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종북주의 논란’, 왜?

[종북 논란 돌아보기] 실체적 근거 약한 내부투쟁용 이미지 전략

기자
입력 2008-01-10 09:54:13l수정 2011-02-25 23:04:15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 발 '종북주의' 논란이 거세다. 기사 검색 사이트인 한국언론재단 뉴스DB(www.kinds.or.kr)에서 검색해 보면 ‘종북’은 17대 대선 이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국어사전에도 없다.
그렇다면 종북(從北)주의란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을 추종하는 주의(主意)'인데, 그 동안 사용되어 온 '친북(親北)'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다.

종북파는 결국 ‘주체사상파’(?)

이번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한석호(전진 전 집행위원장)씨의 문건에서도 '종북주의가 무엇인가'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종북파는 주체사상을 제외한 그 어떠한 사상노선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종북파들이 다수파가 되어 권력을 잡으면, 이른바 평등파는 모두 교화나 숙청의 대상이다"라는 표현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근거는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찾기 힘들다.

한석호('전진' 전 집행위원장)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명확하게 북의 방침을 따르는 것이 종북주의"라며 "주체사상을 자신의 정치철학으로 하면서 수령론을 따르는 세력"이라고 종북세력을 개념지었다. 한씨의 주장대로라면 '주체사상파' 혹은 이의 약칭인 '주사파'가 '종북세력'인 셈이다.

그는 "당 안팎에 소위 종북파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민주노동당을 주도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온 국민들이 다 종북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들은 아니라고 하는 형국"이라며 "그러나 그 (종북파가 있다는)근거를 언론에 댈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고 답변했다.

즉 종북파의 존재는 각종 공안사건 판결 등에 근거해 경험적으로 알 수 있으나, "본인들이 스스로 (종북파임을) 얘기안하면 남이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석호씨는 자신이 작성한 문건에서 민주노동당의 당권파가 '종북주의'라고 명시한 바 있다.

김종철 집행위원장, "NL상층부 따르면 대체로 종북파"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현)은 좀 더 직접적으로 "소위 NL 상층부 동지들은 종북주의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NL운동은 범위가 넓으니 본인이 주체주의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동지들은 많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조직적 행보를 결정할 때 상층부와 같이 하게 되고 일사분란한 규율체계를 보이기 때문에 상층부가 주체주의를 갖고 있으면 (종북파에서)크게 벗어난다고 볼수 없다"고 말했다.

김종철 집행위원장의 경우 '종북파=주사파'를 인정하되, 그 범위를 지지자의 수준으로 더 넓게 잡고 있는 셈이다.

한석호 전 위원장이나 김종철 현 위원장 모두 '종북파'를 '주사파'의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논쟁에서는 기존의 당 지도부를 '종북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으니, 사실상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주사파'라는 딱지를 붙인 셈이다.
물론 이같은 '딱지붙이기'는 증명하기가 어렵고, 설사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수사한다고 하더라도 흔쾌한 결론을 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석호씨나 김종철 위원장 역시 이같은 문제점을 고려한 듯 언론 인터뷰에서는 주로 '핵 자위권 논란'과 '일심회 문제'만 거론해 왔다.

핵 자위권 논란이나 ‘일심회’ 문제에서도 모호성 여전

그러나 핵 자위권 논란이나 일심회 문제에서도 종북이라는 말은 대단히 모호하게 사용된다.
어떤 부분이 얼마나 북의 입장과 유사하면 종북이 되는지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나 한미FTA 문제 등에서 북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고, 입장이 일치한다고 해도 종북이라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물론 비정규직이나 한미FTA문제에서 북의 주장은 민주노동당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와 관련해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은 "핵은 안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할 수 있는데 (종북파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며 "민주노동당에 평등파가 있지 않았다면 (종북파 지도부는) 중앙위에서 유감표명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철 집행위원장의 설명에도 논리적 문제는 여전하다. 북핵에 대한 입장이 어디까지가 종북이냐는 것이다. 가령 북의 핵문제를 두고 "반대"라고 말하면 종북이 아니고, "유감"이라고 말하면 종북이 되는 셈이다.

북핵에 대해 '자위권적 성격'을 부여한 것은 민주노동당만의 이단적인 주장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조차 2004년 LA를 방문했을 당시 "핵개발에 자위적 성격이 있다는 북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집중적인 '친북' 논란의 과녁이 되었었다.

