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정이 대표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석달간의 수감생활로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 현재 몸 상태는 어떠신가?
=아직 괜찮다. 지병이 조금 악화되었지만 거동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오늘 내일 병원에서 괜찮다고만 하면 바로 퇴원하고 싶다. 할 일이 많다.
사실 그동안 대수술을 많이 받아서 몸이 안좋은 상태인데 하느님이 필요로 해서인지 아직도 살려주시니 감사히 생각한다. 약하고 주사로 그동안 여기까지 왔다. 사실 바로 누으면 환자다. 작년에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 검진해보니 심장기형 판결을 받았다. 지난시기 민가협 활동에 나서며 하도 최루탄을 많이 마신까닭에 목소리가 제대로 안나오는 등 문제가 생겨 장기간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음성은 원래 음성이 아니다. 그러나 할 일이 많은데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파도 안아픈척 건강하게 활동해야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지 않겠나.
-구치소에서도 7-8명이 수용되는 방을 자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0.75평 독방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거 구치소 내 환경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과 함께 지내며 몇가지 문제도 해결했다. 구치소 내에서 포승줄을 묶은채 조사나 재판에 나가는 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소장에게 항의해 그러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다.
이들에게(재소자들) 민가협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구치소 환경이 민주화 과정에서 개선되었다는 걸 이야기 해줬다. 다들 고맙다고 하더라. 한분은 출소한 뒤에 줄곳 재판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 응원하기도 했다. 정말 고마웠다.
-전여옥 의원측의 주장만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상황을 직접 듣고싶다
=5.3동의대사건 재심의 하자는 움직임이 보이자 기자회견까지 잡혀있어 동의대 사건이 어떤 것인지 전 의원측에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미 문민정부때부터 해결되어온 이야기를 다시 재론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무튼 전의원이 확실하게 알고 이야기 하길 바라며 전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기자회견에 참가했지만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경찰로 보이는 누군가에게 험한 욕까지 듣고 결국 폭행을 당해 쓰러졌다. 우리 자식들(그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청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건과 노동자 구속사건 등 사건마다 구치소, 교도소, 경찰서부터 청와대, YS가 사는 상도동까지 다 다녔지만 한번도 욕을 듣고 폭행당한 적은 없다. 20년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다.
국회에 도착해 이후 일정을 기다리는 동안 김수환 추기경 선종기도를 위해 묵주를 돌리고 있는데 남자들 주변으로 연 하늘색 옷을 입은 누군가가 나오기에 봄이 왔구나 싶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여옥 의원이었다. 그때 3-40분전 전 의원 사무실 앞에서 벌어진 일로 격한마음이 들어 어른에게 이럴 수 있느냐 전 의원에게 항의하러 달려갔다. 그러나 이 와중에 멱살을 잡긴 했지만 경위가 달려와 막으면서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눈을 찌른 적은 결단코 없다. 국과수에서도 모든 조사를 다 했다. 내가 했으면 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비겁하게 성격적으로도 그렇게 못된다. 잘 걸어들어가길래 그 이후에도 국회에서 40분이 넘게 다른 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언론보도에 화가 나셨을 것 같다
=한쪽 주장만 듣고 말과 펜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 언론이 그렇게 하는걸 보니 보니 너무 서글펐다.
-칠순노인과 벌어진 일이 ‘테러’, ‘집단폭행’이 되어 수사당국까지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렸는데
=경찰 조사과정에서 ‘집단폭행’ 이런 이야기가 자꾸 대두되자 결국 조서에 지장도 찍지 않았다. 누구랑 공모한 적도 없을뿐더러 국회에 앞서 벌어진 사건이 없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밀고 댕기는 과정에서 멱살은 잡았다. 앞전 전여옥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에 너무 화나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뒤)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줄 알았는데 경찰서로 데려왔었다. 이후 수사본부가 꾸려졌다더라. 처음에는 자신들도 곤욕스러워 보였다. 다 위에서 시켜서 그런거 아니겠나.
