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동 롯데슈퍼(SSM), 지역상인들과 상생한다고?

강제조정 내용 현실성 없어...상권 장악 시간 문제

이재진 기자, 김한수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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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각하면 진작 나갔겠지요. 직원들한테도 미안하고 지켜줘야하는데..."

전재원(39)씨는 끝내 고개를 떨궜다. 전씨는 서울 가락동에 위치한 현대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전씨는 마트를 계속 운영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만 10명이다. 마트를 폐업하면 직원 10명의 밥줄을 끊는 장본인이 된다. 직원들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더욱 괴롭다. 모두 SSM(기업형 슈퍼마켓)때문이다.

현대마트에서 불과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롯데 슈퍼'는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개점한지 하루 밖에 안됐지만 벌써부터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현대마트의 매상은 하루만에 60%로 줄었다.

직장생활 10년, 자신의 손으로 사업하겠다고 나선지 4년.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즐겁게 일하고 싶었는데 SSM은 전씨의 미래를 어둡게 했다.

"오세훈 시장은 대기업 입장만 대변하나"

중소상인 대표들은 9일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이 SSM 규제를 요구하는 중소상인을 기만하고 대기업 편만 들고 있다"고 규탄했다.ⓒ 민중의소리



가락동 롯데슈퍼 개점...지역 상인과 상생을 한다고?

기업형 슈퍼마켓 롯데 슈퍼 가락동지점이 10일 문을 열었다. 11일 찾은 롯데슈퍼는 활기를 띠었다. 직원들이 물건을 진열하고 있는 가운데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롯데슈퍼 매장 곳곳에는 '신선한 상품, 정다운 이웃'이라고 쓰인 문구가 붙여져 있었다.

롯데슈퍼 가락동 지점은 지난해 7월 사업조정 신청이 접수돼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일시정지 권고를 받은 곳이다. 일시정지를 받은 후 자율조정 기간을 거쳤지만 주변 중소상인들과 협상이 결렬됐고, 지난달 결국 중기청은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롯데 슈퍼는 강제조정 내용을 수용했고, 10일 주변상인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을 겪는 등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입점을 강행했다.

롯데슈퍼 측은 '지역상인과 상생하는 롯데슈퍼가 되겠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내걸고, 그 아래 강제조정 내용을 적어놨다.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달'
'개점시간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담배와 쓰레기봉투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강제조정은 주변 중소상인들과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을까?

"기자 양반,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저게 상생이라고 할 수 있죠?" 이종하(43)씨의 말이다. 이씨도 전씨와 같이 SSM이 마트 옆에 입점하면서 피해를 본 마트 사장이다.

보통 마트는 3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달을 하고 있다.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달이라는 강제 조정 내용이 오히려 롯데 슈퍼에게 약이 된 셈이다. 밤 10시까지 운영시간을 제한하는 내용도 롯데슈퍼에게 큰 제재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보통 마트의 운영시간은 밤 10시 정도이고, 가락동 롯데슈퍼가 위치한 주택가 골목에서 한밤에 롯데슈퍼를 찾는 손님은 많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담배와 쓰레기봉투는 마트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품목이다. 쓰레기봉투 마진율은 구마다 다르지만 송파구에서는 약 5%다. 여기에 카드수수료를 떼면 2.5% 마진이 남는다. 1000원을 팔면 250원이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담배 역시 쓰레기봉투와 같이 크게 남는 품목이 아니다.

현대마트에서 일하는 정재희(여, 39)씨는 "롯데 슈퍼에서 담배는 못 팔고 있어서 손님들이 담배는 사러 오지만 애초에 담배는 마진율이 10%(250원)정도이고 요즘은 카드로 결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잠실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송영빈(51)씨는 "제가 운영하는 마트 옆에 구멍가게 있으니까 담배를 안판다. 담배를 팔더라도 손님 편의성 때문에 파는 것이지 남은 장사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말이 좋아 강제조정이지 롯데 슈퍼에 전혀 제제를 가하지 못하고 오히려 SSM이 손쉽게 입점할 수 있게 '입장권'을 준 셈이다.

