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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는 누구?

영원한 경계인,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기자

입력 2010-03-18 01:10:02 l 수정 2010-03-18 10:38:56

「역사가 저의 무죄와 함께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시간을 분명하게 기록하리라 믿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에 시달리는 제 영혼의 외로움을, 멀리서 달래주었던 고향 제주도의 검푸른 바다와 광주의 뜨거운 대지와의 재회를 간절히 바랍니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 항소심 최후 진술 중...-


송두율 교수는 1967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마스 교수의 지도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2년에는 사회학 분야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으며 1972년부터 뮌스터대학, 베를린자유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 미국 롱아일랜드대학,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해왔다. 독일어로 7권의 단행본을 출간했으며 우리말로도 번역된 10권의 단독 저서가 있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37년만의 귀국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37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을 때, 처음에 여론은 잠잠했다. 하지만 이내 극우 보수 단체와 언론들의 광풍같은 역할(?)로 송 교수는 엄청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송 교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전통 위에서 현대성 논쟁, 비교철학, 사회주의와 제 3세계 문제, 한반도 통일문제 등을 분석하면서 독장적인 이론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학문적 관심은 정치와 시민 생활, 경제사, 여성문제, 공간과 시간의 철학, 문화비평과 미학 등을 두루 포괄되어 있어 국외를 비롯 국내 진보학계와 청년들에게 언제나 '신선한 자극'을 주는 성실한 학자로 평가 받아 왔다.

송 교수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사연은 특별하다. 그는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반정부 지식인과 민주인사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자 1974년 재독 반유신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 결성을 주도해 초대 의장을 맡게 되었고,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임으로써 박정희 정부에 의해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어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1973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1990년 중반부터 여섯 차례에 걸친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를 성사시키는 등 학자의 위치에서 남북의 화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의 이런 노력에도 오랫동안 국가정보원은 그를 대표젹인 친북 인사로 분류해 조사 대상으로 삼아왔다. 1991년 모교 초빙교수로 초청되었으나 반정부 활동 전력 문제로 무산된 바 있으며, 2000년 제5회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시상식 참석을 위해 귀국하려 했으나 국정원의 '준법계약서' 제출 요구 때문에 역시나 무산됐다. 마침내 2003년 9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가족과 함께 귀국했으나 국정원 조사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고 긴 법정투쟁 후, 2004년 7월 2심 재판에서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2004년 3월, 서울구치소 안에 있을 때, '안중근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37년만의 귀국

37년만에 고국에 귀국한 송두율 교수는 지난 1996년에 세상을 떠난 부친의 묘소를 참배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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