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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분당 언제부터, 왜 추진됐나?

비례선출방식 개정 실패가 계기.. 11월 중순경 시작

기자

입력 2008-01-03 13:08:22 l 수정 2011-02-25 23:04:15

전진 내에서 분당론이 고개를 든 것은 지난 11월 17일 민주노동당 중앙위 직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진 내부 관계자는 "김종철, 한석호 씨가 주변사람들을 접촉하고 내부 게시판에 초벌적인 분당 제안을 내놓은 것이 18일"이라며 "제안이 나오고부터 분당론은 급속히 동의를 얻어갔다"고 전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중앙위의 주요 관심사는 총선 비례대표 문제였다. 이날 중앙위는 비정규직 명부를 2번에 부여하는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그외의 선출방식들은 현행유지됐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선출은 여성장애인명부-1표, 비정규-1표, 여성-2표, 일반-2표 등 1인 6표제로 진행된다.

그런데 전진 측에 1인 6표제는 곧 '당선권 밖'이었다. 2004년 총선과 달리 비례의원 숫자는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1인이 행사하는 투표수가 늘어날수록 다수파가 유리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진은 '소수대표성 보장'을, 내부적으로는 '범좌파 비례후보 당선'을 위해 명부별 1표제(여성과 일반도 1인 1표, 즉 1인 4표) 개정을 목표했었다. 그러나 막상 중앙위 당일에 전진 소속 중앙위원들은 별다른 이견을 내지 않았고, 선출방식은 최고위가 제출한 원안이 그대로 처리됐다. 토론자 조직 등 준비부족이 원인이 된 셈인데, 전진에서는 이와 관련해 정종권 상임위원이 사퇴의사를 밝히는 등 내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비례대표 당선가능성이 희미해진 11월 중앙위 직후에 분당론이 갑작스레 제기됐고, 이전까지 전진이 총선TFT(10월초 구성)를 통해 범좌파 경선안을 마련하는 등 당내 활동에 진력해 온 점에 비춰보면 분당론과 11월의 중앙위가 단지 시기상의 일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전진 관계자들은 비례대표 문제가 분당론의 계기가 됐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분당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원래 있었다"면서도 "1인 1표제가 통과됐으면 지금처럼 조직적으로 분당을 추진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중앙위의 결과는 종북파가 먼저 민주노동당을 정파연합당으로 가져가기를 포기한 것"이라며 "선출일정이 1월말이어서 (비례후보 선출을 위한)범좌파 경선도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분당론은 내부 동의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11월 27일과 12월 3일에 전진의 지도부격인 상임위원회 회의의 안건으로 올라가는데, 3일 상임위 회의에서는 "상임위원 간에 입장이 다른 상태에서 신당창당을 전제로 하는 방식의 논의를 결정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안건이 반려되기도 한다.

전진 조희만 의장은 11월말에 '총선전 신당 창당이 아니라 적극적인 당내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입장글을 발표해 분당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이 논의 자체가 패배감과 상실감에서 출발했다는 것에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며 "현재의 논의가 대선에 충실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조희만 의장은 "나는 현재의 논쟁을 선거논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말과 함께, "현재로서는 모든 선거에서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면서 "그러나 지금 이러한 시도(대선과 총선 대응)도 없이 당을 뛰쳐 나가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임위 안건 반려를 둘러싸고 조희만 의장의 사퇴와 복귀 등 내부진통을 겪다가, 결국 12월 8일 중앙위원회는 사실상 분당으로 의견을 모으고 특별기구 가동을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전진은 대선 직후인 12월 23일 분당의 마지막 관문인 총회를 개최했으나, 분당 여부와 관련해 최종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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