“이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공안사건이 되어버린 셈”
이정도로 수사본부를 차린다는 건 정권이 이 사건을 이용하는 것 밖에 안되는거다. 이 와중에 결국 하나의 각본이 짜여졌다는 것을 느꼈다. 보석을 아무리 신청해도, 적부심 과정에서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사건을 보면서 ‘폭행’이라고 말하지만 마치 공안사건이 되어버린 격이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나 전 의원측 주장대로 눈을 안찔렀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도 저는 당당했다.
-왜 이런 일이 터진것이라 보시나?
=용산참사 문제를 뒤로 감추고, 5.3동의대 사건을 부각시켜 우연하게 벌어진 사건에 나까지 끌고 들어온 게 아니겠나. 용산참사가 터지자 수습하기 위해 뭔가 어떻게 해보려다 아니나 다를까 동의대 사건을 다시 불거지게 하고 전여옥 사건을 매치를 시켰다. 그러나 결국 경찰도 검찰도 어려워했고, 심지어 검찰 조사도 하루만에 마무리 될 정도였다.
-아드님이 5.3동의대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걸로 안다
=당시 2학년이었는데 과 홍보부장이었다. 너무 사건이 크다보니 모두 얼어 있어 할수 없이 직접 나섰다. 핵심인물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이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은 청백리 시청공무원이어서 혹시 피해를 입을까봐 주변에선 다들 말렸지만 사실 부마항쟁때부터 거리집회가 있으면 몰래 달려가 참여하곤 했다. 종철이 죽을때도 크게 분노했다.
-아드님이 연관된 당사자로서 5.3동의대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
=광주항쟁과 6월항쟁이 벌어지면서 노태우가 대통령이 안되는건데 양 김씨가 단결하지 않아 결국 노태우정권이 들어섰다. 양 김씨가 하나로 합쳤다면 노태우 정권은 없었다. 이 와중에 89년 노동자들의 민주화투쟁으로 현대중공업에 전국의 시선이 몰려있었다. 경찰도 그곳에 다 가 있었다. 게다가 국회는 여소야대로 파행을 겪고 있었고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 등 까지 겹쳐 노동운동과 통일, 민주화 요구가 한꺼번에 터져나오자 정부는 공안사건을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5.3동의대 사건은 그 희생양이다. 당시 매트리스만 깔았으면 희생자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경찰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도 못한채 아무것도 없이 쳐들어왔다. 그나마 당시 동의대 출신 전경은 지리를 훤하게 알아 살았지만 동에 깔아야할 것을 서쪽에 깔고 서에 깔아야 할 것은 동쪽에 깔아 화재보다 떨어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오죽하면 당시 의경들도 양심선언까지 했겠나. 당시 사건에 대한 화인감정을 아직 안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사위원회에 진상규명 신청을 한 상황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몇 년 뒤 학교 휴교령을 해제되고 당시 학생들도 복학시켰다.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다 했다. 이후 정부에서 민주화보상법이 생겼지만 이미 문민정부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온 사안인 것이다. 이 과정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이휘호 여사, 이기택, 김광일 전 통일민주당 의원, 박관용 전 국회의장까지 이 사정을 다 안다.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5.3동의대사건은 독재정부 시절 시대적 희생양”
그런데도 5.3 동의대사건을 ‘사람죽인 학생들을 민주화로 만들었다’, ‘경찰 죽인 이들을 민주화했다’는 등 고의성과 정치성을 뒤집어 씌웠다. 2002년 4월에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 명이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되자 조선일보가 이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보도해 수차례 전화 끝에 강력하게 항의해 결국 정정보도를 받아냈다. 같은해 행자위 소속 한 한나라당 의원도 “사람죽인 XXX놈이 무슨 민주화냐”며 발언해 부산진구 유세에 왔을때 이회창 대표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며 그의 옷자락을 잡고 분통을 터트렸다. 아무런 변명도 못했다. 그 다음부터는 동의대 사건과 관련해 이의를 걸지 않았다.
