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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잘 쉰다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몸이 근질근질해요. 빨리 에너지를 충만하게 채워 다시 돌아가서 그 에너지를 동지들한테 나눠주고 싶은데…. 천상 진흙탕에서 뒹구는 게 제 체질인가봅니다."

이번주 <민중의소리-칭찬합시다> 주인공인 장애인 인권 운동가 김정하(37,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씨는 현재 안식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 만큼 자신이 칭찬의 주인공이 된 사실에 대해 무척이나 민망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인권행동) 상임활동가다. 이곳은 각 분야에 대한 담당이 특별히 나눠져 있지 않은 만큼 그는 조직.홍보.내부실무 등 조직의 대부분의 업무를 도맡아서 했다고 한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11년 동안 장애인 운동에만 매진해 온 정하 씨는 지금껏 단 한번도 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과중한 업무에 파묻혀 있다가 얻은 첫 휴가이기에 잠시 동안은 꿈 같은 휴식을 맛보기도 했을 테지만, 그것도 잠시, '노동'에 익숙해진 몸이 장기간 휴가를 용납하기란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장애인 탈시설화

장애인인권행동은 장애인들의 탈시설화 운동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시설수용에 반대하고, 그들의 자유롭고 보편적인 삶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정하 씨는 자유로운 장애인들의 삶을 위해선 장애인들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필요한 것이고, 또 그것을 비장애인들이 최대한 종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하 장애인 운동가

김정하 장애인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고, 시설은 그 사회적 보호의 도구 중 하나'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인권', '자기 결정권'이라는 개념에서 시설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억압.구속의 도구로 작용할 수가 있다.

"'장애인 탈시설화'라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보편적 주장이 될 수 있냐"고 물었다. 정하 씨는 "사회적으로 장애인들을 보호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기존 관점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능력자로 치부한 다음 집단 수용을 해서 일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한사람 한사람에게 필요한 개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맞는 거냐"고 반문했다.

"우리 어머니만 봐도 노인 시설이 참 잘 되어 있다고 칭찬을 해요. 그러면 제가 넌지시 물어보죠. '엄마도 나이 들어서 거기 살고 싶냐'고…. 그러면 '내가 거길 왜 가냐'고 발끈해요. 실제 당사자들은 비장애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걸 반증해주는 거죠."

인권 보장의 기본은 비당사자의 편의가 아닌 당사자의 의사와 결정이라는 것이 결국 현실이라는 것이다.

정하 씨는 실제 가족들 마저도 당사자들을 결정 주체로 보지 않고, 무조건 시설로 보내려는 경향들이 많다는 점을 가슴아파했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그는 꾸준히 해왔던 운동에 대해 회의감이 들고, 힘에 부치기까지 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장애인 가족들은 탈시설화에 더 강력하게 반대해요. 보통 자식을 시설로 보내는 부모들은 나름 해볼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고 마지막 선택으로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얘기를 해 보면, 시설과 다른 대안적 서비스 중에 후자를 선택하죠. 문제는 그 대안적 서비스가 보편화될 수 있는 정책들이 없다는 겁니다."

그는 장애인 의무고용 체계화, 비장애인과의 통합 교육 등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교 5학년

정하 씨는 운동권 중에서도 주류 출신이다.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94학번인 그는 4학년 때 학교 동아리연합회장과 함께 한총련 대의원 활동을 했었다. 그러던 그는 4학년 수업까지 모두 마친 뒤, 학점 정리를 하고 빠르게 졸업하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주위 선후배들이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결국 교수에게 사정을 해 1학점 짜리 필수영어 과목을 F학점으로 돌렸고, 부총학생회장을 맡게 됐다.

정하 씨가 졸업을 하려던 그 무렵 학생운동 진영에 대한 탄압이 한창 거세게 진행되고 있었다. 때문에 정하 씨도 학교를 버리고 졸업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막상 불편했고, 학우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교수님이 준 'F' 학점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었다"고 말했다.

정하 씨는 자신이 장애인 운동판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마지막 대학교 5학년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하 장애인 운동가

김정하 장애인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제가 만약 처음 마음먹은 대로 4학년을 마치고 곧장 졸업을 했었더라면 아마 지금은 평범한 사회복지사로 있겠죠. 시설에서 장애인들을 돌보는…."

주류 학생운동 진영에서 비주류 재야 운동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정하 씨는 그 과정을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단지 "마음이 가는 대로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길에 와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소수자들과 부대끼면서 항상 현장에서 뒹구는 운동이 내 체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도피처

"살다 보니 발등에 불만 끄고 있고, 그러던 중 한번 고개를 들고 보니, 먼 산을 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선 '안되겠다. 인생에 쉼표를 한 번 찍어줄 때가 됐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어요. 부닥치고 있는 현실에 바쁘니깐 몸과 마음이 지쳤던 거죠."

정하 씨는 장애인 운동을 한 지 6년 째 되던 때 '이제 그만 해야겠다'고 잠시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무렵 정하 씨에게 일이 산더미 같이 쏟아졌다. 그는 "일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쉽표를 못 찍었다"고 말했다.

"한창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다시 바빠졌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내가 다른 도피처를 찾는 건 정말 몹쓸 짓이구나' 하는 생각들이요. 실제 장애인들은 도피처가 없이 외로운 게 현실인데,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사치스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옥죄기 시작했죠."

정하 씨는 "생각해 보면 진정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건 오로지 현장인 것 같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가 애타게 찾던 도피처는 결국 그가 처음부터 있었던 현장이었던 것이다.

1년의 안식기 중 절반 가량을 보냈다는 정하 씨에게 물었다. "휴가가 너무 깁니다. 놀다 보면 또 쉼표 한 번 찍고 싶을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는 손사래를 쳤다. "명목상 휴가지만 일은 계속 하게 되던데요? 오히려 절반을 넘기니깐 가슴이 벅찹니다. 에너지를 만땅으로 채워서 현장 동지들한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03-12 17:00:30
  • 최종업데이트 : 2010-10-12 00: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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