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정치에 대한 저항권을 행사한다
[연속기고-오키나와로부터 듣는다] 오키나와 민중들은 미군 기지 철거를 위해 싸운다
2010년 1월 24일 이미 국내외의 언론들이 보도한 것처럼, 나고시장선거에서 혁신 후보, 즉 후텐마(普天間) 기지의 나고시(名護市) 헤노코(邊野古)로의 이전 반대(현 외 이전) 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씨가 '현 내 이전'을 주장한 현직 시장인 시마부쿠로 요시가즈(島袋吉和)를 누르고 당선했다. 그 표 차이는 1,588표 (이나미네 -17,950표, 시마부쿠로 -16,326표)로, 투표 총수는 34,552표였으며 투표율은 76.96%였다.
1. 나고시민은 14년 전인 1996년, 기노완시(宜野灣市)에 있는 미 해군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의 이전 후보 장소로 지정된 후 민의가 찬반으로 입장이 갈려 문제된 것은 이번이 네번째다. 첫번째는 1997년이다. 당시에는 '헤노코로의 이전'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서 '반대'가 승리했다. 그러나 당시 시장선거에서는 이전에 찬성하는 시장이 당선됐고 주민들의 투표 결과는 무시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일본 정부에 따른 헤노코의 새 기지건설 계획이나 환경영향평가 등이 진행되어왔다.
그러다 나고시민이나 오키나와현민들의 문제제기로 2009년에 헤노코 기지 부근에 실시된 환경영향평가의 결과가 오키나와현 지사에게 제출됐다. 현 지사는 그동안 새 기지건설 계획으로 비롯된 소음, 오염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번 네번째 민의를 묻는 선거는 민주당 연립 정권이 아직 미일간에 합의로 정해지지 않는 헤노코 이전 문제를 결판 짓는 장이었다. 그리고'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반대(현 외 이전)' 입장의 이나미네 후보가 이긴 것이다.
2. 지금까지 오키나와 모든 선거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미군 기지를 수용하는 것이 '지역진흥책'이 되는지, 아니면 인권무시 및 공해를 초래하는 미군 기지의 철거로 '평화와 자립 경제를 만들어내자'는 것었다.
2009년 중의원선거로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 정권은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현으로 꼽히는 오키나와에 '돈 뭉치'를 통한 진흥책으로 현혹하면서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해왔다.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의도하지 않고 피해를 끼쳤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것이 아니고, '미리 배상금을 지불하니까 당신의 뺨을 치게 해달라'는 식이었다. 때문에 오키나와는 매번 '국내의 식민지'라고 불려왔다.
본국(일본)에서 보면 식민지 속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1950년대 본국에서 反미군기지 운동이 고조됐을 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를 마치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기지를 옮겨왔다. 미군은 전시, 전후에 걸쳐 오키나와에 주민들의 사유 재산이었던 토지를 약탈했으며 주민들은 내쫓아 기지를 만들었다. 현재 일본 전국에서 미군 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몰려있다.
3. 오키나와에서는 도로 설비 등 토지 개발을 하려고 해도 미군 기지에 막혀 제대로 된 경제 발전이 진행되지 못한다. 480ha의 후텐마 기지는 기노완시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고 시 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 내에서 일하는 일본인은 겨우 20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후텐마 기지가 차지하는 토지 92%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그 비용은 일본 정부에서 지주인 3,031명에게 연간 65억엔을 지불하고 있다. 96년 헤노코를 포함한 오키나와의 북부 지역에 미군 후텐마 기지 수용과 바꿔 10년간 1000억엔 가량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재 현 내의 실업률은 약 7%, 나고시의 실업률은 12.5%이다. 일본 정부가 여러가지 부흥책이나 보조금을 투입시켜 마지 오키나와현이 풍족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군부대와 관련된 수입은 현의 전체 수입 중 5.4% 밖에 되지 않는다.
4. 미국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미 해군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 상공을 헬리콥터로 시찰하면서 "이렇게 위험한 기지가 있을 수가 없다"고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말대로 기지의 펜스 주변에 9만여명의 시민이 생활하고 있고 121곳 이상의 공공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그 안에는 학교나 오키나와 국제대학, 육아보육 시설, 병원, 자치회 사무소, 쇼핑센터, 시청, 시민회관 등이 밀집해 있다. 후텐마 비행장의 활주로는 길이 2800m, 폭 46m이며, 그 안에는 KC130 등의 수송기가 15대, CH53이나 CH46등 과 같은 헬리콥터가 56대, 총 71대가 상주 배치되어 있다. 주일미군기지에서도 이와쿠니 (岩國) 비행장과 맞먹는 해군 해병대 항공 기지다.
