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노예신분..평양서 죽고 싶었는데"

'미군철수'외치며 14일 단식한 강희남 목사를 만나다

기자
입력 2008-11-02 14:51:23l수정 2008-11-03 09:12:56
재야통일원로 강희남 목사의 단식 소식을 들은 지 이틀 후인 10월 마지막 날 전주로 향했다. 시간을 더 지체해서는 안될 듯 싶었다. 그의 나이 89세. 좋은 것만 먹어도 기력이 쇠잔해질 나이에 그는 자택에서 열흘이 넘게 곡기를 끊고 있었다.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도 세살박이 둘째딸 '겨레'를 데리고 달려갔다. 황씨는 전주로 내려가는 내내 딸에게 "할아버지 보면 '할아버지 맘마 드세요'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강희남 목사

강희남 목사ⓒ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강 목사는 예상대로 바싹 야위어 있었다. 손을 만지니 굵은 마디의 뼈만 잡혔다. 눈을 몇 번이나 껌벅껌벅 거리다 그제야 기자를 알아 본 모양이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일행을 대접하려는 듯 요 위에 기절한 듯 쓰러져 있었던 강 목사는 겨우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강 목사는 다시 요 위로 쓰러졌다. 이부자리 옆으로 원고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 몸으로도 여전히 글을 쓴 모양이다. 책으로 둘러 쌓인 방 한쪽에는 강 목사의 자필로 쓴 붓글씨가 붙여져 있었다.

"내 생명을 조국의 재단에 바친다"

단식을 시작하면서 쓴 글인 듯 했다.

강 목사는 지난 10월 18일 미군철수를 촉구하며 자택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10월 21일 한겨레 신문 생활 광고란에 조그맣게 단식을 하는 이유를 내보냈지만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알리기 위해 단식을 한 건 아니었다. 조용히 목숨을 끊으려고 했단다.

"선생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두세 차례 소리를 지른 뒤에야 "그런대로 몸에..달리 이상은..없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쁜 숨만 몰아쉬는 그.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살짝 들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할 때 보니까 프랑스 농림부 장관이 말이야. '우리 농민들이 우루과이라운드를 반대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나라는 뭐야. 양키 점령군 총부리 밑 식민지 노예정권의 농림부 장관은 말이야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지 않아. 농림부 장관이 양키들을 살리기 위해 농민 죽이는 일을 하고 있어. 이러한 역사를 우리가 63년 동안 살아왔어."

흐렸던 눈이 반짝였다. 가슴에 울분이 차오르는 모양이었다.

"그 뭐 농사짓는 거 한 가지뿐인가.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다 점령당하고 있잖아. 양키놈들의 점령에 대해 나처럼 신랄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아. 우리 민족이 양키에 해방되어야 하는데 그게 어느 때에나 오겠나. 그 놈들이 이 땅을 떠나고 해방시켜줘? 자주국가? 어림없어. 죽었다 깨어나도 안돼. 더군다나 이명박이란 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양키에게 민족을 팔아먹고 있잖아. 그렇기 때문에 민족적 차원에서는 우린 해방을 바랄 수 없어. 그래서 개인적으로라도 저 놈들의 노예 신분을 청산하는 길은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여. 내가 죽으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이니까 죽음 밖에 길이 없는 거야. 그래서 평양에서 죽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물도 안 먹고 단식을 했을 때 20일 정도면 숨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던 강 목사는 중국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 숨을 거두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전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발급해주지 못하겠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강 목사는 죽을 자리조차 뜻대로 하지 못하게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됐어. 이제 이것도 저것도 다 틀려버렸지 뭐야..."

강희남 목사

강희남 목사ⓒ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그는 마지막 한숨을 토해내고는 누워 눈을 질끈 감았고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원고지 2장에 쓴 글을 내밀었다. 글에는 '평양으로 가서 죽을 수 없을 바에야 단식을 접겠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황선 씨가 "선생님 기운 차리세요. 앞으로 북미관계도 좋아지고 남북관계도 좋아지면 평양에 얼마든지 가실 수 있습니다. 건강하셔야 됩니다"라고 이야기 했지만 강 목사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응..응.."이라고만 답했다.

30분간의 짧은 만남. 고개를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떨어져버린 강 목사가 안타까웠지만 이것도 그가 사는 방식이다. 일행을 배웅한 강 목사의 부인 주정수 씨는 "목사님 의지가 원래 저러하시니 어쩔 수 없다. 여러분들이 더 고생이다"라며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희남

강희남 목사는 단식 중에도 글 쓰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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