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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 700시간 생중계의 대기록은 어떻게 가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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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시간 생중계의 대기록은 어떻게 가능했나

[민소스토리] 조계사 '촛불 수배자' 농성 생중계의 기억

김동현 기자 abc@vop.co.kr 발행시간 2010-02-22 10:52:00 최종수정 2014-12-27 14:14:01

<민중의소리>가 창간 10년을 맞이합니다. 오는 5월 15일이 되면 <민중의소리>는 열 살이 됩니다. 여지껏 저희들은 '자랑'하는 것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를 앞세우기 보다 몸을 낮추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10년이 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저희를 너무 궁금해 하십니다. '도대체 밥은 어떻게 먹느냐'부터 시작해 '진보진영 배후조종하는 세력 아니냐'는 과분한 억측까지 나옵니다. 그래서 저희 이야기를 좀 해드릴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이야기가 있듯 <민중의소리> 10년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기억할 만한 10가지를 골랐습니다.

“여~ 오랜만일세.”

2009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전국여성연대 후원주점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2008년을 달궜던 촛불시위의 ‘배후’ 혐의로 구속됐다 출소한 한용진 박원석 광우병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두 명이 함께 주점을 찾은 것이다. 기자는 오랜만에 만나는 두 상황실장과 자연스레 합석했다.

“잘 지냈지? <민중의소리> 다 잘 있고?”
“네, 저희야 잘 지내죠. 선배님은 어떠셨는지...”
“나야 뭐, 푹 쉬다 왔지. 껄껄”

선배님. 기자들은 취재원들에게 ‘선배’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정치인을 만나도 선배요 검사를 만나도 선배다. 누구를 만나건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건덕지가 있는지 뒤지는 게 기자들의 ‘본능’이다. 학연, 지연은 물론이요 심지어 동료와 친구, 선후배와의 인연이라도 있을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민중의소리> 기자들도 ‘선배님’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시민사회,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민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민중의소리> 기자들에게 무조건 ‘선배’다. 물론 친해지기 전까지는 무슨무슨 위원장님, 무슨무슨 국장님, 부장님 등 공식호칭을 쓴다. 한 번 친해지면 다음부터는 그냥 ‘선배님’이다.

한용진, 박원석 선배님과 <민중의소리> 기자들은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다.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놀았다. 한국 언론 사상 유래 없는 700시간 생중계, 바로 ‘조계사 농성장 생중계’ 기간이었다. <민중의소리는> 2008년 7월 8일부터 8월 5일까지 두 선배님을 비롯한 6명의 광우병대책회의 지도부가 수배를 받아 농성하고 있던 조계사를 70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생중계했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6일 저녁, “1박 2일 생중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제출됐다. 당시 <민중의소리> 사무실은 공교롭게도 조계사 근처에 있었다. “기왕 하는 거 재미있게 해보자.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생중계 시스템이 준비되고 시나리오와 무대까지 준비했다. 워키토키까지 준비됐다.

조계사 농성자들이 민중의소리 생중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조계사 농성자들이 민중의소리 생중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자료사진

한용진 선배님은 택견 강연을 했고 박원석 선배님은 토론회를 개최했다. 수배자들의 공연도 있었다. 가수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권혜진 선배님의 노래실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네티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엇보다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코너는 ‘지금 뭐 먹고 싶어요?’ 였다. 생중계 게시판에 수배자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올리자 하루 동안 음식들이 끊이지 않았다.

7일 저녁이 되자, <민중의소리>는 고민에 빠졌다. “어라, 생중계를 끊지 말라는 데요?” 네티즌들의 생중계를 계속해 달라는 요청이 게시판에 쇄도했다. 원래 생중계 이벤트의 명칭은 ‘1박 2일’이었다. 어쩐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하자. 하지 뭐. 하면 되는 거야.” 생중계 이름이 바뀌었다. ‘무한중계.’ 이 때 만 해도 생중계가 700시간동안 지속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민중의소리> 기자들은 전원 생중계를 할 줄 알게 됐다. 사무실에는 ‘생중계 당직표’가 등장했다. 하루 씩 돌아가면서 생중계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기사를 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낮에는 기사쓰고 밤에는 생중계 카메라를 지켰다. 수배자들이 잠에 들어도 기자는 카메라 곁에서 ‘졸면서’ 밤을 지샜다. 그렇게 무모한 생중계 도전은 계속됐다.

