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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의 실크로드, 봉한학설

40년 전 김봉한은 무엇을 보았나?

서정환 기자

입력 2007-12-26 09:15:54 l 수정 2007-12-27 09:29:41

봉한학설의 근원을 밝힌 서울대 소광섭 교수

김봉한 박사의 연구를 재연하고 있는 서울대 물리학부 소광섭 교수

지난 해 11월 10일,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의학연구소 강당에서 열린 한 학술회의는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심혈계와 림프계와는 전혀 다른 제3의 순환계가 인간의 몸 속에 퍼져있는데 그 중 피부와 특정 장기를 연결하는 한 가닥의 ‘봉한관’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또 그 순환계의 구조와 작동방식이 꼭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과 기(氣)의 흐름과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학계가 실험과 검증을 내세워 한낱 미신과 우연으로 터부시하던 한의학이 오히려 과학의 이름으로 실체를 인정 받는 일대 사건이었다. 나아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기초과학의 장에서 통합된 제3의 의학의 탄생을 예고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봉한학설은 의학계의 실크로드인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쇼크가 여진을 남긴 탓일까. 언론과 학계를 비롯하여 한국사회는 이 순환계의 존재와 기능에 대해 더 많은, 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듯 다시 담담한 표정이다.

의학계에 ‘봉한 학설’의 파문을 던진 주인공은 의학자가 아닌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소광섭 교수다. 소광섭 교수의 연구는 물리학자로서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 경혈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자는 것에서 시작됐다. 한의학에서는 질병의 원인이 ‘기(氣)의 흐름’에 장애가 생겨서 발생한 것이고 기가 흐르는 경락, 경혈을 자극해서 기의 흐름을 다시 원활하게 해 주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이 체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가설이란 아무래도 ‘기’라고 생각되는 어떤 물질이 있고 그것이 흐르는 통로도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소광섭 교수는 자신이 연구하려던 바를 북한은 이미 1960년대에 매우 높은 수준까지 발달시켰던 것을 발견한다. 북한에서 기가 흐르는 통로인 경락을 발견하고 그 안에 흐르는 물질까지 구체적으로 관찰한 연구자가 바로 김봉한이며 그는 이미 봉한학설이라는 이름으로 경락의 과학적 체계를 밝혀냈다. 그러나 김봉한 교수와 그의 연구는 1960년 중반부터는 갑자기 모습을 감추게 되는데, 이는 그의 연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북한 내부의 사회·정치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봉한 박사가 사용한 구체적인 실험 방법이나 실험에 사용된 도구와 물질을 알 수 없는 소광섭 교수로서는 일단 논문과 학술회의 자료집으로 알려진 그의 연구를 증명해 보는데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광섭 교수는 지난 2004년 경, 이른바 ‘봉한관’이라고 불리는 제 3의 순환기관을 발견하게 됐다. 서양의학계 일부에서는 소 교수가 림프계를 잘 못 본 것이라고 코웃음을 쳤는데 소광섭 교수가 발견한 봉한관은 이 림프계 안에서 서양의학이 설명하지 못한 전혀 다른 머리카락 굵기의 관이었다.

봉한관

쥐의 혈관 내부에 말려있는 봉한관. 두께 30~50마이크론의 투명한 관이어서 혈액을 빼내고 형광염료로 염색해 관찰이 가능하다

항암치료해도 머리카락은 그대로?

김봉한 박사의 실험을 계속 재현해 가던 소 교수가 결정적으로 확인한 것이 바로 피부와 특정 장기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 지난 11월 10일에 소 교수가 발표한 새로운 내용도 바로 이것이다. 소광섭 교수는 쥐의 중완혈에 해당하는 배 부위의 한 곳에 봉한관을 찾아 거기에 알시안블루라는 파란색 염료를 주입했다. 그랬더니 이게 주로 췌장으로 가더라는 것이다.

이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학계의 큰 파장이 될 이유는 이렇다.