입점 하루, 주변 마트 매출 급감

롯데슈퍼는 결국 입점에 성공했다. 이제 주변 상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상인들은 롯데슈퍼 앞에 모여들었다. SSM의 폐해를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다.

롯데슈퍼 가락동점은 서울에서 최초로 대형슈퍼마켓 입점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이 접수된 상징적인 곳이다. 가락동에서 SSM이 입점하는 선례를 남기면 사실상 서울지역 조그만 골목에 SSM 입점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중소상인들의 생각이다.

송영빈씨는 "문제는 대한민국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못 배운 사람들이 수 천 만원을 빌려서 장사하는 건데, 그런 기회마저도 빼앗아 가는 것 아니냐"며 "법률상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딸, 이웃도 구멍가게를 할 수 있는데, 이런 꿈과 희망이 무너진다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송씨도 현대마트 사장 전씨처럼 직원들에 대한 걱정이 크다.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하루 보통 12시간씩 일한다. 20대 젊은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30대 가장이 마트에서 일하는 주요 계층이다. 송씨는 "마트에서 열심히 돈 벌어서 시장통에 나가서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이제는 시장에 가서 장사하라고 말도 못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SSM 허가제 도입하라

"SSM 규제 미루면 지방선거에서 여당 심판할 것"ⓒ 민중의소리



가락동 롯데슈퍼 주변에 위치한 마트는 4개다. 롯데슈퍼가 중소상인들의 상권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롯데슈퍼 건너편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신모씨는 "거의 모든 품목에서 15% 정도 줄어든 같다. 내가 운영하는 가게는 가격 할인 같은 혜택도 없어서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는데 앞으로 장사를 어떻게 하겠나"라고 토로했다.

롯데슈퍼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제이마트'의 곽혜숙(여, 41)씨는 "롯데같은 거대자본을 누가 이기겠느냐? 대기업에서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내다보고 상인들과 타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규모를 자랑하는 가락시장에 있는 상인들마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롯데슈퍼는 30여대의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애써 차를 몰고 가락시장으로 박스째 물건을 사러갈 바에야 롯데슈퍼를 가는 게 더 나아 보였다.

롯데 슈퍼 불법 용도변경 의혹 드러나

주택가 골목의 상권을 위협하는 SSM에 맞서 주변 중소상인들도 SSM 불매운동을 펼치는 등 가만히 있지 않을 태세다. 특히 가락동 롯데슈퍼는 불법 용도변경을 통해 입점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변 상인들의 따가운 질책까지 받고 있다.

송파구청에 따르면 가락동 롯데슈퍼 입주 건물은 약 700㎡ 규모의 식당으로 근린생활시설군에 속했지만, 1천㎡ 이상의 판매시설로 바뀌면서 용도가 영업시설군에 속하게 돼 용도변경 허가 대상이다. 하지만 롯데슈퍼 측은 관할 구청에 허가를 받지 않았다.

송파구청은 현재 1차 시정명령을 내렸고, 2차 시정명령, 3차 강제이행 부과 예고, 4차 경찰서 고발 조치 순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송파 지역 중소상인들로 구성된 SSM 저지 송파대책위원회는 "대재벌 롯데 측은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법조차 지키지 않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며 "롯데는 위법한 영업 개시를 즉각 중단하고 사업조정신청 재심의 절차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현대마트 사장 전재원씨도 대책위에 참가해 팔을 걷어붙였다. 전씨는 "롯데슈퍼 때문에 살기 힘들어도 직원들을 자르지는 않겠다. 폐업을 하면 했지, 나 혼자 살려고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지역상인과 상생하겠다는 롯데슈퍼가 직원들의 생계라도 지키고 싶다는 전씨의 소박한 바람을 들어줄 수 있을까?



<이재진 기자, 김한수 수습기자 >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03-11 19:47:27
  • 최종업데이트 : 2010-03-11 22: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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