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지혜를 설파한 법정 스님의 입적 비보를 접한 11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를 급히 찾은 조문객들은 생전 스님의 용상[龍象]과 법문을 떠올리며 이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6시를 전후해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잇따라 법정 스님의 법구가 모셔진 행지실을 찾아 조문했다.
지관 스님은 “모든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계시면서 지도해 주시던 법정 스님의 법문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스님께서 육체는 버린다하더라도 그의 정신세계와 법문은 모든 국민 앞에 영원히 무언의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관 스님은 또 “이 세상에 같은 해에 와서 같이 수행했음에도 같은 해가 아니고 먼저 가신데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묵언으로 심심한 조의를 대신했다.
자승 스님의 조문 후 조계종 대변인 원담 스님은 “불교계의 희망이신 법정스님의 사물에 대한 따뜻한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라며 “국민의 존경을 받은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비보를 접하고 급히 길상사를 찾은 일반 신도들도 생전 스님의 용상과 법문을 떠올리며 조의를 표했다.
길상사 개관시절부터 스님의 법문을 들어왔다는 홍정자(69, 동소문동) 씨는 “시대의 더 큰 스님은 없으실 것 같다”라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눈물부터 떨구었다.
홍 씨는 “큰 절을 유지하면서도 ‘늘 가난한 절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신도들에게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4월 초파일마다 밤늦게 떠나셨고 주지실도 없앴다”고 말했다.
최진환 씨는 “‘항상 법에 따라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너무나 존경스러운 정신적 지주였다”고 기억했다.
최 씨 또한 “주지스님의 육신은 썩어 없어지더라도 말씀은 영원히 빛날 것”이라며 “신도로서 무척 상심이 크다”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전등화(불명) 씨는 “‘깨어있는 불자가 되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살아계신 부처님이셨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온 원만행(불명, 68세) 씨는 “‘찾아다니지 말고 자기 마음속에 보궁을 하나씩 지어라’고 말씀 하셨다”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이상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렸다.
해탈심(불명) 씨도 “생활적인 면에서 정신적 지주”였다면서 “입적하신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70년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를 위해 애쓰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김문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박사는 “70년대 가깝게 지내면서 대표적 ‘불교신문’ 편집국장으로서,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서 군사독재 정권을 신랄히 비판했었다”라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현재 길상사에는 법정 스님의 생전 뜻을 길이는 조문객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6시를 전후해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잇따라 법정 스님의 법구가 모셔진 행지실을 찾아 조문했다.
지관 스님은 “모든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계시면서 지도해 주시던 법정 스님의 법문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스님께서 육체는 버린다하더라도 그의 정신세계와 법문은 모든 국민 앞에 영원히 무언의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관 스님은 또 “이 세상에 같은 해에 와서 같이 수행했음에도 같은 해가 아니고 먼저 가신데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묵언으로 심심한 조의를 대신했다.
자승 스님의 조문 후 조계종 대변인 원담 스님은 “불교계의 희망이신 법정스님의 사물에 대한 따뜻한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라며 “국민의 존경을 받은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비보를 접하고 급히 길상사를 찾은 일반 신도들도 생전 스님의 용상과 법문을 떠올리며 조의를 표했다.
길상사 개관시절부터 스님의 법문을 들어왔다는 홍정자(69, 동소문동) 씨는 “시대의 더 큰 스님은 없으실 것 같다”라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눈물부터 떨구었다.
홍 씨는 “큰 절을 유지하면서도 ‘늘 가난한 절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신도들에게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4월 초파일마다 밤늦게 떠나셨고 주지실도 없앴다”고 말했다.
최진환 씨는 “‘항상 법에 따라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너무나 존경스러운 정신적 지주였다”고 기억했다.
최 씨 또한 “주지스님의 육신은 썩어 없어지더라도 말씀은 영원히 빛날 것”이라며 “신도로서 무척 상심이 크다”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전등화(불명) 씨는 “‘깨어있는 불자가 되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살아계신 부처님이셨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온 원만행(불명, 68세) 씨는 “‘찾아다니지 말고 자기 마음속에 보궁을 하나씩 지어라’고 말씀 하셨다”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이상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렸다.
해탈심(불명) 씨도 “생활적인 면에서 정신적 지주”였다면서 “입적하신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70년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를 위해 애쓰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김문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박사는 “70년대 가깝게 지내면서 대표적 ‘불교신문’ 편집국장으로서,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서 군사독재 정권을 신랄히 비판했었다”라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현재 길상사에는 법정 스님의 생전 뜻을 길이는 조문객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장명구 기자jmg@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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