-진상규명과 국정조사 추진을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녔다고 들었다
=동의대 사건 진상규명과 관련해 당시 김대중, 김종필 대표 등에게 국정조사를 요구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했다.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YS당사나 평민당에도 찾아가 점거농성을 벌였지만 서울 민가협 어머님들도 공화당 만큼은 가면 백골단에 맞아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대화가 될 것이라 믿고 직접 찾아갔다. 오히려 더 잘해줘서 놀랐다. 김종필 총재에게 이건 너무 잘못 된 것이다.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며 사인해달라고 호소해 결국 힘을 보태게 만들었다. 당시 김영삼 총재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라는 국회 연설을 들으며 부산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사망한 경찰 유가족들도 20년동안 챙겨 오셨다는데
=부산에 피해자 최동문 경위 등 2명의 유가족이 있었다. 추석 등 명절때마다 음식을 들고 찾아가 함께 이야기 나누며 서로 함께해왔다. 사실 피해자인 최동문 경위 어머니가 더 분노했다. 정권유지를 위해 그런거라고 했을 정도다. 병한이 어머님과 동문이 어머님과는 함께 진상규명을 하자고 힘을 모았다.
언젠가 동문이 어머니가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만나보니 집에 큰 우환이 생겼더라. 작은 아들은 구속되고 집은 경매에 넘어가 저당잡혀 100만원을 주며 나가라는데 통곡을 했다. 송기인 신부와 상의한 뒤 경찰청장을 만나 “이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경찰은 도대체 뭐하고 있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그 일로 모금운동이 벌어져 2000만원을 마련해 우암동 쪽에 전세를 구하게 됐다. 그러나 옥상에서 걸어내려오시다 사고로 돌아가셨다. 너무 안타깝다. 문현성당과 동항성당에 모셔 장례미사를 지냈다.
-전여옥 의원 등 한나라당이 5.3동의대 사건과 관련해 최근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6월처리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 잘 알아야 한다. 동의대 사건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때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김영삼 문민정부때부터 학생들이 복학되고 풀려나면서 점점 해결되어온 문제다. 게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도 대통령도 대법관들이 다 민주적으로 처리한 것인데 왜 이제와서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
당시 상황에 이해없이 정치적 악용하고 있다. 이미 명예회복까지 다 된 마당에.. 당시 일을 추진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지금으로 보면 한나라당 이었지 민주당이었나. 그때부터 석방, 복학까지 다 되어 온 것을 마치 국민의 정부에서 다 한 것처럼 호도하는 건 말도 안된다. 당시 이일에 관계되어 있던 인사들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있다.
-5.3동의대사건을 다시 정치이슈화 시키려는 이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는 없으신가?
=지금 동의대 사건을 재론하는 이들이 20년동안 최동문 경사 등 경찰유가족들이 힘들어할 때 뭐했나. 최 경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소주잔 한번 받아주었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년동안 대전에 한번 안간 사람이 최근 현충원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20년동안 가만히 있던 사람이.. 그동안은 도대체 뭐했나. 이런 비극적인 일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국회의원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만 하고 있다. 너무 엉터리 같은 세상 아닌가?
“20년간 뭐했나”,“너무 엉터리 같은 세상이다”
그리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더 하다. 5.3동의대 사건을 다시 부각시키면 국민들에 먹힐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국민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대통령 서거 장례식을 치루는 과정에서도 봤듯이 과거시대가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더라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희망을 가진다.
-부산지역에서는 이정이 대표보다 어머님으로 더 알려져 있으시더라
=정주영 이병철 회장이 돈부자라면 난 자식부자다. 부끄럽지만 어디를 가나 ‘어머님’으로 통칭되더라. 미국과 유럽, 심지어 북측에 가서도 어머님으로 불리운다. 배도 안아프고 너무 많은 자식을 얻었다. 자식 부자다. 그동안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해온 것을 좋게 봐주셔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번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를 다녀갔었다. 함세웅 신부님이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을 건데 이 정부가 반대해서 못받았다며 안타까워해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모든 분들이 일한 것을 알고 있구나 감사했다. 내 한몸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민중을 위해 일해야 겠구나 싶었다.
