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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약속한 찬란한 세계는 어디로? 쥐꼬리만한 월급만 남았구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올라나. 너만 안 보면 그나마 좀 나을 것 같다. 훗! 헤이 MB, 디즈니 미키 마우스의 환상의 쇼보다도 개념 없는 너의 파쇼, 귓구멍이나 파쇼!」
-래퍼 한낱의 '밤말은 쥐가 들었다'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유하는 '쥐'의 입장에서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곡. 래퍼가 '귓구멍이나 파쇼'라고 외치면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언제부턴가 집회 현장에서 민중가요와 함께 힙합 음악도 간간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로 전투적인 투쟁가와 몸짓, 구호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집회 현장에서 나오는 힙합이라? 왠지 낯설다. 하지만 힙합에 익숙한 대중들에겐 더 친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투쟁적이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다. 가사는 오히려 더 직설적이고 전투적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단 소박한 단꿈이 곧 한숨이 돼 한줌의 재로 날아 사라지는 나날, 그날을 끝내려 곡기를 끊어낸 그녀들의 삶, 싸움. 모두를 위한다는 법과 도덕의 가치는 독단에 갇힌 권력의 거친 변명일 뿐, 가진 자의 풍요. 평화만을 지킨 기만과 배반의 칼이 되어 돌아왔지.」
-래퍼 한낱의 '조각난 목소리' 중에서

이 곡의 사이사이엔 이랜드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의 절규어린 외침들도 들어가 있다.

"무대에 선 그의 모습에선 팔팔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지난주 <민중의소리-칭찬합시다>의 주인공이었던 김정하(장애인인권발바닥행동) 씨가 인권운동가(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이자 래퍼인 한낱(28)을 칭찬하면서 했던 말이다. 왜소한 체구, 앳된 외모와 목소리…. 그를 직접 본 순간 받은 느낌은 상상했던 강렬하고 전투적인 래퍼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아, 사실 제가 칭찬받은 일을 별로 한 건 없는데…. 어쨌든 '되게 겸손해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식으로 좀 띄워주세요. 하하하."
기자와 마주앉자마자 천연덕스런 농담을 건네던 한낱. 뭐 어쨌든 발랄한 말투에선 래퍼 특유의 '리드미컬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명색이 래펀데….' 검증을 하고자 하려는 '직업병' 때문일까? 인권운동가의 랩은 어떤지 궁금했다. 랩 한소절을 주문하자 그는 얼굴을 쑥스럽게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MB는 나의 뮤즈"

"학교에서 열린 페미니즘 문화제에서 처음으로 직접 만든 곡을 불렀는데, 상당히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인권운동을 하면서도 랩을 하게 된 거예요. 집회나 기자회견에서 발언대에 오르면 박자감 있게 발언하는 느낌으로 랩을 해요. 그때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에요."

'한낱'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한낱'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한낱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랩을 하게 됐다. 대학시절 힙합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너도 한번 해 보자'는 제안을 받고, 우연찮게 힙합의 세계에 빠져든 것. 그때 시작하게 된 랩은 이제 그의 대표적인 표현 수단으로 통한다. "랩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어요. 약 3~4분 길이의 곡에 많은 가사가 들어가기 때문이죠. 제가 하는 랩이 다른 민중가요랑 다른 점은 그거에요."

래퍼로서의 한낱은 대중적 존재가 아니다. 비록 아마추어 래퍼지만 다른 어떤 메이저 래퍼들에 뒤지지 않는 표현력과 솔직함을 갖고 있다. 힙합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저항 정신'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들보다 월등하다. 메이저 래퍼들은 절대 솔직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현실이다. '저항'은 솔직함에서 나오는 법, 한낱은 어쩌면 국내 어떤 래퍼들보다 '저항적'인 래퍼일 지도 모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건 그는 현장을 다니는 유일한 래퍼라는 사실이다.

"저는 인기에 영합할 필요가 없잖아요. 눈치 볼 게 전혀 없어요. 래퍼들은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고민을 하잖아요. 그런데 전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요. 제가 서는 무대는 주로 집회 현장이기 때문에 제가 평소에 느끼던 생각을 노래로 던지면 사람들은 그대로 흡수하죠."

그는 표현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정권 들어 그 자유로운 표현은 더 강렬한 분노를 담아 표출된다. 한낱은 익살스럽게 말했다. "전 이명박이 저의 뮤즈라고 얘기하고 다녀요. 그가 음악적 영감을 많이 주거든요."

'낚여서' 푹 빠져들다

래퍼 한낱은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다. 그게 본업이다.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로 있는 그에게 전업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뭐냐고 물으니 '낚여서 그렇다'고 답했다. 2008년부터 '들'에서 일반 회원으로 활동을 했던 그는 강사로 교육을 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꽤나 눈에 띄는 인재였다. 상임활동가 증원이 필요했던 '들'은 한낱을 타깃으로 삼았다. 결국 다른 상임활동가들의 꼬임(?)에 넘어갔다.

