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시장 선거와 일미동맹, 그리고 오키나와의 미래

[연속기고-오키나와로부터 듣는다] 왜 지금 후텐마․헤노코가 정치적 쟁점인가

아라사키 모리테루(新崎盛暉) 오키나와 대학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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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고시라는 오키나와 북부 작은 지자체의 시장선거가 일본 전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가? 그것은 반환이 예정되어 있는 후텐마기지 대체시설의 건설 예정지가 바로 나고시의 헤노코 연안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후텐마기지를 폐쇄․반환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일미 양 정부가 생각한 것은 1996년의 일이었다.

그 1년 전에 미군들에 의한 소녀성폭행사건을 직접적인 계기로 하여 폭발한, 미군기지의 축소․철거와 일미지위협정의 재검토를 요구한 오키나와의 민중운동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군은 그것을 대체할 기지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는 민중의 반발을 불러 왔고 반대투쟁도 계속되어 왔지만, 13년에 걸친 일본정부의 ‘채찍과 당근’ 정책에 의해 오키나와현지사나 나고시장은 민중의 반대를 억눌렀고, 활주로의 위치를 약간 앞바다 쪽으로 옮긴다는 조건부로 신기지 건설을 수용했던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 나고시장으로 선출된 이나미네 스스무 후보

일본 오키나와 나고시장으로 선출된 이나미네 스스무 후보ⓒ 이나미네 스스무 후보 홈페이지



그것이 왜 지금 다시 정치의 쟁점이 된 것인가. 그것은 민주당이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적어도 후텐마 대체시설를 국외나 현외로 이전하겠다고 오키나와 민중들에게 호소하였고, 그것이 작년 8월의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이전에 민주당은 일본 전국에서 보자면 야당 제1당으로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키나와에서의 지지기반이 반드시 크다고 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중의원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고, 현의회의 의원 수도 사민당이나 공산당 혹은 지역정당인 사회대중당 정도밖에 없었다. 이 정당들이 공동으로 투쟁해야 겨우 자민당계에 대항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민주당이 오키나와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오키나와의 민중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후텐마의 국외․현외 이전’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오키나와의 4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2석, 사민당 1석, 국민신당 1석으로 현재의 집권 여당이 의석을 독점하였고, 비례구에서는 오키나와에서 입후보한 공산당의 후보가 의석을 차지했다. ‘오키나와현내로 이전해도 걱정 없다’고 주장해 온 전 집권 여당의 후보들은 전원 낙선했다. 이렇게 해서 후텐마 이전문제는 신정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되었다.

후텐마를 둘러싼 일미의 갈등

그러나 민주당은 사전에 어디로 이전할지에 대한 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정권교체(오바마 정권의 등장)에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미군재편계획에는 오키나와 해병대의 일부를 괌으로 이전하는 대신, 괌 미군기지 건설 경비의 약 60%를 일본이 부담한다는 합의도 포함되어 있다.

민주당은 해병대의 규모를 다소 축소한다든가 일본의 재정 부담을 다소 늘리는 것으로 후텐마기지 전체를 괌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기노완시(현재 후텐마기지의 소재지)의 이하 요우이치(伊波洋一)시장은 미군측의 괌 기지정비계획 공문서의 분석을 통해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일본을 방문한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전 정권과의 합의를 구실로, 후텐마기지가 헤노코로 이전할 수 없다면 전부 파기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정권이 교체되면, 당연히 외교정책의 변경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은 전 부시정권이 폴란드나 체코와 합의한 미사일 방위시스템 설치계획을 일방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그렇게는 아니라 하더라도, 주일미군 재편계획은 오키나와의 부담경감을 위해 제기된 것이 아니며, 미국측의 군사적 필요성에 역점을 두고 책정된 것이다. 그런 미군재편계획을 스스로 파기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인을 포함한 일본의 정치 엘리트들은 이러한 미국의 위협에 약하다. 그것이 속보이는 엄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미국을 화나게 하면 일미동맹이 위태로워진다며, 하토야마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고 작은 언론에 넘쳐나고 있다. 60여 년에 걸쳐 이어져 온 대미종속적 관계 속에서 자라 온 전후일본의 정치 엘리트들은 자유로운 발상을 위축시키고 항상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습성을 몸에 지니고 있다. 또한 전 정권 하에서 미국정부 관계자들과 현재 계획을 수립했던 방위관료들도 자신들의 계획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외무대신이나 방위대신 등 관계 각료들에게도 동요가 확산되었지만, 하토야마 수상은 간신히 버티고 서서, 현행안대로 연내(2009년)에 결말을 보자는 목소리를 억누르고 반년을 보류시켰다. 그러나 뚜껑을 연 판도라의 상자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후텐마문제는 전후 일미관계=일미동맹을 근본적으로 되묻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구조적 오키나와 차별 위에 자리 잡은 일미동맹