-사법부는 피해자측의 진술을 우선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어떻게 평가하시나?
=보석이 몇 번 기각되면서 결과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솔직히 유감스럽다. 국회에 앞서 전여옥 의원 영등포 사무실에서 벌어진 폭행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주장을 했지만 한번도 반영된 적이 없다. 게다가 눈을 찌르거나 폭행을 공모한 적이 없다. 일방적인 한쪽 진술에 의존한 재판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전여옥 의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신가?
=전 의원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그렇게 정치의 장에 나가서 활동하는게 보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화여대에 똑똑한 KBS기자출신이어서 전 의원과도 충분히 이야기가 될 것으로 봤다. 인격이 있는 사람 아니었나. 5.3동의대사건과 관련해서도 말을 하면 통할 줄 알았지만 결국 영등포사무실에 찾아가서 당한 건 욕을 먹고 두들겨 맞았을 뿐이다. 국회에서도 멱살을 잠시 잡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 의원이 독설보다는 사랑부터 주는 것을 더 배웠으면 한다. 사랑을 주면 몇배로 사랑을 한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사랑을 줄줄 모르면 아무것도 없다.
-이후 계획에 말씀해달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법 개정안 처리가 6월 중에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요청도 재차 확인할 계획이다. 청와대에도 박형준 비서관을 통해 25장에 걸쳐 편지를 보냈다. 공권력은 또다른 공권력을 낳는다. 용산참사도 되풀이 하지말라고 썼다.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을 죄다 만날 생각이다. 하느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대화가 안될 것 같은 사람도 사랑하니 더 잘하더라. 그들을 만나 중재하고 설득하려 한다.
-석달간의 수감생활로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 현재 몸 상태는 어떠신가?
=아직 괜찮다. 지병이 조금 악화되었지만 거동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오늘 내일 병원에서 괜찮다고만 하면 바로 퇴원하고 싶다. 할 일이 많다.
ⓒ민중의소리
지난달 29일 집행유예로 출소한 이정이 부산민가협 전 대표. 이른바 '전여옥사건'으로 이정이 대표는 석달동안 옥고를 치뤘다. 민가협 활동 등 민주화운동에 나선 이후 20년만에 첫 구속이라고 한다. 지병과 수감생활로 몸이 좋지 못해 병상에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3일 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 }-구치소에서도 7-8명이 수용되는 방을 자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0.75평 독방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거 구치소 내 환경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과 함께 지내며 몇가지 문제도 해결했다. 구치소 내에서 포승줄을 묶은채 조사나 재판에 나가는 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소장에게 항의해 그러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다.
이들에게(재소자들) 민가협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구치소 환경이 민주화 과정에서 개선되었다는 걸 이야기 해줬다. 다들 고맙다고 하더라. 한분은 출소한 뒤에 줄곳 재판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 응원하기도 했다. 정말 고마웠다.
-전여옥 의원측의 주장만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상황을 직접 듣고싶다
=5.3동의대사건 재심의 하자는 움직임이 보이자 기자회견까지 잡혀있어 동의대 사건이 어떤 것인지 전 의원측에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미 문민정부때부터 해결되어온 이야기를 다시 재론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무튼 전의원이 확실하게 알고 이야기 하길 바라며 전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기자회견에 참가했지만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경찰로 보이는 누군가에게 험한 욕까지 듣고 결국 폭행을 당해 쓰러졌다. 우리 자식들(그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과 청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건과 노동자 구속사건 등 사건마다 구치소, 교도소, 경찰서부터 청와대, YS가 사는 상도동까지 다 다녔지만 한번도 욕을 듣고 폭행당한 적은 없다. 20년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다.
