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누르고 민중의소리를 페이스북으로 구독하세요

삼성 기름유출 사고 피해보상 대책위원장 고 성정대씨는 누구?

장명구 기자 jmg@vop.co.kr

입력 2010-02-28 06:54:42 l 수정 2010-02-28 10:39:36

2007년 태안지역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사고 이후 정부와 삼성의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전개하다 자살한 고 성정대 전 피해민 손해배상 대책위원장은 어촌과 어민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해 왔던 인물로 전해졌다.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감사패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감사패



1957년에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에 태를 묻은 고 성정대씨는 대천 수산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6년 서산 수산업협동조합에 근무하면서 어촌과 어민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는 특히 어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해결을 위해 앞장서서 활동했다.

서산․태안 대산항로 보상 어민들은 1990년 6월 18일 고인에게 “서해안 개발의 일환인 대산공단에 필요한 대산항로의 개설에 즈음하여 그 영향을 받게 된 우리 어민들의 생활과 권익보호 문제에 진심으로 깊은 이해를 해 주셨고 합의 보상 타결에 큰 기여”를 했다며 감사패를 수여했다.

1991년 12월 1일에도 가로림만 유류피해 어민들은 고인에게 “현대산업개발의 가로림만 유류유출로 막대한 어장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어민들의 고초를 이해하시고 민원해결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주신 덕으로 원만한 합의”에 이르렀다고 감사패를 전했다.

특히 고인은 1991년 퍼시픽프렌드호 태안 앞바다 침몰사고로 어촌과 어민들이 피해를 당했을 때에도 손발을 걷어붙이고 앞장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6년 5월 20일 소원․근흥․원북 기름 피해 어민들은 “1991년 퍼시픽프렌드호 기름유출 사고 시 소원․근흥․원북의 피해 어민을 위해 피해보상 추진에 열과 성을 다하여 피해를 보상받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한 공로”가 크다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지난 2007년 30여 년을 몸담았던 서산수산업협동조합을 퇴직한 고인은 같은 해 10월 5일 ‘태안청정수산’이라는 상호의 전복양식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12월 7일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열사는 이번에도 본인과 어민들의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해 대책위를 구성 2008년 1월 대책위원장직을 맡게 됐다.

고인은 지난 2008년 5월 삼성중공업 앞에서 삼성의 책임배상을 촉구하며 삭발 및 단식투쟁을 벌였었다. 열사의 가장 최근 활동은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이 삼성중공업의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책임제한액을 56억여 원으로 산정 판결한 것에 대한 규탄 집회였다.

고인의 자택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감사패와 공로패 중에는 2000년 12월 8일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명의의 표창장도 놓여 있었다.

표창장에는 “귀하는 평소 맡은 바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특히 2000년 전국 불법어업 일제단속으로 어업질서 확립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함”이라고 적혀 있다.

열사는 2009년 2월 26일 자택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자고 있는 남편이 보이지 않아 찾아 나선 부인에게 넥타이 끈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충희 태안 유류피해 투쟁위원회 사무처장은 “특별법 때문에 국회에도 여러 번 같이 올라갔었다”라며 “약한 분이 아닌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박규웅 고 성정대 열사 ‘태안군민장’ 장례위원장은 “대책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맡고 있으니 주민들의 하소연에도 중압감을 느끼고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고인은 1982년 부인 남금순 씨를 만나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표창장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표창장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표창장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표창장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감사장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감사장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감사패

고 성정대 열사가 받은 감사패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