이러한 후텐마 비행장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든지 항공기가 날아가게 되면 민간주택지역 상공을 날아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소음공해가 일어난다. 항공기 소음발생 회수에 대한 통계에 따르면 보통 연간 2만 회에서 2만 5천회이며 많을 때는 3만회에 달한다. 하루 당일만 보면, 주말은 비행수가 적은 날이 많지만 평일에는 하루에 최대 300회 가량 비행한 적이 있다. 더구나 야간 비행으로 인한 수면 방해는 주민들의 건강이나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5. 항공기 추락과 같은 사고는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귀한 1972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72회 가량 발생했다. 이는 평균 1년당 약 2.2회다. 특히 2004년 8월 13일에 일어난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후텐마 기지 소속의 CH53헬기가 추락했던 사고는 시민들을 공포에 빠트리게 했다. 그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는 소음 공해와 함께 항공기 추락에 대해 두려워 하게 됐다. 이 사고에서 다행히 학생이나 시민들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1959년 6월 30일 오키나와현 이시카와시(石川市)의 미야모리(宮森) 초등학교에 미군의 제트기가 추락했던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가데나 미군 기지 소속의 F100 전투기가 비행 훈련 중에 폭발을 일으키고 주변 민가를 태우면서 수업시간 중이던 미야모리 초등학교 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망자는 초등학교 학생 11명을 포함해 17명이, 부상자는 210명(그 중 아이들이 156명)이었다. 파일럿은 탈출해서 무사했다. 이 사건은 세계 항공 역사상 보기 드문 대참사로 국내외에 보도됐다.
6. 이나미 요이치(伊波洋一) 기노완시장은 이 위험한 후텐마 기지가 한 시라도 빨리 철거나 폐쇄, 혹은 국외이전을 촉구하며 미국 정부에 매년 이 같은 요구를 직접적으로 해왔다.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크지 않음에도 시민들은 시장의 이러한 행동에 큰 격려를 보냈다. 미일 양국이 맺은 '미일안전보장조약' 중 '미국의 군부대는 일본 내에서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제6조)는 조항에 따라 일본 정부는 미군에게 토지를 제공해야 한다. 조약에 따라 기지 문제는 미일양국이 관여하긴 하지만 미국 정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마치 종속국과 같아 과연 '주권 있는 국가'이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1960년 안보조약개정 후 40년이 경과하는 현재까지, 외국의 군대를 일본이 안는다는 그 자체는 이상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7. 일본 본토에서는 미군 시설이 대부분 국유지이기 때문에 정부가 문제 없이 토지를 제공할 수 있지만 오키나와의 미군시설은 국유지와 시읍면 등의 공유지, 사유지 등 3곳에 포진되어 있다. 후텐마 기지의 경우는 92%가 사유지이며 이를 일본 정부는 개인과 임대 계약을 맺어 차용한 후 미군시설로 사용하게 했다.
만약 시설 내의 토지 지주가 정부와의 임대 계약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 토지 수용위원회는 계약을 거부한 지주와 정부, 오키나와 방위성으로 불러 공개 심리를 진행한다. 방위성측은 안보조약에 따라 토지를 시설로서 안정적으로 미군에 사용시키는 것이 일본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약을 거부한 지주는 군사기지를 위한 토지제공은 헌법의 평화이념, 헌법9조에 반하는 것이며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고 반박한다. 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심리 과정을 방청하기 위해 몰린다. 지금까지 현 토지 수용위원회의 결정을 보면 모두 방위성측에 따라 토지의 강제 사용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방위성측의 10년 토지사용 기한 요청을 5년으로 줄여 지주의 요구를 참작시킨다.
우리들은 군용 토지사용을 거부한 지주를 '반전(反戰)지주'라고 부르고 있다. 후텐마 기지와 가데나 기지에도 반전지주가 있으며 그 수만해도 몇 백명에 달한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몇 천명의 '1평 반전지주'들도 있다. 반전지주와 함께 같이 공개 심리에서 반대입장을 밝히고 평화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1평 반전지주들은 반전지주의 기지 내 토지를 공동으로 구입한 1평의 토지 지주로서, 소유권을 갖고서 공개 심리 뿐 아니라 다양한 반전평화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8. 우리가'후텐마 미군 기지에서 폭음을 없애는 소송단' (약칭:후텐마기지폭음소송단)을 만든 것도 후텐마 기지의 소음 공해를 없앨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기지를 철거시키는 것이 평화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가데나(嘉手納) 미군 비행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소음 소송을 벌이고 있다. 우리와 함께 서로 도우며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2002년 10월 29일 후텐마 비행장 주변에 사는 한 기노완 시민은 "조용한 나날을 되돌려달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후텐마 미군 기지 소음 금지 등 청구'를 나하(那覇) 지방법원 오키나와 지부에 제소한 바 있다. 원고는 총 1세부터 81세까지의 주민, 404명이다.