국회에 도착해 이후 일정을 기다리는 동안 김수환 추기경 선종기도를 위해 묵주를 돌리고 있는데 남자들 주변으로 연 하늘색 옷을 입은 누군가가 나오기에 봄이 왔구나 싶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여옥 의원이었다. 그때 3-40분전 전 의원 사무실 앞에서 벌어진 일로 격한마음이 들어 어른에게 이럴 수 있느냐 전 의원에게 항의하러 달려갔다. 그러나 이 와중에 멱살을 잡긴 했지만 경위가 달려와 막으면서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눈을 찌른 적은 결단코 없다. 국과수에서도 모든 조사를 다 했다. 내가 했으면 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비겁하게 성격적으로도 그렇게 못된다. 잘 걸어들어가길래 그 이후에도 국회에서 40분이 넘게 다른 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언론보도에 화가 나셨을 것 같다
=한쪽 주장만 듣고 말과 펜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 언론이 그렇게 하는걸 보니 보니 너무 서글펐다.
-칠순노인과 벌어진 일이 ‘테러’, ‘집단폭행’이 되어 수사당국까지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렸는데
=경찰 조사과정에서 ‘집단폭행’ 이런 이야기가 자꾸 대두되자 결국 조서에 지장도 찍지 않았다. 누구랑 공모한 적도 없을뿐더러 국회에 앞서 벌어진 사건이 없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밀고 댕기는 과정에서 멱살은 잡았다. 앞전 전여옥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에 너무 화나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뒤)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줄 알았는데 경찰서로 데려왔었다. 이후 수사본부가 꾸려졌다더라. 처음에는 자신들도 곤욕스러워 보였다. 다 위에서 시켜서 그런거 아니겠나.
ⓒ민중의소리
지병과 석달간의 수감생활로 인해 회복치료를 받고 있던 이정이 대표는 출소이후에도 책을 놓지 않고 있다고. 누워있는 이 대표의 병원 침대 한편에 박원순 변호사가 쓴 '희망을 심다'라는 책이 눈에 띈다.
'); }“이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공안사건이 되어버린 셈”
이정도로 수사본부를 차린다는 건 정권이 이 사건을 이용하는 것 밖에 안되는거다. 이 와중에 결국 하나의 각본이 짜여졌다는 것을 느꼈다. 보석을 아무리 신청해도, 적부심 과정에서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사건을 보면서 ‘폭행’이라고 말하지만 마치 공안사건이 되어버린 격이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나 전 의원측 주장대로 눈을 안찔렀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도 저는 당당했다.
-왜 이런 일이 터진것이라 보시나?
=용산참사 문제를 뒤로 감추고, 5.3동의대 사건을 부각시켜 우연하게 벌어진 사건에 나까지 끌고 들어온 게 아니겠나. 용산참사가 터지자 수습하기 위해 뭔가 어떻게 해보려다 아니나 다를까 동의대 사건을 다시 불거지게 하고 전여옥 사건을 매치를 시켰다. 그러나 결국 경찰도 검찰도 어려워했고, 심지어 검찰 조사도 하루만에 마무리 될 정도였다.
-아드님이 5.3동의대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걸로 안다
=당시 2학년이었는데 과 홍보부장이었다. 너무 사건이 크다보니 모두 얼어 있어 할수 없이 직접 나섰다. 핵심인물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이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은 청백리 시청공무원이어서 혹시 피해를 입을까봐 주변에선 다들 말렸지만 사실 부마항쟁때부터 거리집회가 있으면 몰래 달려가 참여하곤 했다. 종철이 죽을때도 크게 분노했다.
