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민간단체의 자주성은 보장해줘야"

[6.15 10주년 릴레이 인터뷰④]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입력 2010-03-01 12:57:51l수정 2010-03-04 13:56:31
올해는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 국방위원장이 만나 분단 이후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고 ‘통일의 이정표’라 불리는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안타깝게도 10년 전 그날부터 화해와 협력의 길을 걸어 온 남북관계가 최근 들어 꽁꽁 얼어붙어 아직까지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맞이하면서 ‘봄’을 열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민간 통일운동 대표들의 고민과 다짐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11회에 걸쳐 들어봅니다.


지난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때와 비교한다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 교류사업이나 민간 대북지원 사업은 사실상 '중단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취임 초기에는 사실 기존 민간교류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정부가 촛불정국을 나름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체제 재편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고, 대북 민간지원은 이 작업의 희생양이 돼버렸다.

2008년 말부터 서서히 정부는 대북 민간지원단체들의 인도적 지원의 고리를 끊기 위한 작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해나갔다. 이에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건 진보적 성향의 민간단체들이다. 민간단체들의 방북 허가는 일정한 기준 없이 선별적으로 이뤄졌고, 인도적 지원 물자 역시 '영유아를 위한 약간의 식량'과 '긴급 의약품' 등으로 제한됐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평화협정 등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속속 거론되고 있지만, 정부는 대북 민간교류에 대한 특별한 인식 전환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6.15선언 10주년에 즈음해 <민중의소리>와 만난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이 점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민중의소리



"민간단체들에 대한 존중, 정부와는 달리 다양한 계급.계층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민간입니다. 정부는 오로지 '어떻게 함께 북에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인지'만 고려해 보수성격의 단체들을 상대로만 파트너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통일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죠.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떻게 민간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대북 인도적 지원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 민간단체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김 사무총장이 느끼는 현 정부에 대한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벅차 보였다.

"일관성 없는 정부 방침...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다"

- 올해 인도적 대북사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최악이죠. 솔직히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도 안 보였고, 그런 점에서 인도적 지원을 신중히 하게 되는 거죠."

- 어떤 고충들이 있었습니까?
"지난해 같은 경우 기금신청을 일괄적으로 하라고 해서 열심히 합의서 받아서 신청서를 낸 것이 결국은 다 폐기처분 돼버렸죠. 또 전 정부부터 정책사업으로 진행했던 것까지 승인을 해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 황당한 경우도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북 영농업 개선 차원에서 농기구를 보낸다고 하면 군이 전용할 우려가 있다고 승인을 안 내줘요. 그리고 경통협(경남통일농업협력회) 같은 단체는 농업지원단체인데, 보건의료단체로 전환하라는 말 따위를 하는 겁니다(웃음). 농업교류는 안 된다는 거죠. 또 딸기 보내는 건 되고, 딸기 모종 보내는 건 안 된대요. 정말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겁니다."

- 통일부는 뭐라고 하나요?
"우리가 갑갑하니깐 당신들 입장을 내놓으라고 하면, 입장도 없고, 안 된다고만 얘기하니 어떻게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요. 정부의 방침에 뭔가 일관성이 있어야 대처를 할 수 있는데, 계속 처음 얘기했던 것에서 후퇴만 하고, 그런 점에서 통일부는 우릴 만나는 것 자체를 곤혹스러워하고, 갑갑해하죠."

-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에서는 어떤 얘기들이 오갑니까?
"일단 대부분의 민간단체들이 암담한 상황에 우울해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해도해도 너무한다' 이런 이야기들만 반복하게 되는 거죠."

- 단체들 간 엇박자도 있을 텐데요.
"정부 승인 없이 어떤 일을 하기가 곤란하잖아요. 정부의 민간단체 편가르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북민협 단체들은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 기조를 전환해야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우리끼리 뭘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행동 통일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거죠."

"북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인도주의 정신의 기본"

- 이 대통령이 사실 취임 초기에 인도적 대북지원을 계속 할 거라고 했는데요.
"정부가 생각하는 인도적 지원은 정말로 긴급 구호에 해당하는 것에 국한돼 있어요. 의약품도 치료 기기는 안되고, 약품만 되고…. 북에서 필요없는 혈압약, 설사약 같은 것만 중심으로 인도적 지원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인도적'이라는 말의 개념을 잘 모르는 거죠."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민중의소리

- 인도적 지원의 올바른 개념은 뭡니까?
"인도적 지원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내용을 보면, 상대방 국가의 개발.협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인도주의 정신의 기본 개념입니다. 그런데 북에서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을 일방적으로 해주는 걸 두고 정부는 인도주의라고 말하고 있는거죠."