전후 일본의 정치는 일미관계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그리고 전후 일미관계는 ‘승자인 미국의 권리행사를, 패자인 일본에게 베푸는 은혜라는 픽션’으로 은폐해 왔다. 예컨대, 미국이 아시아 지배를 위해 필요로 하는 주일미군기지를, 일본을 지키기 위한 기지(은혜)라는 식으로 말을 꾸며대는 것이 그것이다. ‘핵우산’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일미관계의 본질적 속성은 대미종속과 구조적 오키나와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적 오키나와 차별이란 대미종속의 모순을 오키나와에 전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오키나와는 일본이 독립한 후에도 20년 넘게 미군지배 하에 방치되어 왔다. 그리고 (일본 본토에서) 주일미군기지를 둘러싼 사고나 미군병사의 범죄 등의 문제가 반미 기운을 일으키면, 해병대 등의 지상전투부대를 오키나와로 이전하는 식으로 (본토내) 반미운동의 예봉을 피해왔던 것이다. 1972년의 오키나와가 반환되면서 주일미군기지의 75%가 국토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집중된 상태가 된 것도 구조적 오키나와 차별을 표현하고 있다.

후텐마기지는 그 상징적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후텐마기지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에서 미일 양군의 전투상태가 계속되고 있던 1945년 6월, 일본을 공격하기 위한 기지로서 건설되었다. 일본을 지키기 위한 기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1960년 일본에서 이주해 온 해병대의 항공기지가 되었다. 후텐마기지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가 된 것은 오키나와반환 후인 1970년대의 일이다. 구조적 차별 위에 자리 잡은 일미동맹의 실태는 시간을 들여 검증하면 할수록 명확해진다.

오키나와와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미래

여기까지 오게 되면, 특히 나고 시장선거의 결과로 기지반대파가 당선된 이상, 사태는 돌이킬 수 없다. 후텐마기지는 어딘가로 이전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에 대해 미국이 고집하고 있는 의미, 후텐마 대체시설의 역할, 나아가 일미동맹의 의미를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군사전문가라 칭하는 어용학자 안에는 오키나와의 미해병대가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변은 주한미군의 대폭 축소를 수반한 미군재편 하나만 보더라도 통용될 수 없다. 일미동맹은 일미 2국간만의 관계가 아니다. 한국, 북한, 중국, 타이완 등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에 의해 규정되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한반도 정세다.

아라사키 모리테루(新崎盛暉) 오키나와대학 교수

아라사키 모리테루(新崎盛暉) 오키나와대학 교수ⓒ 민중의소리

그 때문에라도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6자회담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북미교섭,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남북대화 등 군사적 균형에 대한 의존을 넘어선 다각적인 대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간, 정부간의 대화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선 민중 상호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축적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들은 각자의 정권에 대한 적극 대응과 동시에, 민중 자신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연대구축을 향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과 타이완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양자의 경제적 상호의존이나 인적 교류는 군사력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에야마, 미야코 등 선도(先島)라고 불리는 오키나와 남부권 제도와 타이완 북부지역 사이에서는 공동의 생활권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평화로운 아시아권이야말로 미국의 군사거점이라는 멍에로부터 오키나와를 해방시키게 될 것이다./번역 정영신(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아라사키 모리테루(新崎盛暉).
73세, 오키나와대학 명예교수. 저서에 『基地の島 沖縄からの問い』, 『沖縄現代史』등 다수가 있음. 『오키나와 현대사 신판』은 한글로 번역되었다(『오키나와 현대사』, 정영신/미야우치 아키오 옮김, 2008, 논형).


<아라사키 모리테루(新崎盛暉) 오키나와 대학 명예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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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 2010-01-27 18:12:11
  • 최종업데이트 : 2010-01-28 18: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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