-아드님이 연관된 당사자로서 5.3동의대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
=광주항쟁과 6월항쟁이 벌어지면서 노태우가 대통령이 안되는건데 양 김씨가 단결하지 않아 결국 노태우정권이 들어섰다. 양 김씨가 하나로 합쳤다면 노태우 정권은 없었다. 이 와중에 89년 노동자들의 민주화투쟁으로 현대중공업에 전국의 시선이 몰려있었다. 경찰도 그곳에 다 가 있었다. 게다가 국회는 여소야대로 파행을 겪고 있었고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 등 까지 겹쳐 노동운동과 통일, 민주화 요구가 한꺼번에 터져나오자 정부는 공안사건을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5.3동의대 사건은 그 희생양이다. 당시 매트리스만 깔았으면 희생자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경찰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도 못한채 아무것도 없이 쳐들어왔다. 그나마 당시 동의대 출신 전경은 지리를 훤하게 알아 살았지만 동에 깔아야할 것을 서쪽에 깔고 서에 깔아야 할 것은 동쪽에 깔아 화재보다 떨어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오죽하면 당시 의경들도 양심선언까지 했겠나. 당시 사건에 대한 화인감정을 아직 안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사위원회에 진상규명 신청을 한 상황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몇 년 뒤 학교 휴교령을 해제되고 당시 학생들도 복학시켰다.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다 했다. 이후 정부에서 민주화보상법이 생겼지만 이미 문민정부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온 사안인 것이다. 이 과정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이휘호 여사, 이기택, 김광일 전 통일민주당 의원, 박관용 전 국회의장까지 이 사정을 다 안다.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5.3동의대사건은 독재정부 시절 시대적 희생양”
그런데도 5.3 동의대사건을 ‘사람죽인 학생들을 민주화로 만들었다’, ‘경찰 죽인 이들을 민주화했다’는 등 고의성과 정치성을 뒤집어 씌웠다. 2002년 4월에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 명이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되자 조선일보가 이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보도해 수차례 전화 끝에 강력하게 항의해 결국 정정보도를 받아냈다. 같은해 행자위 소속 한 한나라당 의원도 “사람죽인 XXX놈이 무슨 민주화냐”며 발언해 부산진구 유세에 왔을때 이회창 대표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며 그의 옷자락을 잡고 분통을 터트렸다. 아무런 변명도 못했다. 그 다음부터는 동의대 사건과 관련해 이의를 걸지 않았다.
ⓒ민중의소리
'전여옥 사건' 당시 국회에서 쓰러진 이정이 대표의 모습
'); }=동의대 사건 진상규명과 관련해 당시 김대중, 김종필 대표 등에게 국정조사를 요구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했다.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YS당사나 평민당에도 찾아가 점거농성을 벌였지만 서울 민가협 어머님들도 공화당 만큼은 가면 백골단에 맞아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대화가 될 것이라 믿고 직접 찾아갔다. 오히려 더 잘해줘서 놀랐다. 김종필 총재에게 이건 너무 잘못 된 것이다.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며 사인해달라고 호소해 결국 힘을 보태게 만들었다. 당시 김영삼 총재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라는 국회 연설을 들으며 부산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사망한 경찰 유가족들도 20년동안 챙겨 오셨다는데
=부산에 피해자 최동문 경위 등 2명의 유가족이 있었다. 추석 등 명절때마다 음식을 들고 찾아가 함께 이야기 나누며 서로 함께해왔다. 사실 피해자인 최동문 경위 어머니가 더 분노했다. 정권유지를 위해 그런거라고 했을 정도다. 병한이 어머님과 동문이 어머님과는 함께 진상규명을 하자고 힘을 모았다.
언젠가 동문이 어머니가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만나보니 집에 큰 우환이 생겼더라. 작은 아들은 구속되고 집은 경매에 넘어가 저당잡혀 100만원을 주며 나가라는데 통곡을 했다. 송기인 신부와 상의한 뒤 경찰청장을 만나 “이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경찰은 도대체 뭐하고 있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그 일로 모금운동이 벌어져 2000만원을 마련해 우암동 쪽에 전세를 구하게 됐다. 그러나 옥상에서 걸어내려오시다 사고로 돌아가셨다. 너무 안타깝다. 문현성당과 동항성당에 모셔 장례미사를 지냈다.