2008년 6월 26일, 나하지방재판소에서 나온 판결 공판에서 원고 392명 (사망자 등으로 감소) 전원이 소음으로 피해를 받았다는 인정을 받게 된다.
나하지방재판소의 (1심)판결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소음 지수(WECPNL) 75이상의 지역에 대해 일본정부가 설치하고 관리한 부분에 하자가 있어 위법이라고 인정함.
2) WECPNL 수치 75구역에 해당하는 원고에게는 1일 당 100엔, WECPNL 80구역은 1일 당 200엔의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총 금액 1억4,000여만엔)
3)장래 예측분의 배상 청구와 함께 야간 및 새벽의 비행 금지 청구는 기각함.
4) 헬기의 저주파 소리가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인정 되지 않는다.
5) 피고(정부)의 '위험 접근 법리' 적용에 의한 일본 정부의 소음 발생에 대한 면책은 부정.
6) 일본 정부에 의한 지속적인 소음측정과 기록, 소음의 경감 조치에 대한 청구는 기각.
* 피고인 후텐마 기지사령관에 대한 소음발생 책임을 묻는 재판에서 2004년 9월 16일에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야간 비행 금지'청구에 대해 재판관은 '미국은 일본의 권력이 미치지 못한다 는 '제3자행위론'을 이유로 들어 기각했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다른 소음 소송도 이 같은 이유로 기각되고 있다.
현재 원고와 피고 모두가 후쿠오카(福岡) 고등 재판소에 항소 중이라 올해 6월에도 판결이 있을 예정이다. 나고시장선거에서 '헤노코 반대' 를 명확히 해 당선한 이나미네 시정의 탄생으로 후텐마 기지의 위험성.위법성을 해결하기 위한 향방은 사법부가 이 판결에 대해 어떠한 판결을 내릴 것이냐에 있다. 그 판결의 내용은 후텐마-아시아의 미군 재편을 변화시키는 등의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번역 박상희 기자
<에노카와 야스쿠니(榮野川安邦) 후텐마기지폭음소송단 간사 >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미국 병사에 의한 여아폭행 사건에 항의하는 오키나와현민총궐기 집회 (1995년 10월21일, 오키나와(沖繩)ⓒ 민중의소리
그러다 나고시민이나 오키나와현민들의 문제제기로 2009년에 헤노코 기지 부근에 실시된 환경영향평가의 결과가 오키나와현 지사에게 제출됐다. 현 지사는 그동안 새 기지건설 계획으로 비롯된 소음, 오염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번 네번째 민의를 묻는 선거는 민주당 연립 정권이 아직 미일간에 합의로 정해지지 않는 헤노코 이전 문제를 결판 짓는 장이었다. 그리고'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반대(현 외 이전)' 입장의 이나미네 후보가 이긴 것이다.
2. 지금까지 오키나와 모든 선거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미군 기지를 수용하는 것이 '지역진흥책'이 되는지, 아니면 인권무시 및 공해를 초래하는 미군 기지의 철거로 '평화와 자립 경제를 만들어내자'는 것었다.
2009년 중의원선거로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 정권은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현으로 꼽히는 오키나와에 '돈 뭉치'를 통한 진흥책으로 현혹하면서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해왔다.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의도하지 않고 피해를 끼쳤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것이 아니고, '미리 배상금을 지불하니까 당신의 뺨을 치게 해달라'는 식이었다. 때문에 오키나와는 매번 '국내의 식민지'라고 불려왔다.
본국(일본)에서 보면 식민지 속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1950년대 본국에서 反미군기지 운동이 고조됐을 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를 마치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기지를 옮겨왔다. 미군은 전시, 전후에 걸쳐 오키나와에 주민들의 사유 재산이었던 토지를 약탈했으며 주민들은 내쫓아 기지를 만들었다. 현재 일본 전국에서 미군 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몰려있다.
