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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선거, 국민 혈세 낭비 막아야

[월간 말 3월호 기획] 4월 재보궐선거 전망

글 정인미 기자 jim@mal.co.kr

입력 2009-03-03 09:16:32 l 수정 2009-03-03 12:11:44

경제위기 한파가 몰아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이 같은 불신은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각지에서 429 재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국민적 관심과는 무관하게 코앞으로 다가온 429 재보궐선거는 서서히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이번 재보선은 지난 총선 이후 처음으로 치뤄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여야 모두에게 민심을 검증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 통상 재선거는 의원직을 상실한 지역구 의석을 보충하는 ‘지역선거’이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치러지는 올해 첫 재보선의 정치적 의미는 간단치 않다. 특히 여론의 흐름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수도권 재선거는 여야 정치권을 향한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어 여야 정당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재 선거가 확정된 선거구는 인천 부평을, 경북 경주, 전주 완산, 전주 덕진 등 4곳이지만 앞으로 재판 결과에 따라 6~7곳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지난 1월 초까지 항소심 결과가 나온 한나라당 윤두환(울산 북구), 안형환(서울 금천) 의원 2명의 지역구는 재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또 항소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한나라당 허범도(경남 양산) 의원의 경우도 판결시기가 빨라질 경우 재선거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는 상태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오는 3월 31일까지 국회의원의 형이 확정되면 4월 재보궐선거 여부가 결정되며, 보통 항소심에서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3개월 이내가 걸린다.

이미 18대 총선이 끝난 지 만 8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현역 의원이 2명이나 나오면서 4월 무더기 재선거가 예고돼 있다. 정당별로 한나라당이 4명(구본철, 박종희, 윤두환, 안형환 의원)으로 가장 많고, 민주당은 2명(정국교, 김세웅 의원), 친박연대는 3명(서청원, 김노식, 양정례 의원), 창조한국당 1명(문국현), 무소속 2명(김일윤, 최욱철)이 1, 2심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로 인해 의원직을 잃게 될 국회의원도 16대 10명, 17대 11명에 비해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국회의원과는 별개로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릴레이 선거’는 계속될 예정이다.

탈법과 불법, 사직 등 불필요한 재보궐선거 85%

선거가 다가오면서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국 선거풍토에 대한 문제제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잦은 선거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 우리나라는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기간이 제각각이다 보니 전국 단위 선거판이 자주 벌어진다. 게다가 불법 선거운동 또는 수뢰에 따른 실형 선고나 총선 출마 등을 이유로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많아 매년 두세 번꼴로 재보선이 치러질 수밖에 없다.

재보선의 이유는 다양하다. 지난해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에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당선자가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해 당선이 무효되거나 피선거권을 상실한 경우와 뇌물수수 등 개인 비리로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은 경우, 다른 공직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중도 사퇴한 경우 등이 85%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즉, 귀책사유 대부분이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들에게 있다는 의미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국회의원과 기초의원은 비리로 인한 당선 무효가 제일 많았고,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은 사직 비율이 컸다. 사망, 신설 등 부득이한 원인을 제외한 전체 선거구 대비 재보선 비율은 평균 8.5%이고, 기초단체장의 경우 4개 지역 중 1개 지역에서 재보선이 치러졌다.

그럼에도 국회의원 재보선 경비는 국가가, 지방선거 경비는 지자체가 각각 물도록 규정돼 있다. 국정 공백의 피해는 물론 추가 선거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는 것이다. 반면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나 그들을 공천한 정당은 아무런 부담이 없다. 공천을 잘못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당의 선거 출마는 당연시되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공직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한 사람이 공천을 받지 못하자 그 지역 재보선에 다시 출마하는 웃지 못할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나라당 맹형규 전 의원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자신의 사퇴로 치러진 송파 갑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었다.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그 지역에 다시 출마하는 일은 맹 전 의원만의 일이 아니다.

한 회기에서 두 번씩 당선된 정치인은 또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인 전재희 의원도 16대 국회 때 두 번 당선됐다. 처음엔 전국구였고 2002년 88 재보선 때에는 경기도 광명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은 17대 국회 때 두 번 당선됐다. 역시 전국구로 당선됐다가 지난해 1026 재선거 때 대구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두 의원 모두 지역구에 출마하기 위해 전국구 의원직을 사퇴했다.

