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 자기 최면에 걸려 객관적인 양 착각하는 것"

[인터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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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로버트 아인혼 대북 제재 조정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그는 한국 일정을 마친 후 일본,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도 방문할 예정이다. 아인혼의 이번 방문을 기점으로 미국의 추가 대북 제재조치는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추가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 "중국이 협조를 하지 않고 있지 않나"며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금융제재에 나서는 것은 단순히 천안함사건 등에 대한 대응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희망적 관측의 동굴"로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떠오르자 미국은 북한이 붕괴할수도 있다는 인식을 한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BDA제재가 실제로 큰 효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또다시 금융제재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이런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희망적 관측을 계속 하다보면 나중에는 자기 최면에 걸려 이런 관측이 객관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며 미국의 이런 대북인식을 비판했다.

정 장관은 제재조치가 진행되는 과정속에 새로운 문제가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 가능성 중 북한이 대북제재에 대항해 '강화된 핵 억지력'을 언급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북이 말하고 있는 '강화된 핵 억지력'은 이전 보다 폭발력이 큰 2차 핵실험일 수도 있고 탄두의 소형화,경량화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탄두의 소형화.경량화를 위한 핵심기술인 핵융합에 북한이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은 허풍일 것이라는 일각의 평가를 정 전 장관은 일축했다. 그는 "지금까지 핵과 관련된 북한의 대외발표내용을 보면 허무맹랑한 것은 없었다"며 "허풍이면 스스로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데 어떻게 그러겠냐"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대북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데 대해 "지금처럼 대북정책이 외통수로가면 다른 어드바이스가 아무런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며 "내가 답답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4900만이 답답한 게 문제"라고 밝혔다.


<민중의소리>는 지난 30일 오후 3시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남북관계 등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 2+2 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추가제재조치, 특히 금융제재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제재가 북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아인혼 조정관이 제재 협의를 위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는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에서 추가할수 있는 제재는 개성공단 임금 정도다. 그리고 일본은 조총련계 송금제한 정도인데, 일본내 북한 재산 얼마나 되겠나.게다가 북은 이미 BDA제재를 당했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외환계좌 관련 법 등을 개정해놨다.

결국 핵심은 중국인데, 지금 중국이 협조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지 않나.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제재를 하다보면 예상치 못했지만 무심코 상대의 급소를 건드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만일 그렇게 돼서 북에 타격이 크면, 그 타격의 정도에 따라서 북한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 어떤 반발이 있을 수 있나

=대북제재조치 얘기가 나오자 북한은 지금 '강화된 핵 억지력'을 얘기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지난 2차에 걸친 핵실험보다 훨씬 폭발력이 큰 핵실험일 수도 있고 탄두의 소형화.경량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5월 북한이 핵융합기술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북한의 핵융합 성공 발표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믿는 않는 분위기가 많은데

=지금까지 핵과 관련된 북한의 대외발표내용을 보면 허무맹랑한 것은 없었다. 북이 핵관련 얘기를 꺼내는 것은 미국에 협상의 절박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이 '뻥'이라면 미국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허위로 얘기하면 스스로의 협상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미국은 위성 등을 통해 정보와 자료를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겠나.

93년에 북미가 양자접촉을 시작할 때 보면 미국과 북한이 주거니받거니 하는 말싸움속에서도 '불편한 진실'이 오갔고 그속에서 접점이 찾아졌다. 우리는 '뻥'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이 제재를 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급소를 맞게 되면 이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날 수도 있다.

