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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준비생 김지윤이 ‘고대녀’가 된 까닭은?

[인터뷰] '고대녀' 김지윤씨

임승수(「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

입력 2009-12-28 15:45:11 l 수정 2011-02-25 23:04:15

한승수 전 총리를 꼼짝 못하게 만든 논리 정연한 언변, 고려대학교의 비민주적인 학교운영에 맞짱을 떠서 제적과 삭발도 불사했던 용기, 그리고 용산 참사 투쟁에 참여하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등,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투사 ‘고대녀’ 김지윤 씨를 지난 23일 고려대학교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대녀 김지윤씨

'고대녀' 김지윤씨. 그는 대학 입학 당시만 해도 MBC 피디수첩의 PD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고대녀, 출교, 삭발, 이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강철처럼 단련된 투사의 이미지요. 그런데 사실 출교될 때도 엄청 많이 울었고, 이번에 총학생회 선거에 낙선했을 때도 눈물이 많이 났어요. 원래는 낙선해도 안 울 줄 알았는데, 밤낮 다크서클로 줄넘기 할 정도로 선거운동을 함께 한 친구들을 보니까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2003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눈물 많은 김지윤 씨, 입학 당시에는 MBC 피디수첩의 PD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평범한 학생이었다. 언론인이 되고 시사교양프로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된다는 가벼운(?)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학생운동. 그런데 첫번째 개안(開眼)의 장소는 좀 생뚱맞게도 저 멀리 인도의 뭄바이였다.

“2004년 전 세계 사회운동진영이 함께 모이는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의 뭄바이에 갔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저를 지목하면서 자기 아들에게 돈을 받아오라고 구걸을 시키는 인도인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다른 한 쪽에는 거대한 최신식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데 말이죠.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10만 명의 사람들이 평화와 진보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인도인 불가촉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대규모로 행진하는 것도 보았고요.”

인도의 충격적인 사회 양극화 현장은 김지윤 씨의 머릿속에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바로 그 옆 포이동 판자촌의 풍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2005년 학교 차원에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기행을 간 김지윤 씨는 그 곳에서도 동일한 양극화 사회를 보게 된다. 세계 어디나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그러한 잘못된 현실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 곳곳에 있다는 반가운 사실. 이것이 김지윤 씨가 사회운동에 눈을 뜨게 만든 계기였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원래는 2006년에 해외유학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학생운동에 몸담은 학생으로는 드물게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학점이 좋은 김지윤 씨는 자신이 꿈꾸던 언론인의 삶을 위해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당시 학생회 재선거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학교의 부당한 행태에 맞서 투쟁을 벌이다가 출교를 당하게 된다.

“저는 학생회장 같은 것을 한 적도 없었고, 학생운동을 나름 열심히는 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는데요. 그래서 출교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렸고요. 유학을 가려던 계획도 다시 고민해야 했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험한 꼴을 당한 거죠. 그런데 2년 동안 투쟁을 하고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 FTA 반대 투쟁, 시사저널 파업 등에 함께 했습니다. 시사저널 분들은 저희 출교당한 고대생들을 지지방문하기도 하셨죠. 그러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결국 사회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던 김지윤 씨를 사회운동의 길로 내몬 것은 그 무슨 주변의 불온한(?) 선배도, 사회단체도 아니었다. 결국 잘못된 대학 사회의 현실, 그리고 잘못된 우리 사회의 현실이 김지윤 씨를 사회운동의 길로 내몬 것이다. 물론 그녀 자신도 잘못된 현실의 피해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마 그래서인가 보다. 그녀는 유독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촛불집회를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87년 6월 항쟁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와 비슷한 상황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꾸준히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대학생들에게 현실의 모순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함께 경험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총학생회 선거 당시의 김지윤씨

총학생회 선거가 진행되던 당시의 김지윤씨. 그는 "선거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고대 학우들은 사회참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 자신이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과연 그런 ‘경험’에 눈을 돌릴 틈이 있을까? 김지윤 씨가 자신의 입으로 얘기했듯이, 남학생들은 1학년 마치자마자 군대를 다녀와서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이른바 '좋은 스펙'을 위해서 복수전공을 하고 동아리 활동도 스펙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하게 되고, 놀아도 맘 편하게 노는 학생들이 없을 정도란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는 김지윤 씨.

“이번에 총학생회 선거를 하면서 희망3,000이라는 슬로건 하에 고대 학우 3,000명과 만나서 얘기하겠다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고대 학우들은 사회참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그리고 고대신문 설문조사에서도 나왔듯이 지난 총학생회의 사회참여에 대해 많은 지지를 보여줬고요. 최근에 고대에서 일하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학교 측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데요. 그 분들을 지지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며칠 만에 고대생 18,000명 중에서 10,000명이 넘는 분들이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분명 사회참여에 대한 지지는 적지 않은 것 같아요. 단지 자신의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도 참가하고 서명도 많이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김지윤 씨는 자신도 1학년 때 집회 나가자는 권유를 받으면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도망가기도 했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표지

'고대녀' 김지윤씨는 책을 한권 추천해달라는 말에 존 몰리뉴가 쓴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를 권했다.

현재의 상황이 어렵다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인내심을 가지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차근차근 해 나가면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한 권 추천해 달라는 말에, 책을 많이 안 읽었다고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 권을 추천한다.

“제가 1학년 때 읽은 책인데, 존 몰리뉴가 쓴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왜 사람들은 월요일을 싫어할까라는 내용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냈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김지윤 씨는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거의 다 채운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향후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른 졸업생들과의 차이점이라면, 그녀에게는 다른 대학생들은 생각지도 못한 더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지윤 씨와의 짧은 만남 후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가 졸업 후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하든 지지해줄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그 선택은 단순히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넘어,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나온 선택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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