재보궐선거, 낮은 지방재정자립도 더 낮춰

재보궐선거, 국민 혈세 낭비 막아야

재보궐선거, 국민 혈세 낭비 막아야ⓒ월간 말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지난해까지 5년간 치러진 재보궐선거가 총 460회(선거구 기준)다. 이들 선거관리비용으로만 약 1,248억 원의 국민 세금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금액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2006년과 2007년에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에 지급한 보조금보다 많으며, 제17대 대통령선거 관리비용 1,300여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사망이나 행정구역 신설 등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약 750억 원의 세금이 지방선거 재보선 비용으로 쓰여, 2007년 지방재정자립도(53.6%)를 0.1%p 정도 낮춘 효과를 냈다. 재정이 열악한 지방의 경우 빈번하게 치러지는 선거로 인한 재정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전국 평균 1인당 1,550원이 민선공직자의 타 선거를 위한 사직이나 부정부패로 낭비됐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도지사 선거를 한 번 치르고 나면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의 경우 지역 전체 경제가 휘청이게 된다”면서 “선거비용은 예비비에서 지출되는데, 원래 예비비 사용 목적은 국가 재난이 닥쳤을 때 보상금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긴급 재난 구조에 쓰여야 할 돈이 부정한 정치인들의 뒤치닥거리에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2004년 6월 5일이 104회(선거구 기준)로 가장 많았다. 사직으로 인한 재보선이 2004년 6월~10월에 집중되었던 점을 볼 때, 2004년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공직자들이 대거 사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징검다리 사직’이다. 당선 무효로 인한 재보선은 2002년 지방선거 이후 2006년 지방선거 시기까지 119회였고, 2006년 지방선거 이후로 90회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서울 강동구의 경우를 살펴보면 전형적인 징검다리 사직으로 인한 심각한 주민 피해를 확인할 수 있다. 강동구는 2002년, 2004년, 2006년, 2008년, 2010년 등 2년마다 구청장선거를 치르는 진기록을 수립 중이다. 2002년 당선된 한나라당 김충환 전 구청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여 2004년에 보궐선거가 있었고, 2006년에 당선된 한나라당 신동우 전 구청장도 총선 출마를 위해 임기 1년 6개월 만에 중도 사퇴하여 6월 4일에 보궐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그 임기도 2년에 불과하여 다시 2010년에 구청장선거가 있다.

보궐선거 유발자 혈세 손실액 물어야

이로 인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까지 재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정당과 본인에게 정치적·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선거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물론 재보선 사유를 제공한 정당은 해당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없도록 강제해야 한다거나, 원인 제공자가 받은 급여를 국고에 환수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국민들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지만 비용을 물고 있는 국민들은 관련 규정이 없어 구상권 청구조차 안 된다”면서 공직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손 교수는 “재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패널티’가 있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A라는 정당 때문에 재선거를 하는데 A당이 아무 반성도 없이 선거에만 매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당의 경우 선거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그 금액을 빼고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면 된다”면서 “이것이 법제화되면 무분별한 선거로 인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당과 선거 출마자의 책임성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당선 무효 등으로 재보궐선거를 할 경우 재보궐선거 사유를 제공한 국회의원, 지방의원, 자치단체장의 소속 정당이 선거 경비를 부담토록 하고, 정당은 재보궐선거 사유를 제공한 당사자들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백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각 정당이 선거를 투명하게 치르도록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제화까지 가는 길은 ‘산 넘어 산’이다. 작년에 발의된 이 법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심사 소위에 계류 중이다.

재보궐선거, 국민 혈세 낭비 막아야

재보궐선거, 국민 혈세 낭비 막아야ⓒ월간 말



앞서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임기 중 부득이한 사유 없이 사퇴한 자에 대하여 보궐선거 비용을 원인 제공자가 부담하게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004년에 공동 발의한 바 있지만, 정부여당이 된 한나라당이 백 의원의 개정안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백 의원 역시 “보궐선거가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로 인해 치러지는 지역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법안에 찬성해줄 가능성은 적다”면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상황이라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당 소속 의원들의 재선거가 줄줄이 예고되어 있는 상황에서 손해 보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보선 사유를 제공한 정당은 해당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없도록 강제’하는 방안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책임정당 출마 제한’의 경우는 법률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정당의 방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미 한나라당은 ‘공직후보자추천규정’ 제41조 ‘재보궐선거에 대한 특례’에서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공천비리, 뇌물 등 부정부패 관련 법위반 행위에 대한 형 확정으로 인하여 재보궐선거가 있는 경우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해 선거의 후보 추천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책임정당으로서 출마를 포기한 경우가 없는 것처럼 현실화는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불필요한 재보선을 줄이고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국민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논의는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 ‘09년도 지방선거구제 개편방안’과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백 의원은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각계 시민사회단체에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정치권이 거부할 수 없는 여론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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