- 2005년 BDA제재는 사실 북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왜 또 금융제재 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보나

=2005년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나쁘지 않았을 때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 정보기관의 대북정보판단을 보면 최고권력자의 유고를 굉장히 중요한 변수로 생각한다. 2008년 가을 이후부터 김 위원장의 건강이 북한정권과 체제의 장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졌다고 보는 것이다. 15년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희망적 관측'의 동굴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 15년전에 미국이 어떻게 판단했다는 건가

=94~95년에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은 북한 정권이 몇년 안남았다는 것이었다. 3년 이내에 무너지든지 많아야 10년내에 붕괴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북한의 핵관련 활동을 일단 중지시키는 것까지만 끌고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경수로 건설 등 핵포기에 대한 반대 보상은 시간이 지나면 원천적으로 없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었다. 미국 정보기관 얘기를 입수했을 우리나라 고위직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러면 지금도 미국은 북한이 붕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건가

=미국은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북한 붕괴 가능성에 비중을 높이 두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후계체재를 빨리 구축하려고 하자 김위원장의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회복불능상태가 되고 나이어린 지도자가 나라를 책임져야 된다면 쿠테타가 일어나거나 붕괴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희망적 관측을 계속 하다보면, 나중에는 자기 최면에 걸려서 이런 관측이 객관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런 관측이 천안함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대북강공드라이브를 뒷받침해주는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희망사항 아닌가, 희망이 안이뤄지면 한국과 미국도 곤란해지지 않겠나

=한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매월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북한의 군사적 대응능력을 소진시켜버리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억제력이 있기 때문에 6자회담에서도 평화협정 체결 등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인데, 억제력을 소진시켜버리면 협상도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6자회담에서의 협상력 소진시킬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붕괴가 빨리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방향이 되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도 곤란하지 않나

=북한이 저항해도 그 불똥은 미국까지 가지 않는다. 한반도 상황이 결정적이 순간이 되서 협상을 해야되면 미국은 매정하게 한국 정부와 선을 긋고 북한과 대화할 수도 있다.
미국으로서는 밑져야 본전이다. 그런데 북한이 저항을 해서 한반도의 불안이 커지면 불이익의 크기는 우리가 제일 크다.
우리는 북한 변수때문에 신용등급 등에서 결정타를 맞을 수도 있다. 미국은 그런데서 별 피해가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한미동맹만 하면 된다는 간단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동안 한중관계가 굉장히 불편해지지 않았나. 지금 우리나라에 중국은 최대시장인데 말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힘겨루기차원에서 미국에 바로 뭔가를 할 수 없으니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이 동북아에서 위력을 과시하려고 하면 피해는 우리만 보게 된다.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한미관계를 기본으로 한다고 해도 중국과도 친해야 하고 러시아, 일본하고도 친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자서전에 썼지만 1(미국)+3(중국,일본,러시아)을 잘해야 된다.

그러면 전체에서 중국이 17%쯤 차지해야 되는데, 지금은 미국쪽으로 80%이상 가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도 섭섭하게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6자회담에서 발언권이 있는 나라고 군사적으로도 북태평양에서 미국과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는 나라인데 말이다.

- 작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장관이 북과 만나서 정상회담 추진했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작년 정상회담 추진 건은 현인택 장관이 협상파가 아니고 강경파였기 때무에 안됐다는 게 통설이다. 그런데 내가 통일부 장관이었어도 안했을 것이다. 협상파냐 강경파냐의 문제를 떠나 통일부 장관 몰래 그런 일을 추진하면 안된다. 접근 자체가 잘못됐던 것이다. 통일부를 소외시키면 안된다. 비선을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통일부와 공유하면서 해야 된다. 수면밑으로 하다가 나중에 통일부가 뒤치닥거리하게 하면 될 일도 안되게 된다.

- 전 통일부 장관으로서 현재의 국면을 보면 많이 답답할 것 같다

=내가 답답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4900만이 답답한 게 문제다. 4900만이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지금 이명박정부처럼 대북정책이 외통수로 가면 다른 어드바이스가 아무런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계신다면 어떤 말을 하실 것 같나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한미동맹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편향된 사고를 고쳐야 된다는 얘기를 하지 않을까. 또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조건없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다. 안도적 지원과 정세판단은 별개의 문제라고.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07-31 03:35:16
  • 최종업데이트 : 2010-08-02 09: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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