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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허세욱 기념관 공개 ... 열사의 삶 한눈에

기자

입력 2008-04-16 09:01:52 l 수정 2008-04-16 11:43:24

허세욱 열사 기념관

2008년 4월 15일, 허세욱 열사 1주기를 맞아 서울 봉천동에 소재한 한독운수 사업장에서 허세욱기념관 개소식이 열렸다.



허세욱 열사 기념관

"노동해방 열사, 민족해방 열사 이 자리에 오시어 허세욱 열사의 투쟁과 삶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기념관을 통해 더많은 민중들이 허세욱 열사와 같이 학습하고 투쟁하도록 해주십시요." 한미FTA저지범국본 박석운 집행위원장이 기념관의 명운을 빌며 고사를 지내고 있다.



허세욱 기념관이 15일 오후 6시 일반인에 공개됐다.

전국운수산업노조 민주택시본부 한독운수 분회는 조촐한 기념식과 추모의 시간을 갖은 뒤, 현판식을 거행하고 기념관 내부를 일반인에 공개했다. 기념관은 애초에 조합원들과 지인들의 바람대로 열린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며 취사행위나 흡연은 할 수 없다.

현장을 방문한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공동대표는 평통사 회원들과 택시노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말에 "너무나 잘 만들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내 장식과 디자인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다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색채감이나 뛰어나고, 화려한 유품이 많지 않음에도 적절히 배치된 전시물은 열사의 삶과 투쟁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은 열사의 일상 사진들이 담긴 앨범을 꼼꼼히 살피면서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며 안타까워하거나 "그래, 이때야"라며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허세욱 기념관

허세욱 기념관에 전시된 앨범. 사진을 통해 만나는 허세욱 열사는 언론에 알려진 것과 또 다른 느낌이다.



허세욱열사 기념관

허세욱 열사가 생전에 신던 신발을 보고 있으면, 문득 집에 있는 내 등산화가 떠오른다. 열사는 삶과 투쟁 속에서 언제나 함께 있으며, 지금 이순간 나를 이끌어, 나와 함께 울고 나와 함께 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독운수 분회 황규금 위원장은 추모제 행사 내내 말을 아끼다가 이날 허세욱 기념관 개소식에서야 입을 열었다.

"형님이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지만, 장난끼 섞인 농담 하시며 나타나실 것만 같습니다. 2002년 이후로 휴일 빼놓고 대부분 집회와 투쟁, 단체 행동에 함께 해 오신 분입니다. 그런 동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온몸으로 내던지게 했으니 저는 죄인입니다.

형님은 온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한미FTA 폐기를 외쳤건 만, 1년이 지난 지금 쇠고기 협상이 탄력을 받아 타결될 것이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는 경제살리기 운운하면서 공공연히 노조를 탄압합니다. 동맹국이라는 괴물을 앞세워, 미국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급기야 허세욱 열사의 외침을 짓밟고 오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황 위원장은 "강력한 투쟁과 연대"를 강조하며 "가슴과 눈으로 예기하자"며 추모사를 마쳤다.

황위원장은 이날 행사를 치룬 소감에 대해 "추모제 행사에 참가한 모든 분들이 고맙고, 허세욱 열사를 더이상 개인이 아닌 민족민주열사로서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답했다.

허세욱 열사 기념관

"택시를 세우고 만들었다" 서울평통사 최문희 교육팀장은 이 점을 강조해달라며 기자의 인터뷰에 방점을 찍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역시 "너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허세욱 기념관은 열사의 지인들과 평통사 회원들로 구성된 '100% 동지들의 노동'으로 건립됐다.



허세욱열사 기념관

한독운수 택시 노동자들은 이 곳에서 허세욱 열사를 기억하며 휴식을 보낼 것이다. 한독운수 노조 황규금 위원장은 "열사는 더이상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민족민주 노동해방 열사"라며 "기념관을 잘 보존하겠다"며 다짐했다.



허세욱 열사 기념관

허세욱 열사가 남긴 유서. "죽어서도 미군을 괴롭히겠다"는 열사의 마지막 말.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도 묵묵히 꾸준히 민주노총과 같이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한상렬 목사, 격정적 추모사로 허세욱 열사에 대한 그리움 쏟아내



이 날 기념식에서 한국진보연대 한상렬 공동대표는 격정적인 추모사로 방문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미FTA 재판에 불려가 12시에 진행하는 추모제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끝내고 혼자서 한강성심병원을 다녀왔습니다. 허세욱 열사가 치료를 받았던 응급센터는 공사중이더군요. 혼자서 조용히 묵도를 하고 왔습니다."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한상렬 목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앙병원까지 쫓아가서 시커멓게 타버린 열사의 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강성심병원까지 가서 외쳤습니다."

갑작스런 한 대표의 절규가 행사장 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살아가자고, 살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알아들으셨던지 그 고통속에서도 그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셨습니다.

열사는끝끝내 외쳤던 것입니다. 온몸에 화기가 닿으면서도, 화기가 목을 타고 들어가 온 몸을 손상시키는데,그것만 아니었으면 살 수 도 있으셨는데. 왜 그렇게 외치셨는지 ..."

한 대표의 마이크를 부여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분이 남긴 유서를 보았습니다. 불길에 내던진 온 몸으로 쓰신 유서를 보았습니다.

'나는 나를 버린 적이 없다.'

그렇습니다. 그 분은 주체적인 분이었습니다. 민중을 사랑하는 그 절규 !

'한독운수, 나는 위에 서볼려고 한 적이 없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왜 위에 서려고 하는가 ! 왜 위에 !"

한 대표는 허세욱 열사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한미FTA반대 천막농성을 하는데 그 분이 방문차 오셨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비 오는데 새지는 않나 그렇게 둘러보셨습니다. 협상 종료 시한 얼마 남겨두지 못하고 청와대로 가려다 경북궁 역 앞에서 막혀 있던 날. 그 분이 계시더군요. 오종렬 대표와 저를 보고 비 옷 두벌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열사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한 대표는 "허세욱 열사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라며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이 외침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거나 눈물을 글썽였다.

" ' 나를 대변해 줄 사람이 없다'

왜 이 말씀을 썼을까 ?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말을 떠올립니다.

'내가 배가 고프다' ...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전태일 열사가 병원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6시간동안 못 박혀있으면서 7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 중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절대 고독 !! 절대 고통 !! 이 말씀에 담긴 열사의 마음 !!

한 대표는 시종일관 눈을 감고 꼿꼿이 선 채, 격정적으로 추모사를 진행했다.

"저는 바랍니다. 살아서, 살아서 열사와 한 몸으로 살고, 열사와 죽고, 열사와 더불어 열사를 대변하며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40일간 기도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자기 변혁하고자 했으나 여전히 열사 앞에 부끄럽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우리 모두가 함께 희망하고 함께 더불어 열사를 대변했으면 합니다.

열사의 눈으로, 열사의 심장으로 세상을 함께 살 수 있기를 함께 희망합니다."



허세욱열사 기념관

허세욱기념관 개소식에 참석한 한상렬 목사가 추모사를 전하고 있다 한 목사는 이날 한미FTA재판에 불려가,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허세욱 열사 1주기 추모제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허세욱 열사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격정에 담아 쏟아냈다.



허세욱 열사 기념관

허세욱 기념관의 현판을 매만지는 한상렬 목사의 모습. 현판의 글씨는 신영복 선생이 써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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