사실 정치에서 이런 식의 '이미지 전략'은 종종 사용된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핵 위기 당시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만났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 대표단이 북측 인사들을 만나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비난 논평을 낸 바 있는데, 한나라당 역시 '웃었다'는 사실을 매개로 민주노동당이 '친북집단'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한 셈이다.

'일심회' 사건도 유사하다.
한석호씨는 "종북주의자들은 서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고, 최 모씨도 종북주의자니까 보호하는 것"이라며 "(최 씨가)북에 보고서를 올리지 않았냐"고 말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 알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한 씨가 거론하는 최 모씨는 최기영 전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으로 최 씨는 이른바 '일심회'사건으로 구속된 후 국가보안법 위반이 확정되어 현재 복역 중이다.

‘일심회’ 사건은 국민적으로는 ‘386 간첩단’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 관계자들 중 핵심적인 인사들이 학생운동 출신으로 현 여권과 친분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 등은 ‘일심회’ 사건을 정권 비판용으로 활용했으며, 민주노동당을 중심에 놓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일심회’ 사건은 다른 공안 사건과 비슷하게 실체적 진실보다는 정치논쟁으로 번졌다. 국가보안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당 관계자가 사건에 연루된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 부총장이 이른바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피의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당직자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당 관계자들이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성현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석방된 이후에 확인할 문제라는 전제’를 달고, 최 부총장을 일반적인 국가보안법 사범 즉 정치적 양심수로 규정했다. 어찌되었건 악법으로 구속되어 있는 사람에게 ‘조치’를 취하는 것은 너무 야박한 일이라는 정서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 뒤에 북한 있다?’ 식 논리 형태 반복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논쟁의 시기다.
주체사상을 둘러싼 토론이야 언제든 벌어질 수 있지만, '대선 패배를 어떻게 평가하고 수습할 것인가'를 토론해야 할 시점에 때아닌 '사상논쟁'인 셈이다. 민주노동당의 활동가들로서야 맥락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적 시각에서 대선평가와 '주체사상'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에게 익숙한 '친북'이라는 표현은 한나라당과 보수세력 이외에는 이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오랜시간의 논란에 지친데다가, 수십년간 진보진영이 친북이라는 개념을 놓고 싸워온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연북이라는 말은 북한과의 연계를 갖거나 공동행동을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필요로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북을 추종한다"는 의미의 종북은 이미 그 효과가 약해진 친북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양상에 있어서는 과거의 친북론과 거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근거없는 '카더라'도 과거의 친북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한석호 전 집행위원장은 계속해서 '알지만 말할 수 없다'는 뉘앙스이며, 진중권 홍세화씨 등도 언론인터뷰와 기고문에서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 공안기관과 박홍 신부 등도 1990년대 '주사파 파동' 당시 동일한 어법을 사용한 바 있었다.

‘종북’ 용어 저작권은 뉴라이트에



종북주의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최근이다. 이른바 '종북'은 친북과 달리 사전에조차 올라 있지 않은 신조어로, 최근 뉴스에서 사용되고 있는 종북주의, 종북파 등의 말은 예외 없이 민주노동당 관련 보도에만 등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내분에 휩싸인 2007년 12월 대선 이전에는 종북주의라는 말이 공식석상에서 사용되지 않았으니, 이는 17대 대선 이후 만들어진 신조어인 셈이다.

언론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시점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1년경부터 종북주의라는 말이 진보진영 내부에서 사용되는데, 사회당(현재의 한국사회당)의 구로 을 지역 선거운동본부장이 2001년 10.25 재선거를 평가하며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종북(從北)'이라는 말이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점에서 보면, 종북주의라는 개념이 '북한 추종주의'로부터 나왔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 추종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는, 80년대 중반 강철서신의 저자로 현재는 뉴라이트 명망가의 하나가 된 김영환 씨다. 김 씨는 월간 ‘말’지 95년 4월호에 "북한 추종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는 조언을 하면서 곧 있을 자신의 전향을 예고했고, 98년과 99년에 말 지와 월간조선 등을 통해 공개적인 전향선언을 내놓았다.

김 씨가 개발한 북한 추종주의라는 ‘레테르’는 주로 90년대 후반 한총련과 범민련 등 정권과 보수진영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던 민족민주운동진영을 탄압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됐다. 실제 민혁당 사건과 뒤이은 영남위원회 사건처럼 김영환 씨의 진술이 '조직표' 작성의 중요 실마리가 되었던 사례도 있다.(이들 대부분은 무죄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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