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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2년전 '10개항 경영쇄신안' 하나도 안 지켰다

"재판 유리한 결과 위한 '대국민 사기극' 증명된 셈"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입력 2010-03-24 16:51:12 l 수정 2010-03-24 22:19:58

지난 2008년 4월 22일 경영 일선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이건희 회장

지난 2008년 4월 22일 경영 일선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은 경영에서 퇴진합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 문화재단 이사장 등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직에서 사임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닷새 뒤인 지난 2008년 4월 22일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겠다는 '국민께 사과 및 퇴진 성명'을 직접 발표한 뒤 10개 항의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다. 이 회장의 성명과 쇄신안은 일종의 '대국민 약속'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24일 이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직에 복귀함으로써 이 약속들은 사실상 전부 거짓말이 됐다.

우선 10개 쇄신안중 첫 번째 항목이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이 회장의 퇴진은 이날자로 무위로 돌아갔다. 두 번째 항목인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의 리움미술관장직 퇴진은 비록 실천에 옮겨졌으나 이 회장이 복귀한 이상 별 의미가 없게 됐다. 세 번째 항목인 아들 이재용씨의 당시 전무(COO:최고고객책임자)직 사임 및 해외시장 개척 역시 지난해 12월 15일 인사에서 삼성전자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하면서 지켜지지 못했다.

전략기획실 해체와 이학수.김인주 등 비자금조성, 불법 경영권 승계 연루 인사들의 퇴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이 회장의 복귀를 발표하면서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사장단 협의회 산하에 업무지원팀, 커뮤니케이션팀, 법무팀 세 개가 있는데 이걸 3개실로 확대 개편하는 것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회장님을 보좌하기 위한 회장실을 당장 둬야 하고, 기존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두고 있는 3개 조직을 확대한다는 차원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기존 '회장-전략기획실(구조조정본부)-계열사 사장단'으로 이어지는 황제경영 구조를 부활시키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전략기획실 핵심 인사의 퇴진과 관련해서도 이학수 씨는 이미 지난해부터 공식적으로는 해체된 전략기획실의 총괄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밖에도 비자금조성, 불법 경영권 승계에 연루된 장충기 사장, 최광해 부사장 등 핵심 인물들은 여전히 삼성에서 월급봉투를 받고 있다.

결국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로 요약되는 5개 항목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이뿐 아니라 비자금 처리와 각종 경영 관련 사항들에 대한 약속도 공수표가 됐다.

삼성은 경영쇄신안 여섯번째 항목에서 "특검에서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는 과거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신탁한 것으로 이번에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 회장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 보자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용도에 대해서는 이러한 회장의 취지에 맞도록 시간을 갖고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은 이 회장의 차명주식 일부를 실명 전환한 뒤 현재까지 실명 전환 재산의 사용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삼성생명, 증권, 화재 등 금융사에 대해서는 경영 투명성을 더 높이고 정도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겠다"는 약속 역시 "물의를 일으켰다"며 사퇴시킨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을 삼성정밀 사장으로 재임용하거나 황태선 전 삼성화재 사장에게 거액의 스톡옵션을 안겨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삼성은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 역시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삼성이 비록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과 보험업법의 개정으로 보험사 지급결제가 허용돼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자산운용 등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지급결제기능을 포함한 실질적 은행 업무를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상징적으로 내놓은 삼성카드 보유 삼성에버랜드 지분의 매각 역시 이미 지난 2006년 국회를 통과한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 개정안의 부칙에 따라 5년 내에 매각하도록 시정조치를 받은 사항을 재확인 것이었다.

이밖에 삼성과 직무상 연관이 있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나, 지주회사 전환,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삼성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도록 한다는 약속들 역시 지켜지지 않았거나 의미가 없는 약속이었다.

물론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약속은 2008년 발표 당시때부터 이행 가능성과는 별개로 핵심적인 부분을 비껴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10개 항목의 쇄신안은 삼성 특검수사와 대법원 판결로 배임행위가 드러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삼성SDS 신주인권부사채 인수를 통해 얻은 이재용 씨의 불법이득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나,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를 정점으로 하는 순환출자 구조 개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처럼 처음부터 핵심을 빼먹은 약속마저 이건희 회장과 삼성은 지키지 않은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2년 전의 경영 쇄신안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은, 그 경영 쇄신안이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8년 4월 22일 발표한 성명 전문과 삼성이 발표한 경영쇄신안이다.

이건희 "법적 도의적 책임 다하겠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저는 오늘 삼성 회장 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 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 안고 가겠습니다.

그동안 저로부터 비롯된 특검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드리면서 이에 따른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삼성가족 여러분 20년전 저는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 날, 모든 영광과 결실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오늘날의 삼성이 있기까지는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과 사회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 더 아끼고 도와 주셔서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키워 주시기 바랍니다.


삼성그룹 경영쇄신 내용


1. 이건희 회장은 경영에서 퇴진합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 문화재단 이사장 등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직에서 사임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

이 회장은 그동안 기업경영에 온 힘을 다해 왔지만 국민의 기대와 뜻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지난 몇 달간 고심 끝에 퇴진한다고 하였습니다.

삼성 사장단을 비롯한 임직원 전원은 이건희 회장이 못다 이룬 세계 초일류기업을 만드는데 매진하는 한편, 국가경제 살리기에 더 한층 노력하기로 다짐했습니다.

2.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함께 홍라희 관장도 리움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 직을 사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3. 이재용 전무는 삼성전자의 CCO를 사임한 후 주로 여건이 열악한 해외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체험하고 시장개척 업무를 하게 될 것입니다.

4. 전략기획실은 해체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전략기획실은 대규모의 투자가 수반되는 그룹 차원의 전략사업을 육성하고, 각 계열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지원해 왔습니다. 특히 IMF 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각사의 독자적인 경영역량이 확보되었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체제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하여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하였습니다.

5. 전략기획실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잔무처리가 끝난 후 일체의 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6. 차명계좌 처리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특검에서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는 과거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신탁한 것으로 이번에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 보자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용도에 대해서는 이러한 회장의 취지에 맞도록 시간을 갖고 준비하겠습니다.

7. 다음으로 금융사업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삼성생명, 증권, 화재 등 금융사에 대해서는 경영 투명성을 더 높이고 정도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겠습니다.

삼성화재 황태선 사장, 삼성증권 배호원 사장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삼성이 은행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의혹이 많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명확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삼성은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습니다. 오직 금융사들의 경영을 더욱 튼튼하게 다져서 일류기업으로 키우는데 매진할 것입니다.

8. 그리고 사외이사들이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삼성과 직무상으로 연관이 있는 인사들은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겠습니다.

9. 지주회사와 순환출자 문제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습니다만, 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약 20조원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습니다. 다만 순환출자 문제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하는 등 계속 검토하겠습니다.

10. 끝으로 이건희 회장의 퇴진 후에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할 일이 있을 경우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장단회의를 실무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 서비스를 전담하는 업무지원실을 임원 2 ~ 3명 정도의 소규모 조직으로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설치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내용 중 전략기획실 해체, 사임 등 가능한 부분은 6월 말까지 관련된 법적 절차와 실무 준비를 모두 마치고, 7월 1일부터 차질없이 시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발표한 것으로 삼성의 쇄신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칠 것이 있으면 적극 고쳐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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