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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의 3주

'서울광장사용조례' 주민발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장명구 기자 jmg@vop.co.kr

입력 2010-01-19 14:59:13 l 수정 2010-01-22 14:29:11

2009년 12월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긴장과 초조함이 감돌았다. 서울시민의 1%인 8만9백58명 이상을 받아야 하는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이하 서울광장사용조례)’ 개정주민발의 서명운동. 하지만 서명운동 종료일인 이날 아침까지도 8만명 정도에 그쳐 목표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표를 넘기지 못하면 지난 6개월간의 피땀어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판이었다.

과연 목표를 다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침에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천지사방에서 서명용지가 담긴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출근길에 짬을 내어 직접 가지고 온 시민들도 있었다.

텅빈 시청광장

텅빈 서울시청광장

한 시민은 급하게 출장길에 나서다보니 미처 참여연대 사무실에 들르지 못할 것 같았다. 경복궁역 근처로 상근자를 불러내서 전달하려 했으나 전화도 내내 통화중이었다. 오전 10시경 마침 내 전화가 연결된 시민은 “경복궁역 지하 1층 공중전화박스 전화번호부 사이에 서명용지를 끼워놓고 왔다”며 찾아가라고 전했다. 마치 007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순간이었다.

오전 중에 가뿐히 목표인 8만9백58명을 넘어서더니 하루종일 자그마치 1만여 장의 서명용지를 더 채울 수 있었다. 참여연대 상근자들은 그제서야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쾌재를 불렀다.

“처음엔 가능성이 전혀 안 보였어요. 작년 12월 19일만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죠. 뛸 듯이 기뻐요.”

1천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개인 최다 서명기록을 내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이용길(60, 도봉구) 씨는 긴박했던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서울광장사용조례 개정운동은 지난해 6월 10일 등록공고를 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주민발의 대표자 증명서를 발급받고,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수임인을 등록하는 등 절차를 따지다보니 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7월부터나 가능했다.

보름 가까운 시간을 서류절차에 허비하고 5개월여 동안 받은 인원이 6만여 명, 그러니 남은 10일 동안 2만 명 이상을 채운다는 것은 이씨의 말마따나 누가봐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무엇일까?

“처음 시작할 때는 1%라고 하니까 ‘그 까짓 거 못 하겠어?’라고 생각했죠.”

서울광장사용조례 서명운동을 일선에서 담당했던 신미지 참여연대 행정감시팀 간사는 초반에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조례 개정을 위해 주민 발의를 한다는 것은 요건을 갖추는 것부터 간단치 않았다. 일단 무한정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6개월이라는 시간제약이 따른다. 시민들은 주소나 전화번호까지는 적어도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는 것을 꺼려했다. 개인정보유출 걱정 때문이다. 또 만 19세 이상으로 참가대상이 제한돼 있다.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한 서명도 불가능해 반드시 자필 서명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보통의 열의가 아니면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종료일을 3주 남짓 남겨놓고 참여연대는 지하철과 거리 캠페인에 나섰다. 당분간 필수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가 정지됐다.

1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지하철 공익근무 요원들의 위협(?)을 받아가면서 참여연대 간사들은 숨바꼭질을 되풀이해야 했다. “너희들이 6·25를 겪어봤어?”라며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대는 ‘반공할아버지’들과도 맞닥뜨렸다.

서울광장사용조례 서명운동

서울광장사용조례 서명운동



하지만 서울광장사용조례 운동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훨씬 많았다. 한번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서명을 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무슨 서명인 줄 알고 하시냐”라며 의아하다는 듯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는 “당연히 데모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19년생 백발의 할머니도 길거리 서명에 동참했다. 하루 차이로 생일이 넘어 서명할 수 있다고 기뻐하는 고 3 학생도 있었다. 뉴욕에 출장 중인 서울시민이 서명용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수녀원의 수녀님들도 함께 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수고한다며 따뜻한 호빵이나 음료수를 사다주고 가는 일은 다반사였다.

장정욱 행정감시팀 간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광장조례 운동에 한 몫 톡톡히 했다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광화문 광장에서 드라마 ‘아이리스’ 찍고 스노보드 대회 열고. 시민들에게는 닫혀 있고 큰 자본에게는 열려 있는 것이다. 스노보드 대회 때 광장 사용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서명을 많이 받았어요.”

서명을 받기 위해 대규모 행사장은 물론 아무리 작은 모임까지도 빼놓지 않고 기꺼이 발품을 팔았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노동자대회 같은 큰 행사에서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의 크고 작은 연말 후원의 밤 행사까지 서울시민들이 모이는 공간이면 몇 십장이라도 다 받아오고는 했다. <민중의소리>가 제작한 77일간의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을 다룬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 첫 국회 시사회장에서도 서명용지를 돌리는 열성을 발휘했다.

장 간사는 “민주주의 상징인 서울시청광장을 헌법을 넘어서서 조례로 막는다는 것에 시민들이 분노했던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이런 여론이 모아지면서 성공하게 된 것 같다”고 공로를 서울시민들에게 돌렸다.

장 간사는 또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수임인’들이 숨은 공로자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7월 14일 1차로 등록된 ‘수임인’은 모두 1556명. 나중에는 더 추가돼 2천여 명을 넘어섰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유효진 씨도 수임인 중 한 사람이다. 유 씨는 집 근처인 서울대 입구역 앞에서 나홀로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극성(?)을 부렸다.

서울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

서울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

밤늦게 서명운동을 마무리할 때 쯤 되면 ‘나홀로’ 서명운동이 어느새 7~8명이 함께 진행하는 집단 서명운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밤 12시까지 악착같이 받았다. 이틀동안 서울대 입구역에서만 무려 2천여 명 이상의 서명을 받는 쾌거를 올렸다.

유 씨는 한 자리에 머문 것이 아니라 서울시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이해찬 전 총리 강연회를 비롯해 국민참여당 발기인대회, 시민주권모임 창립식 등에 찾아가 주최측의 양해를 구하고 서명을 받았다.

유 씨는 신림역 부근에서 “너무 고생하는데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며 물과 음료수를 사주고 갈 때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명운동을 하는데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유씨는 가장 어려웠던 점을 “시민들이 전화번호와 주소까지는 잘 써 주다가도 주민등록번호는 겁이 나서 거의 안 해주게 된다”며 “100명 중에 1~2명 받는 정도”라고 토로했다.

한 번은 서울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잠실 야구장에 서명을 받으러 갔다가 운동장 관계자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노점상들 하고는 장사에 방해된다고 못하게 하는 바람에 멱살잡이까지 하며 싸우기도 했다. 결국 유 씨는 “눈물을 머금고 철수해야 했다”며 씁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추모하러 오신 분들이 많이 협조적이었다”라며 “감동을 많이 받고 보람도 느끼고 행복했었다”고 서명운동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참여연대와 2천여 명의 수임인들, 서울시민들이 하나되어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서울광장사용조례 운동은 기적적으로 주민발의에 성공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과연 한나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시의회(100명 중 94명이 한나라당 소속)에서 광장조례안이 통과될 수 있을까.

유효진 씨는 “한나라당은 더 이상 개인적 욕심이나 기득권을 포기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라며 “진정한 주인이 시민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고 조례안을 통과시켜 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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