3. 오키나와에서는 도로 설비 등 토지 개발을 하려고 해도 미군 기지에 막혀 제대로 된 경제 발전이 진행되지 못한다. 480ha의 후텐마 기지는 기노완시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고 시 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 내에서 일하는 일본인은 겨우 20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후텐마 기지가 차지하는 토지 92%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그 비용은 일본 정부에서 지주인 3,031명에게 연간 65억엔을 지불하고 있다. 96년 헤노코를 포함한 오키나와의 북부 지역에 미군 후텐마 기지 수용과 바꿔 10년간 1000억엔 가량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재 현 내의 실업률은 약 7%, 나고시의 실업률은 12.5%이다. 일본 정부가 여러가지 부흥책이나 보조금을 투입시켜 마지 오키나와현이 풍족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군부대와 관련된 수입은 현의 전체 수입 중 5.4% 밖에 되지 않는다.
4. 미국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미 해군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 상공을 헬리콥터로 시찰하면서 "이렇게 위험한 기지가 있을 수가 없다"고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말대로 기지의 펜스 주변에 9만여명의 시민이 생활하고 있고 121곳 이상의 공공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그 안에는 학교나 오키나와 국제대학, 육아보육 시설, 병원, 자치회 사무소, 쇼핑센터, 시청, 시민회관 등이 밀집해 있다. 후텐마 비행장의 활주로는 길이 2800m, 폭 46m이며, 그 안에는 KC130 등의 수송기가 15대, CH53이나 CH46등 과 같은 헬리콥터가 56대, 총 71대가 상주 배치되어 있다. 주일미군기지에서도 이와쿠니 (岩國) 비행장과 맞먹는 해군 해병대 항공 기지다.
미국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미 해군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 상공을 헬리콥터로 시찰하면서 "이렇게 위험한 기지가 있을 수가 없다"고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민중의소리
이러한 후텐마 비행장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든지 항공기가 날아가게 되면 민간주택지역 상공을 날아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소음공해가 일어난다. 항공기 소음발생 회수에 대한 통계에 따르면 보통 연간 2만 회에서 2만 5천회이며 많을 때는 3만회에 달한다. 하루 당일만 보면, 주말은 비행수가 적은 날이 많지만 평일에는 하루에 최대 300회 가량 비행한 적이 있다. 더구나 야간 비행으로 인한 수면 방해는 주민들의 건강이나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5. 항공기 추락과 같은 사고는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귀한 1972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72회 가량 발생했다. 이는 평균 1년당 약 2.2회다. 특히 2004년 8월 13일에 일어난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후텐마 기지 소속의 CH53헬기가 추락했던 사고는 시민들을 공포에 빠트리게 했다. 그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는 소음 공해와 함께 항공기 추락에 대해 두려워 하게 됐다. 이 사고에서 다행히 학생이나 시민들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1959년 6월 30일 오키나와현 이시카와시(石川市)의 미야모리(宮森) 초등학교에 미군의 제트기가 추락했던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가데나 미군 기지 소속의 F100 전투기가 비행 훈련 중에 폭발을 일으키고 주변 민가를 태우면서 수업시간 중이던 미야모리 초등학교 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망자는 초등학교 학생 11명을 포함해 17명이, 부상자는 210명(그 중 아이들이 156명)이었다. 파일럿은 탈출해서 무사했다. 이 사건은 세계 항공 역사상 보기 드문 대참사로 국내외에 보도됐다.
6. 이나미 요이치(伊波洋一) 기노완시장은 이 위험한 후텐마 기지가 한 시라도 빨리 철거나 폐쇄, 혹은 국외이전을 촉구하며 미국 정부에 매년 이 같은 요구를 직접적으로 해왔다.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크지 않음에도 시민들은 시장의 이러한 행동에 큰 격려를 보냈다. 미일 양국이 맺은 '미일안전보장조약' 중 '미국의 군부대는 일본 내에서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제6조)는 조항에 따라 일본 정부는 미군에게 토지를 제공해야 한다. 조약에 따라 기지 문제는 미일양국이 관여하긴 하지만 미국 정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마치 종속국과 같아 과연 '주권 있는 국가'이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1960년 안보조약개정 후 40년이 경과하는 현재까지, 외국의 군대를 일본이 안는다는 그 자체는 이상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1월 23일 나고시 오오키타 사거리에서 진행된 마지막 선거운동 모습. 현수막 문구에는 "아름다운 바다에 기지는 필요없다. 후텐마 기지는 무조건 철거해야"라고 적혀 있다.ⓒ 후텐마폭음소송단 제공
7. 일본 본토에서는 미군 시설이 대부분 국유지이기 때문에 정부가 문제 없이 토지를 제공할 수 있지만 오키나와의 미군시설은 국유지와 시읍면 등의 공유지, 사유지 등 3곳에 포진되어 있다. 후텐마 기지의 경우는 92%가 사유지이며 이를 일본 정부는 개인과 임대 계약을 맺어 차용한 후 미군시설로 사용하게 했다.
