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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발견됐다고 어뢰?..수백년전 화약도 발견되는데

20년전 노르웨이 항공사고, 테러인줄 알았더니 17세기 화흔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입력 2010-05-13 00:22:51 l 수정 2010-05-13 01:58:55

지난주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천안함 함체에서 고폭약 성분인 RDX가 검출됐다고 일부 언론에 밝혀 한바탕 '소동'을 불러온 바 있다. 이 관계자가 "이 화약은 기뢰가 아닌 어뢰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합조단에서 어뢰 폭발로 결론을 내린 상태"라고 <연합뉴스>에 말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북한 어뢰의 증거라도 찾은 양 작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8일 <민중의소리> 뿐만 아니라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이 검출된 RDX가 미국, 영국, 캐나다, 한국 등에서 사용하는 어뢰에 들어가는 성분이며 독일제뿐만 아니라 미국산 어뢰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보도하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10일 예고없이 기자실을 찾아 RDX로 폭발물의 제조국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진화에 나섰다.

김 장관은 "RDX는 2차대전 때부터 사용된 폭약 성분으로 옛 소련을 포함한 다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사용되고 있고, 현재는 모든 국가의 군과 산업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합조단 문병옥 대변인(해군 준장)은 "RDX는 기뢰에도 사용된다"며 오히려 어뢰 가능성에 쏠리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특히 천안함 침몰 지역이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의 포사격 훈련지역이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전문가들은 RDX와 같은 화약흔이 백령도 서남부 해역에 화약흔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RDX 검출을 어뢰의 증거로 삼으려고 하다 꼬인 셈이 된 것.

그런데 20여년 전 노르웨이 최악의 항공기 사고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소동이 벌어졌다.

파르트나이르

1989년 9월 8일 추락한 파르트나이르(Partnair) 항공 394편과 같은 기종의 항공기


1989년 9월 8일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을 이륙해 서독 함부르크로 향하던 파르트나이르(Partnair) 항공 394편 '콘베어 580'(Convair 580) 쌍발 프로펠러기가 덴마크 히르츠할스(Hirtshals) 해안에서 18km떨어진 해상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이 항공기에는 노르웨이의 한 조선회사 직원 50명과 승무원 5명 등 총 55명이 탑승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사망했다. 이 사고는 지금까지도 노르웨이에서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당시 사고기의 잔해는 해상에서 2km에 걸쳐 산재돼 있어 사고기는 공중에서 폭발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부 노르웨이 언론들은 폭탄이 터진 게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콘베어 580'기 사고 1년 전인 1988년 12월 팬암기 폭파 사건이 발생한 터라 폭탄 테러설은 점점 힘을 얻는 분위기였다.

특히 노르웨이 언론들은 브런트란트(Brundtland) 당시 총리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파르트나이르 항공을 자주 이용했다면서, 이 사건을 암살집단의 폭탄 테러로 기정사실화했다.

이런 의혹은 사고기 잔해에서 미량의 군용 고폭약 성분이 발견되면서 정점에 달했다. 그렇지 않아도 폭탄 테러설을 연일 보도하던 노르웨이 언론들은 "드디어 진실이 밝혀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검출된 화약 흔적에 대해 노르웨이 정부 관리들이 사고 당일 실시된 나토군의 훈련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각종 폭탄 테러 이론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르웨이 항공사고 조사국(AIBN)이 밝힌 사고의 전말은 이랬다.

당시 파르트나이르 항공사의 재정상태는 최악이었는데, 사고 여객기가 이륙할 때도 노르웨이 항공당국은 파르트나이르 항공이 채무를 갚기 전까지 이륙허가를 내주지 말도록 공항에 지시할 정도였다.

이륙 직전 사고가 난 파르트나이르 394기의 두 개의 주엔진 중 하나는 이미 고장난 상태였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파르트나이르 항공은 정비를 제대로 할 비용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륙 직전 부기장은 고장난 주엔진을 대체하기 위해 보조엔진(APU) 3기를 장착하게 했으나 이중 1개의 보조엔진 역시 고장인 상태였다.

이에 더해 파르트나이르 항공은 소속 항공기의 정비 과정에서 정품이 아닌 값이 싼 불량 부품을 사용했다. 사고가 난 파르트나이르 394기의 꼬리날개와 기체를 이어주는 나사들이 불량품이었던 것. 덴마크 연안 북해 2만 2천피트 상공을 비행하던 순간 문제의 나사들이 풀리기 시작했고, 공진현상(resonance)으로 인해 고장나 있던 보조엔진의 기동이 약화돼 기체의 진동이 심해지면서 꼬리날개 부분의 나사들은 상황이 더 심각해져 갔다.

britishbattle.com

18세기말 덴마크 해안에서 벌어진 영국 해군과 덴마크 해군의 해전

결국 파르트나이르 394기의 꼬리날개는 기체에서 떨어져 나갔고 동체는 바다에 추락해 버렸다.

노르웨이 당국은 사고기 잔해의 화약 흔적을 정밀 분석한 결과 17~18세기 주변국들이 덴마크 해안에서 해양 주도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일 당시 사용됐던 오래된 화약 성분임을 밝혀냈다. AIBN은 해저에 가라앉은 이 시기 화약 흔적물이 사고기 기체 잔해에 묻은 것으로 최종 발표했다.

실제 영국 해군사를 보면 이 시기 유럽의 최강국으로 떠오르던 영국의 넬슨 제독이 이끄는 함대는 이 지역 부근에서 덴마크 함대와 자주 전쟁을 치렀다.



<참고자료>
National Geographic, 'Air Crash Investigation' season 6:Partnair Flight 394
AIB-Norway's report on the acc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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