우선 서양의학 입장에서는 특정 장기에 질병이 발생했으면 그 장기에만 약물 처방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간에 문제가 생겼다면 우리 몸의 피부 어딘가에서 간으로 통하는 봉한관을 찾아 거기에 약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지금처럼 약을 먹거나 몸에 주사를 놓으면 그 약은 혈관을 통해 간은 물론 온 몸에 퍼지게 된다. 그러나 봉한관 즉 경락은 심장이 아닌 근육의 수축을 통해 운동 하므로 그럴 염려가 없다. 약물 작용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그 약물이 몸의 다른 곳에 끼치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항암 치료에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한의학에서는 이미 약침이라는 것으로 이런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서양의학 입장에서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어야 할 소광섭 교수의 실험이 동양에서는 임상실험을 넘어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주로 침, 뜸, 부황 놓는 자리는 주로 경험에 기초해서 알려진 것이었다. 경락의 흐름을 귀납적으로 알다보니, 머리가 아픈데 배에다 침을 놓는 이유, 뱃속이 아픈데 배 밖에 침을 놓는 이유를 ‘기가 그리 흐르기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얘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광섭 교수가 발견한 것 처럼 쥐의 중완혈과 췌장을 이어주는 봉한관 같은 것이 배와 머리 사이, 뱃속과 배 밖에도 있다면 기의 흐름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통용되는 특정 장기와 침 놓는 자리(혈, 혈점)의 관계를 그 사이에 봉한관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여 증명할 수도 있다. 지난 11월의 연구결과 발표 이후 소 교수의 연구 역시 김봉한 박사의 연구와 한의학에서 말하는 신체각부의 경혈을 확인하는데 맞춰져 있다.

봉한관이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이고 기가 흐르는 통로라면 그 기에 해당하는 물질 역시 발견되었는데 이를 ‘봉한액’이라고 부른다. 여러 종료의 물질로 구성된 봉한액 중 김봉한 박사가 ‘산알’이라고 이름붙인 세포는 핵심적인 연구대상이다. 소광섭 교수는 “김봉한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산알이란 전신에 있는 조직 세포들 중 산알화된 것들이 경락을 따라 다니다가 세포 재생이 필요한 부위에 작용한다”고 알렸다. 다시 말해 산알은 DNA를 포함하고 있는 성장줄기세포인데 이 산알을 비롯하여 여러 물질로 구성된 액체가 바로 흔히 말하는 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소광섭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기를 연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의학의 기로 볼 수 있는 경락(봉한관)과 그 속을 흐르는 물체(봉한액)다. 그러나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실제로 소 교수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기의 의미를 나름대로 정리했다. 즉 봉한관 속을 흐르는 산알이 그 형태를 바꾸는 운동을 할 때 그 속에 있는 DNA는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는데, 그것이 온 몸의 봉한관을 따라서 빛나는 망의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로 한의학의 원리를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머리가 아프더라도 뇌와 연결된 배 부분의 혈(봉한관이 있는 곳)에 자극을 주어 기(봉한액)의 흐름을 원할하게 해 줌으로써 머리를 낫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는 과학이다

김봉한 박사는 40년 전의 연구만으로 경락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다 정리해 놓았지만 소광섭 교수를 비롯한 국내 연구팀은 40년 전 김봉한 박사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 소광섭 교수에 따르면 이미 북한은 60년 대 중반에 70여 명의 경락 연구단을 꾸리고 전자현미경과 연구시설, 우수한 염료 등을 확보했다. 이들 중 특히 봉한관을 관찰하는데 필수적인 푸른색 염료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북한의 경락 연구단과 당국이 이 염료의 정체와 만드는 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소광섭 교수는 자신이 쥐의 중완혈과 췌장의 관계를 증명할 때 썼던 ‘알시안블루’라는 형광물질은 김봉한 박사의 연구를 다 확인할 만큼 기능이 우수하지 못하다고 한다.