-전여옥 의원 등 한나라당이 5.3동의대 사건과 관련해 최근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6월처리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 잘 알아야 한다. 동의대 사건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때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김영삼 문민정부때부터 학생들이 복학되고 풀려나면서 점점 해결되어온 문제다. 게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도 대통령도 대법관들이 다 민주적으로 처리한 것인데 왜 이제와서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
당시 상황에 이해없이 정치적 악용하고 있다. 이미 명예회복까지 다 된 마당에.. 당시 일을 추진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지금으로 보면 한나라당 이었지 민주당이었나. 그때부터 석방, 복학까지 다 되어 온 것을 마치 국민의 정부에서 다 한 것처럼 호도하는 건 말도 안된다. 당시 이일에 관계되어 있던 인사들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있다.
-5.3동의대사건을 다시 정치이슈화 시키려는 이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는 없으신가?
=지금 동의대 사건을 재론하는 이들이 20년동안 최동문 경사 등 경찰유가족들이 힘들어할 때 뭐했나. 최 경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소주잔 한번 받아주었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년동안 대전에 한번 안간 사람이 최근 현충원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20년동안 가만히 있던 사람이.. 그동안은 도대체 뭐했나. 이런 비극적인 일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국회의원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만 하고 있다. 너무 엉터리 같은 세상 아닌가?
“20년간 뭐했나”,“너무 엉터리 같은 세상이다”
그리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더 하다. 5.3동의대 사건을 다시 부각시키면 국민들에 먹힐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국민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대통령 서거 장례식을 치루는 과정에서도 봤듯이 과거시대가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더라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희망을 가진다.
ⓒ이정이 석방대책위
과거 부산 민가협 상임대표 활동을 하던 시절 보라색 손수건을 머리에 두른 이정이 대표의 모습.
'); }-부산지역에서는 이정이 대표보다 어머님으로 더 알려져 있으시더라
=정주영 이병철 회장이 돈부자라면 난 자식부자다. 부끄럽지만 어디를 가나 ‘어머님’으로 통칭되더라. 미국과 유럽, 심지어 북측에 가서도 어머님으로 불리운다. 배도 안아프고 너무 많은 자식을 얻었다. 자식 부자다. 그동안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해온 것을 좋게 봐주셔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번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를 다녀갔었다. 함세웅 신부님이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을 건데 이 정부가 반대해서 못받았다며 안타까워해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모든 분들이 일한 것을 알고 있구나 감사했다. 내 한몸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민중을 위해 일해야 겠구나 싶었다.
-사법부는 피해자측의 진술을 우선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어떻게 평가하시나?
=보석이 몇 번 기각되면서 결과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솔직히 유감스럽다. 국회에 앞서 전여옥 의원 영등포 사무실에서 벌어진 폭행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주장을 했지만 한번도 반영된 적이 없다. 게다가 눈을 찌르거나 폭행을 공모한 적이 없다. 일방적인 한쪽 진술에 의존한 재판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전여옥 의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신가?
=전 의원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그렇게 정치의 장에 나가서 활동하는게 보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화여대에 똑똑한 KBS기자출신이어서 전 의원과도 충분히 이야기가 될 것으로 봤다. 인격이 있는 사람 아니었나. 5.3동의대사건과 관련해서도 말을 하면 통할 줄 알았지만 결국 영등포사무실에 찾아가서 당한 건 욕을 먹고 두들겨 맞았을 뿐이다. 국회에서도 멱살을 잠시 잡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 의원이 독설보다는 사랑부터 주는 것을 더 배웠으면 한다. 사랑을 주면 몇배로 사랑을 한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사랑을 줄줄 모르면 아무것도 없다.
-이후 계획에 말씀해달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법 개정안 처리가 6월 중에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요청도 재차 확인할 계획이다. 청와대에도 박형준 비서관을 통해 25장에 걸쳐 편지를 보냈다. 공권력은 또다른 공권력을 낳는다. 용산참사도 되풀이 하지말라고 썼다.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을 죄다 만날 생각이다. 하느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대화가 안될 것 같은 사람도 사랑하니 더 잘하더라. 그들을 만나 중재하고 설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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