- 그래도 식량, 약품이 꾸준히 들어갔으면 정부 입장에선 인도주의에 입각한 거라고 말할 여지는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 나름대로 꾸준히 식량과 약품이 들어간 건 맞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 인도주의 정신이라는 게 오히려 지난 10여년 간 이뤄졌던 모든 국가 협력사업의 질과 수준을 떨어뜨렸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작년에 이뤄진 인도적 사업은 북이 원하지 않는 일방적 잣대에 입각해 이뤄졌다는 게 가장 커다란 문제죠."

- 인도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모니터링 작업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부는 방북 허가도 선별적으로 했죠. 인도주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니터링이에요. 직접 가서 투명성을 확인해야죠. 그건 상대방에게 필요한 물자를 보내는 작업의 기본입니다."

- 시급히 해야 될 일들이 산적해 있을 텐데요.
"기존에 짓던 병원 계속 짓게 해줘야 하고, 건축 기자재, 농업용 기자재 전부다 들어가야 돼요. 짓다 만 병원들이 엄청 많아요. 건축 기자재 같은 것들이 못 들어가니깐 공사 진행이 안 되는 거에요. 얼마전 평양 갔다왔더니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이거 안 된다, 저거 안 된다' 이런 것들이 비일비재하고, 건설 노동자들도 다 배치돼 있었는데, 지금 실업상태인 거죠."

"민간의 자주성.다양성을 보장해주면 된다"

- 대북 민간교류에 대한 정부 기조가 변화할 조짐은 있어 보입니까?
"민간교류 정상화는 우리들 힘으로 해야죠 뭐. 민간진영에서 이대로 맥놓고 있을 순 없어요. 집회 몇번 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꾸준히 여론을 만들면서 동력을 확보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회담이 이뤄질 때쯤이면 정부도 막기 어려운 어떤 '대세'가 형성돼 있지 않겠습니까."

- 돌파구는 있습니까?
"왕도가 따로 있겠어요? 저는 특별한 대책을 생각하는 게 곧 허구적인 것이라 생각해요. 올해는 작년처럼 물자를 쌓아놓기만 할지언정, 계속 구입해서 보내달라고 요구할 겁니다. 방북 허가도 몇번 불허되니깐 귀찮아서 안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열심히 신청하면서 자꾸 여론화시켜 나가야죠."

- 신규사업도 진행해야죠.
"4월에 관광재개를 바라는 뜻에서 금강산 나무심기 사업을 하려고 해요. 관광은 못 가도 나무는 심으러 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걸 막을 명분은 별로 없지 않나 싶습니다. 또 올해는 규모 있게 물자를 내보내는 것에서 벗어나서 남쪽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통일운동 참여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을 할 겁니다."

- 통일운동 참여방안이요? 그게 뭡니까?
"통일 포장마차를 전국적으로 도는 겁니다. 서명운동 같은 것보다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노조별로 통일교육을 하는 건 힘들어요. 그런데 포장마차를 하면,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술을 먹으러 오고, 우리는 같이 한잔 하면서 통일사업을 얘기할 수 있는거죠. 그렇게 해서 겨레하나의 대중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정부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요?
"바라는 거 없어요(웃음). 민간의 자주성, 다양성을 보장해주면 돼요. 특별히 법적인 문제가 있는 거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아무런 근거 없이 일방적인 잣대로 이 단체, 저 단체 자르고, 마음대로 규모 자르고, '얘는 왜 가냐, 쟤는 왜 가냐' 일일이 태클 걸고, 이런 것들을 좀…. 민간 나름의 고충들을 존중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정부랑 얘기를 하려고 하거든요. 우리 마음대로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 지금과 비교하면 지난 10년 정권은 천국이었겠습니다.
"그때도 어려움은 있었죠. 정권 특성상 보수세력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그런…. 그래도 지금에 비하면 행복했죠. 그때는 우리가 통일부에 자원봉사로 몇명씩 파견을 보낼 정도로 정부와 민간의 협조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거죠. 저희랑 같이 공무원, 국정원 직원들도 같이 평양에 가게 되면,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투명성 있게 북을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거고, 여러가지 상호 보완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 올해 이것만은 꼭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뭡니까?
"금강산 관광이 재개됐으면 좋겠어요. 정상회담 하기 전에 금강산 관광이 일순위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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