많은 사업장에 파업을 단행했다. 그 중엔 아직까지도 파업이 진행 중인 사업장도 있고 반대로 노동자들의 승리로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한 곳도 있다.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의 경우 11월 파업에 들어갔다가 파업 열흘 만에 파업을 타결지었다. 실질적인 단체협약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높은 찬성으로 단협을 받아들였다.
울산건설플랜트 노조는 2004년 1월 6일 건설된 이후로 여러 번 파업을 진행했다. 2005년의 경우 76일간의 파업 끝에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인정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다. 하지만 단체협약을 만들진 못했다. 2006년엔 단체협약을 도출했지만 내용면에선 거의 단협이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단협은 달랐다. 휴일날 유급휴가를 받는 단협을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노조로 인정받지도 못했던 울산건설플랜트노조가 이젠 유급휴가를 받는 단협을 체결할 정도로 강한 힘을 얻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이종화(46) 울산건설플랜트 위원장이 있었다.
그는 이번 단협의 의미를 묻는 기자에게 “일요일날 쉬는 것을 유급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향후 설날, 초상날, 자녀 결혼식 등 여타 노동자들이 누리는 휴일까지도 유급휴가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번 단협으로 노사관계가 사실상 단체 협약을 맺는 관계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된 점이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언급했다.
노조를 이끄는 위원장으로서 어려움이나 부담감도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3년간 내리한 파업이 조합원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경우가 생길까봐 많은 걱정을 했다.” 싸움을 진행하면서 실수도 있었고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점이 가장 신경 쓰이고 걱정됐다고 한다.
3년 연속한 파업. 집행부로 일하다 보니 그는 집에 거의 가지도 못했다. 집에서는 ‘하숙생’으로 불린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은 아빠가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충은 알고 있는 눈치란다. 이종화 위원장은 “애들이 잘 때 들어가고 잘 때 나온다. 아이들이 어려서... 미안한 마음이 많다”며 쓸쓸히 웃었다.
아내도 위원장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무엇보다 구속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한다. “2005년 파업으로 구속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아내는 지금의 활동에 대해 뭐라고 말은 못하고 걱정만 한다”며 “그래도 어쩌겠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숨기지 못했다.
2008년엔 현장에 내려가서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현장 일을 하는게 꿈이란다. 물론 노조가 완전한 단협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다.
“현장으로 돌아가 조합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입시키며 계속 조합에 힘을 보태는 일을 하고 싶어요.”
3년간의 싸움 끝에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울산건설플랜트 노조. 그는 이제 현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2008년에 그는 또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까?
김태환, 윤보중, 허환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