몸 전체에 퍼져있는 제3의 순환계 존재를 발견한 것, 이 순환계 중 피부와 장을 연결한 봉한관을 찾아낸 것은 분명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서양의학을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발견이다. 앞으로 남은 연구 거리도 무궁무진하여 또 어떤 놀라운 발견이 남아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 서양의학계는 물론 국내 한의학계서도 소 교수의 연구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자신들의 추상적인 이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실험이 나왔건만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는 자기의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 더 완고해 지는 법이다. 소광섭 교수는 “김봉한의 연구가 사실로 드러나면 생물학에서는 거의 혁명적 발견이다. DNA의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연구에 필적한다”며 “한의학계 등이 넓은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발견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 같은 곳에 이용되는 전자기파가 처음 발견될 때만 해도 사람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을 예로 들었다.

‘화접몽 한의원’의 원장이자 젊은 한의사 오지총씨는 “의사들이 MRI를 만들 수 없지만 과학자들의 노력을 결국 의사들이 사용하여 의료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았느냐”면서 한의학에 과학적 근거를 밝히는 소 교수의 연구에 기대를 나타냈다.

김봉한 박사의 연구가 재구성되면서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의술의 일대혁신을 목격하고 생명의 신비에 한 걸음 더 다가 설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소광섭 교수를 비롯한 국내 연구팀이 정확한 실험과 진실된 근거를 통해 ‘황우석 쇼크’를 극복하고 여론과 학계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봉한은 누구인가


김봉한은 북한의 저명한 의학자다. 1916년 서울의 약종상 집안에서 태어나 보성고보를 거쳐 1940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됐다. 6.15 때 북으로 가 평양의대 부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사망에는 북한 내부의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기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대략 1960년대 말로 추정된다.

그가 주창한 봉한학설은 한의학의 핵심인 경혈과 경락이 해부학적으로도 실재한다는 내용이다. 이론적 근거가 미비한 한의학의 맹점을 극복해 주면서 김봉한은 북한 뿐 아니라 전세계적 이목을 끌게 된다. 김봉한은 1961년 8월 18일 평양의대 학술보고회를 시작으로 1965년 10월 8일 노동당 창건 20주년 기념 경락연구원 학술발표회에 이르기까지 총 회에 걸쳐 자신의 경락연구 결과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다. 그에 따르면 경락은 신경이나 혈과는 다른 물질적인 실체가 있으며, 피부에서 몸 속은 물론 혈관 및 림프관의 안과 밖 등에 널리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김봉한 박사 및 그가 주축이된 경락연구원의 연구 개가에 대해 북한 김일성 전 주석은 1962년 2월 4일자 <로동신문>에 공개 축하문을 실어 높이 평가할 정도였다. 김 전 주석은 당시의 축하문을 통해 “동지들의 연구 성과는 우리나라에서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는 동의학(한의학) 리론에 확고한 과학적 및 물질적 근거를 부여하였으며 현대 생물학과 의학 발전에 대한 탁월한 기여로 됩니다”라고 밝혔다.

김봉한 박사의 경락연구는 전세계적 이목도 끌었다. 1962년 2월 초 <인민일보>, <광명일보> 등 중국의 유력일간지들은 ‘조선과학자 김봉한 등이 인체 내 경락 계통 발견’ ‘고전에 지금까지 발표된 일이 없는 것’ 등으로 대서특필 했다. 그외 미얀마, 폴란드, 베트남, 등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물론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AFP는 1962년 2월 13일 보도를 통해 김봉한 박사의 연구를 ‘17세기 영국의 혈액 순환 발견자 윌리엄 하베이의 발견과 대등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봉한 박사의 종적과 연구는 1967년 즈음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자 반박 논문에 대한 재반박이 이뤄지지 않고, 일본에서의 재현실험이 실패한 것으로 판명나자 봉한학설도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의 행방에 관해선 주로 내부 정치적 배경에 의해 숙청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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