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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BDA의 기억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0-07-29 14:19:11 l 수정 2010-07-29 19:27:01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강도 높은 대북 금융제재 방침을 밝히면서,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 동결 사건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BDA제재가 북한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만능 해법처럼 과시해왔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 21일 서울에서 “몇 년 전 우리는 국무부와 재무부를 통해 원하는 어떤 결과를 얻어냈다”고 밝혀 BDA 금융제재가 효과를 얻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9.19성명 그리고 BDA=5년 전 9월로 돌아가보면 당시는 2차 핵위기를 겪고 있던 북미 양국이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내면서 극적 타결의 계기를 맞았던 때다.

하지만 바로 하루 뒤인 9월 20일 미국 재무부는 연방 관보를 통해 BDA를 ‘돈세탁 우선 우려 금융기관’으로 발표했다. 북이 BDA를 통해 위조 달러를 유통하고 마약거래 대금 등 불법자금을 세탁한 혐의가 있다는 이유였다.

미 재무부는 애국법 311조를 근거로 미국 은행들이 BDA와 거래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당시엔 재무부의 이 조치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금융기관들이 BDA와 거래를 중단하기 시작하면서 이들과의 거래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세계 금융기관들이 알아서 엎드리기 시작했다.

결국엔 마카오 당국이 나서서 BDA에 예치된 북한 자금 2천5백만 달러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로써 북미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6자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2006년 10월 핵시험을 단행했다. 여파는 오래 갔다.

◆2천5백만 달러의 종착역은=이는 2007년 2.13합의가 채택된 이후인 2007년 6월말 묶였던 자금이 북한으로 송금될 때까지 이어졌다. BDA 제재는 ‘북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험’으로만 부각돼왔지만 결과는 2천5백만 달러가 모두 북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인식차는 뚜렷했다. 미국은 이를 '기술적인 문제'로 접근한 반면 북한은 이를 ‘정치외교상의 문제’로 대했다.

북한은 BDA제재 조치를 부시 행정부의 압박수단 중 하나로 인식했다. 따라서 이는 협상의 산물인 9.19공동성명을 무력화한 행위였다. 북은 이를 부시 정부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반발했었다. 6자회담 불참이나 핵시험은 이 같은 인식의 결과였다.

반면 미국은 이를 '기술적'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북핵시험 이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2.13합의라는 '정치적 타협'에 기초해 BDA에 묶인 자금을 애국법 311조가 적용되지 않는 미 연방준비은행을 통한 후 러시아 중앙은행을 거쳐 두 차례 ‘세탁’하는 기술적 해법을 택해야 했다.

◆김계관 부상 발언의 저작권=재미있는 사실은 BDA제재를 ‘전가의 보도’로 만들었던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 나왔던 맥락이다. 최근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이 발언의 '저작권자'가 자신이라고 소개하면서 발언의 의미가 “와전”됐다고 밝혔다.

당시 김계관 부상은 “금융은 피와 같다. 이것이 멈추면 심장도 멎는다”고 말했었다. 이는 그만큼 BDA제재로 인해 북이 고통을 받았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돼왔다.

그런데 당시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송 의원은 이 발언이 2005년 11월 자신이 북측 대표와 만나 ‘금융은 막히면 사람 신체에 혈관이 막히는 것과 같이 심각한 일이니까 협상을 통해 다 해결하자’고 설명했던 것을 김 부상이 인용했던 것이었다고 설명한 것.

덧붙여 그는 “마치 그런 걸 하면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처럼 지금 오인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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