"당시 상임활동가들의 입장에선 조직을 번창시키려면 젊으면서도 활력 있는, 그런 매력적인 활동가를 영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웃음)" 그는 스스로를 '들'의 전략적 영입의 대상이었다고 표현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마침 그가 새 길을 한참 모색하던 시점에 '들'이 창립했고, 운 좋게 초창기 회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사실 이 단초는 잠시 동안의 기간제 교사 생활이 제공했다. 대학시절 교직이수를 했던 한낱은 장래를 본격적으로 모색할 무렵 청소년 인권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마침 한 학교에 기간제 교사 자리가 난 틈을 타 '학교에서 청소년을 위한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는 그의 의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첫 출근을 하자마자 교장은 그를 불러 '전교조 교사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당부했고, 학생들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교무실 분위기에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꿈꾸는 그의 목소리는 그냥 묵살됐다. 그는 당시 학교에서의 체험이 좋았다면 임용고시를 보고 교직에 뛰어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교현장은 그에게 좌절감만 불러왔다. 결정적으로 그에게 교사는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학교라는 곳은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때가 많은 공간이에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거죠.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란 건 하기 싫은 걸 한 뒤에 우연찮게 성과가 좋아서 교장한테 칭찬을 받을 때 제 기분이 좋아지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맞춰지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 순간 너무 무서워진 거예요."

결국 '교사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한낱은 학교를 뛰쳐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계약 기간이 끝나서 자연스럽게 그만뒀다. 그 때 그를 맞이한 게 바로 '들'이다. "사람이 다른 길을 찾을 때 분명한 뜻이 있어야 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그만큼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란 공간에서 해방된 한낱은 그토록 원하던 청소년 인권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혹자는 그를 두고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난 도피자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의 목표가 교사가 아닌 걸. 그는 오히려 '들'에서의 청소년 인권운동이 그를 이 세계로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청소년 인권

현재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의제는 '청소년 인권'이다. 한낱은 청소년 인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라고 역설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이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하는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과잉 보호주의는 오히려 청소년을 억압하는 도구로 밖에 작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낱'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한낱'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다른 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청소년들에 있어서 보호주의는 가장 큰 난맥 중 하나에요. 성인들에게 내려지지 않은 여러 금지 조치들, 예컨대 열시 이후 찜질방 이용 금지, 학교에서의 휴대폰 사용 금지, 성행위 금지, 흡연 금지 등은 왜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고민도 없이 쉽게 내려지는 거죠? 미성숙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끊임없이 선택하고 실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줘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청소년들은 더 뛰어난 판단력이 길러지는데."

한낱은 청소년 교육에 있어 가장 핵심적으로 해야 할 건 보호가 아니라 '자력화'를 길러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잘한 규율과 제약은 오히려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기 결정권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청소년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보호주의 의식을 설명하면서 그는 최근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일러줬다. 한낱의 말에 따르면 그 학교는 일제고사 성적이 낮게 나왔다는 것을 빌미로 두발 규제 등 기존의 규율을 더 강화했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학내 시위를 벌였고, '아수나로'라는 한 청소년 인권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자 학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결정에 의해 벌어진 학내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아이들을 선동했다'며 '아수나로' 회원들을 쫓아냈다. 결국 학내 시위는 저지당했다.

한낱은 "이런 기성세대들의 행동에는 '청소년들이 아직 미성숙하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이 뭔가 판단을 요구하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전제가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명 한명의 거부.멈춤 선언을 두고 외부에선 무책임하고 철없다고 얘기해요. 천편일률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가기 싫기 때문에 하는 '멈춤', 예를 들어 최근 고려대 김예슬 씨의 자퇴 선언 등을 두고 한 때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치부하기엔 어폐가 크죠.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땐 일단 멈춰야 다른 대안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되는 사회는 언제쯤 가능할까?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잣대를 기준으로 천편일률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 잣대의 범위에서 이탈하면 '비행 청소년'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음악을 잘해도, 운동을 잘해도 학교 성적이 좋지 않으면 불량 학생이다. 되도록 많은 청소년들을 자본주의 사회를 굳건하게 지탱할 수 있는 미래 인재가 되도록 제조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하지만 확실한 건 모든 청소년들이 그러한 교육을 충실하게 받는다 하더라도 '부(富)'부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여기에 더 가깝다.

더 웃고, 더 게으르고, 더 노는 세상

한낱은 강신주 씨가 쓴 책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인용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웃고, 게을러지고, 놀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표현을 빌려 각각 해학, 노동시간, 목표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이야기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은 이명박의 어이없는 행동을 비꼬면서 웃어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상대방이 당연한 것처럼 할 때, 사람들은 웃어요. 사람들은 그런 식의 해학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의식화되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인권교육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절실한 게 바로 '휴식'이에요. 쉬고 싶은데 쉬지 못하는 게 우리 사회라는 거죠.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우리 스스로 자기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투쟁해서 법제화 시킨 하루 여덟시간 노동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거죠. 그럴수록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거는 기대치가 커 져요. 스스로가 일을 멈추고, 게을러져야 회사도 깨닫고, 사회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더 논다는 것'에 대해 말할게요. 논다는 건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기의 목표를 위해 일을 하는 데도 마찬가지죠. 어렸을 때 자기 스스로 찾아가면서 까지 놀았잖아요. 우리는 그 순수한 느낌들을 갖고 맡은 일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되짚어보니 한낱의 삶은 이와 너무나도 유사했다. 적절한 해학과 게으름, 놀이. 이 모든 게 버무려진 삶이 어쩌면 그의 삶이 아닐까?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03-19 19:27:12
  • 최종업데이트 : 2010-10-12 00: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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