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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자유’를 ‘희망’할 때

[영화 솎아보기] 밀크

안세진 객원기자

입력 2010-03-12 10:22:45 l 수정 2010-03-12 18:24:38

밀크

밀크

실존하는 인물을 영화로 다루는 작업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어떻게 조명할 것인지도 문제가 되겠지만, 자칫하면 지나친 감상주의로 빠지거나 혹은 과잉된 감정만을 담기 쉬운 것이 바로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니 말이다. 더군다나 온몸으로 사회적 편견을 경험했을 성적 소수자 게이 감독이, 실존했던 게이 정치인을 다룬 영화를 만들 경우에는 더욱 그런 함정에 빠지기 쉽기 마련이다. <굿 윌 헌팅>과 <파인딩 포레스터>와 같은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자신이 아직 그런 경솔함에 물들지 않았음을 <밀크>를 통해 다시 한 번 증명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던 1970년대. 자신의 동성애인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하비 밀크는 이내 그곳에서도 호모포비아들의 혐오어린 시선을 받게 된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하게 된다. 두 번의 고배, 그리고 이어진 시의원 당선. 마침내 그는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정치인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그러나 정치인이 된 뒤에도 그는 끊임없는 테러 협박과 차별과 마주하게 된다.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밀크>는 분명 진부한 영웅담을 답습할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구스 반 산트는 영웅의 탄생이나 자각 과정이라는 익숙한 내러티브의 궤적을 재탕하는 대신 한 게이의 지극히 미시적인 일상,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나 이별에 아파하는 모습 등을 쫓는다. 비범한 존재의 치열했던 삶의 기록이 아닌, 평범한 인물(비록 아웃사이더이긴 하지만)의 개인적인 생활 묘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함으로써 오히려 <밀크>는 퀴어영화가 불러올 수 있는 정서적 반감의 무게와 사회물이 가져오는 거리감을 최소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런 노력은 영화의 도입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혼자 거실에서 유언을 녹음하는 밀크의 독백 장면은 강인할 것만 같았던 그가 자신을 겨냥한 암살 위협에 노심초사했던 연약한 사람이었음을 관객에게 주지시키는 역할을 한다(이는 감독인 구스 반 산트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응축시킨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대중과의 접점을 확보해나간다.

때문에 영화는 주연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숀 팬은 이미 여러 매체들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해낸다. 이미 <데드 맨 워킹>, <아이 엠 샘>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검증됐던 그의 연기 내공은 <밀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당대의 거친 질감으로 제공되는 다큐 화면만으로는 시대적 분위기나 정치적 상황을 느끼기 어렵단 점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에서의 70년대는 무척 특별한 시기였다. 히피들은 자유를, 흑인들은 평등을, 게이들은 인권을 말하기 시작했으니까. 기존의 보수적이고 편협했던 패러다임에 일어났던 변화를 전반적으로 느끼기에 영화는 지엽적인 부분에만 머물고 있다. 물론 이는 평범하며 동시에 연약한 하비 밀크란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데서 올 수밖에 없는 한계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밀크>는 꽤 괜찮은 영화임이 분명하다. 단순히 퀴어 영화에만 머물지 않고 게이란 존재를 소수 약자와 자유를 대변하는 표상의 지위로까지 끌어올려, 비정치적 영역과 관점에서 정치적 논제를 축출해내기 때문이다. 다른 것(different)이 틀린 것(wrong)으로 규정되는 순간 잉태되는 차별과 배제, 폭력. <밀크>는 거대 정치담론을 말하지 않지만 조용히 다른 취향, 다른 생각이 제도란 이름으로 통제받는 현실(특히 우리의 현실)에 대해 생산적인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밀크>의 뒤늦은 국내개봉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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