만약 시설 내의 토지 지주가 정부와의 임대 계약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 토지 수용위원회는 계약을 거부한 지주와 정부, 오키나와 방위성으로 불러 공개 심리를 진행한다. 방위성측은 안보조약에 따라 토지를 시설로서 안정적으로 미군에 사용시키는 것이 일본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약을 거부한 지주는 군사기지를 위한 토지제공은 헌법의 평화이념, 헌법9조에 반하는 것이며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고 반박한다. 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심리 과정을 방청하기 위해 몰린다. 지금까지 현 토지 수용위원회의 결정을 보면 모두 방위성측에 따라 토지의 강제 사용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방위성측의 10년 토지사용 기한 요청을 5년으로 줄여 지주의 요구를 참작시킨다.
우리들은 군용 토지사용을 거부한 지주를 '반전(反戰)지주'라고 부르고 있다. 후텐마 기지와 가데나 기지에도 반전지주가 있으며 그 수만해도 몇 백명에 달한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몇 천명의 '1평 반전지주'들도 있다. 반전지주와 함께 같이 공개 심리에서 반대입장을 밝히고 평화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1평 반전지주들은 반전지주의 기지 내 토지를 공동으로 구입한 1평의 토지 지주로서, 소유권을 갖고서 공개 심리 뿐 아니라 다양한 반전평화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8. 우리가'후텐마 미군 기지에서 폭음을 없애는 소송단' (약칭:후텐마기지폭음소송단)을 만든 것도 후텐마 기지의 소음 공해를 없앨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기지를 철거시키는 것이 평화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가데나(嘉手納) 미군 비행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소음 소송을 벌이고 있다. 우리와 함께 서로 도우며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2002년 10월 29일 후텐마 비행장 주변에 사는 한 기노완 시민은 "조용한 나날을 되돌려달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후텐마 미군 기지 소음 금지 등 청구'를 나하(那覇) 지방법원 오키나와 지부에 제소한 바 있다. 원고는 총 1세부터 81세까지의 주민, 404명이다.
2008년 6월 26일, 나하지방재판소에서 나온 판결 공판에서 원고 392명 (사망자 등으로 감소) 전원이 소음으로 피해를 받았다는 인정을 받게 된다.
에노카와 야스쿠니(榮野川安邦) 후텐마기지폭음소송단 간사ⓒ 민중의소리
1) 소음 지수(WECPNL) 75이상의 지역에 대해 일본정부가 설치하고 관리한 부분에 하자가 있어 위법이라고 인정함.
2) WECPNL 수치 75구역에 해당하는 원고에게는 1일 당 100엔, WECPNL 80구역은 1일 당 200엔의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총 금액 1억4,000여만엔)
3)장래 예측분의 배상 청구와 함께 야간 및 새벽의 비행 금지 청구는 기각함.
4) 헬기의 저주파 소리가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인정 되지 않는다.
5) 피고(정부)의 '위험 접근 법리' 적용에 의한 일본 정부의 소음 발생에 대한 면책은 부정.
6) 일본 정부에 의한 지속적인 소음측정과 기록, 소음의 경감 조치에 대한 청구는 기각.
* 피고인 후텐마 기지사령관에 대한 소음발생 책임을 묻는 재판에서 2004년 9월 16일에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야간 비행 금지'청구에 대해 재판관은 '미국은 일본의 권력이 미치지 못한다 는 '제3자행위론'을 이유로 들어 기각했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다른 소음 소송도 이 같은 이유로 기각되고 있다.
현재 원고와 피고 모두가 후쿠오카(福岡) 고등 재판소에 항소 중이라 올해 6월에도 판결이 있을 예정이다. 나고시장선거에서 '헤노코 반대' 를 명확히 해 당선한 이나미네 시정의 탄생으로 후텐마 기지의 위험성.위법성을 해결하기 위한 향방은 사법부가 이 판결에 대해 어떠한 판결을 내릴 것이냐에 있다. 그 판결의 내용은 후텐마-아시아의 미군 재편을 변화시키는 등의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번역 박상희 기자
<에노카와 야스쿠니(榮野川安邦) 후텐마기지폭음소송단 간사 >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단독, 단독, 단독
에이미
"맹자 어머니는
대화가
신민아
자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