민중의소리 기자들이 조계사 농성단 생중계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기자들이 조계사 농성단 생중계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생중계가 시작되면서 방문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농성단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다. ‘촛불 성지순례’가 된 분위기였다. 농성단은 ‘연예인’이었다. 분위기가 이쯤 되니 농성장에는 먹을 것들이 넘쳐났다. 늘상 취재시간과 마감에 쫓기던 기자들은 뙤약볕에 촬영하는 고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오랜만에 식사시간에 맞춰 챙겨먹는 아침, 점심, 저녁에 흐뭇해했다. 조계사에서 공짜로 먹는 ‘절밥’은 정말 맛있었다.

수배자들은 처음에 생중계를 신기해했다. 카메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자세도 고쳐잡았다. 그러다 보니 농성장의 ‘규율(!)’이 매우 강해졌다. 드러눕는 사람도 없고 인터뷰를 시도하면 잘 응해줬다. 아침에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지인들에게 인사하는 수배자들까지 생겼다. 오호! 화상통화다.

날은 더웠다.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밤새 카메라를 지키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배자들이 슬슬 카메라를 피하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비치지 않는 조계사 대웅전 처마 밑에서 책을 읽거나 숙소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수배자들도 있었다. 카메라에 아무도 잡히지 않는 시간이 늘어갔다. 이쯤 되니 농반진반 ‘이거 생중계를 가장한 CCTV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제 수배자들은 연예인인걸 ^^;

조계사 농성자들이 먹고 싶다고 생중계를 통해 밝힌 음식들이 도착했다.
조계사 농성자들이 먹고 싶다고 생중계를 통해 밝힌 음식들이 도착했다.ⓒ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조계사 생중계를 하면서도 <민중의소리>는 광화문 촛불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생중계 창에는 광화문 촛불 현황과 조계사 농성장이 동시에 중계됐다. 수배자들은 <민중의소리> 사이트를 열어놓고 나란히 앉아 촛불을 들었다. 그렇게 촛불집회에 함께한 것이다.

수배자들은 자신들을 돌봐주는 조계사에 답례하는 마음으로 아침 청소를 자청했다. 기자들도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하는 수배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단 한 명이 보고 있더라도 수배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에서다. 수배자들이 108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1080배를 할 때도 생중계가 함께 했다.

생중계는 경찰들에게도 고마운(?) 존재였다. 농성장이 조계사다 보니 경찰 접근은 거의 불가능했다. 경찰들도 <민중의소리> 생중계를 통해 수배자들의 상황을 감시(!)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온다. 생중계 카메라에 하루 종일 비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외출’한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고 한다.

촛불의 행렬이 조계사 문앞에서 수배자들과 만나던 날 다른 곳을 비추던 카메라 앵글이 한 곳을 향했을 때는 ‘생중계의 감동’은 극한에 달했다. 수배자들의 눈에 눈물이 흘렀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의 손은 떨렸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통해 조계사 입구에 도달하자 이들을 환영 나온 수배자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통해 조계사 입구에 도달하자 이들을 환영 나온 수배자들ⓒ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생중계가 끝난 후에도 <민중의소리> 기자들은 늘상 조계사를 찾았다. ‘형님, 동생’ 하며 탁구를 치기도 하고 밤에는 스님들 몰래 맥주캔을 사들고 조계사를 찾기도 했다. 수배자들은 8월 14일 <민중의소리> 기자들이 고맙다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감사패는 ‘감사’라기 보다 함께 웃고 땀 흘리고 정을 나눴던 시간에 대한 ‘동지애’의 다른 표현이었다.

<민중의소리>가 생중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촛불을 만들기 위한 수배자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며, 수배자들을 만나고 싶었던 촛불들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적 열정과 대중들의 바람이 있는 곳이라면 <민중의소리>는 그 곳이 어디건 또 얼마의 시간이 들건 카메라를 들 것이다.

박원석 선배님은 오랜만에 만난 주점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잘 해줘야 한다.”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네,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혹시 말입니다. 선배님, 민중의소리 후원회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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