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사찰과 구조조정에 학생회는 '단단'해졌다

[인터뷰] 강보람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입력 2010-04-17 03:09:00l수정 2010-04-19 10:26:32
강보람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강보람 숙명여대 총학생회장ⓒ강보람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학생사찰',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던 80년대의 언어다. '구조조정',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일상이 된 2000년대의 언어다. 하지만 2010년의 대학에는 이 두 가지 단어가 동시에 횡행하고 있다.

지난 3월 경찰이 서울대 조세훈, 박선아 씨 등 대학생들의 IP를 추적해 학교 전산원에 신상정보를 요청한 사실이 밝혀졌다. 조 씨는 '자본주의 연구회'라는 진보적 성향의 학술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경찰은 이에 대해 사찰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 사찰활동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중앙대학교는 '학제개편안'이라는 이름의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구조조정의 핵심 방향은 취업이 잘 되지 않는 기초학문 학과의 인원을 줄여 학부로 통폐합하고 경영대를 '학교 발전을 선도하는 대표 단과대'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삭발과 농성을 해도 학교 측은 일방적 추진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도 블랙리스트에?”

‘학생사찰’과 ‘구조조정’, 숙명여대에는 현재 이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불거져 있다.

작년 11월 숙명여대에서는 학교를 비판하거나 촛불시위에 동참하자고 호소한 학생들을 학생처 산하 학생문화복지팀에서 사찰한 자료가 발견되었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진전이 없어, 14일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학교는 앞으로 개인정보보호 잘할 테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원인규명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런 말은 하는 것은 사건을 무마하고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000씨는 학교에서 소송을 취하하라는 회유와 압력도 있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소송을 취하할 뜻이 없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 사건이 터진 이후 학생들이 온라인 게시판에 글쓰는 것을 어려워해요. 글을 올리는 학생들도 이런 말을 합니다. 학교에 부정적인 글을 쓰면 나도 블랙리스트 올라가는 것 아니냐고.”

교수들도 모르는 학제개편 진행

강 씨는 학교 측이 “학생들을 무시하거나 감시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며 학제개편안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학제 개편안을 교수님들도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하다가 완성안을 탁 내놓은 겁니다. 학교 교무위원회에서 통과된 지 며칠 뒤에 언론 보도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도 모르게 일을 진행한거죠.”

숙명여대는 3월 초 경영학부를 경영대학으로 독립시키고 경제학부를 사회과학대학으로 편입시키는 등의 학제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들과의 토론 절차가 전혀 없이 진행되어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이에 반발해 먼저 시위에 나섰다. 강 씨는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학교 측은 간담회와 설명회를 급히 열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졸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이 드러나 지금은 학제 개편에 대해 한 발 물러선 상태다.

비민주적 학칙 개정에, 압도적 지지 보내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내에서의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정을 공식화하고 비민주적인 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학칙개정 총투표를 진행했다.

“학칙에 학생과 교수들의 의견수렴과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학평의원회를 공식화해서 예산안, 등록금 책정 등의 정책 결정과정에 학생들과 교수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학내에서 자치활동, 언론활동, 공간사용 등에 대해 학교 측의 승인이 있어야만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검열제가 되어 있는 것이죠. 이것을 신청만 하면 할 수 있도록 바꾸려고 합니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의 학칙 개정안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9,000여 명의 학생중 4,741명이 참가해 93%가 지지를 보냈다.

"학칙 개정 투표에 총학생회 선거에서 저를 지지한 학생들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학교가 총 44개 학과인데 학생사찰 대책위에는 30개가 넘는 과학생회가 나섰고 학칙개정안 요구안에도 30개가 넘는 학과가 동참했습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강보람 씨는 “학생들이 총학생회가 속시원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통쾌해 하는 것 같다”고 자신있게 얘기했다.

사실 올해 그가 하려던 일은 이것이 아니었다. 그가 작년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건 주요 공약은 등록금 문제 해결과 MATE 문제 해결이었다. MATE는 숙명여대의 영어졸업자격시험이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알아 주지도 않고 토익이나 토플로 대체가 되지 않는 데다 고액의 응시료까지 내야 돼 학생들의 불만이 아주 큰 사안이었습니다. 한 해에 이 시험 때문에 졸업을 못하는 학생들이 200명에 달했어요.”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당선이 되고 난 후 겨울방학 때 이를 토익과 토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등록금은 동결이 되었다. 강 총학생회장은 “등록금 문제는 이제 협의테이블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등록금 책정과 예결산 감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내걸었던 핵심적인 공약은 이미 얼추 다 이행한 셈이다. 학교 측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대응을 하면서도 자신의 공약은 차근차근 이행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학생회와 학생들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붕괴되었던 공동체가 다시 생성되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어떤 총학생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강 씨의 답이 말해주는 듯하다.

“학교에는 당당하고 학생들에게는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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