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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이 딱 떠올랐습니다”

[인터뷰]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0-03-09 11:40:58 l 수정 2010-03-09 13:32:47

꽝꽝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깨는 망치소리가 남북 노동자들에게서 전해졌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올해 120주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남측에서 공동통일행사를 치르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특히 올해는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여서, 이번 행사의 의미는 더욱 깊어 보인다.

중국 선양에서 열린 실무협의에 참여해 북측과 합의를 하고 돌아온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1999년이 딱 떠올랐다”고 말했다. 1999년 8월 12일 분단 이래 최초로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가 평양 양각도 축구경기장에서 열렸었다. 그 때만 해도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기 전이어서, 남북 노동자가 함께 축구경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이 같은 남북 민간의 교류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되는 등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에도 큰 기여를 했던 것으로 평가 받는다. 황 위원장이 현재의 상황을 보면서 1999년을 떠올리는 이유는, 지금 노동자들 사이에서 내디딘 발걸음이 남북 당국간 대화로,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개선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일 터다.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황 위원장은 이번 실무협의에서 남과 북 노동자 모두 ‘올해 공동행사를 반드시 치러내자’는 의지가 대단히 강했다고 전했다. 남측은 물론 북측도 6.15공동선언 10주년의 의미를 중시하고 있었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데 노동자들이 앞장 서야 한다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는 것.

실무협의에서 북측 노동자들이 남측에 내려와서 행사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도 행사의 장소나 규모, 방식 등 실무적인 문제는 최대한 열어 놓고 ‘공동행사를 반드시 성사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논의하자는 데 공감대가 이뤄졌던 결과였다고 황 위원장은 전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이 현실이지만 이번 행사가 잘 치러지면 “남북관계가 전격적으로 풀리는 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황 위원장은 남북 노동자들이 만나 협의했던 내용을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정부에 “마음 그대로” 전달해서 이번 행사가 꼭 성사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또한 그는 그것이 바로 “민족의 맏이인” 노동자들의 역사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9일 오전 진행된 황수영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이번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북 노동자들이 5.1절을 맞아 공동행사를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했다고 들었습니다. 올해가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이란 점에서 이 같은 합의는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의 의미는 단순히 ‘10주년이니까 잘 해보자’ 이런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세라는 것이 힘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데, 그 동안 이명박 정부 들어 반통일 정책이 계속된 것은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우리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1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으면서, 이를 통해 통일운동 세력이 힘을 복원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가 핵을 빌미로 반통일 정책을 펼쳐왔고 금강산 관광 중단 등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습니다. 하지만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이라는 대내외적으로 의미 있는 시기, 또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홀로 거슬러 갈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올해 10주년을 충분히 준비해서 이명박 정부도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을 돌리도록 해 나가는, 방향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15공동선언을 보면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점을 인정하고, 차이를 좁혀나가면서 통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통일방안이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서의 흡수통일 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북과 부딪혀왔던 것입니다. 공통점을 기초로 차이를 줄여 나가자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은 그런 면에서 현재 더욱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선양에서 진행된 실무협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분위기가 어땠나요?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남북 노동자들이 공동행사를 열자는 것은 오랫동안 논의가 돼왔던 내용입니다. 이번에 행사가 잘 치러진다면 이는 지난 2007년 창원에서 열린 5.1절 노동자대회 이후 3년 만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 동안 공동행사를 협의하면서 우리가 평양을 방문하려고 해도 정부에서 불허하면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에, 남측에서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올라갈 때마다 제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측에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남측에서 하자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족 간의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원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북도 6.15공동선언 10주년을 중시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선언이기도 하고, 통일방안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얘기했습니다. 6.15선언에 따른 통일이 아니라면 서로 먹고 먹히는 통일일 텐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냐, 전쟁은 우리 민족사에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번에 실무협의를 하면서 남과 북이 모두 강조했던 부분이 실무적인 문제보다는 ‘공동행사를 성사시킨다’는 것을 제1의 목표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행사가 작게는 노동계급 사이의 단합과 단결이지만 크게는 민족문제이고, 냉각된 남북관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사를 어디에서 할 거냐, 어떤 경로로 내려올 거냐, 규모는 어떻게 할 거냐 등의 문제는 최대한 열어놓고 행사를 성사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논의해 가자는 데 공감대가 이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남북 민간 교류가 여러 차례 성사되지 못했고, 실무협의 단계에서부터 방북 불허가 난 사례들이 최근에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주변의 기대도 높을 것 같고, 반드시 성사해야 한다는 각오도 높을 것 같습니다.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에 대해 여태껏 그랬듯 정부는 반대할 명분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명박 정부가 북을 분단된 나라에서 통일해야 할 상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노사관계에서 사측이 노조를 대하듯 한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노동조합과 상생해야 한다고 하는 자본가는 상대를 인정하고 발 맞춰 가는데, 노조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측은 고사될 때까지 끊임없이 탄압하거든요.

이명박 정부도 그렇습니다. 뉴스를 보면 북측의 식량사정이 좋지 않다고 계속 나오는데도, 정부는 아이티나 다른 나라에는 나서서 구호품을 전달하면서 같은 민족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나서지 않습니다. 정부의 기금은 못 내주더라도 민간단체에서 보내겠다는 것은 막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막고 있고, 특히 농민들이 쌀값 문제와 결부해서 보낸다는 것도 못 보내게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가 돌파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행사를 성사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노동자들이 나서서 통일의 흐름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행사 같은 것은 정부가 막지만 않으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행사 자체가 아니라,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또 국민들 속에서 통일의 분위기를 확고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힘을 키워서 누가 정권을 잡든 남북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지 않고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각오입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노동자들이 돌파구를 열어냈다는 점에서 1999년 축구대회가 생각이 납니다.

=저도 이번에 합의하고 나서 1999년이 딱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도 남북정상회담이 올해 내에 열리지 않겠느냐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시에 1999년 남북 노동자가 함께 축구대회를 하고 2000년 정상회담이 있었잖아요? 물론 저는 그 때의 정상회담이 2000년에 준비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준비기간을 거쳐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999년의 행사를 하는 데 노동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남과 북 전부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나섰던 과정이 있었다고 봅니다.

황수영 위원장

황수영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그런 역사적 과정을 봤을 때, 이번에 5.1절 행사를 잘 치러내면 조만간 정상회담이 열린다거나 남북관계가 전격적으로 풀리는 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듭니다. 저희는 남북 노동자들이 만나 협의했던 과정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마음 그대로 전달해서, 남측 정부가 이번 행사를 꼭 성사시킬 수 있도록 나서게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만약 정부가 남북 노동자들의 만남을 불허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 변화의 시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불허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전략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고 임기 끝까지 그렇게 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를 긍정적으로 성사시킬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민족의 맏이’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가 들어서고 얼마 안 돼 이러한 합의를 이뤄낸 것도 의미 있어 보입니다.

=김영훈 신임 위원장은 2005년 1월 1일 부산과 목포에서 각각 출발해 도라산까지 향했던 ‘통일열차’를 직접 끌고 갔던 분입니다. 그 만큼 통일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실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민주노총 내에서도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라앉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민주노총 내에서 통일운동의 힘을 복원해 내자는 것이 제 몫이자, 위원장의 결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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